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61화 (61/248)

# 61

#61.

카슬라는 한참 서 있기만 했다.

일련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벡과 나눴던 대화부터 돌을 캐내다 들킨 지금 순간까지…….

그리고 명확히 깨달았다.

모든 게 지금의 순간을 위한 모두의 연극이었단 것을, 카슬라는 스스로 속이고 속는 상황을 연출하며 덫에 빠진 것이다.

‘끄으윽…….’

그녀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분노를 참을 수 없는 탓이었다. 꼭두각시처럼 놀아난 스스로에 대한 분노.

“네깟 것들이 감히……!”

이를 바득 가는 그녀의 눈엔 한 맺힌 독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괜한 짓이었다. 이곳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반항은 무의미했다. 한순간에 그녀는 평생 쌓아온 신뢰, 동료, 가족, 명예를 모두 잃은 것이다.

그제야 모든 걸 포기한 듯 한결 차분해진 카슬라.

그녀가 넌지시 물었다.

“유혹의 돌을 가져가고 싶나?”

찬영이 마주 서서 대답했다.

“못할 것 없지.”

저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분명 중요한 물건인 게 분명 확실하다. 굳이 땅을 팔 만큼 가치 있는 것일 테니 택한 일이겠지.

그러니…….

‘저 돌을 가져야겠어.’

돌에 대해 알 수 있다면 그녀가 어째서 배신을 하게 됐는지를 굳이 그녀에게 묻지 않아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나 찬영이 돌을 원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알았으면 내려놔.”

씨익.

그 대답에 싸늘히 웃기 시작한 그녀.

“너는 이겼다고 자신하겠지. 기뻐할 거다.”

찬영이 나직이 말했다.

“본인을 과대평가하는군.”

카슬라가 대답을 무시한 채 말했다.

“나는, 우리는 또 다시 찾아올 종말을 위해 싸울 것이다.”

그녀가 마법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생성되는 윈드 스피어.

이를 바라보던 찬영도 오른손을 뻗어 스툼을 착용했다.

저항을 제압하려면…….

‘그래비티 필드가 제격.’

그새 울려 퍼지는 그녀의 낭랑한 음성.

“맘껏 웃어둬라. 갓 피스, 머지않아 너는…….”

그녀가 주문을 마친 윈드 스피어를 찬영에게 겨눴다.

찬영 역시 맞대응하려 스툼을 겨눴다.

그래비티 필드를 발동하려던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였는지 깨닫게 될 거다.”

그리고…….

“커헉……!”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카슬라가 완성한 윈드 스피어를 자기 손으로 쥐고 스스로의 심장을 찔러 버린 것이다.

“미친……!”

어딘가에 미쳐 있는 듯 보이는 광신도 기질 상, 그녀가 자살할지도 모른단 예감 정도야 얼핏 예상했다. 하나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만 할 뿐. 어떻게 할 것이라고 결정해서 미리 막을 순 없다.

방금만 해도 그녀가 마지막 발악을 할 줄 알았는데…….

하지만 말이 쉽지, 스스로 자기 목에 칼을 쑤셔 넣는다는 건, 좀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두려울 테고, 살아온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테며, 어떤 꿈을 꿨든, 작은 미래가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 걱정이 발목을 붙잡는 거다.

하지만 방금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 정도의 각오일 줄이야…….’

이 여자.

자기 손으로 심장을 찌를 만큼 미쳐 있었나 보다.

‘그러니 모든 걸 내던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찬영은 짚단처럼 쓰러져가는 그녀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솔직히?

쓰러진 그녀의 시신 곁에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죽는 건 몇 번을 봐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 중의 하나였다.

찬영이 조용히 눈길을 돌린 동안, 고베이가 그녀를 향해 세계수의 가호를 빌어 줬다.

하지만 찬영은 그 옆에서 따로 명복을 빌지 않았다.

이유?

‘왜 그래야 하나.’

그녀는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감시 역할을 접었고, 자길 따르던 동료들을 배신하고 죽였으며, 이방인 자신에게 보일 수 있는 밑바닥을 다 보였다.

명복은 사치다.

그 사이 그녀의 품에서 유혹의 돌을 집어든 고베이.

“갓피스여.”

고베이가 찬영을 돌아봤다.

“예.”

“그녀가 이야기 한 이 유혹의 돌이란 게……. 대체 무엇일 것 같소?”

“글쎄요, 확실하진 않지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떤……? 고견을 듣고 싶구려.”

찬영이 조심스럽게.

“이제껏.”

이 일을 겪으며 생각한 바를 얘기했다.

