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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82화 (82/248)

#82

콰콰콰!

어딘가 물을 막아 놨다가 터트린 것처럼 밀려든 물은 배수구를 가득 채우다 못해 균열을 일으킬 지경이다.

콰드득.

상황이 이러하니 제방 밑에서만 찰랑이던 물이 빠른 속도로 차오르는 건 당연.

물이 이곳을 가득 채우기 전에 이 구획을 벗어나야 한다.

당장.

파밧!

제이나를 안고 제방 위를 달렸다.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찬영이 제이나에게 외쳤다.

“경량화 마법을 걸어 줘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문을 준비했다.

뭘 생각하는지 눈치챈 거다.

그리 적지 않은 시간 손발을 맞춰봤기에 가능한 호흡.

탁!

그 사이로 제방 길의 끝이 보인다.

이제 저 제방을 넘어가면 당장 발을 디딜 곳이 없다. 달리던 속도 그대로 물에 빠져야 한다.

하지만 찬영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리 달려 물 위로 몸을 던졌다.

쐐액!

제방 난간에서 떨어져 물 위로 추락하는 두 사람.

하지만 그때였다.

“됐어요!”

들려오는 제이나의 한 줄기 음성.

그리고 느껴진 건 통통 튀어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가벼움.

“알았어요!”

탁!

타이밍에 맞춰 오른손에 아슬란을 잡았다.

이어서 북빙진기를 통해 마나를 끌어올려 아슬란에 집중시키는 찬영.

우우우웅!

아슬란이 공명음을 토해 냈다.

무엇이든 얼릴 기세.

‘여기부터!’

추락하던 찬영이 그녀와 함께 허리를 비스듬히 꺾어 목표한 타깃을 향해 아슬란을 휘둘렀다.

쐐액!

그리고 펼쳐진 2연속 아이스 차징.

촤아악!

검 끝에서 뻗어나간 얼음파도가 단 2회 만에 추락 지점을 완벽히 얼렸다.

그 덕에 마련된 착지 지점.

이를 밟고 섬뢰보를 발동했다.

콰앙!

발끝으로 땅을 울리며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녀를 안고 있음에도 속도는 평소보다 빠르면 빠르지, 느리지 않다.

그녀가 걸어 준 경량화 마법 덕분이었다.

단순히 플라이를 통해 물 위를 건너기보다 굳이 이동 계열 이네이트를 선택한 이유다.

바로 속도.

플라이는 제이나가 말하길 마나가 받쳐주는 한 어디든 날 수는 있으나, 속도를 보장해 주진 않는다고 한다. 그럼 구획을 벗어나기도 전에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러니 속도 관련 이네이트를 택한 건…….

‘잘한 선택이야.’

아직까진 성공적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

촤르륵!

얼음 위를 미끄러지며 달리던 속도를 줄여버린 찬영은 그녀를 안은 채로 방향을 회전했다.

그리고 다시 아슬란을 휘둘렀다. 타깃은 물이 터져 나오고 있는 배수구.

쐐액! 쐐액!

남은 아이스 차징 8회가 배수구를 향해 쏟아졌다.

콰드드득!

그리고 배수구에 밀려드는 물살과 얼음파도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얼핏 얼음파도가 물살을 막아 내며 물살과 배수구를 통째로 얼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찬영의 눈엔 보였다.

‘벌써 균열이 일어나고 있어!’

물살이 계속 밀려들며 얼음을 밀어내고 있다. 계속해서 마나를 소진하며 물살을 막아 내지 않는 이상 물살을 막긴 힘들다.

그렇게 마나를 쓸 바엔…….

‘이게 나아!’

그렇다면 이젠 시간 싸움이다.

잠깐 시간을 벌어 놨으니 신속히 지하수로의 다른 구획으로 넘어가야 한다. 찬영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깨질 빙하 위를 다시 달렸다.

쐐액!

그사이 제이나는 찬영에게 끊임없이 보조 마법을 걸어 줬다.

경량화 마법도 모자라 헤이스트까지. 몸 바깥에서 투입된 강력한 마나가 찬영의 스텟을 극대화시켰다.

헤이스트, 계속 된 경량화 마법 그리고 3개의 이동 계열 이네이트까지 결합된 찬영의 속도는 그야말로 광속光速.

그리고 다시 아슬란을 휘두르는 찬영.

흐르는 물을 빙하 바닥으로 바꾸면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콰콰콰!

그사이 얼어붙었던 수구 안에서 또다시 물살이 터져 나왔다. 수구 구멍을 막아 놨던 얼음이 전부 깨져나가며 아까보다 더 빠른 유속으로 밀려들었다.

물살이 시시각각, 뒤를 바짝 추격해 왔다.

제이나가 이를 어깨 너머로 본 뒤 나직이 말했다.

“얼마 안 있으면 물살에 따라잡힐 겁니다.”

‘뭐가 이렇게 태연해?’

