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73.
‘시간 참 빠르네.’
새삼 30회 보상 받기가 다가왔다는 걸 생각하자 그동안 해 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정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지난 시간이다.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은 차고 넘쳤다. 차원의 돌도 수집해야 하고 몬스터 외에 뉴 빌드란 적도 늘었다. 그러니 여유 섞인 감회는 잠시뿐, 다시 하던 일에 몰두해야 한다.
찬영의 눈이 빠르게 인벤토리 목록을 살폈다.
인벤토리는 남쪽에 있을 때보다 상당히 많이 비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상 못한 사인회와 함께 그동안 만들어 둔 장비들을 목책 병력에게 일괄 지급했기 때문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귀환하면서 그녀와 함께 나머지 장비 제작에 열을 올린 덕분이었다. 그로 인해 43명의 낡기만 하던 장비 이제 2,3서클 마법이 각인된 아티팩트 장비로 탈바꿈했다.
그뿐인가?
이중 13개 장비엔 13개의 10급 보석이 함께 장착됐다.
-생존자 43명을 회복시킨 후 다양한 방법을 택해 성장시키세요. 가치 측정 시 평균 5,000이 되어야 합니다.
-현황 평균 : 5,250
-1개 조건 완성
히든 퀘스트 중 가장 찬영을 고민스럽게 했던 항목이 완성된 거다.
하지만 인벤토리 정리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잔여 아이템 정리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템 5개는 우선적으로 분해로 돌려 버렸고, 그 다음은…….
‘업적 보상.’
그게 남았다. 일단 박스 개수는 2개다.
처음 보석 장착을 달성했을 때 받은 골드 3급 박스에선 엘리야의 깃털 1개가 나왔다.
‘1/100’이라고 하는 걸로 보아 앞으로도 상당히 모아야 할 아이템인 듯싶었다. 그 외 1개는 최초 분해 업적 달성으로 획득한 2실버 코인이다.
남은 시간 동안 농장을 돌아볼 계획이었으니 당장 도타에게 건네줄 생각이다.
‘그럼…….’
정리가 얼추 끝났다.
그 덕에 인벤토리 현황 상태는 이것저것 추가 되서 15개 정도. 당장 미지의 땅의 사냥을 가도 충분할 만큼의 인벤토리 공간을 확보했다.
순간…….
‘좀 쉬게. 제발. 쉬어.’
영주의 당부가 스치긴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농장을 들여다볼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하수로로 가기 전에 도타와 타우린을 한 번쯤 살펴보고 가야 했다.
‘자, 가볼까……?’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열리기 시작한 나무 문. 미지의 땅으로 떠날 차례였다.
* * *
휘잉.
늘 그렇듯 가벼운 미풍이 스쳐 지나가면서 모든 풍경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음모오오오!
기다렸다는 듯 달려오는 커다란 검은 소 한 마리.
“커헉…….”
찬영은 갑자기 안겨오는 타우린에 의해 잠깐 숨이 턱 막혔다.
못 보던 새 이 녀석…….
‘더 큰 것 같네.’
달려와 그냥 이마를 비비기만 하는데도 워낙 우람한 몸집이 밀치는 힘이라, 지탱하고 있던 두 다리가 뒤로 쭉 밀린다.
디디고 있는 땅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푹푹 꺼질 정도.
‘녀석…….’
여기 있길 잘했다 싶다.
만약 이렇게 큰 몸집 큰 타우린이 전선을 헤집으며 밥 달라 온 천막을 휘젓고 다녔으면…….
천막을 새로 지으라는 히든 퀘스트가 나왔을 게 분명하다.
반가움의 흥분이 가셨는지 녀석의 콧김이 아까보단 부드러워진 걸 느낀 찬영.
그제야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도타를 쳐다봤다.
“도타.”
“딱, 딱. 주인님 오셨습니까?”
늘 평온한 어조의 도타.
스치듯 보니 이전에 비해 또 성장을 한 모양이다.
가치 측정, 1,720.
굳이 이것저것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하는 도타의 특성상 앞으로의 성장치는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네, 왔습니다.”
이어서 그의 인사를 목례로 화답한 뒤, 타우린을 데리고 함께 거닐었다.
“새로 개간한 작물은 좀 어때요?”
“딱, 도타는 체력도 작물을 재배하는 능숙함도 늘었습니다. 딱딱.”
역시나 도타는 농장 성장에 적합한 인적 자원이다.
‘아니지, 골적骨的 자원이라 해둬야 하나?’
아무튼, 도타의 보고를 하나씩 받기 시작했다.
그에 의하면 일전에 전해 준 82종의 장비는 떠돌이 상인에게 무사히 팔렸다고 한다. 그 덕에 벌게 된 코인은 무려 2실버 30브론즈. 기존에 80브론즈가 있었으니 3실버 10 브론즈가 된 셈.
