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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84화 (84/248)

#84

그게 도화선이 되었다.

쾅!

타우린이 앞을 향해 치달렸다.

타우린은 마나로 정의내릴 수 있는 생물이 아니다.

그들이 쳐놓은 디스펠 결계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쐐액! 쐐액!

암흑 마력으로 생성된 수십 개의 마법들이 찬영의 앞을 가로 막은 타우린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재차 삼차 쏟아져도 타우린은 굳게 대문을 닫은 철옹성처럼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쿵! 쿵!

동시에 회색빛의 돌로 변해가는 타우린의 거체.

Lv. 11의 스톤 엣지는 그 견고함이 Lv. 1일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이었다. 웬만한 방어력을 가지고는 타우린과 부딪치는 순간 가루가 되어 버린다.

이제껏 여유롭던 흰 가면의 얼굴이 급격히 굳었다.

“막아라! 당장!”

찬영은 이를 지켜보며 웃었다.

그래, 이건 예상 못했겠지.

‘안개탄’이라 명명된 아이템을 터트릴 때 르리에를 다녀왔다.

동시에 제이나도 르리에에 데려갔다.

그건 근거 있는 선택이었다.

이제껏 경험해 온 모든 정보를 기반으로 하여 같은 갓피스인 그녀도 르리에를 밟을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생각이 옳았다. 그녀는 지금 르리에에서 도타와 함께 잘 쉬고 있다.

‘그럼 이제.’

반격이다.

이제부터는 타우린의 시간.

-엑시스 퀘이크.

구구궁!

반경 15m의 돌들이 타우린의 제어 아래 놓였다. 그건 천장을 비롯해 타우린의 주위를 포위한 뉴 빌드 조직원들이 디디고 있는 땅 역시 마찬가지.

“따, 땅이!”

“젠장! 피해!”

“물러나!”

온갖 비명과 함께 15m 반경의 모든 흙과 돌의 균열이 일어났다.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는 지진과 함께 적들은 균열이 일어난 틈으로 추락하고 깔리며 하나둘씩 혼란에 휩싸였다.

이어서 떠오르기 시작한 돌들.

쐐액! 쐐액!

그 돌들은 돌진한 타우린의 거체를 중심으로 엄청난 속도로 회전했다.

쾅! 쾅!

동굴에 돌이 한 줌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건 타우린의 방패이자 칼이 되었다.

그야말로 생체병기. 돌진을 피하기도 어려운데 깔리면 압사당할 것 같은 돌들이 공동을 가득 메우고 날아다닌다.

마법을 쏟아 내도 한계가 있는 상황.

결과는 뻔했다.

적들은 속수무책으로 돌에 치이고 넘어지며 깔렸다.

“아악!”

“크흑!”

이를 노려보던 흰 가면의 눈동자엔 더 이상 거드름이나 여유 따위 볼 수가 없다.

잔뜩 긴장한 기색.

“이곳에서 절대 빠져나가게 해선 안 된다, 절대!”

뉴 빌드의 제사장 중 한 사람인 두비안은 이 상황을 믿기 힘들었다.

모든 걸 쏟아 부은 계획이었고 완벽히 실행했다.

영주의 계략을 간파하고 그걸 받아치기까지 했는데, 그 모든 걸 갑자기 나타난 저 검은 소가 망치고 있다.

‘그래, 저것만 없애버리면!’

모든 게 끝난다.

‘그럼 내 목숨 값으로 그분의 뜻을 펼치리라!’

두비안이 날아드는 돌을 양손에 일으킨 암흑 마법으로 부숴가며 제사장의 사도들을 불렀다.

“사도들이여!”

그 어떤 신도보다 용맹하며 드높은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제사장의 호위 단체.

사도使徒.

두비안의 사도는 총 다섯이었다.

그들이 두비안을 따라 길을 텄다.

“망령의 칼날.”

각기 가진 암흑 마력을 활용해 초승달 형태의 전투 검을 일으켰다.

붉은 스파크가 튀는 두 개의 전투 검을 양손에 쥐고 달려오는 다섯의 사도와 두비안.

“뱀의 눈동자.”

동시에 선봉으로 달려가며 눈을 빛내는 흰 가면.

이 마법은 수준이 낮은 적에게 통하는 암흑 마법이다. 발동 즉시 상대의 약점을 알 수 있다.

한데.

‘통하지 않는다?’

타우린에겐 어떤 약점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최소한 타우린의 능력 수준이 동등하거나 혹은 그 상위라는 얘기.

믿기 힘들다. 하지만 이게 현실. 그럼,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흰 가면이 따라붙은 사도들을 향해 외쳤다.

“가자, 사도들아!”

곧 그들이 그를 앞질러 달려 타우린을 향해 쇄도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타우린.

-음모오오!

성난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그리고 돌진.

쿠앙!

