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79화 (79/248)

#79

정적이 흐르고 수군거리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제야 좀 조용하네.’

찬영도 만족하며 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갈수록 화가 났다.

영주, 제이나 모두 뜻은 달라도 희생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몬스터의 최전선 앞에 오연히 서서 언제든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의인들.

그들의 뜻을 폄하하는 게 동료 입장에선 듣기 거북했다. 그래서 직접 나선 것이다.

이규복의 체면을 봐서 이 정도에 끝내준 걸 저들은 고맙게 생각해야 할 거다.

“적절한 대응이었습니다.”

이규복이 칭찬했다.

이제 뜬소문을 진짜 일어난 일처럼 떠들어대던 몇몇은 쉽게 입을 열지 못할 거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의혹을 가뿐히 밟아 줄 수 있는 건 이 임무에 깊이 연관 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13편대와 같은 이방인인 찬영이어야 가능하다.

이 일로 13편대가 임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나저나 그건 그렇고.

‘아직 멀었어.’

이규복은 뒤에 있는 각성자들을 쳐다봤다.

이번 편대는 경험 있는 각성자가 전무하다. 서먼 홀, 뉴 게이트 같은 지옥을 직접 겪지도 못했다. 아직 여물지 않은 각성자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기도 했고.

그러나 다행스러운 게 있다면 찬영이 이곳의 선봉이라는 점이다. 영주가 아끼는 마법병단의 제이나 역시 든든했고.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제이나 경.”

이어서 이규복이 제이나에게 편대장으로써 사과했다.

이를 본 제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찬영이 직접 나서서 괜한 뜬소문을 정리해 준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했다.

대답을 마친 후 찬영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건넸다.

찬영은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그의 담담한 눈빛은 정확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시 움직이겠습니다!”

뒤이은 이규복의 외침과 함께 멈춰 있던 편대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13편대는 별 탈 없이 지하 수로 출입 지점으로 택한 포인트에 반나절 만에 도착했다.

그동안 몬스터의 습격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타났다 하더라도 찬영과 제이나, 그리고 이규복에 의해 금방 정리되어 버렸다.

* * *

포인트까지 120m 앞.

계곡물 소리가 들리는 상류 지점에 도착한 이규복이 13편대를 불러 모아 진지를 짓게 했다.

위치상 여기부터 13편대의 경계 임무가 시작된다.

찬영과 제이나가 들어가는 출입구를 봉쇄하고 몬스터의 침입을 막는 거다.

만약 몬스터의 출몰이 없다면 마법 통신구로 약속한 시간마다 별 이상 없다고 마법병단에게 보고해 주면 끝이고.

이규복이 포인트가 있을 방향을 쳐다보며 찬영에게 말했다.

“다녀오세요, 늘 그렇듯 조심히. 계약 기간은 아직 안 끝났습니다?”

찬영이 가볍게 웃었다.

“그래야죠. 그럼…….”

“네.”

돌아서는 찬영과 그 뒤를 쫓아 나란히 발걸음을 떼는 제이나.

그 둘을 보며 이규복이 입맛을 다셨다.

“썸 타려나?”

괜한 잡생각이 다 든다.

* * *

솨아아아!

떨어지고 있는 폭포수. 그 아래엔 수심 깊어 보이는 연못이 자리 잡고 있다.

지도상으로 보았던 포인트다.

이미 제이나로부터 얘기를 듣긴 했지만 썩 내키지 않는다.

물에서부터 나는 피비린내가 코를 찌른 까닭이었다.

이를 보자마자 인벤토리를 찾아 레인으로부터 받았던 물건을 꺼냈다. 검붉은 마스크 이제껏 틈틈이 사용한 덕에 사용횟수는 7회 남았다.

‘1회당 유지 시간은 20시간.’

지하 수로에 무슨 독이 있을지 모르니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힐끗 옆을 보니 제이나 역시 동일한 물건을 착용하는 게 보였다.

레인이 챙겨 준 모양이었다.

“자, 그럼.”

착용이 끝난 뒤 제이나가 찬영을 향해 말했다.

“몸에 힘을 빼고 제 마나에 응하세요.”

“그러죠.”

찬영이 시선을 돌려 폭포수를 쳐다봤다.

맞다. 우린 저 안에 가야 한다. 저 안이 바로 공사가 이뤄지다 멈춘 지하 수로로 향하는 굴 중 하나니까.

‘단, 이 연못을 건너서.’

그렇기에 직감했다. 그녀가 뭘 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물가를 건너는 것과 관련이…….

‘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찬영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웨이트 드롭 중첩重疊. 플라이!”

마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면 이렇게 될까?

