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53.
로이크의 것을 전수 받으며 획득하게 된 스텟 상승 덕택일 거다.
아니, 로이크뿐이 아니다.
또 다른 열 세 번째 별인 프라이의 전승자가 되면서 스텟 상승이 또 다시 이뤄졌다.
로이크로부터 근력이 100. 프라이로부터 근력이 110.
하지만 그야말로 대폭 오른 건 역시나 마나 방면이었다.
그토록 귀하다던 하운드의 심장을 여러 개 집어 삼킨 것 마냥, 5천이 넘는 마나가 늘어났다.
로이크에게서 2,000, 프라이의 영혼을 통해서 3,000 가량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 둘만 해도 엄청난 일, 하지만 끝이 아니다.
추가로 민첩성이 둘이 합쳐 115가 증가했으며 체력과 손재주, 화속성 친화력과 수 속성 친화력이 동시에 개방되었다.
-근력가치 : 239(F)
-마나 가치 : 7742.6(E)
-민첩성 가치 : 210(F)
-체력 가치 : 320(F)
-손재주 : 82(F)
-화 속성 친화력 : 52(E)
-수 속성 친화력 : 52(E)
하지만 그중 찬영의 눈엔 손재주라는 스텟이 가장 눈에 띄었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영향을 끼치는 스텟이다.
검술, 글씨, 등등 생활에 쓰이는 모든 것과 관련이 있을 터.
‘언젠가 쓰일 데가 있겠지.’
그 외 속성과 체력 창이 개방된 것 또한 마찬가지, 이만하면 충분하다 넘칠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들이다.
새삼 이 모든 결과물을 가져온 그간의 시간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자칫…….
‘로이크에게 빙의까지 될 뻔 했으니까.’
만약 빙의가 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 보면 섬뜩하기도 했다.
죽었을지도 모른다.
프라이는 분명 현실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힘을 갖추고 있었고 로이크는 그에 못 미쳤다.
‘베아트리체가 아니었다면…….
아니, 그녀만의 도움이 아닐지도 모른다.
‘로이크가 말했었지. 내 안의 다른 존재들이 있다고.’
찬영은 마른침을 삼켰다.
로이크가 말한 대로 아직, 뽑지 않은 카드들이 자신 안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면.
‘기다리고 있는 거다. 내가 그들을 뽑을 날을.’
어쩌면 로그인 캘린더도 그들을 깨우기 위한 방편이란 생각이 스쳤다.
하긴, 아무렴 어떤가?
‘그들은 내 편이야.’
베아트리체만 봐도 그렇다. 로이크의 진입을 막았을 뿐 아니라 독에 대한 저항을 높여 줬다. 그렇기에 걱정은 없다.
다만 어떤 이들이 날 도울지, 그게 궁금할 뿐이다.
구궁!
그사이 지진이 난 듯 바닥이 들썩였다.
‘지진?’
아니, 진동은 바닥에서 온 게 아니다.
찬영이 황급히 고개를 쳐들자, 천장의 종류석들이 일제히 흔들리기 시작한 게 눈에 들어왔다.
쐐액!
첫 번째 종류석이 천장에서 떨어져 회전하며 찬영의 머리를 향해 추락했다.
쐐액!
쥐고 있던 아슬란을 휘둘렀다.
촤악!
떨어지던 커다란 종류석이 아슬란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일부 얼어붙으며 산산조각 났다.
카캉!
그리고 더 이상 진동에 견디지 못한 종류석들이 일제히 쏟아졌다.
하지만 찬영은 주저 하지 않고 땅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타앗!
그리고 휘둘러진 아슬란.
촤하학!
동시에 아슬란의 검 끝에 푸른빛이 일렁이더니, 얼음 파도가 부채꼴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첫 번째로 나간 얼음 파도가 떨어지던 종류석을 얼어붙게 하고 두 번째로 뻗어나간 얼음 파도가 그 위에 중첩되었다. 그 후 연달아 공중에서 휘둘러진 아슬란에 의해 추락하던 종류석들이 공중에서 휩쓸려 버렸다.
