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93화 (93/248)

#93

팟!

하얀 섬광이 주위에 퍼졌다.

구구궁…….

반경 밖에 있는 땅에도 여진이 남을 만큼 강력한 마법.

제이나는 확신했다. 이정도 파괴력이라면 제아무리 글라투라도 분명 큰 타격을 입었을 거다. 숨죽인 채 비산하는 흙먼지 안을 노려보았다.

스스스.

곧, 바람에 의해 옆으로 밀려나는 흙먼지. 그 안에서 글라투가 터벅터벅 한 발자국씩 걸어 나왔다.

‘어떻게?’

이를 본 제이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말도 안 된다. 방금 전 일격을 모두…….

‘막아 냈다고?’

그사이 제이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한 글라투.

놈은 꽃봉오리가 웅크리듯 몸을 둘러싸고 있던 가시들을 다시 일직선으로 쫙 펼쳤다.

곧 등 뒤로 만개한 가시.

‘아직 잔여 전류가 흐르고 있어.’

가시 끝에 맺힌 전류를 발견한 제이나는 놈이 방금 일격을 막아 낸 게 가시 덕분이라는 걸 확인했다.

‘이런.’

난감한 상황이다.

부식 능력으로 인해 가까이 접근하는 것도 힘든데, 등에 있는 가시들에 의해 놈은 튼튼한 방어벽을 갖추고 있다.

더구나 기습 공격까지 실패. 이제 같은 방식은 두 번 통하지 않을 거다. 또 다른 공격 패턴이 필요한 시점이다.

쾅! 쾅!

때마침 놈의 주변으로 다시 떨어진 포탄들. 하지만 놈이 양손을 뻗을 때마다 날아가는 부식 파장이 마나 포탄을 모두 무효화시켰다.

쿵, 쿵!

순식간에 2차 저지선까지 돌파하는 글라투.

‘지원이 필요해!’

중급 경계 포탑의 힘이 필요하다.

기다렸다는 듯 글라투의 앞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수천 개의 마나탄. 서쪽 중급 포탑에서 날아온 지원이다.

콰콰콰콰콰!

순식간에 쏟아지는 포화.

이는 단순한 마나 포탄이 아니다.

사정거리가 줄어든 대신, 대근접전에 특화된 포탄.

더 작아지고 더 날카로워진 탄알을 날리는 서쪽 중급 포탑의 스무 자루의 중형 30mm 마나 벌컨이었다. 몬스터가 접근하고 있는 걸 본 프롤들이 벌컨을 사용한 것이다.

‘고마워요.’

제이나는 그들의 도움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사이 밀려든 포화에 다시 솟아오른 먼지 폭풍. 그러나 그 중심에 서 있는 글라투는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히려…….

쿵!

한 발씩 전진한다.

콰콰콰콰!

벌컨의 가공할 위력도 상관없다.

놈의 가시 방어벽은 거미줄처럼 얽힌 채 전신을 지켰다.

쿵, 쿵!

그렇게 남쪽 경계 포탑 코앞까지 전진한 글라투.

놈에게 쏟아지던 포화 지원은 이제 씻은 듯 사라졌다. 아니, 포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렇게 가까이 포탄을 날리면 제이나는 물론 탑까지 피해를 입는다.

포화 지원 자체가 불가능해진 셈이었다.

‘결국…….’

제이나는 다가온 글라투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원거리에서의 싸움은 이제 끝이다. 지금부터는 근접전이다.

그녀가 포탑 최상층을 쳐다봤다.

‘아직인가?’

글로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 그의 힘이 필요하건만…….

아쉽지만 혼자 나설 수밖에. 하지만 외롭지 않다.

찬영의 분신인 타우린이 있다.

-음모오오!

울부짖는 타우린.

후욱, 후욱.

거칠게 숨쉬는 타우린의 거체가 돌처럼 변해갔다. 타우린도 본능적으로 살의와 적의를 느끼고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이를 본 그녀가 타우린의 목을 쓰다듬었다.

“잘 부탁해.”

