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70.
‘홈? 그게 뭐지?’
곁에서 제이나가 인챈트 작업에 빠진 동안, 찬영은 새로 드러난 창에 주목했다.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는 분명 시스템이 건네 준 새로운 형태의 기예技藝.
인챈트의 조건 달성으로 인해 이제껏 감춰져 있던 게 나타난 거다.
빠르게 문구를 읽어가는 찬영.
-‘홈’은 장비의 가치를 증가시킵니다.
단, 장비의 가치 측정에 따라 홈 개수 제한이 있습니다.(1,000 = 1개 3,000 = 2개 6,000 = 3개 10,000 = 4개 등)
-홈에는 보석만 장착시킬 수 있습니다.
-보석은 아이템 분해 시 획득되는 ‘미완성 정수’를 10개 합성해야 10급 랜덤 보석 1개가 됩니다.
-9급 랜덤 보석부터 최상급 1급 랜덤 보석까지는 등급이 한 단계 낮은 보석들의 합성으로 제작이 가능해집니다.(9급 보석 1개가 10급 보석 30개, 8급 보석 1개가 9급 보석 60개, 7급 보석 1개가 6급 보석 120개 등)
-최초 인챈트 업적 보상으로 인해 9급 랜덤 보석을 1개 지급합니다.
입가가 잘게 떨렸다. 곧이어 빙긋 웃는 찬영.
이거 아무래도, 인챈트라는 새로운 조건 달성이 제대로 대어를 몰고 온 모양이다.
‘여기 쓰인 문구대로라면 각 장비의 홈은 보석을 통해 추가되는 또 하나의 인챈트가 틀림없어!’
누구도 할 수 없는 오로지 자신만이 가능한 ‘홈.’을 활용한 보석 인챈트였다.
무엇보다, 이게 가능하다면 마땅한 제작 도구가 없어 강화하지 못했던 자신의 장비들 또한…….
‘보석을 통해 더 높은 가치 측정을 가지게 된다는 말!’
실로 엄청난 전환점을 맞이한 셈이다. 특히 보석은 분해되는 아이템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 몬스터를 제거하고 난 뒤, 시작되는 자동 루팅을 통한 아이템 수집과 분해, 그에 이은 보석 제작까지……. 몬스터 사냥이 이제부터 큰 영향을 차지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너무나 바라던 바다. 몬스터의 죽음이 강함을 불러오는 체계가 갖춰진 것이다. 과연 보석엔 어떤 능력들이 담겨 있을까?
‘벌써 기대가 되는군.’
그동안 제이나가 일으킨 바람의 마나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 * *
“힘드네요.”
첫 번째 아티팩트 완성 이후.
그녀는 9가지 장비 중 7가지 장비를 아티팩트로 탈바꿈시켰다.
하지만 그 이상은 힘들었다. 마나는 남아도 정신력이 전부 소진된 것이다. 그만큼 아티팩트 완성은 분명 섬세하고 힘든 작업이었다.
“완성된 7가지 장비는 대부분 2, 3서클 마법으로 채워졌어요. 이게 최선이군요.”
그러면서 제이나는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3서클 이상의 마법을 덧붙이지 못하는 건 현재 놓인 장비가 그 이상의 마나량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라며.
“나머지 2가지 장비는 좀 쉬고 난 후에 하도록 하죠.”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흠뻑 젖은 그녀의 로브만 봐도 그랬다.
“쉬는 동안 마법에 관해 몇 가지 말씀드릴게요.”
“고단하실 텐데…….”
“괜찮아요. 가르치는 게 힘이 들진 않으니까요.”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않을 거란 장담은 못하겠군요.”
처음 배우는 거니, 굉장히 미숙할 거다.
그녀가 괜찮다며 입을 열었다.
“시작하죠.”
그 뒤 제이나의 마법 강의가 이어졌다. 먼저 그녀가 일러 준 건 마법에 관련된 가벼운 지식들부터였다.
그중 하나는 서클 구분인데, 그녀에 의하면 이는 마나량에 따라 구분된다고 한다. 주문을 사용할 때 끌어다 쓰는 마나량에 몸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를 가지고 서클을 구분 짓는다는 것이다.
마나량 1,000을 끌어다 쓰고 지치는 마법사와 5,000을 끌어다 쓰고 지치는 마법사의 차이가 바로 서클로 나눠진 셈이다. 그리고 그 외로 마법을 사용할 때 수반되는 몇 가지 지식들에 대해 배웠다.
그러고 나니 마치 마법과 훨씬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마법이 낯선 자신에게 일종의 배려 교육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던 것.
그로 인해 새삼 알았다. 그녀가 좋은 스승이라는 걸. 어쨌든 그 이후부터 수업은 본격적으로 급물살을 탔다.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그녀는 원소 강의부터 진행했다.
