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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67화 (67/248)

# 67

#67.

영주와의 대화가 끝난 뒤 찬영은 카일을 찾아갔다.

카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작업에 임하는 중이었다. 맞닿은 목재들을 밧줄로 꽁꽁 동여매고 있던 카일이 찬영을 발견하고는 잠시 작업을 멈췄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네, 덕분에요.”

“다행이군요.”

카일이 재차 입을 뗐다.

“영주님께 그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들었습니다. 다만…… 그 돌은 대체 어디로 간 겁니까?”

카일 역시 제이나와 같은 게 궁금한 눈치였다.

하긴, 당연했다. 찬영의 손에서 돌의 행방이 사라진 게 확실하니까.

“그건…….”

하지만 찬영은 말을 아꼈다. 여기서 떠들 일이 아니라 판단한 탓이었다. 카일, 영주, 그리고 제이나 등 그들을 한꺼번에 두고 논의해야 할 일이다.

특히 이 일은 더 이상 카슬란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뉴빌드란 조직과 관련된 일이 되어 버렸다.

무게감 있는 사안인 것이다.

‘나만의 일이 아니야.’

그러니 말도, 행동도 무겁고 신중히 움직여야 한다.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대답을 기다리던 카일이 찬영의 굳은 표정을 한참 바라보더니.

곧이어 동의했다.

그도 찬영의 의중을 눈치챈 거다.

“알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럴 이유가 있으리라 봅니다.”

“예, 그건 그렇고…….”

이제부턴 방문 목적을 말할 차례였다.

“부탁드릴 게 있어 왔습니다.”

“어떤 부탁입니까?”

카일은 선뜻 응했다.

“뭐든 말씀하십시오.”

정말, 웬만한 건 다 들어 줄 기세, 그 덕에 얘기를 더 편히 꺼낼 수 있었다.

“병력 구성원들의 장비들을…….”

찬영이 카일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제게 맡겨주시겠습니까?”

의외의 제안에 무표정한 카일 또한 놀란 기색을 조금 드러냈다.

“생각도 못한 제안이군요.”

“그런가요?”

“예, 당연합니다. 한데…….”

카일이 찬영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본래 대장장이셨습니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건넸다.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장비를?”

“음…….”

설명하기 복잡했지만 카일에게 굳이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럴 땐 갓피스란 타이틀이 적당하고 완벽한 설명이 된다.

“마땅한 재료들이 있으면 여러 가지 장비들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진 갓피스 고유 능력입니다.”

“그렇군요.”

카일이 금세 수긍했다.

이미 찬영의 능력을 충분히 겪을 만큼 겪어 봤다. 재료들을 통한 장비 제작 정도야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

카일이 흔쾌히 응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들고 있던 장비들은 낡아 버린 지 오래였다. 몬스터와의 싸움을 통해 대부분 이가 나갔다. 영주의 새 장비 보급을 기대했었으나, 영주가 이야기했던 본격적인 물자들이 당도하기 전까진 제대로 된 장비 보급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던 차였으니 찬영이 병력 무장에 도움을 준다면 오히려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이건 제가 더 감사드릴 일이군요.”

“괜찮습니다. 보상은 충분합니다.”

그때 카일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까지 노력해주시는데 아무 도움도 못 드리는 게 송구스럽군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괜찮습니다. 재료부터 제작까지 전부 제가 맡겠습니다.”

모든 걸 떠안고 장비 제작에 임하겠다는 찬영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답. 물론 찬영은 히든 퀘스트에 대해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지만…….

‘성자가 따로 없군.’

이를 모르는 카일은 그에게 또 한 번 감탄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일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전투시엔 장비가 곧 생명줄이니까요.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가장 중요한 카일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작업 시작이다.

* * *

그때부터 찬영은 혼자 천막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먼저 시작한 건 아이템들의 분류였다. 남아 있는 43종의 아이템 중, 개인적으로 수집하고 보유해야 할 아이템들을 제외했다.

아슬란, 공진, 스툼 , 헬레 , 인라의 퍼즐 조각 (4), 행운의 동전, 아톨의 인형, D급…… 등등. 보유나 수집해야 할 물건들은 도합 11개.

‘그 외엔…….

다음 분류 대상들이 남았다.

