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80화 (80/248)

#80

‘……그래비티 필드가 펼쳐지질 않아?’

어떻게 된 건지, 중력이 조금도 증가하지 않는다.

마치 그래비티 필드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기엔 시간이 모자라다. 날아오던 불화살이 코앞까지 접근한 게 보인다. 웃음소리가 나온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 없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다.

“제이나!”

기다렸다는 듯 웃음소리가 나오는 곳을 향해 마법을 발동하는 그녀. 그러나 구경할 새는 없다. 우리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야 한다.

파밧!

찬영이 땅을 박찼다. 그러면서 손끝을 뻗었다.

‘아쿤다의 표창.’

지잉!

가벼운 진동과 함께 손가락 사이에 잡힌 붉은 표창.

‘이거라면 충분하고도 남지!’

타탓!

시작은 이동 계열 스킬트리에 속한 섬뢰보.

몸을 날려 오히려 날아오는 화살을 마주했다. 얼핏 자살 행위처럼 보이지만 결코 아니다. 이건 그저 탄력 있는 가속도를 내기 위한, 플레이 체험을 통해 준비한 여러 형태의 공격 패턴 중 극히 일부분이다.

‘지금!’

발끝으로 방향을 비틀었다.

하지만 달리던 가속도는 그대로다.

이제부터는 밸런스가 중요하다.

쐐액!

강한 풍압을 느끼며 허리를 비틀었다. 천장과 땅이 뒤집혔다가 본래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쐐애애액!

찬영이 몸을 팽이처럼 회전하며 허공에 둥실 띄운 그때였다.

그의 손끝에서 붉은 빛줄기가 섬광처럼 뻗어 갔다.

본래의 근력 위에 회전력이 추가되고, 거기다가 투척 시 80% 의 근력 상승이 붙었다. 이쯤하면 아쿤다의 표창보다 가치가 뛰어난 화살이 아닌 이상 녀석을 막을 수 없다.

탁.

바닥에 착지하며 정면을 쳐다봤다.

투투툭. 투투툭.

날아오던 불화살들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난 채 쌓여갔다.

‘리턴 블레이드.’

그 직후 탁.

위로 내민 손에 다시 와쿤다의 표창을 쥐면서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그극.

붉은빛 안광을 번뜩이며 걸어 나오기 시작하는 십수 마리의 스켈레톤들.

이를 보고.

‘레드 스컬?’

잠깐 놈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흡사하긴 해도 아니다.

레드 스컬은 단순한 해골들이라기보다 죽은 사체가 저주받아 살아 돌아온 몬스터다. 저마다 형태가 다양하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형태가 모두 동일해.’

그 생각이 들어맞은 듯 가치 측정을 통해 확인한 놈들의 명칭은.

-망령의 군대에 속한 레드 아이.

-가치 : 3,520

가치는 낮았지만 개체 수가 굉장히 많았다.

‘내가 보는 쪽은 전부 포위됐어.’

어둠에 떠 있는 붉은빛의 안광들이 쌍쌍으로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하자, 그 개체 수는 이미 좁은 통로를 가득 메우고도 남았다.

놈들은 화살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던지 뼈 갈리는 소리를 내며 철퇴, 바스타드 소드 등 다양한 무기를 꼬나 쥐고 나타났다.

계속 탐사를 진행하려면 놈들을 전부 물리치거나 혹은.

‘제이나.’

그녀가 있는 곳을…….

“좋지 않아요.”

그때 그녀가 말했다.

“어째서?”

“저것들이 마법을 전부 무효화시켰어요.”

“마법을 전부?”

“네.”

“어떻게요?”

“알아내야죠.”

담담한 어조의 대답. 하지만 둘 모두 안다, 결코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는 걸.

찬영이 제이나와 자리를 바꿨다.

“저 해골들을 맡아 줘요.”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더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차라리 그녀의 마법을 통해 레드 아이의 공격을 방어하게 하는 편이 낫다.

‘나야…….’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수단을 강구하면 되니까.

-게게게겔!

자리를 바꾸자마자 녀석들의 가치부터 측정했다.

-망령의 군대에 속한 광대

-가치 : 5,200

가치는 5천 대. 모습은 입술이 유독 붉디붉은 삐에로 인형을 빼다 닮았는데, 입 꼬리가 볼까지 찢어져 있어 섬뜩하게 느껴진다. 거기다 왼쪽 눈은 푸른색 보석을 박아 놓았는지 번들거리고 있다.

명칭은 ‘망령의 군대에 속한 광대.’

-게게게겔!

녀석들이 찬영을 보며 제자리에서 통통 튀기듯 날뛰었다. 하지만 먼저 선공을 하진 않는다. 주변을 맴돌며 도발하며 웃는다. 마치 뭐든 해 보라는 듯.

놈들의 패턴을 알아보기 위해 무효화됐던 기술을 다시 사용했다. 그때, 놈들 눈동자에 박힌 푸른 보석이 순간 번쩍인다.

그리고…….

‘또다시 무효화?’