당연히 도타는 곡괭이를 구입했고 이젠 당당히 어깨 위에 자기 몸보다 2배는 큼직한 커다란 곡괭이를 짊어졌다.
이 덕분일까? 작물은 프린초 때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찬영이 브루 밭을 돌아보면서 커다란 잎을 만졌다.
“많이도 키웠네요.”
정말 그 말이 나올 만하다.
밭을 보면 나오는 수확 개수만 봐도 이전의 프린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개수다.
-Lv. 2 : 브루 밭
-수확 가능 개수 : 40
‘프린초는 15개였었는데 브루 밭은 벌써 40개나 됐네.’
굉장한 성과이기에 칭찬은 당연지사. 도타를 향한 격려가 절로 나왔다.
“고생했어요. 도타.”
“딱, 딱. 아닙니다, 딱. 타우린님께서 딱, 개간을 도와주셨습니다.”
“타우린이?”
“예, 딱.”
“어떻게?”
“딱. 돌을 부숴 주셨습니다. 딱, 딱.”
“오, 그래요.”
먹보인 줄 알았더니 이 녀석, 힘을 제법 효율적으로 쓸 줄 아나 보다. 찬영이 기특한 눈으로 타우린의 머리 위를 툭툭 두드렸다.
“잘했어.”
아낌없는 칭찬을 하는 건 당연했다. 타우린이 돌을 부숴줌에 따라 곡괭이로만 해야 할 작업들이 굉장히 많이 줄어들었을 테고, 그로 인해 도타의 체력이 안배됐을 것이다.
‘그 힘으로 작물에 더욱 신경 썼겠지.’
타우린이 배불리 먹고도 괜히 40개나 경작된 게 아닌 거다. 타우린과 도타의 좋은 호흡이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 셈.
그사이 도타가 한때 프린초를 심었던 땅을 가리켰다.
“딱, 딱. 프린초 씨앗이 더 필요합니다.”
동시에 작물을 키울 셈인가보다.
……그럼, 당연히 도와줘야지.
“네, 그 부분은 제가 돕도록 하죠.”
미지의 땅으로 사냥을 나가서 프린초 씨앗을 좀 가져와야 할 것 같다.
‘그 전에 이것부터…….’
찬영이 도타에게 인벤토리에서 꺼낸 코인 2실버를 건넸다.
이로써 남은 1실버 40브론즈와 합쳐져 3실버 40브론즈가 됐다.
“딱, 딱. 주인님께 코인 받았습니다.”
“네 받아둬요. 이번엔 필요한 물건 없었어요?”
“딱. 물뿌리개가 필요합니다. 딱. 재배 포션이 필요합니다. 삽이 필요합니다. 딱….”
끝도 없이 줄줄이 나오는 필요 보조 아이템.
찬영이 그만하라며 얼른 손을 저었다.
이렇게 안 하면 정말 하루 종일 필요한 물품들을 줄줄이 읊어대고도 남을 도타다.
말을 멈춘 도타에게 오두막을 가리켰다.
“방금 얘기한 것들 중에서 우선순위를 골라 봐요.”
“딱, 물뿌리개와 삽입니다.”
“그럼 그 두 개부터 구입하죠. 지금 건네 준 실버로 충분한가요?”
“딱딱. 충분합니다.”
“구입하세요.”
“예, 딱.”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타가 오두막으로 보조 아이템을 구입하러 떠났다.
그동안 찬영은 도타를 데리고 영계가 무럭무럭 컸는지 확인했고 그때 즈음, 영계가 알을 낳았다는 걸 확인했다.
마침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도타가 찬영에게 다가와 말했다.
“딱, 딱. 알을 수집하겠습니다.”
찬영이 비켜서자 도타가 퍼덕거리는 닭을 무시하고 알을 수집해갔다. 그렇게 소중히 거둬 낸 알은 대략 두 개 정도.
이를 지켜보던 찬영이 물었다.
“알은 어디에 씁니까?”
“딱, 딱. 떠돌이 상인에게 판매하거나 물물 교환을 할 수 있습니다. 딱딱.”
순간 찬영의 눈빛에 이채를 띠었다.
“물물교환? 누구와 말이지?”
여기 미지의 땅 안엔 자신과 타우린 그리고 도타 밖에 없다. 그런데 물물 교환이라니? 찬영은 도타의 말이 이해가 안 됐다.
“딱. 미지의 땅엔 숨겨진 이웃이 많습니다.”
“뭐…?”
도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뜬 창.
-히든 퀘스트 : 최초 이웃을 찾고 물물 교환하라.
-도타에 의해 물물교환에 관한 힌트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미지의 땅에 새로운 이웃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탐색을 통해 이웃을 찾으세요.