서서히 떠오르며 날아오르는 몸. 아니, 찬영이 날아오르는 게 아니었다. 찬영은 그냥 2서클 경량화 마법이 걸렸을 뿐.

정작 날아오른 건 3서클 플라이 마법을 사용한 그녀였다.

가벼워진 찬영을 반쯤 끌어안다시피 데리고 연못을 가로지른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모습은 날아오른 채 폭포수 뒤로 사라져갔다.

* * *

그다음 수순은 당연히 물에 흠뻑 젖은 생쥐 꼴. 둘 모두 쏟아지는 폭포수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대신…….

“클린.”

그녀의 마법 덕에 젖어 있던 옷과 몸이 다시 뽀송뽀송해졌다.

‘역시 편리하단 말이야?’

새삼 마법의 놀라움을 몸소 체험한 찬영이 인벤토리에서 D급 옵저버를 꺼내 가동시키고 직접 마나를 풀로 충전시킨 케어 라이트를 허공에 띄웠다.

출발하기 전 영주로부터 과거 어디까지 공사가 진척됐는지, 몇 개의 굴이 있는지 등의 설계도 등을 입수해 살폈다.

이를 통해 당시 공사 현장들이 몬스터에 의해 얼마나 부패하고 훼손됐는지부터 확인해 봐야 한다. 그게 탐사의 첫 번째 목표다.

탁!

케어 라이트에 의해 곧 동굴 내부가 밝아졌다. 그러면서 자연히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초입은 마치 광산 입구 같았다. 가공된 목재들이 굴 주변에 오밀조밀하게 맞닿아 굴이 무너지지 않게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었고, 천장에는 일정한 간격마다 당시, 대형 케어 라이트를 충전하며 설치해 뒀던 보급 마나 탱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를 발견한 그녀가 마나 탱크에 다가가 탱크와 이어진 잘려나간 마나 관 끝을 가볍게 건드렸다.

“마나 탱크네요.”

찬영은 그게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기에 그녀에게 물어봤다.

“마나 탱크요?”

“네, 대형 케어 라이트가 꺼지지 않고 작업 내내 가동할 수 있게끔 마나를 채워 넣어 주는 저장소라고 보시면 되요.”

그 말을 들은 찬영이 힐끗 마나 탱크를 내려다봤다.

물탱크와 동일한 형태.

“아, 그럼 탱크 안에 마나를 미리 집어넣고…….”

“네. 맞아요. 보통은 마정석을 통해서 가동시키죠. 가동이 되면 여기 잘려나간 관을 통해 케어 라이트에 마나가 주입되고요.”

얘기하다 보니 찬영은 순간 스쳐가는 생각에 솜털이 곤두섰다.

“마정석을 가동 재료로 쓴다면 남아 있는 마나탱크 중엔 마정석들이 제법 남아 있겠군요. 맞습니까?”

나직이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분명히.”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찬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럼 그건 비단 몬스터뿐만 아니라 마법사들에게도 좋은 마법 부산물이 될 테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제이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찬영이 무슨 의중으로 이런 얘기를 꺼내는지 눈치챈 거다.

“혹시?”

“제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요.”

찬영이 덧붙여 말했다.

“가능성 있는 추측이에요.”

그녀가 동의했다.

그럴 만도 했다. 마정석은 마법사들에게 좋은 마법 재료다. 마법 물품을 만드는 데 좋은 부산물이라는 거다.

그럼 뉴 빌드에겐? 녀석들이 몬스터에게서 목숨을 부지할 만한 능력만 있다면 여기만큼 좋은 마나 연구소도 없다.

그들의 힘을 기르기에 적합한 장소인 셈이었다.

찬영이 헛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우리가 직접 놈들 소굴에 들어온 걸지도 모르겠네요.”

제이나의 눈빛도 덩달아 날카로워졌다.

“만약 그렇다면 더욱 쉽지 않은 일이 될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다.

뉴 빌드는 입수한 정보를 통해 어떻게든 두 사람이 지하 수로에 진입한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분명 백이면 백, 함정을 파 놨을 것이다.

찬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통로를 쳐다보았다.

싸한 바람 소리가 저 멀리 안쪽에서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들을 기다렸다.

그사이 가동시켰던 옵저버가 마나 측정을 끝냈다.

찬영이 차고 있던 가동 팔찌에 마나 수치량이 나타났다.

‘어?’

뭔가 이상했다.

수치량이 나오기는커녕 ‘000’이 선명히 적혀 있었다.

이런 적이 없어 찬영도 의아했다.

설마 몬스터가 없다는 건가?

그럴 리가 있나?

의아해 제이나에게 물어봤다.

“이게 왜 이러죠?”

“D급 옵저버로 측정이 불가능한 마나 수치라는 얘기에요.”