놈들은 공처럼 통통 뛰어다니며 여전히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러면서 놈들 중 몇몇이 제이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한참 레드 아이와 싸우고 있는 그녀. 아까와는 달리 여러 마법으로 레드 아이를 휩쓸고 있는 그녀에게 놈들의 하얗다 못해 창백한 손이 향했다.

찬영이 황급히 그녀를 쳐다보며 외쳤다.

“조심해!”

하지만 늦었다. 그녀가 발동하려던 마법이 광대에 의해 소멸. 그리고 들려오는 비명.

“악!”

공격 타이밍을 놓친 그녀가 레드 아이에 의해 어깨가 베였다. 황급히 뒤로 물러나려는 그녀.

찬영이 놈들을 무시하고 그녀를 향해 돌아서려 하자, 이를 확인한 제이나가 소리쳤다.

“오지 마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바닥을 뒹굴며 레드 아이의 공격을 위험천만하게 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레드 아이들의 시선을 확실히 붙잡으며 다른 길로 이동했다.

그렇기에 찬영도 더는 다가가지 않았다.

안 거다, 무슨 뜻으로 저렇게 말하는 건지.

레드 아이의 시선을 대부분 잡아끌 테니 그사이에 광대들의 패턴을 찾아내라는 뜻.

찬영의 잠깐 흔들렸던 눈빛이 다시 고요해졌다.

‘그래요, 최대한 빨리!’

광대들이 계속 웃었다.

-게게겔!

“……끝낼게!”

타닷!

시간 끌 것 없이 속전속결이다.

쐐액!

그럼, 마나가 깃들지 않는 물리적인 공격.

다시 한 번 와쿤다의 표창이 날아갔다.

‘끝이다.’

찬영은 곧 광대들이 허물어질 거라 확신했다.

한데.

지잉!

날아가던 와쿤다의 표창의 궤도가 갑자기 바뀌어 광대들을 무력하게 스쳐지나갔다.

‘말도 안 돼!’

찬영은 경악했다.

‘물리적인 힘도, 마법도 모두 통하지 않는다고?’

그럴 리 없다. 그랬다면…….

‘가치는 5천보다 높아야 해.’

찬영은 많은 경험과 성장을 다뤄오며 이제껏 시스템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그건 가치측정을 판별하는 시스템 또한 믿는다는 뜻.

‘괜히 5천 정도의 가치가 주어졌을 리 없어.’

분명 저들을 파훼할 방법이 있을 거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제이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 제대로 마법도 쓰지 못하고 도망 다니고만 있다.

얼마 버티지 못할 거다.

‘젠장 이럴 때, 타우린이라도 있었다면.’

타우린이 그녀를 보호할 텐데.

하지만 이건 그냥 가정일 뿐. 지금은 타우린이 없다.

그녀가 먼저 쓰러지기 전에 마법과 물리적 힘을 모두 무효화시키는 광대들을 제거해야 한다.

‘리턴 블레이드.’

탁.

다시 와쿤다의 표창을 불러들이면서 다른 손으로 아슬란을 꺼내 쥐었다.

녀석들의 빈틈이 뭘까?

‘알아내려면 공격해야 한다.’

끊임없이.

찬영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보기로 했다.

먼저, 그래비티 필드. 때를 맞춰 여덟의 광대 중 한 광대의 푸른 눈이 반짝였다.

지잉!

역시나 필드 발동 직전에 사라져버린 마나.

안 통한다.

그럼 에어 펀치.

두 번째 광대의 눈동자에 푸른빛이 서렸다.

쐐액!

날아가다 말고 속도가 줄어든다.

쉴 틈 없이 몸 안에 북빙진기를 휘돌려 북평검을 시전했다. 어느새 집어든 아슬란에서 푸른빛이 번쩍했다. 그러자 세 번째 광대의 푸른 눈 또한 번뜩인다.

이것 역시 실패.

세 번의 연이은 실패.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그 일념 하에 다시금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몸 안에 휘도는 염왕초혼심법. 뒤따라 염왕권이 불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순간, 찬영의 눈이 먹이를 낚아채는 매의 눈처럼 날카로워진다.

‘너지?’

그의 눈은 네 번째 광대를 향해 그렇게 말했고, 그게…….

‘맞았군.’

예상대로 다른 광대는 숨죽였다.

여덟 광대들이 순차적으로 마법을 무효화시키는 거다.

확실하진 않지만 어쩌면.

‘놈들의 무효화엔 쿨 타임이 있는 거야.’

쿨 타임 즉, 마법 시전 후 동일한 마법을 쓰려면 일정 대기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거다.

‘만약 그게 맞다면…….’

놈들은 첫 번째 광대의 쿨 타임 돌아올 동안.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순으로 마법, 물리 공격을 무효화시키고, 여덟 번째 광대의 차례가 돌아올 때쯤이면 첫 번째 광대의 쿨 타임이 돌아오는 게 될 거다.

‘직접 시도해 보면 알게 되겠지.’