“우린 카슬라의 선택이 몬스터 떼를 예견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찬영이 목책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만 우린 그동안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 방법을 몰랐죠.”

맞장구치는 고베이.

“그렇지.”

찬영이 그 틈에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만약 규합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라면?”

찬영이 돌을 원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고베이가 중얼거렸다.

“단순히 몬스터 규합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말이오……?”

찬영이 돌을 쳐다봤다.

“저 돌에 뭔가 있다면요. 물론 정황상의 가정일 뿐입니다.”

“나는 그게 맞다고 보오.”

“이유가 있으십니까?”

“허허, 오래 산 엘프의 직감 같은 거랄까?”

손바닥 안에 돌을 넣고 좌우로 굴려보는 고베이.

그의 눈엔 의문이 가득했다. 하지만 찬영은 완벽히 그의 의문을 해소해 줄 수 없었다.

하나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의문이 단숨에 해결 될 줄은.

“제가 한 번…….”

찬영이 손을 내밀었다.

돌 한 번 쥐어보는 데 딱히, 큰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제껏 시스템은 몬스터를 통해 많은 성장을 가져왔다.

‘어쩌면…….

몬스터와 관련 있는 이 돌조차 그런 건 아닐까?

시스템이 뭔가…… 답을 줄 것 같은 그런 직감이 든 찬영.

“아, 물론.”

마침 고베이가 돌을 건넸다.

그리고 찬영의 손끝이 돌과 맞닿은 그 순간.

파앗!

돌과 찬영 사이로 강한 전류가 흘렀다.

전류도, 마나도 아니다.

미증유의 또 다른 힘.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동시에 찬영 앞에 뜨는 창.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차원의 돌을 획득하였습니다.

-두 번째 차원 다리까지 개방도 : 32%

-차원의 돌을 수집하세요.

-차원의 돌을 수집하여 개방 100% 조건 달성 시, 두 번째 차원 다리 이동 가능.

-이동 직후 두 번째 차원 다리를 수복하세요. 차원 다리 수복 시 보상으로 두 번째 대륙 복원이 시작됩니다.

동시에 두개골이 부서질 듯 통증이 밀려왔다.

“크흑…….”

순식간에 땅과 하늘이 뒤집혔다.

이런 경험은 오디 때 이후로 오랜만인데…….

정정한다.

사람 죽는 것 말고도 기절하는 것 역시 적응 안 되는 리스트에 포함이다.

털썩.

찬영이 고베이 앞에 힘없이 허물어졌다.

“정신차려보게! 어서!”

귀로 웅웅 들려오는 고베이의 목소리조차 점차 멀어져간다.

‘뭐가…….벌어지고 있는…….

그 생각을 끝으로 모든 게 암전.

사위가 고요해졌다.

* * *

……아.

천장이 빙빙 돈다.

힘겹게 눈을 뜬 찬영은 속이 울렁거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쓰러지기 직전의 생각들이 뒤죽박죽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흐음…….”

슬슬 눈앞에 울렁이던 천장이 다시 자리를 잡고 흐릿하던 시야가 명확해졌다.

“일어났군요.”

그 순간 옆에서 들려오는 음성.

힐끗.

시선을 돌리자 익숙한 낯빛이 침대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아 있었다.

“제이나…… 경?”

예상 못한 손님에 찬영의 눈에 이채를 띠었다.

기절하기 전까지의 기억은 모두 선명하다.

그럼 쓰러진 후 그녀가 왔단 얘기.

“어떻게…… 이곳까지?”

“저는 다른 이유 때문에 왔지만 영주님은 대규모 토벌을 지원 나오셨어요.”

“영주님도 오셨습니까?”

“네.”

제이나 평소 그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요?”

영주까지 왔단 건 이번 대규모 몬스터 출몰이 결코 경시할 만한 일이 아니란 얘기였다. 제이나의 조금 심각한 얼굴도 이해가 된다.

그 덕에 문득 느끼는 거지만…….

보통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건 이쪽인데, 여기 알폰 지방에선 제이나나 카일이나 전부였다.

‘나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으니 원.’

새삼 컨셉을 바꿔야 하나 싶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요?”

“아, 별거 아닙니다.”

‘괜한 얘기로 그녀의 무표정에 긁어 부스럼 만들일 있나.’

찬영은 방금 전 생각을 접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영주님과 같이 오셨으면 오신 거지, 다른 일로 이곳에 왔다는 건 무슨……?”

“유혹의 돌을 쫓아 왔죠.”

찬영의 눈에 이채를 띠었다.

