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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85화 (85/248)

#85

“오래 걸리는군.”

영주가 참다못해 말에서 내려왔다.

발동이 멈췄던 베이콥 깃발이 다시 발동된 직후 모든 병력을 데리고 그 파동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 마나 파동은 지금 굴다리 안을 가리키고 있다. 아니,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기다리면 곧 나올 거다, 뭐든.

툭.

철퍽거리는 진흙을 밟으며 15번 굴다리를 노려보는 영주.

그의 눈에 실린 건 초조함. 그때 헤일로 엘프족 출신 마법사가 소리쳤다.

“블루 버드가 반응합니다!”

영주가 눈을 번쩍 떴다.

“어디?”

묻자마자 블루 버드가 날아올라 허공을 선회하며 울어댔다. 열매 향을 느꼈다는 거다.

그 순간 굴다리 안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왔다. 영주는 그들이 누군지 실루엣만으로도 단박에 알아봤다.

“경계 태세를 풀어라! 그들이 돌아왔다! 갓피스가 생환했다!”

영주의 쩌렁쩌렁한 함성에 그의 뒤에 선 수많은 병력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환호성 아래 갓피스들이 나타났다.

“참으로 고생 많았네.”

곧 두 사람을 대면한 영주의 얼굴에 기쁨이 실렸다.

둘의 생환이 의미하는 바가 여러모로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중 가장 큰 의미는 본격적인 반격의 서막이 올랐다는 점이었다. 이제부터 쫓기는 쪽은 뉴 빌드다.

* * *

그 직후 영주는 찬영과 제이나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보고받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예상했던 대로다. 뉴 빌드는 여전히 강성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처도 빨랐다.

“그러니까 우리의 병력 집결을 미리 알아채고 움직였단 말인가?”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들이 말하기로는…….”

“허, 큰코다칠 뻔 했군.”

“자칫하면요.”

찬영은 위험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정말 아찔하다. 자칫 죽을 뻔 한 게 맞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생환. 이쪽은 살아 돌아왔고 뉴 빌드는 많은 피해를 입고 도망쳤다.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니다. 시작에 불과하다.

영주도 이를 안다.

“어서 몰아쳐야겠군.”

찬영이 터트렸던 안개 탄.

그 안에 함께 결합되어 있던 오드론 나무 열매 가루가 영주가 계획한 진짜 노림수라는 걸 혼란에 휩싸인 뉴 빌드가 눈치챌 리 없다.

그럼 이제…….

“가세.”

영주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찬영과 제이나 역시 기다린 바였다.

이 순간을 위해 나머지 잔당을 쫓지 않고 놓아준 거였다.

이제 오드론 나무 열매 가루 냄새를 100km 밖에서도 맡을 수 있는 블루 버드들이 잔당들의 흔적을 쫓아 주리라.

* * *

그때부터 소탕 작전은 급물살을 탔다. 위치는 블루 버드가 찾아내 줄 테고 전투는 일당백인 두 갓피스와 영주 그리고 마법병단의 마법사들이 함께 한다.

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영주는 데리고 있는 두 마리의 블루 버드를 전부 활용하기 위해 찬영과 마법병단 부단주를 함께 운용시키고, 자신은 제이나와 함께 나머지 블루 버드를 따라 이동했다.

두 블루 버드가 지하 수로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추적할 반경이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고, 두 개 팀으로 나눠진 병력들이 어느 순간 한 장소에 집결했다. 반나절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여기인가?”

영주가 성문처럼 커다란 석문을 노려보며 말했다. 주위를 둘러본 제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마침 블루 버드들 또한 석실 안쪽을 향해 울고 있었다.

분명 이 안에 뉴 빌드의 나머지 잔존 세력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동안 알폰 지방에서 뿌리 뽑고자 했던 뉴 빌드의 본거지가 드러난 거다.

영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하 수로에 있을 줄이야…….”

제이나가 덧붙였다.

“그들에겐 최적의 공간이었을 겁니다.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점에다가 자신들이 부릴 수 있는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니까요.”

“진작 토벌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군.”

하지만 영주의 눈빛에 서린 건 지난 선택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담담한 아쉬움이었다.

영주는 이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건네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마음이 단련된 사람이다. 웬만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도 아쉬운 건 쉽게 감추기 힘들었다.

찬영이 영주를 위로했다.

“그간 영주님께서 진행하신 토벌을 통해 알폰이 안정적인 상황이 되었기에 이번 추적에 필요한 병력 지원도 가능했던 거라고 봅니다.”

“고맙네.”

“사실을 말씀드린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씩 웃어 보인 영주가 다시 근엄해진 눈빛으로 제이나에게 하명했다.