도른의 검, 오드론나무의 방패, 벨리알의 벨트, 마커스의 블레이드, 오드론나무 줄기로 만든 집중력 증가의 활 등은 모두 최근 획득하게 된 완성형 아이템들이다.

골드나 실버 박스를 통해 획득하게 된 좋은 가치의 물건들.

도른의 검만 봐도 2,000대 이상의 물건이었으니, 이 역시…….

‘제외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현재 제작 도구 중 가장 높은 효율을 자랑하는 건 그래 봐야 700 가치 이하의 아이템만 다룰 수 있는 오렌의 절구뿐.

1,000 이상이 넘은 고 가치의 장비들은 털 끝 하나 건드릴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럼 남게 되는 건 총 27종의 아이템. 대부분 잡템이거나 별 것 아닌 재료들이라서 그런지, 가치 측정 결과는 전부 700 이하였다.

이것들은 오렌의 절구를 통해 합성 혹은 강화가 가능하다. 곧 인벤토리를 통해 붉은 빛이 도는 절구가 나타났다.

사용 방법은 빌의 제작 도구와 다르다.

빌이 숫돌 위에 장비들을 놓고 망치를 두드린다면, 절구는 그냥 그 위에 장비들을 하나씩 집어넣으면 된다. 그러면 장비들이 절구 안으로 스며들며 사라진다.

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만 다를 뿐. 강화나 합성 등의 룰은 빌의 제작 도구와 동일하다.

그건 그렇고.

‘이걸 어떻게 돌려야 가장 효율적이려나…….’

한동안 아이템을 들여다보던 찬영의 두 눈에 고민이 섞였다.

“으음…….”

하지만 찬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렌의 절구에 넣은 아이템을 손에 쥐었다. 고민이 끝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오렌의 절구 역시 빌의 제작 도구와 합성 제한이 동일해. 그럼…….’

우선 5개 장비를 합성에 돌린다.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다만 걸리는 게 하나 있긴 하다.

강화의 경우.

가치 총합 합산이 강화 확률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합성 역시 그럴 거란 예상이 든 탓이다.

‘괜히 다섯 개가 최대치일 리 없어.’

시스템엔 늘 이유란 게 있다.

찬영은 그것에 한 번 기대보기로 했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합성 재료 개수를 채우는 건 재료들보다 높은 가치의 아이템이 나올 확률을 높여주는 게 틀림없을 거야. 아님 강화처럼 재료들의 가치 합산이 영향을 끼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에는 한때 찬영의 목숨을 지켜 줬던 더블 피니시의 합성 결과가 지금 선택의 이유가 됐다.

‘합성으로 제작했던 더블 피니시 또한 그랬어.’

당시 오오쿠라의 칼은 395.

나머지 재료는 120과 240이었다.

한데, 더블 피니시는 399.

세 개의 평균도 아니고 최고 높은 오오쿠라의 칼보다 4나 높은 결과가 나왔다.

무슨 계산으로 나온 건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여러 추측은 해 볼 수 있으나 확신하긴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생각을 대입해 본다면?

‘가능한 얘기지.’

그리 되면 재료보다 높은 가치의 장비가 나온다는 게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물론 빌의 1회 소환권을 통해 얻은 장비들이야, 빌의 마음이란 조항이 붙었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찬영은 그때부터 5개씩 아이템을 묶어 합성을 돌리되, 가치 측정이 가장 높은 5개 아이템을 따로 분류하고 그 다음 높은 5개의 아이템을 첫 번에 높게 측정된 아이템 순서의 역순으로 나열시켰다.

그렇게 되면 700이하의 아이템 중, 최고 높은 가치를 가진 아이템이 가치 측정 열 번째 순위의 아이템과 함께 합성된다.

두 번째 높은 아이템은 아홉 번째 순위의 아이템.

세 번째 높은 아이템은 여덟 번째 순위의 아이템에 붙는 거다.

가설이 맞을 경우, 합성으로 좋은 장비가 나올 확률을 고르게 분배하기 위함이었다.

‘시작해 볼까?’

준비는 끝났다.

찬영이 아이템을 하나 둘씩 절구에 빠트렸다.

곧 절구 옆, 퍼센트 막대 바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 * *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털어 모든 장비를 제작한 직후, 찬영의 부탁으로 영주가 머무는 천막 안에 네 사람이 모였다.

