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60.
‘……음?’
창을 올려다보던 찬영의 눈에 이채를 띠었다.
시야에 들어온 보상 문구 때문.
히든 퀘스트 달성 보상은 총 세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새로운 제작 도구의 증정이었다.
가치 측정 1,800 의 제작 도구.
오렌의 화로(火爐).
최대치가 1800인지라, 당장 개인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하지만 제작 도구는 이번 경우처럼 여러 방면에 쓰임새가 많다.
획득 후엔 다양하게 쓰일 터였다.
‘얻어두는 게 좋겠지.’
첫 번째 보상 목록부터 마음에 든 찬영.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묘한 느낌을 주는 보상들이었다.
어디에 쓰이는지 당장은 확인할 수 없는 것들.
그 보상들은 각각.
-인라의 퍼즐조각 (3) (가치 : ?)
-저주 받은 하수구로 통하는 열쇠(하수구를 개방하는 열쇠)
이렇게였다.
인라의 퍼즐 조각이야 기존의 모아 둔 조각에 이어지는 것일 테지만 하수구 열쇠는…….
어디로 통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쓸데없는 보상을 줄 것 같진 않다.
마치…….
‘날 어디론가 이끄는 것 같군.’
열쇠 문구를 보며 유난히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은 찬영이었다.
하나 아직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로이크 때처럼 또 다른 이네이트로 이끄는 열쇠일지 모르고, 혹은 아직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보상이 나온 후에 생각해 볼 문제였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차피 헤일로 병력의 전력 강화를 도우려 했던 차였다. 원래 하려 했던 일을 보상까지 덤으로 받는 셈이니 일석삼조라고 해도 모자라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이곳을 재건하는 일인 건가?’
목책 장벽이 사라진 어둠을 바라보는 찬영에게 새벽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동이 트려나보다.
* * *
그동안 카일은 부대장을 소집했다.
이유는…….
“어서 죽여!”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카슬라의 처분을 위해서다.
카일은 떨리는 손끝을 꽉 쥔 벡을 힐끗 보았다.
‘벡…….’
벡은 누구보다 카슬라를 아꼈다.
그러니 그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카슬라, 이 모든 게 진짜야?”
벡이 물었다.
사실 그녀가 배신한 데엔 딱히 이의를 달 수 없었다.
카슬라의 배신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정황은 그렇다 쳐도, 벌써 증인만 셋이다. 외부인인 찬영, 헤일로의 지도자인 카일. 그리고 상처 입은 도레인까지 모두가 카슬라의 배신을 말했다.
카슬라를 믿고 싶어도 그럴 만한 구석이 없다. 정황마저도 그녀가 배신했다는 데 한 몫을 거들 뿐.
하지만 그럼에도 벡은 듣고 싶었다, 카슬라의 진심을.
그래서 계속 물었다.
“도레인을 기습한 게 카슬라 당신 맞아?”
카슬라는 침묵했다.
벡이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대장.”
“말하게.”
“시간을 좀 내어주십쇼. 카슬라와 단 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그러게. 우린 무너진 목책에 가 있지.”
카일은 두 말 없이 시간을 내줬다.
모두 자리를 빠져 나가자, 카슬라의 눈빛에 이채를 띠었다.
“벡…….”
죽이라고 말하던 때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 벡과 둘이 남길 기다린 사람 같다.
“듣고 있어.”
벡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이 상황 자체가 힘든 모양인 듯했다.
카슬라가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해 봐, 우리 어떻게 된 거야? 도망친 거야? 여긴 어디지?”
카슬라는 기절한 채 묶여 있다가 전투 종결 직후, 기절한 상태로 천막 안에 이송 됐다.
그래서 바깥의 상황을 전혀 모른다.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벡은 어떤 것도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안 되겠던지 카슬라가 소리 쳤다.
“벡. 난 몬스터와 싸우는 매일이 두려웠어, 정말이야.”
“우리 모두 두려워했지.”
“알아, 알지만 견디기 힘들었어.”
“그게 다야? 아니라고 해야지. 이 모든 일이 네가 한 게 아니라고!”
벡이 구속구를 찬 카슬라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현재 그녀는 증발의 구속구球速構란 아티팩트에 목 아래까지 전부 결속된 상태.
5서클 마력 방출까지 억누르는 구속구는 얇은 철판들이 온몸을 두르고 있는 형태였다.
그에 더해 철판 위에 난 크고 작은 구멍 위엔 수백 개의 크고 작은 금속 봉이 파고 들어가 있었는데.
이는 중요 근육점을 제압해 손가락 끝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말 그대로 말하는 시체가 되어 버린 셈이었다.
카슬라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이대로 날 그냥 두면…… 저들은 날 죽이고 말 거야.”
“하……. 대장에게 계속 죽이라며 말하고 있는 건 너야.”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내가 반항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인데!”
벡은 두터운 자신의 손으로 두 눈을 덮었다.
“젠장…….”
손 사이로 눈물이 뚝, 뚝 떨어져 내렸다.
이를 본 카슬라가 애원했다.
“제발…… 날 보내 줘. 벡. 난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한 것뿐이야.”