“그럼 D급 옵저버로 측정할 수 있는 마나량 이상의 던전이라는 얘기일 테죠?”

16만 마나 함유량 이상이라는 얘기다.

“네. D급 옵저버의 마나 함유량 측정 반경이 10km 까지니까. 10km 안의 반경은 전부 D급 던전 이상이라는 거겠죠. 하지만 여기선 C급 옵저버 이상은 가동시킬 수 없어요.”

옵저버는 등급이 오를수록 크기가 커진다.

C급은 운반하기도 힘들고, 이런 좁은 통로가 많은 던전에선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여러모로 직접 탐사하며 몸소 출몰한 몬스터들을 겪어야 한다는 거다.

물론…….

‘위험한 거야 예상했지만.’

찬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옵저버를 인벤토리에 챙겨 놓았다.

마나 함유량이 굉장히 높은 던전이라는 걸 알아낸 것만으로 녀석의 일은 다한 셈이었다.

그녀가 지팡이 툴챠를 고쳐 쥐며 말했다.

“잠깐만요.”

그녀가 주문을 외우더니 찬영에게 보조 마법을 걸었다.

“윈드 어질리티.”

곧이어 귀 끝을 간질이는 가벼운 바람이 불더니 몸이 조금 상쾌해졌다. 직접 체감될 만큼.

굳이 말하면 사우나를 막 마치고 바람 쐬는 상쾌한 기분?

“굉장히 시원하네요?”

“2서클 마법이에요. 반응 속도를 3시간 동안 아주 조금 상승시키죠. 그래도 걸어 놓지 않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자신에게도 동일한 보조 마법을 걸었다.

할 수 있는 건 다한 셈이었다.

보조 마법을 마친 그녀의 앞으로 찬영이 기꺼이 앞장섰다.

여러모로 다른 변수를 계산했을 때. 마법보단 육체로 대응하는 편이 더 낫다. 육체 면에서 그녀를 월등히 앞서는 찬영이 앞서는 게 탐사하는데 있어서 훨씬 이로웠다.

그렇게 시작된 입구 탐사.

저벅저벅.

시작은 수월했다.

중간 중간 길을 막고 있는 방해물들은 찬영의 아슬란이 모조리 베어냈고, 빛 주변으로 모여드는 몬스터 또한 한 마리도 없었다.

대신.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군.’

통로가 점차 좁아질수록 냄새 또한 고약해져 갔다.

오랫동안 사체가 부패되어 버린 냄새였다.

그도 그런 게 어둠 속을 나아갈수록 슬슬 과거의 흔적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체…….’

아니, 사체라고 보기에도 힘들다.

뼈마저 부패되어 버려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이를 본 제이나가 한마디 거들었다.

“공사를 포기한 건 몬스터의 대대적인 습격이 이뤄진 후였어요. 그때의 사망자는 셀 수조차 없었죠.”

안타까운 듯 눈살을 찌푸리는 그녀의 눈빛.

그건 일종의 죄책감.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 모든 곳에 그녀가 있어야 했다는 생각에서.

찬영은 그 생각을 이해했다. 얼마 전 그 생각에서 빠져나왔기에 누구보다 잘 공감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 탓이 아니다.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났을 뿐.

찬영이 막 위로 하려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음?’

느낌이 서늘했다. 그건 그냥 직감이 아니다. 온몸의 예민해진 감각들이 말하고 있는 거다. 뭔가가 나타났다고.

찬영이 케어 라이트 주변을 휙 둘러봤다.

빛 안으로 들어온 몬스터는 없다.

그럼 뭔가가 접근해 오고 있다는 건데 그게 뭔지 아직 모르겠다.

찬영이 먼저 제이나를 쳐다보자 제이나도 몬스터의 출몰을 느낀 듯 툴챠를 고쳐 쥐었다. 그리고 준비하는 마법 주문. 나름대로 서로 손 발을 맞춰왔기에 이젠 눈만 봐도 아는 거다. 서로 뭘 준비해야 할지.

그 순간.

쐐액!

무언가가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찬영이 움직였다.

서걱!

검에 닿자, 얼어붙으며 베어지는 화살촉.

한데 그게 끝이 아니다. 하나를 베자 어둠 속을 뚫고 새빨간 화염이 일렁이는 화살들이 두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

‘기습!’

그 생각과 함께 찬영이 기다린 사람처럼 스툼을 내뻗었다.

“그래비티 필드.”

이제껏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마나 효율 최고 가성력을 보인 기술이다. 곧 날아오는 화살들이 바닥에 나뒹굴겠지.

그 생각을 하던 찰나, 등 뒤쪽에서 소름 끼치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광기 섞인 웃음.

-게게게겔.

찬영의 등골이 싸늘히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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