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63.
카일의 눈에 이채를 띠었다.
“지하수로라면……?”
영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드슨 강과 골짜기의 계곡을 지하수로를 통해 잇고자 했던 그 계획 말이오.”
영주의 말처럼 한때 그런 계획들이 진행되긴 했었다. 이는 가뭄이 올 것을 대비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하나 뜻과 설계는 완벽했으나 계획은 실패였다. 공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이어진 몬스터들의 습격 탓이었다.
한데 영주는 그 계획의 재건을 다시 한 번 꺼내든 것이다.
“지하수로 계획의 재건. 이는 곧 우리가 완성하지 못한 브롱스 댐의 건설을 의미할 거요.”
카일이 나직이 읊조렸다.
“브롱스 댐…….”
영주가 그토록 원하던 댐의 이름이며 이 댐의 완성은 지하수로와 연결된 거대한 댐이 알폰 지방에 설립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보른지구, 베이콥시, 헤일로 골짜기를 잇는 삼중 전환수로가 갖춰질 것이며, 가뭄이 온다 해도 버텨 낼 수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여전히 몬스터가…….”
말끝을 흐리는 카엘에게 영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영주도 괜히 이 얘길 꺼낸 게 아니었다.
때가 되었다 생각한 차였다.
“알고 있소. 카일. 하지만 그간의 토벌은 바로 이 계획을 이루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오.”
이 말을 하면서 영주는 가져온 지도를 탁자 위에 쫙 펼쳤다. 알폰 지방의 토벌된 장소와 그렇지 않은 장소들이 푸른 점과 붉은 점으로 나뉘어 새겨져 있었다.
푸른 점은 토벌된 곳, 붉은 점은 토벌되지 않은 곳이었다.
이를 보니 영주성이 있는 베이콥시와 보른지구 주변 즉, 알폰 지방의 북쪽과 서쪽 대부분은 토벌이 완료되어 있었다.
“남동쪽으로 점차 진격하고 계시는군요.”
카일이 영주의 속내를 읽은 뒤 눈을 빛냈다.
영주가 씩 웃었다.
“맞소.”
이제껏 영주가 토벌을 지시한 던전들은 지금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셈이었다.
“그런 점에서 서쪽 토벌의 마지막 단추는 여기…….”
영주가 지도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위치한 장소는 그들이 있는 헤일로의 골짜기였다.
“헤일로 골짜기가 될 거요. 그 후엔 이제껏 토벌한 구획 전부를 바탕으로 사람이 다닐 길이 닦이고 수로가 다시 건설되겠지.”
“서쪽 일대가 동쪽을 토벌하기 위한 전초기지가 될 것 같군요. 맞습니까?”
“내 생각대로만 된다면 충분할 거요.”
“하나 아직 골짜기는 제대로 토벌되지 않았으며 지하수로엔…….”
카일은 차마 입을 떼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발길이 끊긴 지하수로에 어떤 몬스터가 득실거릴지 제대로 감도 오질 않았다.
그야말로 낯선 던전을 탐사해야 하는 수준인 것이다.
시간도, 인력도 정말 많이 드는 계획이 되리라.
그래서일까? 카일은 영주의 말에 완벽히 동의하긴 힘들었다.
“차라리 지상 토벌을 마친 후에 지하수로 재건을 시작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것 역시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라오. 하나 그간 많은 토벌을 통해 나는 병력을 많이 잃었소. 설사 이를 신경 쓰지 않고 진군한다 해도…….”
“이를 유지하고 지킬 상주 병력의 부족이 오겠군요.”
“맞소, 각성자 편대를 대체하고 있긴 하나, 그들 역시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요. 그들에게 많은 걸 부탁할수록 그 영향으로 인해 그들 역시 내게 많은 요구를 해올 거요.”
“이해합니다. 안정을 꾀하겠다는 의중이시군요.”
“맞소, 무엇보다 이 계획을 꾀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영주가 천막 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에게 이 일의 선봉을 부탁할 갓피스가 둘이나 있기 때문이라오.”
마침 제이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제이나가 갓피스로 각성했다는 말은 처음 듣는 일이었기에 무표정하던 카일조차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 * *
띵.
‘끝났다.’
그사이 찬영은 플래티넘 9급 박스의 개봉을 마치고 있었다.
두 번째 만에 획득하게 된 플래티넘 9급 박스.
염왕권도 내어 준 마당에 기대가 되는 건 당연했다.
곧 눈앞에 창이 떴다.