제이나가 말문을 열었다.
“이 수업은 보통 마법사 입문 교육을 마치고 1서클에 도전하는 학생들에게 가르칠 만한 수업이죠.”
두 개 심법을 전수 받은 희귀한 케이스라 그런지 시작부터 남달랐다.
찬영이 물었다.
“그래도 무방한가요?”
“내부에서 마나를 다룰 줄 알고 이미 두 개의 원소와 친숙하시죠.”
“예.”
“그럼, 그래도 됩니다.”
제이나의 대답에 찬영의 머릿속에 스치는 한 줄기 생각.
“아, 제가 익혀 놓은 마나 심법들이 마법 입문에 제법 도움이 된 거군요.”
“맞아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문제일 뿐이지, 근간은 같아요. 친숙함의 정도는 마나를 다뤄 보지 않은 사람과 비교가 불가능하죠. 그래서…….”
“시작점 진도가 빠른 거겠죠.”
“맞습니다.”
그녀가 대답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하실 것은 불의 원소를 다루는 법입니다. 그에 수반되는 주문은 제가 일러 드리죠.”
“네, 알겠습니다.”
그때부터 그녀가 몇 가지 주문 수식을 알려 줬다.
분명 어려울 거란 짐작 정도야 계속 했지만 첫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할 줄이야.
“복잡하네요. 역시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이니까요.”
단순한 대답.
하지만 굉장히 명확했고 어떤 말보다 피부에 와 닿았다.
하긴, 마나를 구현시킨다는 작업은 블루게이트가 열리기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녹아든 수식일까?
이런 수식을 직접 창조하는 게 아니고 외우고 습득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다고 생각해야 한다.
‘투덜거릴 여유가 어디 있겠어?’
스쳐가는 생각과 함께 찬영은 그녀가 일러 준 수식을 계속 이해하고 공부했다. 하지만 수식은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냥 원소를 외부에서 다루는 것만 해도 수식 수십 개를 외우고 이해해야 했다. 난감해 하는 찬영에게 그녀가 격려라도 하듯 말했다.
“5서클 마법 주문은 수식만 천 개가 훌쩍 넘어요.”
찬영은 말없이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아예…… 말을 말지.’
* * *
화르륵.
시작은 불길. 아주 작은 불길이었다.
드디어 구현된 거다.
‘해냈다.’
찬영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손 안에 담긴 은은한 불의 마나를 느꼈다.
제이나의 말대로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곧이어 불이 ‘툭’ 하고 꺼졌다.
‘이런…….’
마나 심법을 통해 내부 안에 마나를 다루는 것과 주문에 따라 마법을 구체화시키는 건 확실히 다르다.
생각해 보면 지금 하고 있는 게 고위 서클 마법사에겐 고작 원소 하나 다루는 일일 텐데…….
‘나는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구나.’
그럴 만도 한 게 원소 유지는 곧 제어의 문제라고 제이나가 그랬다. 수식을 외우고 이해하는 건 구현화에 수반되는 필수적인 작업일 뿐. 구현 유지, 즉 원소를 제어하는 건 반복 연습만이 답이라고 했다.
‘그래, 이것도 그렇단 말이지…….’
사실 이제껏 뭐든 그랬다. 익히며 배워온 모든 것들은 아직도 노력을 해야 숙련도가 상승하고 그래야만 고효율을 보인다. 마법 역시 그중 하나일 뿐.
‘제대로 익혀주지.’
그 생각이 끝날 때 즈음, 찬영이 주위를 둘러봤다. 이미 제이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마법 훈련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인챈트 장비까지 모두 완성시킨 뒤 자리를 뜬 것이다.
훈련에 방해될까 봐 자리를 피해 준 게 분명 그녀 역시 카일처럼 표정만 싸늘할 뿐, 알면 알수록 배려 많은 사람인 듯싶다.
그나저나…….
‘굉장히 피로하네.’
정신적 피로가 상당했다.
어째서 마법사들의 정신력이 유독 뛰어나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다. 모든 훈련이 정신력 피로를 견뎌야 하는 것일 테니, 피로를 견뎌내며 정신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그럼, 이럴 땐 역시 심법 훈련만한 게 없다.
신속히 침상 위에 앉은 찬영이 두 개의 심법을 발동했다. 마법 훈련을 통해서 피로가 쌓이면 심법 훈련을 통해 심법 숙련도와 내부 마나량 최대치를 늘리면서 동시에 누적된 피로를 풀어 준다.
선순환이다.
* * *
그 직후 심법 훈련에서 찬영이 눈을 뜬 이유는 천막 밖이 소란스러워서였다. 반쯤 감겨 있던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벅터벅 걸어가 천막 휘장을 걷고 나가자, 천막 앞에 일렬로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먼저라니까 그러네.”
