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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72화 (72/248)

# 72

#72.

사용하는 마나량부터가 엄청났다.

치지직!

그 영향으로 그녀가 밟고 있는 지반이 푹 함몰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로지 목표한 타깃만을 차가운 눈길로 응시할 뿐.

“5서클 콜 라이트닝 중첩重疊 서클 아이스 텐타클!”

동시에 그녀가 양손을 휘젓자, 준비된 슬롯이 개방됐다.

콰지직!

그녀가 미리 계산한 주문이 양손 앞에서 붉은빛을 내며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 수없이 많은 도형들이 겹쳐진 형태를 일으켰다.

때마침 그래비티의 속박이 풀려 버렸고,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콰드득!

허공에서 하나 둘씩 나타나며 빙글 돌기 시작한 빙결 형태.

그것들이 서로 맞물리며 겹쳐지자, 순식간에 생성된 얼음 구체에서 수십 개의 빙결 촉수가 튀어나왔다.

콰드득!

쐐액!

뻗어나간 촉수들이 일제히 라비들의 발목, 팔목, 허리 가릴 것 없이 놈들을 빠져나갈 틈 없이 옥죄었다.

“키에에엑!”

라비들이 울부짖었다. 하나 이번 마법은 중첩, 다른 마법은 시전도 안 했다.

쐐애애애액!

난데없이 주위의 모든 공기를 빨아들이는 인력이 생기더니 사방이 번쩍였다.

콰콰쾅!

그리고 시작된 뇌전. 5서클의 권능이다.

특히 그 권능은 지팡이에 박힌 보석, 뇌 속성 마법 확산 1.2% 증가로 인해 그 범위가 더 넓어졌다.

라비들에겐 설상가상의 위기였다.

콰콰쾅!

얼음과 뇌전. 상대에겐 최악의 조합이자 최고의 전도 조합. 그녀는 어떻게 싸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윽고 사방이 새하얀 빛으로 뒤덮였다.

* * *

-라비의 눈이 획득되었습니다.

-레이븐의 깃털 코트가 획득되었습니다.

-발톱을 깎아 제작한 클로…….

-인벤토리가 가득 찼습니다.

창을 가득 메운 아이템 루팅 현황.

라비 외 나머지 몬스터들까지 전부 제거하고 나니 또 다시 인벤토리가 가득 찼다. 벌써 인벤토리가 몇 번이나 찼는지 모르겠다. 이곳에 온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럴 만도 한 게 현재 분해를 통해 제작한 10급 보석은 무려 15개였고 완성한 장비 아이템만 서른 개가 됐다.

여기에 기존 9종의 장비를 더하면 히든 퀘스트에 명시됐던 생존자 43명중 39명에게 일괄 보급이 가능해진다.

나머지 4명?

그거야 현재 인벤토리가 꽉 찬 아이템을 합성으로 돌린다면 못해도 장비 4개는 충분히 나오고도 남는다. 43명을 위한 장비를 1개 이상 마련해주려 했던 일괄 보급 건이 완벽히 완료된 거다. 그 외의 남은 아이템들은 분해를 통해 보석으로 정리해서 장비의 강화로 쓰이면 되니까.

단 한 개의 아이템도 남지 않게 모조리 쓰는 셈. 고생 끝에 이뤄낸 결과들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그사이 제이나가 다가왔다.

“수집은 끝났나요?”

며칠 간 함께 하며 그녀는 찬영이 무엇을 위해 이곳에 온 건지 슬슬 감을 잡았다. 그리고 이젠 그가 하는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찬영이 직접 설명해 준 까닭이었다.

사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일이긴 했다. 찬영이 잠을 청하거나 휴식하는 밤만 되면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 낼 뿐 아니라 툴챠 손잡이 끝에 희미하게 빛나는 노란색 보석까지 박아 줬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찬영의 인벤토리와 아이템 수집 등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알게 된 일인이 됐다.

“써보니까 어때요?”

찬영이 물었다.

“확산력이 늘었어요, 정말로.”

마법의 변화를 느끼는 건 사용하는 본인이다. 그녀는 확실히 느꼈다. 콜 라이트닝의 범위가 넓어졌단 걸. 마법을 쓰는 순간 마나가 닿는 영향력이 늘어났다는 게 느껴진 까닭이다.

이건 굉장한 일이다.

“써보니 놀랐어요. 한계 이상의 확장력을 가져오는 보석이라니…….”

그녀가 툴챠의 손잡이 끝에 박힌 노란색 보석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돌아가면 툴챠를 레인에게 맡겨 봐야겠군요.”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궁금할 거다. ‘홈’ 그리고 보석 장착. 이런 게 구현되는 걸 마법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게 마법사들이 하는 일일 테니까.

하지만…….