알아들을지, 듣지 않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 옆에 서 있는 유일한 동료는 타우린뿐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고 싶었다.

“헤이스트 2회 중첩.”

그녀가 몸을 날렸다.

평소 헤이스트보다 2배 이상 빨라진 속도.

‘아직까진 버틸 만해.’

3회 중첩은 몰라도 2회 중첩까지는 헤이스트를 통해 몸을 더 날쌔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상은…….

‘힘들어.’

자칫 3회를 중첩시켰다간 몸이 견디지 못하고 기절할 거다. 마법을 통해 한계 이상의 속도를 끌어내는 것도 몸이란 그릇이 받쳐줘야 가능하기에 그렇다.

파밧!

보통 적의 시선을 유인하고 끌어내는 건 늘, 찬영의 몫.

하지만 지금은 찬영이 없다. 오로지 혼자 유인과 공격을 번갈아가며 상대를 괴롭혀야 한다.

‘설사 쓰러트리지는 못하더라도 그가 올 때까지는 버텨야 해!’

그녀는 날렵해진 몸으로 땅을 박찬 후 다시 글라투에게 접근했다.

그사이.

그오오!

리턴 데드가 꿈틀거리며 땅을 기어 나왔다.

꿀꺽.

마주한 제이나가 마른침을 삼켰다.

‘땅 밑으로 온 거야!’

틀림없다.

“타우린!”

그녀의 외침에 타우린이 응답했다.

콰쾅!

돌진하는 돌의 정령. 타우린이 달려가는 가속도로 기어 나오는 리턴 데드들의 몸을 반으로 자르며 돌진했다.

콰콰콰!

커다랗고 견고한 뿔에 몸통이 통째로 사분오열되는 리턴 데드.

‘좋았어!’

타우린의 활약에 제이나의 눈동자에 화색이 감돌았다.

이젠 자신의 차례.

파밧!

뛰어가는 제이나가 좌우로 방향을 바꿔가며 글라투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스륵.

하지만 글라투의 눈은 세 개. 놈은 그녀의 동선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그녀를 비웃는 글라투.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큭큭.”

놈은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새 장난감을 만난 양 기뻐했다.

제이나 역시 달리면서 놈의 커다란 웃음소리를 들었다.

놈에겐 여유가 넘친다.

‘언제까지 여유롭게 웃을 수 있나 보자.’

그녀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젊은 나이에 한 영지의 마법 병단의 단주가 됐다는 건 누구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는 자격을 갖췄다는 얘기. 최악의 상황에서도 늘 침착함과 담력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녀는 이를 증명하듯 오연한 눈빛으로 글라투에 맞섰다.

“어스 홀.”

3서클 어스 홀. 단숨에 10m 구덩이를 만드는 마법이다.

순식간에 글라투의 발밑에 푹 꺼졌다. 하지만 놈은 떨어지지 않았다. 한 발이 삐끗하며 구덩이에 빠지는 듯 했으나 다시 땅을 디디고 걸어 나왔다.

어스 홀을 구현한 마법의 마나를 통째로 부식시켜 버린 거다.

글라투가 낮게 웃었다.

‘더 해 보거라. 밑바닥까지 무기력해지게.’

놈의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제이나는 그 눈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아니, 아직 안 끝났어.’

어차피 놈의 첫 번째 공격이 강력한 부식 파장이라는 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되도 않는 첫 번째 마법을 펼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녀가 쉬지 않고 두 번째 마법을 펼쳤다.

“아이스 스피어 3회 중첩.”

허공에 나타난 2서클의 얼음 창 아홉 개.

쐐액!

날카롭게 벼린 얼음창이 그녀의 손끝을 따라 글라투에게 날아갔다.

그오오!

이를 본 글라투가 가시를 세웠다.

순식간에 놈의 앞을 꽃봉오리 모으듯 감싸는 등의 가시들.

퍼퍼퍼펑!

날아간 얼음창이 가시와 부딪치자마자 일제히 비산했다.

그에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 마법을 발동시킨 그녀.

이번엔 파이어 월이다.

화르륵!