뒷발을 밀어치자 타우린이 디디고 있던 땅이 ‘쿵’ 하고 움푹 내려앉았다.

단숨에 방향을 전환, 목표를 바꿔 다시 달리는 타우린.

쐐액!

쿵! 쿵! 쿵!

이어서 달리는 방향에 돌들을 띄운 타우린이 이를 징검다리 삼아 체공해 올랐다.

쐐애애액!

거체인 데다가 가속도가 붙자 돌진 파괴력이 가중된다.

압도적인 피지컬이다.

부웅!

곧 하늘을 날아오른 타우린의 거체로 인해 순식간에 다섯 사도들의 눈앞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들은 웃었다.

설사 여기서 죽더라도 예정된 멸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를 발버둥 치려는 가엾은 이단아들은 알게 되리라, 오늘 갓피스의 죽음을 통해.

“멸망을 경배하라!”

다섯 사도가 한 목소리로 외친 그 순간!

쾅!

타우린과 그들이 충돌했고 함께 있던 두비안은 더 이상 그들 곁에 있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동안 그는 망령의 속임수란 몸이 투명해지는 암흑 마법을 사용해 따로 움직였으니까.

어차피…….

‘목표는 갓피스다.’

갓피스는 마나 사용 불가로 인한 리스크로 아무 반항도 할 수 없다.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

투명해진 그는 빠르게 달려 찬영의 후방을 점했다.

타우린도 찬영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상태.

이제 숨통을 끊는 일만 남았다.

“망령의 개 3회 중첩重疊.”

쉬이익!

곧 그의 부름에 따라 형체를 일궈 내는 어둠의 그림자들.

이는 그분이 보낸 파수꾼이며 영혼을 갈취하는 지옥의 개들이다. 일반 교도들은 일으킬 수 없는 제사장의 내림을 받은 선택된 자가 가능한 마법.

이 여섯 마리의 개는 능히 네 영혼을 물고 뜯으며 한 줌의 가죽도 남지 않게 하리라.

제사장인 두비안은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끝이다!’

이렇게 초근접 상태에서 망령의 개를 펼쳤으니 이제 온몸이 물어 뜯겨 쓰러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 남았다.

‘기뻐해라. 너의 죽음이 주춤거렸던 멸망을 다시 앞당기는 시발점이 되리라.’

두비안은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개의 그림자들을 보며 ‘히죽’ 하고 웃었다. 그렇게 은밀히 날아간 그 그림자들이 등지고 있던 찬영의 목을 덥썩 깨물려던 그때였다.

“크흑!”

두비안이 입을 벌리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곧바로 밀려드는 통증.

“끄으악!”

순식간에 투명화가 풀린 그의 목덜미에서 붉은 피가 쏟아졌다. 마치 자신이 자신의 몸을 향해 직접 공격한 것처럼!

“어, 어떻게…….”

두 손을 덜덜 떠는 그의 눈동자에는 의심, 경악, 의문이 뒤섞였다.

그새 망령의 개들이 끊임없이 찬영을 깨물었다.

“크악!”

그러나 그럴수록 두비안의 고통이 가중됐다.

점점 그의 목덜미, 팔, 다리 모든 곳의 뼈가 훤히 드러나며 사방에 핏물이 번져나갔다.

와그작, 와그작.

망령의 개들은 굶주린 영혼.

상대가 죽을 때까지 적을 집어삼키기를 멈추지 않는다.

“크허억…… 그만, 그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마법을 거두는 두비안.

쿵!

무릎을 꿇는 그를 보며 찬영이 찢어진 인형을 내려다봤다.

-아톨의 인형

-가치 : 940

-설명 : 인형을 찢은 후 혼령의 걸음 사용

-혼령의 걸음 사용 시, 선택한 상대에게 받은 피해를 1분 동안 100% 전이 시킬 수 있다. 1회 사용 직후 즉시 소멸.

그가 대열에서 이탈한 걸 보자마자 직감했다,‘날 노리고 오겠구나.’ 하고.

그 생각은 정확히 유효했다.

이제 이 한 번의 반사 피해로 놈은 섣불리 마법을 쓰지 못한다.

목숨을 걸 마음으로 덤빌 것이다. 분명 그때쯤이면 끝이 날 테지만!

찬영은 확신하며 그가 일어서길 기다렸다.

“그분의 뜻은, 네놈을, 크흑…… 죽이는, 것이야.”

비틀거리고 일어난 두비안이 이를 갈며 발악했다.

이미 반사 데미지로 인해 그의 몸은 갈가리 찢겨져 있었다.

제대로 서 있는 게 용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양손에 전력을 다해 주문을 일으켰다.

“망령의 칼날.”

두 개의 전투 검을 쥔 그가 성큼성큼 찬영을 향해 다가왔다.

“네놈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사의 눈빛.

지켜보던 찬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뭘 위해?”