-퀘스트 완료 조건
-이웃을 1명 이상 찾으세요.
-이웃과 물물교환 1회 완료하세요.
-히든 퀘스트 완료 시 획득할 보상 목록
-이웃 발견 시, 오두막 +1 영구적 업그레이드권 획득.
-물물교환 완료시, 최초 무역로 개방.
-수량 50 제한 짐마차 1개 획득.
-소작농 1명 추가 획득.
찬영이 헛웃음을 흘렸다.
보상과 내용을 쭉 살펴보고 난 뒤였다.
“소작농에 이은 마차까지…….”
이 보상들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농장은 더욱 풍성해진다.
특히나 미지의 땅에 자신만 있는 게 아니라 물물교환이 가능한 무역로가 생긴다는 건 농장 변화의 전환기라 해도 무방한 변혁이었다.
겨우 질문 하나, 그 질문이 이뤄 낸 쾌거였던 것이다.
“도타.”
새로운 변화에 눈 뜬 찬영이 이 일의 시작을 가져온 도타를 다시 불렀다.
“딱, 딱. 예, 주인님.”
“왜 이제껏 말해 주지 않았어요?”
“질문 즉시 생각이 났습니다.”
분명 적절한 질문이 어떤 정보 개방을 풀어 준 게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찬영.
“그래요?”
도타는 늘 답변을 해 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적당한 질문을 찾지 못한 건 자신인 것이다.
‘잠깐, 그럼…?’
혹시나 싶어 서둘러 도타에게 연이은 질문 세례를 쏟아 냈다. ‘농장을 발전시킬 다른 부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느냐?’부터 ‘무역로를 그린 지도 같은 건 갖고 있는 게 없느냐?’ 등.
그러자 도타 왈.
더 생각나는 바는 없다고 했다. 그쯤 되자 찬영도 추가 질문을 멈췄다. 당장 생각나는 대로 떠들어 봐야 질문은 효과적이지 못하다. 직접 부딪쳐보고 파생되는 상황에 따라 질문하는 게 효과적이다.
이번 경우처럼, 그러니까…….
‘앞으로는 도타가 하는 말을 허투루 들으면 안 되겠어.’
방금 전도 도타의 말을 통해 새로운 질문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면 무역로는커녕 이런 히든 퀘스트는 획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찬영은 질문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창을 올려다봤다.
‘어쨌든 이웃을 한 명 찾으라 이거지.’
분명 그게 핵심이다. 우선 이웃과 조우하고 그 다음부터 순차적으로 해나가야 하는 방식이 틀림없다.
도타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타, 슬슬 채비해요. 먼저 채집부터 갑시다.”
‘시간 끌 것 없이 당장 히든 퀘스트를 끝내주지.’
찬영의 걸음이 바빠졌다.
* * *
그때부터 빠른 탐사가 진행됐다.
찬영은 프린초 경작을 위해 프린초가 유독 많았던 북쪽 7km 반경부터 돌아다녔다.
이후 프린초 3회 채집이 완료되자, 동쪽으로 탐사 방향을 변경했다. 가보지 않은 동쪽과 서쪽을 순차대로 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품종의 약초 채집과 이웃 발견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동쪽엔 이제껏 그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품종의 약초가 발견됐다. 섭취 시 굉장히 낮은 확률로 근력을 극소량 증가시켜 준다는 마하드 약초였다.
곧이어 찬영의 지시에 따라 채집을 시작한 도타.
어김없이 약초 냄새를 맡은 새로운 형태의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굳이 찬영이 나설 일도 없었다.
타우린이 찬영이 나서기도 전에 다가온 몬스터들을 모조리 정리해 버린 것이다. 그 덕에 찬영은 손도 안 대고 코 푼 격.
아이템 수집만 손쉽게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끝난 건가.”
도타의 채집 횟수가 끝나 있었다.
총 채집 횟수 8회.
채집 결과물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많았다.
도타의 가치 측정이 상승하면서 채집 횟수가 늘어난 덕택.
옆에 서 있는 도타가 많은 수확물을 얻었다며 딱딱 거리는 소리를 내며 즐거워했다.
‘자 그럼 도타는 됐고.’
이제 남은 건 행복지수가 0이 되어 버린 타우린이다.
도타의 채집 횟수를 채우느라 배고픔이 생긴 모양. 마침 타우린이 씩씩거리며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일도 잘 했으니, 든든히 먹일 차례였다.
“우린아, 밥 먹자.”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타우린이 기분 좋게 울었다.
-음모오오!
오늘의 본격적인 탐사는 이제 시작이었다.
어두운 장막 뒤, 어떤 이웃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그 이웃이 가져올 또 다른 보상엔 뭐가 있을까?
찬영이 다시 설렘 가득한 발걸음을 뗐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