놈의 몸 한가운데에 세로로 구현된 이글거리는 3m 높이의 화염 장벽. 하지만 그 불꽃은 오래가지 못했다.

탁.

구현되자마자 글라투의 양손이 장벽을 연기처럼 픽 사라지게 했다. 또다시 마나를 봉쇄시킨 부식 파장.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과 달리 제이나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날카로운 이채가 흘렀다.

‘그래. 그럼, 그렇지.’

오히려 미소까지 스쳤다.

그도 그럴 게 방금 일격을 통해 그녀가 확인한 건 바로 부식 파장의 발동 시간이었다. 여러 회의 마법을 통해 부식 파장을 연이어 펼칠 수 있는지 놈을 시험해 본 거다.

그 결과.

‘놈의 부식 파장엔 분명 약간의 시간이 필요해.’

확실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부식 파장 사용 직후. 반복적으로 가시 방어벽을 세울 이유가 없다.

그러니 그 틈을 노려야 한다.

탁!

이어서 달리던 걸 멈추고 방향 전환과 함께 몸을 띄운 제이나.

“플라이.”

쐐액!

허공에 몸을 띄운 그녀가 곧장 파이어 볼을 날렸다. 날아오는 불덩이를 노려본 글라투의 붉은 입술에서 싸늘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나약하다. 장난감으로도 쓸모가 없구나.”

쿵!

이후 거대한 발바닥으로 땅을 내려찍은 글라투. 놈의 시선이 허공에 떠 있는 제이나를 향했다.

쾅!

동시에 놈이 날았다. 아니, 치솟았다.

가공할 수준의 도약.

놈이 체공한 채 빠르게 제이나에게 접근했다.

쐐액!

어디선가 들려온 바람 소리. 타우린이다.

쾅!

타우린의 몸통이 정확히 글라투의 몸통에 부딪쳤다.

크게 흔들리며 균형을 잃은 글라투.

쐐애애액!

놈이 타우린과 함께 뒤엉켜 추락했다.

“타우린, 네놈이!”

분노한 글라투의 눈동자가 타우린을 향했다. 다시 시작된 부식 파장. 그리고 타우린의 몸통을 둘러싼 돌들이 빠르게 소멸되어 갔다.

이대로라면 타우린이 형체도 없이 사라질 건 자명한 일.

하지만 제이나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인비저블 핸드 10회 중첩.”

20개가 넘는 손이 허공에서 불쑥 생겨나 추락하는 엉켜 있던 타우린을 낚아채 버렸다. 졸지에 혼자 떨어지게 된 글라투.

“블링크.”

찰나 간 제이나가 추락하는 글라투 앞에 갑작스럽게 솟아올랐다.

초근접한 제이나를 마주한 세 개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제이나는 확신했다.

만약 놈을 제거할 수 있다면…….

‘타이밍은 지금이야.’

때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슬롯을 연달아 개방시켰다.

“슬롯 개방 슬로우 2회 중첩.”

이미 타우린 덕분에 놈은 부식 파장을 1회 사용했다.

거기다 중첩된 슬로우를 통해 놈의 움직임이 둔해진 지금.

“슬롯 개방 프리즈믹 미사일 3회 중첩.”

이 일격은 통할 것이다.

쐐애액!

그녀의 주문을 통해 뻗어나간 푸른 구체 2개.

“블링크.”

황급히 놈에게 떨어졌다.

곧, 얼음 파동이 비산할 테니까!

파밧!

멀리 떨어진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며 추락하는 글라투를 노려봤다. 그리고 휘돌기 시작한 2개의 얼음구체.

맹렬히 회전하는 얼음 구체는 순식간에 글라투의 모든 뼈를 얼어붙게 만들며 화살 형태의 얼음 칼날을 수백 개 일으켰다. 이는 그야말로 얼음 화살의 해일. 화살에 닿는 모든 건 얼어붙자마자 전부 산산조각난다.

‘그것도 2개야.’

끝이다, 글라투.

하지만 생각도 못한 이변이 시작됐다.

프리즈믹 미사일이 날아가는 동시에 놈의 손에 걸려 소멸되기 시작한 거다.