“그들?”
벡이 묻자 카슬라가 입술을 덜덜 떨었다.
“몰라, 누군지……. 하지만 두려웠어. 벡, 날 풀어줘. 나보다 이따위 엘프 터전이 그렇게나 중요해? 아니잖아!”
“중요했었잖아. 네게도.”
벡이 묻자 카슬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한 때는 그랬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어차피 세상은 끝나. 종말은 정해졌어.”
그 대답에 벡은 절망스러웠다.
한 평생 함께 한 그녀가 레인저의 자부심까지 버리며 이렇게 약해졌을 줄은 몰랐다. 가치 있는 일에 모든 걸 걸자던 그녀였는데…….
“그래, 네 두려움이 이해는 돼. 정말로…….”
그녀는 지친 게 틀림없다.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한 거다.
벡은 끊임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고마워. 그럼 잘 들어 봐. 벡. 그뿐만이 아니야.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몬스터가 몰려오기도 전에 난 죽었을 거라고! 놈들은 그러고도 남았어!”
벡이 허탈한 듯 쓴 미소를 흘렸다.
“역시 몬스터가 출몰했을 때 자리를 비운 게 너구나.”
“그래, 맞아! 맞으니까, 제발. 제발 풀어 달라고.”
“그들이 누군지 부터 말해. 그럼…….”
벡이 천막을 걷어 밖에 누가 있나 살펴본 후.
다시 돌아와 덧붙였다.
“풀어 준다.”
“어떻게 믿어! 풀어주면 말할게. 제발, 벡!”
“불리한 건 너야, 카슬라. 내 말을 믿는 게 좋을 거다.”
뿌득.
이를 간 카슬라가 결국 벡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사실 난 아무것도 몰라. 그냥…… 거래할만한 거리가 있어 보이게끔 속인 거야.”
“하수인이었단 얘기겠지.”
“그래.”
“그래도 끝까지 실망시키진 않아 줘서 고맙다. 이건 너를 향한 내 마지막 예우이자 솔직함에 대한 보답이다.”
벡이 카슬라에게 다가가 그녀의 목 뒤에 툭 튀어나와 있는 버튼을 누르자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구속구가 ‘끼익’ 하는 소리를 냈다.
단숨에 해체되어 가는 구속구. 이를 바라보던 벡이 그녀에게 로브를 건넸다.
“입고 가. 춥다.”
이를 받아든 그녀.
동시에 벡이 천막 밖의 망을 봐 줬다.
“이제 가라. 카슬라. 이걸로 이곳에서 보내주겠단 약속은 지켰다.”
카슬라가 환히 웃었다.
“고마워, 벡.”
웃고 있는 그녈 보며 벡이 냉담하게 고개를 돌렸다.
“꺼져, 다신 보지 말자.”
카슬라가 나가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될 거야.”
* * *
그 직후.
벡의 말은 틀렸다. 카슬라가 사라진지 얼마 되지 않아 천막 안으로 카일과 도레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카일이 묻자 벡이 아무데나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 힘이 풀린 모양.
“갔습니다. 거짓말만…… 잔뜩 늘어놓는 것 같더군요.”
카일이 허리를 굽히고 앉아 그와 눈을 맞췄다.
“벡, 이런 일을 하게 해서…… 미안하네. 날 용서하게.”
놀라운 일이었다. 알고 보니 벡이 한 선택은 카슬라를 속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숨기고 있는 진실을 알기 위한 극단적인 조치였던 셈.
벡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원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뇨, 대장께서 부담 가지실 일이 아닙니다. 차라리 잘한 것 같습니다. 카슬라에게 남은 정이란 정은 다 떨어졌습니다.”
그리 대답한 벡이, 이내 뜨겁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끄흑, 제가 알던 카슬라는 더 이상 없는 모양입니다. 원래 알던 카슬라였다면 단 둘이 되었을 때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동료들이 많이 죽었느냐고, 미안하다고, 틀린 선택이었다고…….”
카일이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군.”
카일은 벡의 등을 토닥였다.
“꺼흑…… 꺼흑.”
벡이 울음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며 말을 이었다.
“흑…… 뭐가 진실인지…… 끄흑, 뭐가 거짓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내게 보여 준 것들은 뭐였던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카일이 그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더 말하지 말게. 충분히 알았으니까.”
벡은 참, 서럽게도 울었다.
* * *
로브를 뒤집어 쓴 카슬라는 도망치며 피식 웃었다.
“머저리 같은 놈.”
평생을 알고 지냈지만 벡 만큼 쓸데없이 감정적인 놈은 단연코 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그랬다.
‘등신, 평생을 머저리같이 살아라.’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전선 곳곳에 생기가 돈다. 몬스터에 짓밟힌 후에도 완전히 붕괴되지 않은 것이다.
‘아쉽군…….
그녀는 자신의 일을 방해한 찬영을 떠올렸다.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벡, 카일 등이 살아남은 데엔 찬영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선 그 어마어마한 몬스터 떼를 이겨 낼 수 없었을 터.
‘제길!’
하지만 그중 제일 아쉬운 건, 도레인 그년을 완전히 죽이지 못한 것!
