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78화 (78/248)

#78

그로 인해 찬영의 몸을 타고 흐르는 신성력.

‘확실히 마나와는 다른 뭔가가 존재해. 그게 여신이 맞다면…….’

분명 여신은 여기 존재한다.

그리고 지켜본다.

이렇게.

곧 찬영이 펼친 손바닥에서 새어나온 밝은 빛이 그가 펼친 손바닥 말고, 반대편 손까지 전부 밝은 빛으로 물들였다.

그러면서 하나의 형태를 이루어 냈다.

신성 주문서로 습득한 2등급의 신성 주문이다.

마법과 비교하자면 2서클의 마법 정도.

이름하여 홀리 웨폰.

1초당 신성력 150을 쏟아야 하는 신성 주문으로써 신성력을 이용해 원하는 형태를 일궈 내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

일단 제이나에게 보여 준 형태는 기존에 들고 다니던 아슬란을 모방한 형태였다.

“자, 이렇게 하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손을 뒤집자 이번엔 엘프들이 주로 들고 다니는 활이 나타났다. 찬영이 활을 쏘는 시늉을 해 보이며 홀리 웨폰 상태를 해제했다.

그러자.

지잉!

양손엔 방출된 신성력이 전류형태를 띈 채 두 손을 타고 이리 저리 옮겨 다녔다. 이를 보던 제이나가 결국 한마디를 던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분명 방금 그건.

‘마나의 유동이 아니었어.’

5서클 마법사의 눈을 피할 순 없다.

그 말은 찬영이 방금 보인 그 기운이 마나가 아닌 신성력이 틀림없다는 얘기.

그녀가 놀란 채 물었다.

“신을 믿으시나요? 아니, 왕국을 수호하는 여신의 존재를?”

“솔직히요?”

“예.”

찬영이 신성력을 완전하게 거둔 후 대답했다.

“직접 겪은 힘이니까 존재를 부정할 순 없겠죠. 믿는 쪽입니다.”

잠깐 손을 두어 번 쥐었다 피기를 반복하며 말했다.

“분명 신성력을 쓸 땐 마나와는 전혀 다른 뭔가가 계속 느껴지니까요. 이런 힘을 주는 게 신이라면…….”

찬영이 눈을 들어 제이나를 그윽하게 응시했다.

“어딘가에 신이 존재하고 있는 거겠죠.”

“그렇군요.”

대답을 하면서도 제이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얼마나 더 놀라야 할까? 매 순간 매번 찬영은 또 다른 뭔가로 놀라게 한다. 한데, 그게 신성력이 될 줄이야.

‘정말 이건, 상상도 못했어!’

솔직히 말하면 이젠 신성력을 자유자재로 쓸 줄 아니 정식 신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신관들 중에서도 신성력을 부여받지 못하는 신관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찬영은 노티스 교의 이단아가 된 셈이다. 어떤 기도문을 읊은 적도, 규율을 공부한 적도 없는 존재가 하루아침에 노티스 여신의 뜻을 이어받는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일로 불러올 바람이 결코 작을 거라 보지 않았다. 분명 크다. 커도, 아주 클 거다.

잠깐 이것저것 고려해 본 뒤 말했다.

“우선 밝히지 않는 게 좋겠어요. 적어도 공식석상에선.”

“그래야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제이나는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 생각한 것을 그대로 얘기해 주는 게 낫다고 결정했다.

“저희는 신성 왕국입니다. 아시죠?”

“네.”

“그럼 왕국 내에서 노티스 교의 힘은 막대하다고 봐도 무방해요.”

찬영은 그 쯤 듣고 나서 그녀가 뭘 말하려는지 간파했다.

어째 많은 일들을 거치며 눈치가 전보다 더 빨라진 것 같다.

“노티스 교의 다른 누군가가 절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시기와 질투는 인간의 기본 욕망이죠. 뉴 빌드는 그 점을 잘 이용할 겁니다.”

말하자면 찬영의 능력으로 인해 파생될 질투들이 뉴 빌드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 결국 분열이 일어나는 거다.

“하긴, 교리조차 모르는 제가 신성력을 사용한다면 그들은 절 부정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네요. 뉴 빌드는 그 점을 이용할 수도 있을 테고.”

“어쩌면요.”

제이나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 말처럼 종교란 건 양날의 검과 같다. 가난하고 힘든 약자에게 따뜻한 교리가 되던 교리가 때론 비틀린 욕망에 의해 추악하게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제이나는 그걸 걱정하는 거였다. 이를 찬영도 느꼈기에 그녀의 뜻에 동의했다.

“웬만한 일엔 사용하지 않아야겠네요.”

딱히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문제 될 일은 없다. 이미 가지고 있는 뛰어난 이네이트가 가득했고 요즘은 제이나로부터 마법까지 익히는 중이다.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고서야 신성력을 사용하게 될 일은 없을 거다.