‘유혹의 돌이라면. 날 기절시킨 그…….

손끝의 그 저릿한 감각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알려면 눈앞에 둥둥 떠 있는 창들을 살펴봐야할 터.

제이나가 가고 난 후 좀 더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그녀가 하는 말을 좀 듣고 난 후에, 찬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유혹의 돌에 대해 진즉 아셨던 겁니까?”

“네, 영주님의 하명으로 은밀히 조사 중에 있었어요.”

“은밀히?”

동시에 스쳐가는 기억의 귀퉁이.

“아, 혹시 그럼 영주님 접견 당시 만났던 날…….”

“맞아요. 임무를 하달 받은 날이었어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그 말을 하며 그녀가 찬영의 눈을 쳐다봤다.

‘마치 너는 믿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흐르던 그때, 그녀가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새로 입수한 정보를 통해 알게 됐어요. 얼마 전 E급 던전이 갑자기 D급 던전의 마나 함유량까지 대폭 늘어난 사안을 아나요?”

찬영이 대답했다.

“예, 대충은…….”

물론 알기야 안다.

하지만 자세히는 모른다.

개입하기도 전에 이규복이 발 빼기를 부탁했었다.

‘당시 로이크의 일도 있었고…….’

어쨌든 그 일을 지금 와서 다시 언급할 만한 이유는 하나 밖에 없다.

“유혹의 돌이란 게 그 일과 연관이 있었던 거군요.”

제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어떻게 된 영문인데 그렇습니까?”

“축약해서 말씀드리죠. 일전의 사건을 통해 그들의 덜미를 잡았어요. 뉴빌드란 존재들이죠.”

“그리고요?”

“그들은 유혹의 돌을 씁니다. 그건……. 그들만의 마법진을 새길 수 있는 마법석으로 추정되죠. 하지만 아무 마나도 느껴지질 않아요. 좀 더 알아봤으면 좋겠지만 아직 회수된 게 단 한 개도 없었죠.”

신기한 일이다.

몬스터를 부르는 힘을 가진 돌인데, 정작 마나를 품지 않았다니, 정말 모를 일이었다.

“혹시 그 돌이 다른 종의 몬스터를 규합시키는 역할도 합니까?”

찬영이 고베이와 함께 가졌던 추측 섞인 확신…… 그리고 그게 맞아떨어졌다.

“예, 현재까지 알아본 바론 돌이 있는 장소에 종이 다른 몬스터가 군집해서 들이닥쳤어요. 매번……!”

“다른 건요?”

“더 이상 없어요. 그들은 대부분 일이 잘못되면 자결을 택합니다. 혹은 일정 단어를 언급하면 몸 안의 마나를 폭발시키는 금지된 마법까지 사용하죠.”

“알만하군요. 그런데 이곳에 유혹의 돌이 있는 지는 어떻게……?”

“카슬라가 내가 찾던 마지막 꼬리였으니까요. 그들은 다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듣자하니…….”

그녀의 눈에 생긴 의문.

“당신이 유혹의 돌을 회수했고 그 돌을 만지자 그 돌이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돌이…… 사라졌습니까?”

“예.”

찬영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곧 눈빛이 매서워졌다.

어쩌면…….

‘내 생각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유혹의 돌.

몬스터.

그리고 자신의 시스템.

찬영은 앞에 놓인 시스템 창을 서둘러 확인하고 싶었다.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군요.”

마침 제이나 역시 궁금해 하는 얼굴.

“저 역시 알고 싶네요.”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말해 줄 수가 없다.

‘그의 대답이 실망스러웠던 걸까?’

제이나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아쉽군요.”

찬영이 침상을 빠져나오며 말했다.

“알고 싶다고 했지. 아예 모른다고는 안했습니다.”

“그게 무슨……?”

이해가 되지 않아 찬영을 바라보는 그녀.

“그 전에…….”

찬영이 일어나면서 덧붙였다.

“대답을 찾으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네요.”

제이나가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찬영이 웃으며 말했다.

“쉬고 난 후 다시 얘기합시다. 생각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

유혹의 돌로 인해 나타난 창은 그렇다 쳐도, 그동안 밀린 로그인 캘린더 20회 보상에 농장 케어까지…….

말만 이렇게 할 뿐 쉴 시간이 없다.

“그러죠.”

밖으로 나서는 제이나를 보며 찬영이 침상 옆에 툭 걸터앉았다.

‘조금만 기다려요, 제이나. 내가 당신이 원하는 대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찬영이 눈을 들어 창을 쳐다봤다.

정리의 시작은 그간 밀어 둔 보상부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