“제이나 경, 이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조속히 알아내도록 하게.”

그때 제이나가 찬영을 쳐다봤다.

“한 번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녀가 무슨 뜻으로 이 질문을 한 건지 찬영이 모를 리 없었다.

“네, 그러죠.”

그녀의 부탁에 기꺼이 영주가 보는 앞에서 르리에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이후 문을 통해 찬영과 함께 걸어 나오기 시작한 타우린. 농장으로 가서 다시 행복지수를 채운 타우린은 다시 활력이 넘치는 눈동자로 돌아와 있었다.

-엑시스 퀘이크.

그리고 시작된 땅의 정령이 부리는 기예.

구구궁!

디디고 있는 대지가 울리자.

콰지직.

견고하던 석문의 균열이 시작됐다.

이를 지켜보던 영주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허어, 정말 자네는…….”

영주의 눈빛에는 단순히 놀라움이 아닌 경탄이 서렸다.

매번 볼 때마다 새로운 능력을 보여 주는 그를 보고 있자면 그동안의 갓피스들은 그저 그의 탄생을 위한 밑거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무엇보다 그는 단순한 마법사였던 제이나를 단숨에 갓피스로 각성시키는 이변까지 이끌어냈다.

대체 다음엔 뭘 보여 줄까?

콰콰콰캉!

그사이 석문은 타우린에 의해 와르르 무너졌고 그 사이로 모두 지날 수 있는 통로가 개방됐다.

“……묻고 싶은 게 많지만 나중에 듣지.”

영주가 타우린과 찬영을 번갈아 본 후 말한 뒤.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신성 왕국의 스무 번째 검이라는 칭호는 괜히 붙은 게 아니다. 검을 뽑은 것만으로도 그의 주변으로 흐르는 마나의 기세는 다른 기사들과 남달랐다.

적어도 찬영이 보기엔 그랬다.

요즘 마법까지 공부하고 있어서 그런가, 새삼 마나에 대한 감각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로 인해 본래 익히고 있던 심법들을 다루는 게 훨씬 효율적이게 됐다.

‘이게 마법 공부가 가져온 결과물이라면…….’

확실히 마법 공부를 택한 게 좋은 선택이었다는 게 증명됐다.

‘나는 여러 공부를 하는 편이 확실히 더 나아.’

익히고 있는 기술들이 새로 익히는 기술에 의해 성장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물론 훈련에 쏟는 시간과 노력을 배로 해야 하지만 그건 기회를 얻은 대가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민감해진 마나 감각으로 봤을 때의 영주는 마치 잘 벼려진 칼날 같았다. 베이콥 심법을 극성으로 익힌 진정한 주인이 포효하기 시작한 것이다.

“왕국의 영광이 머지않았다. 우리가 그 시작이 될 것이다. 이미 한 번 죽은 목숨, 무엇을 겁내는가? 저들이 두려운가?”

모두가 소리쳤다.

“아닙니다!”

“그럼 멸망이 두려운가?”

“아닙니다!”

영주가 빙긋 웃었다.

“좋다, 우리의 신성한 전투는 대륙 복원의 기틀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영주가 무너진 석문 뒤를 노려보면서 마지막 연설을 마쳤다.

“해가 뜨는 게 보이는가? 내 눈에만 보이는가!”

그가 말하는 해는 ‘희망’ 대륙 복원의 시작을 의미했고, 모두가 이를 알았다. 제이나가 영주 곁에 서며 말했다.

“보입니다.”

그리고 영주가 곁에 선 찬영을 쳐다봤다.

“그대도?”

찬영이 손을 뻗은 자리에서 아슬란을 꺼내 쥐며 대답했다.

“이를 말씀이십니까?”

와아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주와 찬영, 제이나의 뒤를 따라 집결된 병력이 일제히 석문 뒤로 돌진했다.

* * *

격돌이 시작되자 함정이 쏟아졌다.

칼날, 바퀴, 거대한 돌 등 각종 기관 장치들이 개방됐고, 이어 암흑 마법까지 쏟아졌다. 문이 부서질 때부터 뒤에서 싸울 태세를 갖춘 거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선봉에 선 건 영주도, 타우린도, 제이나도 아니었다. 그들을 두렵게 만든 타우린이다.

-음모오오!

거친 울음소리와 함께 그들이 마련한 함정, 마법 등은 전부 무효화 됐다.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상대 앞에 혼란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

“거, 검은 소다!”

“저 소부터 막아!”

“소에 집중하라고!”

리더인 제사장을 잃은 그들은 이전처럼 일사불란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광기와 적의가 충만했다.