총 10회의 얼음 파도.
아직 착지하지 않은 찬영의 두 눈에 천장까지 얼어붙은 얼음 폭포가 보였다.
아니, 폭포처럼 보일 뿐 부채꼴 형태로 뻗어나간 얼음 파도가 그대로 자릴 잡은 것이다.
타닥.
그동안 착지한 찬영의 주변으로 얼음 파도에 휩쓸리지 않은 나머지 종류석들이 쾅, 쾅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이는……. 아슬란의 기예.
‘아이스차징.’
찬영이 프라이, 아니 이젠 자신의 대검이 된 아슬란을 내려다보았다.
-프라이의 아슬란
-세트형 : 프라이의 북빙진기 보유 시 북풍천하北風天下 발동 가능
-가치 : 5,700
-효과 A : 적중 시 빙결 효과 발생
-효과 B : 2서클 아이스 스피어(마나 120 소모. 주문 없음)
-효과 C : 아이스차징(10회 연속. 회당 마나 130 소모)
덩달아 거대한 굉음이 들렸다.
아슬란에게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멀찍이 프라이가 나왔던 거대한 철문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덕에 바닥이 ‘콰직’ 소리를 내며 균열이 시작됐다.
흙먼지가 요동치며 피어올랐다.
찬영이 서 있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불어 닥친 먼지바람과 맞으며 찬영이 로이크의 장비를 둘렀다.
끝자락이 펄럭이며 드러난 로이크의 망토. 어깨엔 검붉은 색의 수실이 몇 가닥 흩날렸고 발치까지 내려오는 하늘거리는 천 자락은 주름 하나 없이 매끈했다.
그러자 뜨는 창.
-로이크의 공진共振
-가치 5,700
-효과 A : 광화狂火(초당 마나 1,300. 발동 시 모든 스텟 +300%. 형태 변화.)
-효과 B : 용의 발톱(광화 발동 전제. 중첩 가능. 마나 700 소모.)
-효과 C : 염왕권 확산 범위 3% 증가(용의 발톱 적중 시.적중 상대 한정.)
세세한 걸 훑어보면 굉장한 옵션일 거다.
하나 지금은 플레이 체험을 통해 일일이 옵션을 확인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 망토를 옆으로 걷어내며 주위를 돌아봤다.
마침 동굴 벽면에 각인된 채 숨겨져 있던 마법 문자들이 푸른빛을 발산하며 사방팔방 드러났다.
그것도 잠깐.
곧 맹렬한 빛을 발산하던 문자들은 차츰 그 빛을 잃어갔고, 문자들이 새겨져 있던 벽들도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동굴은…….
‘완벽히 무너지고 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탈출할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종류석이 모두 떨어진 천장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원통형의 대형 홀이 나타난 탓.
그간 가려져 있다가 프라이가 완벽히 사라진 것과 동시에 드러난 게 틀림 없다.
‘가야 해.’
이곳에서 탈출할 유일한 방법이다.
찬영이 쥐고 있던 아슬란을 인벤토리에 넣은 뒤, 힘껏 무릎을 굽혔다가 튕기듯 몸을 날렸다.
쐐액!
강화된 근력이 높은 점프력을 선사하고 그간 숙련도가 쌓여온 진공나찰보가 허공의 발판을 만들어 줬다.
파밧!
그 덕에 중력을 이기고 재차 뛰어올랐고 가속도가 붙는 동안 찬영의 건틀릿이 마나로 번뜩였다.
충만해진 마나가 몸 안 가득 차올랐다, 언제든 써주길 바라듯.
콰악!
움켜쥔 건틀릿, 스툼의 에어펀치가 허공을 갈랐다.
곧 찬영의 몸이 일직선으로 날아올라 통로 속으로 사진 그 때.
버티고 있던 동굴 천장이 풀썩, 내려앉았다.
* * *
헤일로 골짜기. 극동極東 부근.
쾅! 쾅!
