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지잉!
시간이 멈춘 게 아니다.
그녀의 권능이 레드 아이와 광대들에게 극악의 이동 속도 감속을 일으킨 거다.
그렇게 느려진 타깃에 콜 라이트닝을 적중시키는 게 어려울 리 없다.
콰쾅!
주문을 통해 발현된 콜 라이트닝의 강력한 벼락이 광대들과 레드 아이들 위에 자비 없이 내리꽂혔다.
번쩍번쩍!
눈이 부신 광경이었다.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지만 시원시원하게도 내리꽂힌다.
이정도 규모의 벼락이라면…….
‘끝났다.’
정리는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찬영의 생각대로 장내에 남은 건 번갯불 앞에 콩이 되어 버린 레드 아이와 광대들.
아주 새까맣게 타버렸다. 덩달아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하아.”
찬영이 시선을 돌려 제이나를 쳐다봤다.
팔 어깨 허벅지 목까지 안 다친 데가 없다. 자잘하게 베인 상처로 가득했다.
“괜찮습니까?”
제이나가 대답했다.
“네.”
늘 의연한 그녀이기에 충분히 예상한 대답이다. 하지만 썩 괜찮은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럴 땐…….
“여기 있습니다.”
상처 부위의 지혈과 체력 상승효과 가 있는 회복 포션이다. 공학자들이 꽤나 값을 들여 만들었다는 포션을 영주로부터 받아 온 것이다.
물론 영주에게 출발하기 전 이것 말고 중요한 아이템을 받아 온 게 몇 개 있다. 그사이 제이나가 얼른 포션을 받아 마셨다.
그녀는 많은 던전을 탐사한 경험자다.
여유 있을 때 컨디션을 회복해 두는 게 중요하단 걸 안다.
찬영도 그녀가 포션이 모두 퍼질 때까지 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잠깐 회복하고 이동하죠.”
포션이 몸에 퍼지는 시간은 천차만별이지만, 5분 정도가 평균이라고 포션을 건네받으며 들었다. 그럴 바엔 숨 좀 고르고 가는 게 낫다.
“네.”
이를 알고 있는 제이나도 별 이의 없이 몸을 벽에 기댔다.
찬영도 그 곁에 서서 방금 전의 상황들을 되짚으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몬스터는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 그게 지하 수로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레드 아이들은 마치…….
‘협력 했어. 광대들과.’
차원의 돌 때문일까?
글쎄, 그렇다고 보긴 힘들다.
‘전선에서의 싸움은 카슬라가 차원의 돌을 전선 안에 묻어 놨기에 일어난 거였어.’
차원의 돌에 홀린 몬스터와 그 앞을 가로 막은 전선의 병력.
당연히 부딪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나 이번엔 완벽히 다르다. 녀석들은 분명 ‘기습.’을 했다.
‘나와 제이나 경을 겨냥하고 노렸어.’
기다리고 정확한 타깃을 노린다.
‘그건 나와 제이나 경이 직접 차원의 돌을 들고 다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
설사 차원의 돌을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봐도…….
‘그럼 제이나 경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럼?’
차원의 돌이 이 일과 관련이 없다면 대체 온갖 적의와 흉포함으로 물든 몬스터가 어떻게 타깃을 정확히 노리고 기습할 수 있단 걸까? 몬스터들에게 어떤 변화라도 생기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하다.
‘가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이제 움직이죠.”
마침 제이나가 혈색이 돌아온 얼굴로 다가왔다. 찬영이 눈을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
“제이나 경.”
“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녀가 검게 타버린 몬스터 사체를 노려보며 말했다.
“충분히요.”
그녀도 당연히 알아보려 한 문제였다. 몬스터가 기습 공격을 감행하고 거기다 일정한 타깃을 노리고 달려든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달리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외부에서만 찾는다면요.”
찬영이 몬스터 시신에 다가가 말을 이었다.
“녀석들 내부에서 찾는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제이나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일리가 있어요.”
대답과 함께 그녀가 몬스터 시신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직접 시신 내부를 해부해 보기 위해.
* * *
몬스터 사체 해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업이 디테일해서가 아니다.
작업 방법은 오히려 투박하고 단순했다.
2서클 인비저블의 투명 손으로 뼈와 시신을 일일이 열어젖히고 분리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해부해 봐야 할 숫자가 많았다. 죽은 몬스터가 한둘이 아닌 덕분이다.
그러나 그녀는 기어코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여기 좀 보시겠어요?”
그녀의 손짓을 따라 둥둥 떠다니던 투명 손이 붉은 뼈다귀 한 개를 집은 채 다가왔다. 한데 그 뼈다귀에 미세하고 붉은 보석 조각이 박혀 있다.