“말도…… 안 돼!”

그 광경에 제이나는 몸이 굳어 버렸다.

믿을 수 없다.

분명 모든 걸 계산한 뒤 움직였건만, 어떻게 사용 시간의 제한 없이 또다시 부식 파장을?

설마…….

‘나를 속였단 건가?’

그 생각이 고개를 든 무렵.

쾅!

글라투는 모든 일격을 소멸시킨 뒤 무사히 착지했다.

“큭큭…….”

그리고 웃었다.

“미끼가 괜찮았느냐?”

세 개의 눈동자가 흥분으로 일렁였다.

그 질문에 제이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이젠 인정해야 했다. 놈은 이제껏 만난 그 어떤 몬스터보다 교활했다. 그리고 그 교활함에…….

‘넘어갔다.’

즉, 놈은 그녀가 자신의 약점을 관찰하리라 생각하고 움직인 거다.

쿵!

다시 걸음을 내딛은 글라투가 육상선수가 스타팅 블록에 자리 잡은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서 제이나를 향해 고개를 쳐든 채 시선을 마주치는 글라투.

놈이 물었다.

“유희는 끝났다.”

쾅!

그리고 미사일처럼 질주하는 놈을 보며 제이나는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 뭐라도 해야 했다.

“헤이스트. 중첩 3회.”

제이나는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무리했다.

하지만 놈이 달려오는 것부터 피해야 한다.

쐐액!

그리고 그 판단이 옳았다.

“크윽!”

몸을 옆으로 날리자마자 등이 뜨거워졌다. 달려온 놈의 칼날 같은 가시가 등을 훑고 지나간 것이다.

쿠당탕!

그로 인해 균형을 잃고 바닥을 나뒹군 제이나.

파밧!

쓰러진 그녀를 확인한 글라투가 전광석화같은 속도로 방향을 전환해 달려왔다. 항거할 수 없는 돌진 속도.

“안 돼. 이대로…….”

끝낼 수 없어!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무덤 자리에 쓰려고 이곳을 온 게 아니다. 곧바로 다시 들려오는 타우린의 울음소리.

-음모오오!

‘타우린!’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광풍과 함께 그녀를 지나친 타우린이 정면으로 쇄도하고 있는 글라투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서서히 두 손을 드는 글라투.

부식 파장이다!

“안 돼! 피해! 타우린!”

황급히 소리를 지른 제이나. 하지만 타우린은 멈추지 않는다.

제이나를 뒤에 둔 채 멈추지 않고 글라투에게 돌진했다.

“큭큭!”

그리고 마주한 두 거체.

쾅!

엉켜든 두 거체가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의 충돌을 이겨 냈다.

하지만.

파직!

타우린의 뒷발이 조금씩 밀려났다.

“타우린이여. 네놈은 나를 막을 수 없다.”

글라투의 선포.

그 의지에 따라 타우린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돌의 방벽이 녹아 내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츠츠츠!

부식 파장은 범위를 넓혀 타우린의 몸통 전체로 넓혀갔다.

가죽 일부가 찢어지며 부식되어 가는 타우린.

-음모오오!

타우린이 울부짖었다.

그때였다.

울음소리에 화답하듯 어마어마한 중력장이 일어났다.

쿠쿵!

이는 살아 있는 모든 걸 내리누르고.

“크읏.”

글라투마저 흠칫거릴 만큼 강력했다.

그리고 놈이 멈칫거린 그 잠깐 새에 어디선가 ‘쐐액’ 하고 인영 하나가, 타우린의 거체를 글라투 앞에서 밀어내며 글라투 앞에 자리 잡았다.

쿠당탕!

그 힘에 떠밀려 옆으로 날아가는 타우린. 동시에 글라투의 시야에 잡히는 인영의 얼굴. 갖고 있던 이동 증가 포션, 이동 이네이트까지 모든 걸 쏟아 부어 귀환한 찬영이다.

“누가…….”

잔뜩 일그러진 찬영의 두 눈에 노기가 서렸다.

“내 새끼, 건드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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