흙더미가 들썩이더니 곧이어 푸른색 건틀릿이 땅을 뚫고 튀어나왔다.
콰직.
뒤따라 팔목을 감싼 붉은 건틀릿도 땅을 헤집으며 솟아올랐다. 마지막으로 틈이 난 흙더미 아래에서 솟아오른 머리. 돌고 돌아 기어코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 찬영이었다.
“하아…….”
땅 아래에서 훌쩍 뛰어오른 찬영.
탁.
입 안에 진흙을 툭, 뱉어내며 깊게 한숨 쉬었다.
온몸이 머드 축제라도 다녀온 것 같다.
‘그나저나..’
곧 주위를 둘러본 찬영.
사위는 굉장히 어두웠다. 새벽 특유의 냄새가 난다.
‘그새 하루가 지난 건가?’
그제야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궁금해져서 창을 띄워 로그인 캘린더를 확인했다.
캘린더엔 2회차 19회가 반짝였다.
‘떠날 때가 17회 중간쯤인데? 저 안에서 벌써 이틀이 흘렀다는 건가?’
체감 상 전혀 그렇게 못 느꼈건만.
어쩌면……. 프라이에 의해 얼어붙었던 그 찰나의 시간 동안이 찰나가 아니라 하루였던 건 아닐까?
그래, 그러면.
‘말이 되지.’
찬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새삼, 들여다보지 못한 도타의 농장도 스쳐갔다.
‘그건 조금 이따가.’
생각하며 호흡을 골랐다.
어쨌든 살아남았고 소기의 목적 이상의 보상을 획득했다.
이젠 언젠가 치러질 격전에 두려워할 레인저들을.
‘도와야한다.’
찬영은 미니 맵을 켜고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
하루 빨리 씻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골짜기의 동쪽 부근에 눈에 익어갈 때 즈음.
찬영은 반나절 만에 전선에 다시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이나 계산 하는 태연한 그와 달리, 생환한 그를 마주한 모두가 전부 경악에 휩싸였다.
-맙소사.
-살아 돌아온 거야?
-가, 갓피스이긴 한가 봐.
-그냥 몸에 흙만 묻히고 며칠 이따 온 건 아닐까?
-…….
침묵, 혹은 호기심, 의외, 놀라움, 의심 등등.
헤일로 전선을 지키고 있던 레인저들의 온갖 감정이 전선에 돌아온 찬영에게 쏟아졌다. 그건 카일 또한 마찬가지.
어느새 찬영을 만나러 뛰쳐나온 카일을 향해 찬영이 다가갔다.
저벅.
그러자 찬영이 던진 한 마디는.
“좀, 씻을 수 있겠습니까?”
마치 그 간 별일 없었다는 듯 평온한 말투였다.
카일은 기적 같은 일을 겪고도 담담하기 그지없는 그를 보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동안 마법통신구를 통해 전해 들었던 갓 피스를 향한 영주의 칭찬은 분명 믿었었으나.
‘아무렇지 않게 살아 돌아올 정도의 능력이라…….
단신으로 헤일로 골짜기를 제집처럼 다닐 만한 인간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는 아직 모든 것이 낯선 이방인 갓피스.
마나에 대해 제대로 이해도 못했을 그가.
‘대체 어떻게?’
침만 삼킨 채, 조용히 경악하던 카일이 애써 담담하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찬영이 두 팔을 벌려 보이며 말했다.
“살아 돌아온 거죠.”
한 마디로 대답한 찬영에게 카일이 몸을 구석구석 훑어보며 물었다.
“다친 덴 없습니까?”
“예, 보시다시피…….”
무척 평온한 찬영의 어조에 주변에 모여든 레인저들이 더욱 웅성댔다.
카일이 이마를 찌푸렸다. 동시에 곁에 선 부대장들에게 말했다.
“해산시키게. 그와 긴히 할 얘기가 있다.”
몇몇 부대장들이 카일의 의중을 파악하고 삼삼오오 모여든 동료들을 해산시켰다.
“이쪽으로.”
이어서 카일이 찬영을 자기가 머물고 있는 천막으로 안내했다.