-타우린의 영혼 박스 1개가 획득되었습니다. 영혼 20개가 1개 박스입니다.(회수해야 하는 영혼 : 23/10)
-타우린의 영혼이 모두 모였습니다. 영혼이 회수되어 합성이 가능해졌습니다. 합성하시겠습니까? (예/아니요)
타우린……!
언젠가 나올 거라 생각하고 모아 둔 것 중의 하나.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건가?’
딱히 추가 설명이 없는 덕택에 타우린이 어떤 종류의 아이템인지 감조차 오질 않는다.
하나 분명한 건 합성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조각으로 나둬 봐야 계속 쓸모도 없을 테니까.
‘합성한다.’
찬영의 동의와 함께 시작된 합성.
그 순간, 찬영의 가슴 앞에 새하얀 구체 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맹렬히 휘돌기 시작하는 구체. 그럴수록 빛도 강렬해졌다. 제대로 눈 뜨기 힘든 빛이 분명할 텐데도 찬영은 눈도 감지 않고 똑바로 구체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나도 눈부시지 않아.’
오히려 눈으로 내리쬐는 빛은 따뜻하기만 했다.
-타우린이 주인이 인식되기를 기다립니다. 인식 직후 합성 모듈이 진행됩니다.
‘내 손을 기다린다는 건가?’
문구로 보아 그런 게 확실했다. 찬영은 별 고민 없이 곧장 손을 뻗었다.
스륵.
마침내 구체 속을 파고든 찬영의 손. 동시에 빛 안에 무언가가 볼록볼록 좌우, 사방으로 튀어나올 듯 들썩거렸다. 이어서 찬영의 손을 벗어나 땅에 내려앉기 시작한 빛은 하나의 형체를 일궈내며 강한 빛을 일으켰다.
그리고…….
-타우린이 합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소환수가 등록되었습니다.
-소환수 최초 합성 업적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골드 8급 박스를 획득하였습니다.
-인벤토리가 가득 차있습니다. 인벤토리를 비워주세요. 인벤토리에 여분 공간이 생긴 후에 박스 보상이 획득 가능합니다.
-소환수 도감이 개방되었습니다.
-소환수 도감 최초 개방 업적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실버 1급 박스를 획득하였습니다.
-인벤토리가 가득 차있습니다. 인벤토리를 비워주세요. 인벤토리에 여분 공간이 생긴 후에 박스 보상이 획득 가능합니다.
연달아 나타난 창들.
하지만 정작 그의 시선은 창이 아니라 빛이 사라진 곳에 자리한 검은 빛의 송아지를 향해 있었다.
‘송아지?’
생전 도시에만 산 덕택에 소를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타우린이 소를 의미하는 것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러모로 놀랍고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찬영이 조금 당혹스러운 눈길로 소를 내려다보자.
-음모오…….
찬영의 무릎 정도 오는 작은 크기의 어린 흑우黑牛는 잠깐 비틀거리더니 곧이어 옆으로 툭 쓰러졌다.
“어어……?”
쓰러지는 송아지를 지켜보던 찬영도 깜짝 놀란 건 마찬가지. 얼른 두 손을 뻗어 녀석의 작은 몸을 받쳐 준 찬영은 녀석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그러자 타우린도 찬영의 손을 느낀 걸까?
눈을 살며시 뜨더니 찬영을 보았다.
-음모오.
소릴 내며 품속으로 파고들어왔다.
그리고 찬영의 얼굴과 숨결을 확인하듯 혀로 얼굴을 핥는 녀석.
찬영은 그런 녀석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병아리 키우는 해골도 모자라 이제는 검은색 송아지까지.
보상도 이쯤이면 다양한 걸 넘어선 수준 같다.
그나저나…….
‘녀석이 무슨 소이기에 플래티넘 박스에서 나타난 거지?’
염왕권까지 내준 플래티넘 박스에서 일반적인 소를 내줬을 리 없었다.
그 대답이 되듯, 소를 쓰다듬던 찬영의 눈앞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타우린-돌의 정령.
-가치 : 1,200(성장형)
-설명 : 타우린은 잊힌 정령의 화신입니다. 성장시키세요. 타우린이 성장할수록 타우린의 주인 역시 강해집니다.
행복지수 : -10
-배부름 상태가 유지될수록 행복지수는 상승합니다. 행복지수가 높을수록 성장 발육이 좋아집니다.
‘아, 그럼 녀석이…….’
성장형 소환수였던 것이다. 어떻게 키우냐에 따라 점차 그 능력이 개방되어 갈 테니, 조금 시간이 걸려도 결국 플래티넘 박스에서 나온 위용을 갖춰갈 거다.