그런데 웬걸? 제이나가 이르길 이런 보석이 1개가 아니란다.
“이런 조각이 총 14개 발견됐어요.”
그중 1개가 찬영이 보고 있는 이 뼈다귀에 박혀 있었다.
‘이건?’
어떤 물건인지 알기에 찬영의 눈빛도 덩달아 날카로워졌다.
“차원의 돌이군요.”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보석이 찬영의 손끝에 노이즈를 일으키면서 흡수됐다.
-두 번째 차원 다리까지 개방도 : 32.1%
-차원의 돌을 수집하세요.
곧 눈앞에 나타난 창.
‘0.1% 상승했어.’
방금 전의 흡수 덕분이다. 그건 그렇고…….
‘내 생각이 틀렸던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럼 이제껏 추측해 온 것들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찬영이 물었다.
“뉴 빌드의 짓일 것 같습니까?”
“네, 당장은요.”
제이나의 말처럼 차원의 돌을 다루는 건 뉴 빌드뿐이다. 당장엔 그들일 확률이 높다.
그럼 두 번째.
“그들이 몬스터 다루는 방법을 성공한 걸까요?”
“애석하게도……. 네, 그런 것 같군요.”
그러길 바라지 않았지만 제이나 경 말대로 그런 상황이 벌어진 걸 받아들여야 했다.
뉴 빌드는 차원의 돌을 통해 몬스터를 매혹하는 것도 모자라, 이것의 연구를 통해 몬스터들을 다루는 연구까지 끝낸 거다.
영주에게 반드시 알려야 할 정보가 생겼다.
제이나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모든 사체에서 발견되지 않은 걸로 보아 조종을 하는 데 있어서 한 마리당 한 개의 차원의 돌 조각이 필요한 건 아닌 듯 해요.”
제이나가 또 다른 조각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그들을 계속 쫓아왔지만 점점 더 확신이 드는군요.”
“어떤?”
“조각에 새겨진 주문은 끌어오는 힘이 마나가 아니라 다른 곳의 것이에요. 마치…….”
찬영이 물었다.
“신성력처럼 말입니까?”
“네, 그래서 새겨진 주문이 묘하게 다르죠. 하지만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순 있어요.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
한참 고민하던 그녀가 덧붙였다.
“정신 타격 마법 같아요. 연쇄 작용을 하게끔 설계된 거죠. 조각이 박혀 있는 몬스터가 누군가의 지시를 듣고 난 후에, 또 다른 몬스터에게 그 여파를 일으키는 식인 거죠.”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추측인가 보네요.”
“네, 일부분은 그래요.”
근거 있는 추측이라고 해서 꼭 들어맞는 건 아니다.
하지만 추측을 한 사람이 고서클 마법사이자 마법병단의 책임자 제이나라면 그 추측은 그간의 경험과 그녀가 가진 지식을 통해 나왔을 것이다. 그냥 무시할 일이 아니다.
찬영이 생각에 잠겼다.
‘그럼 열네 개의 차원의 돌 조각을 박아 놓은 몬스터가 다른 몬스터들을 이끄는 유도 레이더 역할을 한 거고.’
차원의 돌을 실제로 박은 채 움직인 몬스터들은 뉴 빌드 조직원의 지시에 의해 움직인다는 건가?
그게 가능하다면 이건 중차대한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추측이 확신이 되는 순간 또 한 가지가 확실해진다.
‘여긴 뉴 빌드의 몬스터 공장으로 적합한 지대다.’
마나 탱크에, 적당한 몬스터, 그리고 아무도 접근하지 못한다는 지리적 이점까지.
녀석들에게 여기만한 놀이터가 어디 있을까?
단언컨대 추측이 맞다면…….
‘뉴 빌드는 여기에 있다.’
지하 수로를 탐사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 * *
그 후 나머지 돌을 전부 흡수해 33.4% 수치까지 상승시킨 찬영과 제이나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그들이 자리를 뜨고 난 뒤에 갈색 로브 남자가 나타났다.
“제법이구나. 그래, 기다리고 있었다.”
해체된 몬스터들을 노려보던 그가 신속히 둘의 뒤를 쫓아 사라졌다.
* * *
“길이 끊겼네요.”
담담한 목소리. 마치 예상했다는 투의 찬영에게 제이나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일기대로군요.”
“네.”
찬영이 대답하며 손에 쥔 일기를 내려다봤다.