아무래도…….
‘얘기가 길어지겠군.’
카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카일은 샤워를 시작한 찬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모자란 맑은 물이다.
남문 근방과 인접한 한센 강을 통해 식수를 조달하는 비옥한 영주성과는 달리, 이곳은 깊은 강도, 맑은 계곡물도 없다.
한때 맑았던 계곡 물도 이젠 몬스터의 서식지가 된 후, 썩은 짐승들의 시체와 온갖 독충, 독 등으로 오염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그만큼 물이 부족하고 그 외 다른 물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찬영에게 이런 호의들을 베푼 건 단순히, 그가 영주의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사히 돌아온 그가…….
‘우릴 도울 능력이 있는가?’
그 질문을 하기 위해서다.
저벅.
샤워를 끝낸 찬영이 카일이 빌려준 옷을 입고 나타났다.
“끝났습니까?”
“예, 덕분에.”
찬영은 상쾌함을 느끼며 카일과 나무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카일의 표정은 처음 봤던 그대로 무표정이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오늘은 카일의 의중을 일부 예상할 수 있었다.
“제가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건지 궁금하신 겁니까? 아니면……. 제가 뭘 위해 다녀온 건지가 궁금하신 겁니까?”
“모두 궁금합니다.”
주저함 없이 대답하는 카일. 그가 덧붙여 말했다.
“저를 제외한 이 소식을 들은 모든 이들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하긴…….”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위험한 골짜기에서 단신으로 들어가서 살아나온다는 건 드문 일 ,아니 불가능한 일처럼 카일이 말했었으니까.
그새 카일이 거두절미하고 물어왔다.
“그동안 몬스터와의 충돌은 없었습니까?”
찬영은 오는 동안을 떠올려 봤다.
레드 스컬 무리는 세 번 정도 만났다. 운이 좋았던지 그 외, 다른 몬스터와의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이것들에 대해 세세히 말한들, 누가 믿어 줄까?
잠깐 고민하던 찬영이 물었다.
“궁금해 하시는 걸 말씀드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다만?”
“그것으로 해결될까요?”
“그건…….”
카일은 곧 고개를 저었다.
전선에 있는 이들은 찬영의 능력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엔 의심할 거다.
‘나 또한.’
그래서 말을 잇지 못하는 카일에게 찬영이 이어서 말했다.
“본 적 없는 걸 믿으라는 얘기가, 이런 상황에 말이 안 되는 얘기란 걸 잘 알기에 드린 말씀입니다.”
“네, 이해합니다.”
동의한다는 카일의 제스처. 이를 확인한 찬영이 그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그래서 오히려 그걸 좀 활용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떻게?”
카일이 묻자 찬영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제가 직접 싸우는 모습과 결과물을 보여드린다면 지금의 의심과 의문들이 해소될 겁니다. 뿐만 아니라…….”
찬영은 확신했다.
“확실한 아군의 등장은 늘 힘이 되죠. 이제껏 어떤 병력도 지원 받지 못했다면 더욱 그럴 테고.”
카일은 일리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그렇다. 쏟아진 의심과 의혹을 뒤집을 수만 있다면…….
‘그건 더 큰 신뢰와 희망으로 반등될 것이다.’
카일 또한 찬영이 노린 바를 눈치 챘다.
환경은 만들어졌고, 이를 수행할 사람만 있다면…….
‘모든 게 가능하다.’
하지만 쉽사리 허락의 말이 떨어지질 않았다. 사실상 카일조차도 의혹을 가진 이들 중 하나였다. 흔들리고 있는 그에게 찬영이 두 번째 제안을 건넸다.
어떤 병력 희생도 소모 되지 않는 조건.
“아님 직접 보시겠습니까?”
카일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예, 제가 가지요.”
그는 기꺼이 찬영과의 동행을 택했다.
찬영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우린 다시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다.’
어쩌면 그 염원이 더 일찍 다가온 것일지도 모른다. 의심과 기대 사이 속에 카일의 눈빛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