카일, 찬영, 영주, 제이나. 그리고 세 사람으로 줄어 버린 헤일로 부대장들. 이들 사이에서 여러 의견과 얘기들이 오갔다.

내용은 주로 카슬라와 뉴빌드란 조직의 관계에 대해서였지만, 대화는 길게 가지 못했다. 이를 조사한 제이나조차 그 꼬리가 카슬라가 끝이었다는 걸 알아낸 게 최선이었으니까.

그나마 조직의 이름이 ‘뉴빌드’이며 그들이 돌을 지니고 있다는 정보를 얻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돌 얘기가 무르익을 때쯤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좌중에게 손을 들어 올렸다.

“흡수됐습니다.”

순간 제이나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그 후 다른 변화가 있나요?”

“아뇨, 전혀요.”

“그렇군요.”

“하지만 알아낸 게 하나 있습니다.”

이번엔 카일이 물었다.

“그게 뭡니까?”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영주가 한마디 거들었다.

“시간 끌지 말고 말하게. 안달 나는군.”

찬영 역시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은 없었다.

“알폰 영주의 복원 당시에 저는 오디라는 몬스터와 싸웠습니다.”

영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는 알고 있다. 제이나 역시, 아니 영주와 관련 있는 알폰 지방의 수뇌부들이라면 모를 리 없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오디와 같이 복원의 비밀을 가진 몬스터를 아무도 마주하지 못했다는 거다.

“하지만 그때 이후.”

찬영이 오디와의 싸움을 떠올리면서 재차 말했다.

“저 역시 오디와 같은 몬스터를 어디서 찾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몬스터 토벌이…….”

찬영이 영주와 눈빛을 교환했다.

“최선이었습니다.”

“크흠, 그랬지.”

이 순간 베아트리체가 건네줬던 조언이 떠올랐다.

-수복하세요. 차원 다리를.

“……그러나 돌을 흡수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찬영이 덧붙였다.

“대륙 복원의 열쇠는 실상 차원 다리란 걸 여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카슬라가 아니었다면 베아트리체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카슬라가 남긴 돌을 통해, 차원 다리란 것에 대해 명확히 알게 됐다. 물론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

올드 원, 몬스터가 왜 나타난 건지 등등.

하지만 당장은 지금 알아낸 것에 집중해야 한다.

영주가 복잡한 눈빛으로 물었다.

“확실한가?”

“예, 어느 때보다 확신합니다.”

“그럼 그 돌이 차원다리로 안내해 주는 매개체인 셈이로군.”

“맞습니다. 하지만…….”

찬영이 제이나를 그윽하게 쳐다봤다.

이젠 G.N.을 통해 벌어진 일을 얘기할 차례다. 찬영이 간략히 그때의 일을 설명했다. G.N.의 선 진입 사건은 영주조차 모르는 일이었다.

좌중의 시선에 놀람이 스쳤다.

특히 제이나가…….

“놀라운 일이군요.”

그녀는 자신의 지팡이를 힐끗 쳐다봤다. 지팡이의 주인이 괜히 된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치는 그녀였다.

동시에 찬영이 말했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제이나가 담담히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찬영도 동의했다.

“예.”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곳에 진입하는 건 각자의 결정이다.

찬영이 힘주어 말했다.

“원치 않는다면 들어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군요.”

표정 하나 안변하고 받아치는 그녀를 본 찬영.

새삼 느낀다, 여장부는 여장부라고.

“괜한 말씀을 드린 것 같네요.”

제이나의 입가에 찬영만 볼 수 있는 미소가 잠깐 서렸다 사라졌다.

“젠장! 그럼, 나는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 거로구먼.”

웬일로 별말 없이 가만히 듣고 있던 성질 급한 벡.

그가 기어코 투덜거리자, 옆에 있던 고베이가 웃었다.

“나도 있잖소.”

“뭐, 그렇게 말씀하시니……. 쩝.”

벡이 한 풀 꺾인 듯 중얼거리는 동안, 찬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차원의 돌 이야기는 이쯤하면 된 것 같으니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드릴까 합니다.”

영주가 예상 못했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또 무슨 얘기?”

다들 영주와 같은 마음인지 조금 의아한 표정들.

찬영이 그들을 향해 예상 못한 제안을 건넸다.

“저와 낚시 한 번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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