나직이 묻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죽어라!”

그냥 달려올 뿐. 그에겐 질문에 대답할 여유조차 없다. 그저 그에게는 찬영은 죽어야 할 존재이며 반드시 사라져야 할 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주어진 대답은 하나다. 미친 듯이 달려오는 그를 노려보며 한 걸음 내딛었다. 마나가 없다 하더라도 그의 적의에 물러설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의 종교관이 멸망과 혼란이라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의 삶은, 세상은, 아직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로 가득하다.

‘그리고 나 역시…….’

삶의 많은 것을 누리고 살길 원한다.

그러니까.

“멈추지 마라.”

작동이 불가능했던 스툼을 들어올렸다.

‘나 역시 멈추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지잉!

다시 푸른빛이 들어오기 시작한 스툼.

“그래비티 필드 5회 중첩重疊.”

달려오는 두비안에게 그건 심판이나 다름없다.

순식간에 바닥에 허물어지며 속박되는 두비안.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가 되자, 이번엔 어마어마한 중력이 연이어 그의 몸을 누르고 또 누르고 또 옥죄었다.

“크헉!”

암흑 마력은 더 이상 그를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중력 속박이 사라진 그쯤. 두비안은 움푹 파인 땅 위에 대 자로 뻗은 채 입 안 가득 피를 흘리고 있었다.

“꾸륵…… 꾸륵…… 크흑…….”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겨우 들어 찬영을 노려보는 두비안.

그가 한마디를 힘겹게 토해 낸다.

“어떻게……?”

찬영이 스툼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장비를 사용했냐고?”

그리고 난 후 대답 대신 무너져 내리고 있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는 엑시스 퀘이크로 인한 여파였다.

“타우린은 그냥 너희들의 시선을 끌어 준 것뿐이야. 진짜 노림수는…….”

천장!

디스펠의 장력을 깨기 위한 찬영의 묘수.

타우린을 괜히 데리고 온 게 아니다. 그의 기술로 천장을 깨길 원했던 거다.

이제야 그의 생각을 알게 된 두비안의 눈썹이 아까보다 더 세게 떨린다.

원한이다. 그의 생각을 알아채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분노. 그 분노는 마침내 그의 영혼을 완벽히 갉아먹었다.

콰악!

뭘 할 새도 없이 혀를 깨물어 버린 두비안.

찬영은 즉사한 그를 조용히 내려다봤다. 몸 안 가득 입은 상처만 봐도 그의 죽음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누군가의 죽음은 썩 적응되지 않는 일이다. 해야 할 일만 한 뒤 어서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싶다.

찬영이 신속히 손을 뻗어 그의 목에 박혀 있는 차원의 돌을 뽑아 냈다.

그 순간 차원의 돌 수치가 53%까지 차올랐다. 어마어마한 상승 수치.

‘드디어 50%까지 상승한 건가?’

이제 남은 건 50%뿐.

그 50% 마저 채우고 나면 드디어 만날 수 있을 거다.

차원의 다리를 지배하고 있는 새로운 적을.

찬영이 저 멀리 타우린을 피해 사분오열 흩어져 도망치고 있는 적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머지않았다.’

* * *

“어떻게 된 거죠?”

다시 르리에에서 돌아온 제이나는 황폐해진 공동을 보며 놀랐다.

안 무너진 게 다행일 지경이다.

‘맙소사.’

새로운 차원에 진입한 것도 놀라울 지경인데, 이건 대체…….

“이 녀석 덕분이죠.”

타우린의 몸에 기댄 채 말한 뒤, 지금의 상황과 그녀가 다녀온 르리에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음모오!

이를 듣고 난 제이나는 한참 동안 타우린을 쳐다보며 말했다.

“마나가 전혀 느껴지질 않네요, 정말.”

“신성력과 비슷한 힘이 아닐까요?”

“그럴지도요.”

그녀는 타우린을 연구 대상으로 보고 있는지 흥미로운 눈길로 올려다보았다.

“그럼 르리에란 장소는 갓피스들에게만 허락된 장소이겠군요.”

“네, 이젠 확실해졌죠.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시험해 보지 않았을 테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마나 없는 그녀를 쏟아지는 암흑 마법 한가운데에 두고 갈 순 없었다.

찬영이 사과했다.

“위험한 일을 제안 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녀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그곳은 언제부터 다닐 수 있게 되신 거죠?”

찬영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두 눈에 서린 호기심을 보니 아무래도 한두 시간 얘기해선 끝날 대화 같지 않다. 그럼 잠시 뒤로 미뤄야겠다.

“나중에 말씀드리죠. 아직 남은 일이 있으니까요.”

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생쥐들이 치즈가 어디 있는지 찾아 줄 시간이라는 걸, 그녀 역시 알기 때문이다.

“그럼 움직이죠.”

엉덩이 깔고 여유 있게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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