“쉽진 않을 겁니다. 우린 아직 몬스터가 어디서 온 건지조차 밝혀내지 못했으니까.”

제이나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어디서 온 시스템인지 알아낸다는 건, 몬스터와 대륙 복원 블루게이트 모든 것의 근원에 다가간다는 얘기일 테니까.

잠깐 생각에 잠겼던 제이나가 걸음을 옮겨 까맣게 타 버린 몬스터들에게 다가갔다.

“여기 있는 몬스터들은 후일 다 수거해 가야겠군요. 마정석이 꽤 되겠어요.”

굉장히 흡족해 하는 그녀. 잠깐 지켜보던 찬영이 귀환 얘기를 꺼냈다.

“그럼 이제 슬슬 돌아가시죠.”

그녀가 찬영을 돌아봤다.

그런데 눈빛이 ‘벌써?’라는 표정이다.

찬영이 결국 혀를 내둘렀다.

알면 알수록 이 여자, 자신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는다.’

그래도…….

‘이젠 돌아가야지.’

찬영의 시선이 저 멀리 목책 전선이 있을 북쪽으로 향했다.

* * *

정확히 이틀 뒤 오후, 로그인 캘린더 2차 29회가 된 시점, 찬영과 제이나는 무사히 전선에 돌아왔다.

두 명의 갓피스가 이루고 온 말도 안 되는 업적에 경이로워 하는 사람들에 의해 환호성이 쏟아진 건 당연했다.

하지만 영주만 유일하게 다른 의미로 놀랐다. 2서클 클린 마법으로 몸은 청결히 했지만 그간의 사냥으로 옷이 헤지고 너덜너덜해진 건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허허…….”

그러면서 찬영에게 넌지시 물었다.

“무리 안한다면서?”

“안했습니다.”

영주가 제이나에게 물었다.

“안 했나?”

“예.”

당사자들이 그렇다고 하니 딱히 할 말도 없는 영주다. 잠깐 입맛을 다신 그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하기야. 내가 어찌 자네들을 말릴까? 고생 했네. 그리고.”

영주가 찬영에게 볼멘소리를 건넸다.

“이젠 좀 쉬고!”

찬영이 그제야 웃었다.

“이를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말씀 안 하셔도 쉴 겁니다.’

마지막으로 영주의 보고를 마친 두 사람이 그의 천막 밖으로 벗어나려 할 때.

“아, 그리고 참.”

영주가 두 사람을 다시 돌려세웠다.

“자네들이 자리를 비운 동안 보급 물자와 지원 병력들이 대거 당도했네. 그중에 자네에겐 반가운 사람이 있을 거야. 오랜만에 회포 좀 풀게.”

찬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누가 왔는지 직감했다.

누구긴 누굴까?

비즈니스 파트너지.

* * *

그 뒤 제이나와 각자 휴식을 취하고자 헤어진 찬영은 원래 머물던 천막으로 돌아갔다.

“이게 누굽니까?”

찬영을 반긴 건 역시나 이규복이었다. 이규복은 찬영에게 다가오다가 멈칫했다.

“옷이…… 왜 이렇게 찢어졌어요?”

온통 찢어지고 헤진 옷을 보며 이규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찬영이 간략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눈 대화. 이규복은 소식 하나 없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며, 수다쟁이처럼 질문이 많았다.

반가워서 더 그런 걸 테다.

찬영 역시 미소를 지으며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놨다.

이규복이 ‘흐음’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 정말 찬영 씨는 제 상식선 이상의 일들을 하고 계시네요. 지구에 있는 어느 국가도, 회사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을요.”

“그런가요?”

“네, 저를 포함해 국가 공인을 받은 회사 소속의 각성자들은 말씀해 주신 정도 규모의 전투까진 아직 겪어 보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진행된 이야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뉴 빌드란 주제로 이어져 갔다.

카슬라, 뉴 빌드 그리고 던전의 마나 함유량이 갑자기 치솟았던 이야기까지.

“일이 점점 커지고 있네요.”

이규복이 덧붙였다.

당연히 찬영도 동의했다.

“뉴빌드는 종말을 막으려는 지구의 각성자들을 탐탁지 않게 여길 거예요.”

“정말 그렇겠네요.”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각성자들을 노린 피습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정말이었다.

찬영은 늘 그 점이 걱정됐다. 이규복 역시 그의 생각이 어떤 점에서 기인하였는지 알고 있었다.

“네, 회사들도 그 점에 대해서 유의하고 있어요. 뉴빌드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모든 회사가 공유하고 있거든요.”

“잘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들이라는 것도 아셔야 한다고 공유해 두세요.”

그 외 찬영은 브라이트라는 조직과 뉴빌드의 관계에 대해서도 들은 정도 선에서 설명해 줬다. 이들도 알고 있어야 한다. 어떤 위험을 직면했는지.