찬영은 그제야 타우린이 플래티넘 박스에서 나온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단, 걸리는 게 있다면…….
‘난 소를 키워 본 적이 없는데?’
찬영은 당장 눈앞에 띄워진 창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타우린이 배고파합니다.
-타우린이 배고파합니다.
-타우린이 배고파합니다.
“이거야 원…….”
잠깐 타우린에게서 손을 떼고 물러섰다.
그러자 졸졸 쫓아와 다리에 머리를 비비는 녀석.
무척 귀엽긴 하지만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음모오…….
밥 달라는 거니까.
찬영은 혹시 타우린이 아이템을 먹이로 삼진 않을까 싶어 가득 차 있다는 인벤토리도 비울겸.
여러 개의 파밍 아이템을 꺼내 바닥에 내려놔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타우린도 소는 소인가보다. 녀석은 몬스터로부터 나온 재료, 혹은 파밍된 아이템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타우린이 정말 배고파합니다.
찬영은 무척 난감했다.
아이템들을 먹이로 삼지 않는 걸로 봐서 녀석의 먹이는 여타 소와 다르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럼 평범한 소와 똑같이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당장 녀석이 먹을 만한 게 내겐 없는데.’
짚단이라도 있었다면 녀석에게 내줬을 것이다. 소가 초식 동물이라는 건 누구나 아니까.
다만 문제는 그 흔한 지푸라기가 당장…….
‘내게 없다는 거지.’
찬영은 고민에 빠졌다.
‘녀석이 마음껏 풀을 뜯어먹을 만한 장소가 어디 있을까?’
그 생각을 하던 찰나, 찬영의 머릿속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미지의 땅은 어떨까?’
미지의 땅이야말로 타우린을 키우기엔 최적의 조건이다.
심지어 이를 잘 돌봐 줄 도우미까지 보유하질 않았나?
‘도타.’
그래, 병아리까지 키우는 그라면 소쯤이야 쉽게 키울 수 있을 거다.
물론 걸리는 게 하나 있다면 미지의 땅은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 ‘타우린이 함께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아직 모를 일이지.’
그래, 우선 직접 해 보고 판단할 일이다.
‘간다!’
곧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나무문이 ‘지직’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 * *
휘잉.
이윽고 미지의 땅으로 걸어 나온 찬영은 곧장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역시……!’
성공한 것이다.
타우린을 인벤토리에 넣어 미지의 땅으로 함께 오는 방법이 곧장 인벤토리에서 타우린을 꺼낸 찬영.
-음모오…….
타우린이 다시 나타나며 마치 엄마 소를 찾듯 찬영의 다리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수고했어.”
딱히 타우린이 한 건 없었지만 칭찬해 주고 싶었다.
이로 인해 타우린의 성장이 별 방해 없이 진행될 거란 확신이 든 탓이다.
그동안 도타가 뒤로 다가왔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딱, 딱.”
늘 그렇듯 평온한 목소리.
오랜만이라 그런지 꽤나 반갑다.
찬영이 타우린을 쓰다듬다 말고 일어나서 도타를 바라봤다.
“오랜만이에요. 도타.”
“예, 오랜만입니다, 주인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안부를 묻는 도타.
“네, 도타는요?”
“저는 매일 매일이 똑같습니다. 농장을 성장시키는 게 제가 태어난 목적입니다. 딱.”
“그래도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딱딱.”
이어서 도타가 타우린을 바라보았다.
“타우린님. 안녕하십니까? 딱.”
곧이어 대답하듯 말하는 타우린.
-음모오…….
찬영이 둘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타우린을 압니까?”
“예, 딱. 저는 정령님들과 딱. 대화가 가능합니다.”
“대화? 어떻게?”
“글쎄요. 딱. 그건 저도 모릅니다. 딱딱. 단지 그저 인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무척 배고프다고 하시는군요. 딱.”
“음모오오!”
타우린의 소리가 더욱 커졌다. 덩달아 타우린이 배고프단 창들이 다시 수십 개씩 올라왔다.
‘그래, 마침 잘 됐다.’
이유야 어쨌건 도타가 타우린과 밀접히 관련이 있다는 건 그가 타우린의 배고픔을 해결할 방법을 알지도 모른단 얘기.
도타에게 재빨리 물어봤다.
“도타.”
“예, 주인님.”
“그럼 타우린은 뭘 먹여야 됩니까?”
“아, 그건…….”
찬영이 도타의 대답을 잠자코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