이어서 다섯 번, 여섯 번 마지막 여덟 번의 공격을 진행한 후, 아홉 번째 공격을 시도하자 다시 첫 번째 광대의 푸른 눈이 번뜩인다.

들어맞았다!

이유를 알았다면 답을 내는 건 쉽다.

쿨 타임이 있다면 그 쿨 타임의 회전율을 잘라 버리면 그만이다.

-게게게겔!

조롱거리가 되는 건 여기까지! 찬영이 이를 갈았다.

“그래비티 필드 8회 중첩重疊.”

종장의 막을 열었다.

쿠쿵!

중력이 일어나려 흙먼지가 흩날렸다.

하지만.

-게게��!

8회 중첩을 가뿐히 막아 내는 광대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

‘쿨 타임이다.’

그간의 빚을 갚기 위해 찬영의 두 주먹에 붉은 화염이 휘몰아쳤다.

화르륵!

‘이제.’

아니, 화염은 비단 손뿐이 아니다. 어느새 팔을 감싸고 날개처럼 등을 타고 솟아올랐다.

이는 불타는 봉황의 날개.

염왕권에 속한 초열봉황익焦熱鳳凰翼이 그의 일 권에 맞춰 목표한 방위를 절멸.

화르르륵!

그의 손에 닿는 모든 게 재가 되어 사라져 간다.

날개 속에 불타버리는 여덟의 광대들.

이 순간, 놈들에게 비명 지를 시간 따윈 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나는 창들.

-망령 광대의 지팡이를 획득하였습니다.

-망령 광대의 신발을 획득하였습니다.

-수수께끼 박스를 획득하였습니다.

-광부의 일기 (1)을 획득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살펴볼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곧 씻은 듯 사라지는 화염과 함께 돌아서는 찬영. 머리 위로 흩날리는 재를 뚫고 땅을 박찬 눈동자가 제이나를 애타게 찾았다.

‘제발!’

무사하길.

* * *

그녀는 최악의 상태였다. 마법은 쓸 때마다 그녀를 타깃으로 잡은 네 명의 광대에 의해 족족 무효화가 됐고, 놈들이 신경 쓰여 곧장 마법을 사용할 수조차 없다.

‘괜한 헛수고야.’

그러다보니 심적으로 움츠러든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끊임없이 공격해 오는 레드 아이를 피해 땅을 뒹굴고, 또 뒹굴 뿐.

하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다.

쐐액!

날아오는 철퇴를 피하려 뒤로 물러난 순간.

툭.

등이 딱딱한 벽에 부딪쳤다.

‘벽!’

막힌 통로다. 더는 갈 수 없게 됐다.

요리조리 도망치는 그녀에 의해 레드 아이의 붉은 안광에 맹렬한 적의가 깃들었다.

-그그극!

뼈 갈리는 소리를 내며 동굴 가득히 밀려들어오는 레드 아이들.

“이런……!”

나직이 읊조린 그녀가 다시금 마법주문을 외우려 했다.

-게게겔!

그러자 질리도록 지겨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림없어.”

그냥 물러날 순 없다. 여기서 죽으려고 이제껏 이를 악물며 마법병단에 자리 잡아 온 게 아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그분을 살해한 그자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러니까.

“슬롯 개방.”

벌써 쓸 줄 몰랐던 마법 주문을 외웠다.

“4서클 슬로우 중첩重疊. 5서클 콜 라이트닝.”

주문을 통해 흐르는 마나.

그리고 양손에 맺힌 주문 수인이 도형을 나타내며 나타났다.

-게게게겔!

이를 본 웃음소리.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웃음소리 사이로 낯익은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동시에 레드 아이의 머리를 발판 삼아 돌진해 오는 찬영이 보였다.

“멈추지 마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녀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끝까지 놓지 않은 작은 희망의 실선.

-게게게겔!

하지만 세 마리의 광대들은 또다시 그들을 압도하려 했다. 마법, 물리 모든 무효화를 일으키는 놈들의 하얀 손이 움직인다.

하지만 제이나는 주문을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녀의 막대한 마나를 머금은 주문이 당장 폭발할 듯 빛을 뿜어냈다.

찬영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내가 신호를 줄게요!”

제이나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스툼과 헬레를 활용한.

“그래비티 필드.”

“서클 번.”

아슬란을 통해 2서클 아이스 스피어까지 연이어 찬영을 통해 뻗어 나갔다.

타깃은 세 마리의 광대들.

찬영에게 놈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인다.

‘그래, 그렇겠지. 날 막을 테냐? 아니면 그녀를 막을 테냐?’

혼란에 빠진 광대들이 택한 건 위협적으로 보이는 찬영.

실패, 실패, 실패.

순식간에 그가 발동시킨 모든 기술이 무효화 된 그때였다.

“지금!”

확신 섞인 찬영의 외침이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지지직!

덩달아 슬롯으로 인해 주문 시간 따위 생략해 버린 그녀의 마법이 발동 준비를 끝냈다.

굳어 있던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진 순간, 그녀가 보고 있는 모든 게 느려졌다. 기다렸던 슬로우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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