“어허! 내가 먼저 줄 섰다니까?”
앞줄의 레인저들을 보며 찬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왜 여기에서 줄을 서고 계십니까?”
찬영이 묻자 한 사람이 싱글벙글 웃으며 외쳤다.
“갓피스께서 직접 장비를 제작해 주신다는 소문이 벌써 여기 쫙 퍼졌습니다!”
“언제 완성됩니까?”
“이미 끝나신 것 아닙니까?”
개인 천막이니 차마 안에 들어오진 못하고 온 순서대로 줄을 선 모양이다. 찬영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9종 밖에 안 됐는데.’
거기다 장비를 한층 업그레이드 해 줄 보석 장착 역시 아직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
찬영은 어쩔 수 없이 외쳤다.
“아직 장비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완성이 되는 대로 일괄적으로 보급하도록 하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무룩해지는 사람들에게 찬영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격언도 있으니까.
“아마 좋은 품질의 장비가 나올 거라 확신됩니다. 인챈트까지 덧입혀져 제작 될 테니.”
줄 서 있는 이들이 모두 경악했다.
“이, 인챈트라고?”
“들었어? 인챈트래.”
“우리도 아티팩트를 갖게 되는 건가?”
웅성거리는 그들의 얼굴엔 새 장비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했다. 어서 장비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기다리던 모두의 얼굴에 드러났다.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잠자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쉬워하긴 했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화색이 감돌았다. 찬영의 한마디에 큰 위안이 된 것이다. 찬영 역시 한마디 덧붙이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다시 천막으로 돌아서려 했다.
한데 그때, 등 뒤에서 벡이 다가왔다.
“하, 녀석들…… 좋아 날뛰는군.”
벡을 발견한 찬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 오셨습니까?”
벡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예.”
찬영과의 많은 갈등과 화해 이후, 찬영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공손해져 있었다.
“그나저나 인챈트가 가능하려면 좋은 품질의 장비여야 가능할 텐데. 대단하십니다.”
“자랑할 건 못 됩니다. 근데 여기까진 무슨 일로.”
“아, 그게 다름이 아니라…….”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한 벡이 찬영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소식 들었습니까?
“어떤?”
“지하수로 공사를 재개 할 거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찬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시작된 건가.’
지하수로 공사 재개는 찬영을 비롯한 소수의 인물만 알고 있는 비공식안건.
한데 그게 공식적으로 발표됐다는 건 곧 찬영과 영주, 그리고 제이나가 움직여야 될 차례라는 것이다.
“알고 있었습니까?”
찬영의 담담한 반응에 벡이 눈치챈 듯 물었다.
“예, 따로 언질을 받았습니다.”
“아, 그랬습니까?”
“그 사실을 알려주러 오신 겁니까?”
“아뇨, 그로 인해 선봉에 서시게 된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찾아온 건 그 때문입니다.”
찬영은 벡이 뭘 원하는 지 알 것 같았다.
“합류 때문입니까?”
고개를 끄덕인 벡의 눈엔 아직도 카슬라를 향한 그리움과 원망 혹은 슬픔이 가득했다.
“분명 뉴빌드란 그 개자식들도 이 소식을 듣고 우릴 방해하려 들 게 뻔하지 않습니까?”
놈들을 하나라도 더 죽이겠다는 얘기다.
찬영은 말없이 벡을 지켜보다 말했다.
“그 마음,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선봉 합류는 제 권한이 아닙니다.”
“그래도!”
벡의 말을 찬영이 단호히 잘랐다.
“공식 발언만 하셨지, 이 안건에 대한 작전 소집 및 수립은 영주께서 결정하실 겁니다. 전 그에 동의할 뿐.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그럼 제 발언에 힘이라도 실어주십시오.”
“그것도 거절합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벡 씨에게 부대장이란 직함이 괜히 주어졌다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건…….”
말끝을 흐리는 벡.
그를 쳐다보는 찬영의 눈빛은 단호했다.
“차라리 목책 전선을 지켜주세요.”
말이 선봉이지, 지하수로엔 첫 투입되는 건 위험한 탐사 정찰이 될 거다. 찬영과 고위 마법사인 제이나조차도 누군가를 지켜 줄 만큼 여유를 부릴 수 없을지 몰랐다.
벡도 그 정돈 충분히 알고 있다.
“제가 선봉에 함께 합류하는 것보다 퇴로를 지키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뜻입니까?”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렇다. 퇴로를 지켜주고 부대장으로서 다른 동료들의 사기를 드높여주는 편이 훨씬 낫다.
“납득하기 힘드십니까?”
“전혀. 오히려 솔직히 말해 줘서 고맙습니다. 대신.”
벡이 살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새끼들이 보이면…….”
찬영이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를 말입니까?”
벡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