그 외 신성력을 성장시키기 위해 수반되는 훈련들이야. 르리에든, 플레이체험이든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그녀와의 약속, 충분히 지킬 수 있다.

“그래도…… 괜찮나요?”

제이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찬영은 다른 세상의 이방인.

신성 왕국의 생리에 대해 답답하게 느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을 숨겨야 하는 것들에 대해 답답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찬영은 그녀의 걱정과 달리 그녀가 언급한 모든 상황을 충분히 납득했다.

“그럼요.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합니다. 다들 자기 선에서 이해되지 않는 걸 보고 나면 경계심, 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끼니까요.”

얼마 전 치렀던 청문회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찬영 혼자 오디와 만날 공간으로 들어섰다는 걸 제대로 믿지 못했고, 결국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모든 절차를 찬영의 주도 하에 종료했다.

신성 왕국이라고 다를까?

그들 중엔 자신의 신성력을 부정한 것이라 매도하며 경계하는 자들이 있을 거다.

‘단합하기도 바쁜데 괜한 분란을 일으킬 필요 없겠지.’

타이틀은 갓피스라는 것으로 충분하다.

“숨기죠, 신성력.”

오히려 그녀의 조언이 고맙다.

그럼 얘기도 끝났으니…….

“슬슬 준비할까요?”

찬영의 시선이 그녀가 가져다 준 옷가지로 향했다.

* * *

-지금부터 출정식을 거행하겠다!

마법으로 만든 확성기가 영주의 목소리를 실어 목책 안에 울려 퍼졌다.

출정식은 참 영주다웠다.

그의 털털한 성격답게 허례 없이 심플한 출정식이 이뤄졌다.

-우리는 헤일로 골짜기를 수복할 것이다. 우리의 우방인 헤일로 엘프 족에게 귀한 땅을 선사할 것이며, 이곳이 신성한 여신의 가호를 받는 대 신성 왕국의 알폰 지방이라는 것을 몬스터들에게 재차 각인시킬 것이다. 나를 따를 제군들이여, 이 땅의 주인이 누군지 가릴 때가 왔다!

연설이 끝나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동안의 몇 차례 승리가 준 드높은 사기 덕분.

-고향을 되찾자!

영주는 어느 때보다 드높은 사기에 꽤나 만족하며, 미리 준비한 계획대로 지휘권을 나눴다.

먼저 마법병단 2개 소대와 각성자 13편대의 80% 병력.

그리고 기사단 3대대의 병력을 카일에게 맡겨 헤일로 골짜기 수복 토벌을 지시했으며, 그 외 각성자 13편대의 20% 병력은 토벌 동안 진행될 지하 수로 입구 경계로 투입하며 제이나에게 지휘권을 맡겼다.

찬영과 제이나의 투입 직후 몬스터의 추가적인 접근을 막기 위한 병력이었다.

누가 봐도 토벌에만 병력을 집중하겠다는 의도이며, 지하 수로 탐사는 두 갓피스의 능력에만 의존한다는 조금은 무모한 병력 운용이었다.

하지만 제이나와 찬영 모두 충분히 그런 부분을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이의가 있을 리 없었다. 한데 여기서 찬영이 예상 못한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다수가 모이며 나오기 시작하는 ‘불만’이란 거였다.

* * *

출발 처음에야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하 수로 입구 포인트로 결정된 지점으로 향하면서 시작된 몇 차례에 걸친 몬스터 습격은, 실전 경험이 능숙하지 않은 각성자 편대의 불만과 걱정을 고조시켰다.

선봉에서 찬영과 제이나, 그리고 이규복이 그들이 크게 나설 필요 없이 정리를 해 주고 있음에도 그랬다.

몇몇이 슬슬 볼멘 목소리를 냈다.

“얘기 들어 보니까 우리가 최초 탐사라던데?”

“아직 옵저버 한 대 안 들여보냈다고? 그럼 여기에 병력을 더 집중해야 되는 거 아냐? 이러다 몬스터한테 포위당하면 어떡해?”

상황을 제대로 납득하지 못한 몇몇 각성자들.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자 점차 뜬소문이 여론을 조장했다.

“우리만 고생시키려고 보내는 거라는데? 봐봐, 자기 병력들은 대부분 쏙 빼놓고 우리 병력만 차출시켜서 보내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그것도 그러네.”

“에이, 아니야. 그럼 제이나 경이 왜 선봉에 섰겠어?”

“답답하긴……. 그거야 명분이라도 세워야 되니까 그렇지!”

속닥거리는 소리들.

이를 선봉에 선 제이나, 찬영 그리고 이규복이 못 들을 리 없었다. 오히려 듣다 못한 이규복이 제이나에게 물었다.

“잠깐 전진을 멈춰도 될까요?”

제이나가 무심한 눈길을 돌려 대답했다.

“왜죠?”

이규복이 그녀를 따라 걸으면서 말했다.

“워낙 호기심 많은 친구들이라 지금 파견이 쉽게 납득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상황 파악 좀 제대로 시켜주려 합니다.”