몬스터를 잡으며 획득한 아이템 중 하나인 광부의 일기 (1). 3분의 1이 찢겨진 이 일기에는 ‘다리가 끊겼다.’란 내용이 있었다.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문구다.
일기를 쓴 광부에 의하면.
‘광부가 여길 건너자마자 쫓아오던 몬스터들의 무게를 못 이기고 다리가 끊겼다지?’
그럼 일기의 뒷부분 내용대로 끊어진 다리의 반대편에는 몬스터 혹은 뉴 빌드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로 가야 한다. 탐사의 목적 중 하나는 지하 수로의 어떤 위협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 반대편 현장 또한 살펴봐야 한다.
“플라이밖에 없겠네요.”
제이나가 먼저 제안했다.
“예, 그래 보이네요.”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돌리면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진 암벽들이, 등 뒤는 좁은 굴이 정면은 끊어진 다리와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가 있는 상황.
돌아가지 않는 이상 반대편으로 가려면 다리 위를 날아올라 건너가야 한다.
경량화와 플라이 마법이 동시에 필요하다.
제이나가 두 주문을 이끌어내려던 그때였다.
구궁!
갑자기 땅이 울렸다.
‘느낌이 좋지 않아.’
찬영이 지나온 통로를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그 순간.
쿠쿠쿠쿵!
통로 안쪽에서 강한 굉음이 들려왔다.
뭔가 폭발하는 소리.
솨아아아!
그들이 건너온 지하 2층의 통로 천장들이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져 가는 게 보였다.
‘갑자기 멀쩡하던 통로가 왜?’
의아했으나 우선 이곳부터 빠져나가야 했다. 마침 그녀의 주문이 때를 맞춰 발현됐다.
플라이와 경량화 마법.
순식간에 그녀에 의해 허공에 ‘나풀’ 하고 날아오른 찬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전한 반대편 길에 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통로가 무너진 여파 때문인지 반대편 통로 또한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서부턴 찬영의 차례.
그는 제이나의 허리를 낚아채 안아들고 빠르게 땅을 박찼다. 마침 이쪽 통로부터는 지하 3층까지 향하는 널찍한 계단이 자리를 잡고 있어 두 사람이 달려갈 공간은 충분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두 사람의 앞에 본격적인 수로水路가 나타났다.
콸콸.
오른쪽 원통형 배수구에선 시원한 물줄기가 뻗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물줄기를 따라 깊게 패인 수로는 또 다른 통로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찬영은 수로 한 편에 마련된 제방에 서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를 품 안에서 내려놨다.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우선 균열이 일어나던 장소를 벗어난 건 옳은 선택 같았다.
하지만…….
‘이곳부터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된 수로인 건가?’
수로의 천장은 횡단 아치와 대각선 버팀벽에 의해 지탱되어 있고, 제방 바닥은 적갈색의 벽돌이 카펫처럼 깔려 있다.
하지만 제방은 길지 않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면 물이 흐르는 곳을 역행해야 한다.
‘여기까진 크게 다르지 않아.’
영주가 준 지도를 통해 기록된 미니 맵으로 확인해 보았다. 오래 전 공사 현장과 몬스터가 난입한 현재의 공사 현장은 크게 길이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무엇보다 미니 맵은 상시 업데이트가 되고 있다. 후일 영주에게 돌아가서 현재 미니 맵 위치 선상을 그대로 표기해 주게 되면 탐사 목적 하나를 이루게 될 거다.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왜 무너진 거죠?”
제이나가 물어왔다.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모를 일이다.
“저 역시 의아하던 차였어요.”
그 대답에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다시 말했다.
“의아한 게 한둘이 아니군요. 우리의 추측대로 뉴 빌드가 우릴 쫓고 있다면 어째서 계속 지켜보고만 있는 걸까요? 첫 번째 기습 이후에 얼마든지 공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하긴. 벌써 지하 3층이다.
찬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를 표했다.
‘타이밍을 재고 있는 걸까? 그럼 어째서?’
생각하던 중 제이나가 물었다.
“이유가 뭘까요?”
확실히 ‘무엇이다.’라고 대답할 만한 게 없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위화감은 뭘까?
찬영이 잠자코 있다 말했다.
“첫 번째 기습이 탐색전이었다고 치면, 두 번째는 제대로 싸워 보겠다는 심산일 겁니다. 그러려면 그들 역시 그들이 원하는 상황과 장소에 맞게…….”
말을 잇던 찬영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젠장!”
“왜요? 무슨 일이죠?”
제이나가 찬영의 표정을 살피며 묻자, 찬영은 대답 대신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다시 꽉 끌어안았다.
“꽉 잡아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수구에 콸콸 흐르던 물이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