항상 그년의 눈빛만 보면 평생 해 온 위장 신분이 들키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프인 그년도 의심만 있었을 뿐.
누구도…….
‘내가 누군지 모르게 될 거다.’
그녀는 다시 의기양양해졌다.
이제 이대로 도망쳐 버리면 아무도 자신에 대해 깊이 알지도, 쫓지도 못할 것이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유혹의 돌.’
그 돌은 현재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되찾으러 가야 해!’
그녀는 평생 레인저와 엘프들 사이에서 은밀히 다니는 방법만 배우고 익히고 실전에 수 없이 써왔다.
벡의 말대로 대부분의 병력이 목책 전선에 가 있다면…….
‘반드시 회수할 수 있다!’
유혹의 돌은 자신의 천막 아래 깊숙이 파묻혀 있다.
천막이 찢어지고 무너졌다고 한들, 땅이 깊숙하게 헤집어지지 않은 이상 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터였다.
그녀는 서둘러 자신의 천막이 있던 장소로 움직였다.
도착하니 몬스터에 의해 천막은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온전히 남은 게 없었다. 그녀의 물건들 역시도 땅 위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다. 하나 상관없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땅에 묻어 둔 유혹의 돌. 마법을 사용하면 순식간에 이목이 몰릴 터였다.
어쩔 수 없이 두 손만으로 흙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콰악, 콰악.
탁.
곧 보랏빛 광채가 나는 돌이 손끝에 걸렸다. 돌을 찾아낸 뒤 환히 미소 짓는 그녀. 어딘가 홀린 것 같다.
“됐어…….”
사실 그녀 또한 이 돌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
다만 멸망 직전.
그들을 통해 이 돌을 받았고, 그 가치에 대해 배웠다. 하지만 쓸 기회는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들에게 인정받았지만 이걸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세상이 잿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하지만 괜찮았다.
종말이야말로 가장 원했던 거였으니까.
하지만 알폰 지방이 다시 재건 됐을 때 그녀는 깨달았다.
이 돌을 쓸 때가 찾아왔다는 걸. 멸망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면 스스로 멸망을 찾아가야 하는 게 그들과 자신의 숙명이다. 그게 그들이 기도하는 신의 뜻이며 온 세상의 혼란과 두려움을 끝내는 길이다.
그래서 적당한 때를 찾던 중, 때마침 갓피스가 나타나 줬다. 그리고 그를 시험하고자 시작된 넝쿨 성채 토벌, 그녀는 더 기다릴 것도 없이 이때가 적기라 판단했다.
유혹의 돌 위에 그들이 알려 준 마법진을 새겼다.
돌은 그때부터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몬스터만 맡을 수 있는 냄새를 풍겼다. 이 냄새는 반경 20km까지 퍼진다고 한다. 그 냄새는 마나와는 전혀 다른 더 고차원적인 기운의 냄새.
마나에 민감한 자들조차 돌의 정체를 알 수 없다.
하나 몬스터는 다르다. 몬스터들은 이 냄새를 맡으면 다른 종이라 배척하지 않고 서로 협력하여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밀려든다.
대규모 출몰이 일어났던 이유인 것이다.
하나 돌은 늘 이런 냄새를 풍기는 게 아니다. 돌 위에 그들이 알려 준 마법진을 새기느냐, 새기지 않느냐의 차이로 냄새의 유무가 갈린다.
그러니 그들이 알려 준 대로…….
‘이렇게 마법진을 해체하면…….
유혹의 돌은 다시 냄새를 감춘다.
그럼 유혹의 돌을 회수해 조용히 사라질 수 있으리라. 그리고 언젠가 그들과 다시 합류해서…….
“거기까지.”
돌 위에 그린 마법진 해체 직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그녀는 돌을 황급히 로브 안에 숨기면서 등을 돌렸다.
서서히 시야 한쪽에 들어오는 존재.
‘갓 피스!’
보기만 해도 이가 갈리는 녀석이었다.
“또 네놈이구나!”
카슬라의 눈빛에 독기가 서렸다. 마주한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나만 온 건 아냐.”
찬영이 뒤를 돌아보았다.
“끝까지 실망시키는군. 카슬라…….”
고베이가 옆에 섰다.
카슬라가 찬영을 쳐다보며 악을 질렀다.
“어떻게 알았지?”
찬영이 대답했다.
“난 한 거 없어. 당신이 날 안내한 거지.”
대답을 들은 카슬라가 헛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된 건지 짚이는 바가 있었다.
벡, 그놈이 틀림없다.
“뭐? 그 머저리가……. 나를 속였다고?”
“말은 바로 해. 벡은 당신과의 약속을 지켰어.”
찬영이 팔짱을 낀 채 엄중한 눈빛으로 카슬라를 응시했다.
이렇게까지 한심한 사람을 보면 찬영은 화가 조금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쌍하지도 않다.
어리석고 답답해 보여 짜증이 치밀어오를 뿐이었다.
“추격 없이 보내 줄 거라 혼자 상상해 버린 건 그쪽일 텐데?”
찬영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아닌가?”
카슬라의 눈꺼풀이 사납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