새삼 그녀의 담력에 혀를 내둘렀다.

“압니다!”

대답과 함께 미니 맵으로 살핀 구획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정확히 1km 앞에 계단 달린 좁은 통로가 하나 있었다.

비상시 몸을 피하기 위한 임시 대피소로 마련 된 공동空洞이다.

‘그래, 여기라면.’

당장 밀려드는 물살을 피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곳은 없다.

흩날리는 앞머리 사이로 눈을 돌린 찬영이 제이나를 향해 외쳤다.

“앞에 상층 구획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가 하나 있어요!”

그곳이 아직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알 순 없다.

하지만 물살의 반경에서 벗어나려면 그곳을 택하는 게 맞다.

“어서 가요!”

그녀 역시 같은 도피로를 생각해 둔 모양.

찬영의 발이 더욱 빨라졌다.

* * *

콰콰!

그러나 물살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금세 주위가 어둑해진다.

밀려드는 물살의 그림자가 등 뒤에 인접한 까닭이었다.

찬영이 이를 갈았다.

‘더 신속히 움직여야 해!’

하지만 상황은 마음 같지 않다.

아슬란으로 빙판 길을 일궈 내며 달리는 식이라 빨리 달리는 것과 상관없이 지체되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저기 우측 통로만 우회하면 곧장 사다리가 보인다. 한 2초? 아니, 1초만 길을 막을 순 없을까? 그럼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밀려드는 빠른 유속의 물살을 단숨에 얼어붙게 만들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해 본 적이 없어 확신할 수 없다.

혼자라면 지체하지 않고 시도해 보겠지만 지금 옆엔 제이나가 있다.

‘어쩔 수 없겠어!’

곧, 찬영의 눈빛이 결연해졌다.

“제이나 경. 중량화 마법 준비해 줘요.”

그 말을 들은 제이나는 이번엔 찬영의 의중이 정확히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자세한 걸 묻지 않았다.

대신 뭐가 필요한 지만 물었다.

“목표물은?”

“뒤요.”

“설마……?”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그녀.

저 물살을 통째로 막아 보겠다니 정말 찬영스럽다.

“1초, 단 1초만 묶어 두면 돼요. 그럼 올라갈 수 있습니다.”

“네, 해 보죠.”

마법을 준비하면서 마지막으로 묻는 그녀.

“타이밍은?”

찬영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가볍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알게 될 겁니다.”

그 뜻이 무슨 말이었는지 제이나는 정확히 십 초 정도가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타닥!

찬영이 마지막으로 만들어낸 빙판 바닥을 밟고.

탁.

몸을 회전하며 그녀를 위로 날려 버린 것이다.

쐐액!

엄청난 속도로 위로 날아가게 된 제이나. 날아가는 제이나의 눈에 찬영을 덮치는 물살과 함께 사다리가 놓인 천장 원형 통로가 보였다.

이제 저 통로로 자신이 들어가 버리면 찬영은 꼼짝 없이 물살이 휩쓸릴 거다. 하지만 찬영은 자신에게 부탁했다.

-밀려드는 물살을 향해 중량화 마법을 부탁해요.

‘이거였어! 그래서 중량화 마법을 부탁한 건가!’

점차 멀어져 가는 물살과 찬영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콱 깨물었다.

‘찬영은 날 먼저 구한 뒤에 확신할 수 없는 확률에 몸을 던진 거야!’

하지만 막연한 희생이 아니다.

‘날 믿은 거야!’

그러지 않고서 이런 선택을 할 리 없다.

찬영은 직접 물살을 얼어붙게 만든 후, 중량화 마법을 통해 얼음을 공고히 버티게 할 작정인 거다.

‘그래요. 반드시……!’

희생이란 단어가 결코 성립되지 않게 당신을 도울 겁니다. 그녀가 주문 위에 있는 데로 마나를 끌어당겼다.

그사이 찬영은 아슬란과 스툼을 활용해 밀려드는 물살을 향해 얼음 파도와 중력을 쏟아부었다.

“그래비티 필드 20회 중첩重疊. 아이스 차징 30회 중첩重疊.”

처음엔 무의미한 반항 같았다, 밀려든 물살을 향해 저항하는 찬영의 선택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뒤집혔다.

중첩된 중력의 힘이 맹렬한 속도로 흐르는 유속을 주춤거리게 했고, 뒤를 따라 밀려든 얼음파도가 겹치고, 겹쳐지고, 또 겹쳐지면서 거대한 벽을 만든 것이다.

콰콰콰!

아슬란을 내려찍은 찬영을 중심으로 멈추지 않던 물살이 반으로 ‘쩍’ 하고 갈라졌다. 물살은 갈라지던 그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일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장엄함.

그 일을 찬영이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건.

‘제이나!’

통로로 들어가지 않고 플라이를 통해 몸을 둥실 띄운 그녀가 땀이 흠뻑 젖은 채 중량화 마법을 얼음 위에 걸어 주고 있다.