“하아…….”

몇 가지 정보를 들은 이규복이 깊게 한숨 쉬었다.

골치가 아픈 게 틀림없다.

“어쨌든 복원이 진행될수록 지구와 대륙의 화합에 관한 위험 요소는 점차 늘어나겠죠.”

“네, 아마도요.”

카슬라 건만 해도 그렇다.

알폰 지방이 복원되면서 영주나 제이나 같은 좋은 사람도 다시 살아났지만 뉴 빌드에 속한 카슬라 역시 살아났다. 각지에 숨겨져 있던 뉴 빌드가 세상 밖에 다시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감당해야 할 과정이다. 이규복도, 찬영도, 영주도 이 싸움의 끝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려면 복원은 계속 진행되어야 했다.

“저는 복원에 대비한 새 서류들을 잔뜩 준비해 둬야겠네요. 그나저나…….”

이어서 이규복이 찬영에게 물었다.

“그거 모르시죠?”

“뭐가요?”

“저희 측에서 찬영 씨를 롤 모델로 삼는 각성자 친구들이 많다는 걸.”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이규복을 바라보고만 있자 이규복이 음흉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덕에 V.O. 소속 각성자들에게는 거의 연예인이 되셨던데요?”

“연예인이요?”

“예.”

그러면서 시작된 이규복의 얘기.

“마나 보유량을 테스트하는 거늘은 이제 3차 버전까지 나왔어요.”

거늘이라면 한때 이규복에게 설명 들었던 각성자를 분류하는 시제품이었다. 그게 벌써 3차까지 업그레이드 됐다니…….

확실히 알폰 지방과의 교류가 지구에도 큰 기여가 된 모양이었다.

“그 덕에 마나에 재능 있는 친구들이 각성자가 되고 있죠. 국가 공인 자격증이 나오고 동시에 많은 혜택을 받기 시작하니까요.”

군 복무는 과거의 산물이 되어 버렸고 더 큰 위협을 막기 위한 각성자가 새로운 국가 수호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단다.

“그러면서 1차 각성자들로 분류되는 분들이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이 되고 있죠. 대부분은 펌의 홍보 모델이 되고 소속된 펌의 지원을 통해서 더 강한 각성자로 발돋움하는 중이고.”

가만히 듣고 있던 찬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슷한 제안은 이미 V.O. 대표이사와 만났던 자리에서 거절했던 찬영이다.

의아한 건 당연했다.

“저와는 별 상관없는 얘기 같은데요.”

“예, 여기까지는요.”

“그럼?”

“사실 공식 홍보 모델은 아니어도 내실을 키우는 데 여러 간접 경험을 전수해 줄 선생들이 필요하죠.”

“그게…… 저로군요.”

“예, 펌 측에서는 찬영 씨가 그간 액션 캠을 통해 쌓아 둔 기록들을 통해 수업을 진행하곤 하는데.”

이규복이 씩 웃었다.

“그 덕에 찬영 씨가 지구에 있는 V.O. 트레이닝 센터에서 예상치 못하게 좀 유명해졌어요. 전투 센스가 하도 탁월하셔서.”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막 밖이 꽤 소란스러워져갔다.

찬영이 이규복과 함께 소리에 이끌려 밖을 나서자 그의 귀환 소식을 들은 여러 각성자들이 찬영을 한 번 보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모여든 인원은 그뿐이 아니다. 인챈트 장비를 기다리고 있던 목책 전선의 인원들도 그사이 사이 뒤섞여서 찬영의 천막 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줄 서, 줄!”

“아, 내가 먼저 왔어요!”

“뭐야. 너도 인챈트 장비 받으러 온 거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 덕에 더 시끄러워진 건 두말 필요 없는 잔소리. 지켜보던 찬영이 다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상황 수습은 역시 늘 그렇듯 이규복의 몫이었다.

“잠시만요.”

빙긋 웃은 그가 찬영을 따라 들어가자, 찬영이 이규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저 사람들이 다?”

“예, 뭐…….”

찬영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옆을 보니 이규복이 웃음 참는 게 보였다.

“재밌으십니까?”

“네, 아주요.”

기어코 웃음이 터진 이규복이 찬영에게 장난을 걸었다.

“어떻게? 이참에. 사인회라도 한 번 열까요?”

“아뇨.”

단호히 대답한 찬영.

하지만 찬영은 얼마 되지 않아 모여든 각성자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난데없는 사인회를 열어야 했다.

* * *

그리고 그 날.

찬영은 늦은 저녁이 돼서야 혼자가 되었다. 그 즉시 시작한 건 밀어 둔 인벤토리 정리. 그러면서 힐끗, 위를 쳐다봤다.

2차 로그인 캘린더가 곧 30회로 바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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