하지만 전투는 광기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전략이 필요하다. 리더가 없는 그들은 정밀하지 못했고 영주를 중심으로 견고히 뭉친 영주 병력들은 그동안 쌓아 온 실전 경험을 유감없이 뽐냈다.

타우린이 마법 포격을 뚫으며 미끼가 되어 적들이 분산된 틈을 이용해 영주병력들은 뉴 빌드 조직원을 조금씩 압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중 가장 눈에 띈 건 디스펠 결계로 인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했었던 제이나. 그녀는 타우린에게 몰린 적들을 향해 거침없이 마법을 일으켰다.

“플라이.”

순식간에 날아오른 그녀가 전방위 적을 향해 마법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 순간 디스펠 결계 없이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녀의 붉은 머리가 휘날릴 때마다 쓰러져 가는 뉴 빌드 조직원을 보며 찬영은 혀를 내둘렀다. 이미 그녀의 존재만으로 싸움의 승패는 정해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럼 그동안 자신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

“타우린!”

찬영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쾅!

흙먼지와 함께 다가온 타우린.

녀석의 등에 휙, 올라탄 뒤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

쿠쿵!

동시에 돌진하는 타우린.

당장 떨어질 듯 했지만 몸을 낮추고 두 다리로 타우린을 꽉 끌어안았다.

‘차원의 돌을 찾는다.’

그들을 통해 입수한 차원의 돌만 50%가 넘었다.

근거지를 소탕하는 이번 작전에서 나머지 차원의 돌을 획득해야 이제 새로운 땅의 복원으로 넘어갈 수 있다.

‘너부터.’

타우린을 타고 달리며 보인 목표물. 놈의 귀 밑에는 붉은 빛의 조각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찬영은 달리면서 속박을 먼저 걸었다.

“그래비티 필드.”

놈이 당황해하는 찰나, 찬영의 아슬란이 그의 목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아슬란의 칼날은 가뜩이나 날카롭다. 어떤 명검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였다.

한데 그 예기 위에 타우린이 달리면서 생긴 가속도가 붙자 스치기만 해도 뉴 빌드 조직원은 반항도 못한 채 베어져나갔다.

마법으로 저항하려 해도 아무 소용없었다. 쇄도한 마법마저 얼려 버리는 아슬란은 빙결 효과. 그건 그들이 발동시킨 암흑 마법에도 통하는 기술이었다.

그로 인해 뉴 빌드 조직원의 후방을 순식간에 교란하며 휩쓸어 가는 찬영의 활약은 가뜩이나 승기를 잡아 밀려드는 병력들의 사기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쫓아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또 한 명의 조직원을 베어 가며 퍼져 가는 영주의 함성!

이는 승리를 확신하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 * *

전투가 끝난 뒤 병력들은 재정비를 하며, 마을이랄 것도 없는 뉴 빌드 본거지를 빠짐없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영주는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 임시 지휘소에 자리를 잡고 제이나와 기사단 대대장들을 불렀다.

“보고하게.”

앞에 선 제이나를 필두로 대대장들이 차례차례 입을 열었다.

“마법병단 3개 소대, 부상자 2명입니다.”

“기사단 4대대. 5대대, 6대대까지 부상자 32명, 사망자 없습니다.”

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망자 0명.

어떤 전투에서도 쉽게 나오기 힘든 업적이다.

“다들 여기까지 이뤄 내느라 고생했네. 하나 조금만 힘내주게. 이 근방을 샅샅이 뒤져 남은 잔당이 없나 확인해야 하고. 이곳에 남겨진 정보를 통해 다음 싸움을 준비해야 하네.”

영주의 말 대로였다.

여긴 알폰 지방 하나에 불과하다.

물론 작은 지방은 아니지만 앞으로 대륙 복원이 진행됐을 시.

열리게 될 나머지 땅을 고려했을 때, 여기서 얻어낸 정보나 물건들을 다음 뉴 빌드의 조직원들을 상대할 기회 자원으로 삼아야 했다.

영주는 다음, 그다음 싸움까지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산하게.”

곧이어 그의 하명과 함께 흩어지는 사람들.

그 틈에 영주의 시선이 제이나를 향했다.

“자네는 남고.”

“예.”

곧 둘만 남게 된 자리에서 영주가 제이나에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갑자기 떠난답시고 그 이상한 문을 통해 사라진 그가 대체 어디로 간 건가?”

제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역시 정확한 바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곳이 르리에라는 것 정도밖에…….”

“르리에?”

“예, 대륙 복원과 관련이 있는 장소 같습니다.”

“그래?”

“예.”

그녀가 대답을 끝내기 무섭게 갑자기 천막 밖에서 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이나 경! 가야 합니다, 당장!”

그새 르리에로 떠났었던 찬영이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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