그럼.

‘이제……. 올라가기만 하면.’

시간을 번 찬영이 에어 펀치를 활용해 몸을 띄우려던 그때였다.

쩌저적!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던 얼음벽이 물살을 못 이기고 층층이 박살나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콰콰콰!

그리고 쏟아져 내리는 물살! 찬영이 이에 휩쓸리는 건 자명해 보였다.

순간, 제이나의 눈에 한 때,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의 모습과 찬영의 모습이 스치듯 투영됐다.

‘안 돼.’

또다시 누군가를 잃을 수 없다. 아니, 잃지 않기 위해 한 시도 쉬지 않고 마법을 갈고 닦으며 전투 앞에 물러선 적이 없다.

그러니까…….

‘구한다!’

반드시!

‘당신이 보인 신뢰에! 그 긍지에 답하리라.’

그리고 툴챠가 그녀의 부름에 응했다.

동시에 찬영의 눈앞에 나타난 창.

-샘솟는 긍지 (1)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툴챠가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이건……?’

놀라움에 멍하니 입을 벌린 찬영의 눈앞에 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섬광 한 줄기가 물살 한가운데에 내리꽂혔다.

콰콰쾅!

그리고 그 자리를 중심으로 황금빛의 홀이 발생했다.

제이나였다.

허공에 몸을 띄운 그녀는 온몸이 황금빛으로 물든 채 양손으로 커다란 홀을 움직였다.

그에 따라 둥근 홀 안에서 휘돌며 생성된 노란 실선들이 촘촘한 황금색 벽의 형태로 엮여 모든 물살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아슬란과 빙벽진기를 통해 일으킨 얼음벽과 중력의 힘, 그리고 그녀가 뒷받침해 준 빛의 벽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솨아아아! 쾅!

마침내 황금 벽에 의해 완벽히 틀어 막힌 통로.

이제 그만…… 이곳에서 벗어날 시간이다.

* * *

그 직후, 물살은 다시 본래 흐르던 대로 통로를 휘감으며 흘러갔고 두 사람은 지하 3층 공동으로 통하는 길 위에 서서 밑을 내려다봤다.

“하아…….”

그러고 나서야 등을 기대며 털썩 주저앉는 제이나. 찬영이 황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안 괜찮죠?”

말없이 찬영을 빤히 쳐다보는 그녀. 이런 질문은 예상 못했나 보다.

그녀를 한 쪽에 앉히면서 한 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췄다.

“괜찮으시냐고 물어봐야 늘 같은 대답만 하실 것 같아서…….”

볼을 긁적이는 그를 보며 제이나가 ‘픽’ 하고 실소했다.

평소보다 한결 부드러운 눈빛과 표정이 된 그녀가 찬영과 눈을 마주치면서 물었다.

“찬영 씨는 괜찮나요?”

“예, 덕분에.”

정말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방금 전의 그 물살에…….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뭘 할 여지도 없이 그대로 쓸려 버렸을 게 분명하다.

그나저나.

“방금 그 벽은 대체……?”

찬영이 묻자 제이나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 역시 모릅니다. 그저 그냥 그렇게 됐어요. 마치 각인 된 것처럼 손이 움직였습니다. 이 순간 그 마법을 써야 할 것처럼.”

“그래요?”

그렇다면 그녀에게 물어봐도 별달리 얻을 수 있는 수확은 없다.

‘그냥 그렇게 됐다?’

찬영은 그녀의 새로운 마법 각성과 함께 든 의문에 문득.

“저 혹시…….”

툴챠를 만져 보고 싶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제이나는 별다른 말없이 툴챠를 건네줬다. 이를 받아 든 후 아까 그 벽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위그드라실의 뿌리를 가공한 지팡이. 툴챠 + 1

-가치 : 6,200

-긍지 전용

-긍지가 착용하지 않을시 효과, 사용 불가

-효과 A : 마나 +1,400

-효과 B : 마나 700 소모 시 긍지의 광휘 발동 가능(적중 시 저항력 상관없이 80% 확률로 5초간 감전 가능)

-효과 C : 마나 3,000 소모 시 광휘의 벽 4초간 생성

‘광휘의 벽이라.’

놀라운 기술이다. 마나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소모되긴 하지만 활용도에 따라선 방금 그…….

‘엄청난 일도 벌일 수 있겠지.’

어쩌면 베아트리체가 말했던 게 이런 뜻이 아니었던가 싶다, 다른 갓피스들과 함께 하라던 게 말이다.

‘……내가 성장하는 것만큼.’

그녀 역시 성장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성장에 감탄할 시간은 그리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찬영이 다시 툴챠를 그녀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쉴 틈이 없을 것 같네요.”

불청객이 찾아온 까닭이다.

“네, 올 게 온 것 같군요.”

툴챠를 받아 든 제이나가 찬영과 함께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그들의 시야 한 편엔 검은 그림자가 저벅저벅 통로 안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우릴 기다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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