이때 찬영이 나섰다.

“그럼 제가 맡겠습니다.”

“음?”

눈이 휘둥그레진 이규복.

나서는 거 좋아하지 않는 그가 웬일로 이럴까 싶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판단해 굳이 말리지 않았다.

“네, 그러시죠.”

기꺼이 옆으로 비켜선 이규복.

찬영이 쑥덕거리며 따라오는 13편대의 행군을 멈추게 했다.

곧, 웅성대던 각성자들이 잠깐 숨을 죽이고 찬영을 쳐다봤다.

쏠리는 시선.

‘부담스럽네.’

솔직히 말하면 그랬다.

하지만 청문회 첫 경험 이후로 이런 부담은 꽤 견딜 만한 수준이 됐다.

‘그때에 비하면 이 정도야…….’

그런 생각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허심탄회하게 질의응답 한 번 가져 보죠. 궁금한 것도 많으실 테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콧수염 남자가 얼른 손을 들었다.

찬영이 그를 콕 집었다.

“네, 말씀하시죠.”

이때다 싶었는지 콧수염 남자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왜 이 임무엔 각성자들밖에 없는지가 궁금합니다.”

찬영이 대답했다.

“제이나 경이 있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명분상으로…….”

찬영은 듣고 있다 조용히 반문했다.

“명분상으로?”

그러자 콧수염 남자가 말이 꼬이는지 몇 번 말을 더듬거리다 어렵사리 말했다.

“그러니까 명분상으로 보낸 것뿐이지, 실질적으론 저희 각성자 편대만 개고생하라고 보낸 거 아닙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거야 듣자 하니까 지하 수로는 제대로 탐사도 안 되어 있다고…….”

찬영이 말끝을 흐리는 남자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헤일로 토벌은 누가 하고 있습니까?”

“그거야!”

자신 있게 입을 열긴 했지만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

찬영이 그럴 줄 알았다며 말을 잘랐다.

“네, 알고 계시듯이 전선에 남은 병력들이 시작하겠죠. 그들은 여러분 못지않게 치열하게 싸울 겁니다.”

콧수염 남자는 핵심을 찌른 찬영에게 돌처럼 굳어 아무 대답을 못했다. 그냥 더듬거리며 첫 질문과 상관없는 이상한 말이나 해댈 뿐. 찬영이 추가로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하나 묻죠. V.O.든, 영주든 어느 누가 여러분께 지하 수로에 진입하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까?”

콧수염은 남자는 완벽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때쯤 하이 톤의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나섰다.

“그거야 사이즈 보니까 당연히 저희가 하겠죠! 애초에 초입 근방에 진지 펼쳐놓으라는 얘기가 그 뜻 아니에요? 편대장님, 그렇죠?”

여자가 이번엔 이규복을 보며 묻자 이규복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러분, 저 역시 여러분처럼 상관의 지시를 받고 파견된 사람입니다. 자격을 갖춘 분들이 영주님과 합의 하에 이런 결정을 내린 거라 알고 있을 뿐이죠. 그러니 자세한 건…….”

그가 찬영을 쳐다봤다.

“말씀 나누시던 찬영 씨께 여쭤보시죠. 괜히 저까지 개입시키지 마시고. 아시겠죠?”

자기 생각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기 때문일까?

여자는 조금 당황한 눈빛을 돌려 다시 찬영을 쳐다봤다.

“조, 좋아요. 그럼, 말씀해 보세요.”

하지만 찬영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동안 그녀를 지켜볼 뿐. 그 시선이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여자 각성자가 짜증을 냈다.

“왜, 대답은 안 하고…….”

그때 찬영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대답할 가치가 없어서 안 했습니다.”

“뭐예요?”

뾰족한 반문. 하지만 찬영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닌가요?’ 혹은 ‘그런 거 아닙니까?’ 등의 질문은 제대로 된 사실에 대해 몰랐을 때 나오는 얘기들이죠. 아닙니까?”

대답을 강요하던 각성자들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찬영이 좌중을 둘러봤다.

하나 같이 확실한 펙트를 제시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불만을 토로할 명분을 찾고 있었던 게 틀림 없다.

“지하 수로는 당신들을 제외한 저와 제이나 경이 들어갑니다. 이게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죠. 여러분은 지시받은 대로 그냥 진지만 지키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제 쐐기를 박을 차례.

“그러니 괜한 헛소문으로 현재 V.O.와 영주 사이의 분열을 조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럴 일이 생겼을 경우…….”

언젠가부터 숨죽이게 된 각성자 편대를 향해 마지막 말을 마쳤다.

“기억해 두겠습니다. 전부.”

누가? 내가.

그러자 몇몇 각성자의 얼굴이 조금 하얗게 질렸다.

그들도 아는 거다. 시드 대륙 안에서, 혹은 현재 각성자 펌과 정부들 사이에서 찬영의 존재가 어렴풋이나마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지구의 어떤 법도 그를 강제할 수 없단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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