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50.
“그럼……?”
“몬스터들에 의해 시체가 훼손되어 버린 나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과거의 영광스러운 추억이 없습니다. 그저 이지를 잃어버린 추악한 몬스터가 되어 버렸죠.”
“아…… 미안합니다.”
카일에게 있어서 괜한 얘길 꺼낸 모양이다 싶어 찬영이 사과했다.
카일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 후 그는 더 이상 머뭇거림 없이 과거의 일들을 얘기해 주었다.
“늪지대에 사는 ‘라비’란 몬스터들은 시체를 본래 힘의 일부를 사용하는 이지 없는 꼭두각시로 1회 부활시킵니다. 하지만 부활은 한 번뿐. 놈들도 두 번은 못 살리더군요.”
“그 외에 다른 능력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놈들은 내 형제들의 영혼을 더럽히는 일만 할뿐, 어떤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찬영은 뒷말을 금방 눈치챘다.
“너무 많군요.”
카일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많습니다. 현재 놈들이 되살린 내 형제들의 숫자는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병력의 열 배쯤으로 추정됩니다.”
찬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열 배라면 굉장히 많은 숫자. 그래서일까? 찬영은 의아했다. 왜 놈들은 먼저 선공하지 않을까?
“선제공격은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놈들은 습격을 시작합니다. 우린 교대로 놈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죠.”
“그럼 간밤에도……?”
카일은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도 부상자 둘을 제외하고는 피해가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친 건 사실이다. 찬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지나가야 하는 장소가 험난한 구획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찬영은 걱정이 많아졌다.
‘무사히 당도할 수 있을까?’
그새 카일의 말이 계속 됐다.
“물론 놈들과 싸우는 동안 알아낸 것도 적지 않습니다. 놈들은 과거와는 다르게 움직입니다.”
“다르게요? 다르게라면…… 대륙이 멸망하기 전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당시엔 다른 몬스터도 규합되어 몰려왔었죠.”
말이 규합이지, 온갖 종이 다 모여서 덤벼들었다고 생각하면…….
‘아마 어마어마한 숫자였을 거야.’
찬영은 대륙이 떨었을 공포를 떠올려 봤다. 서먼 홀, 뉴게이트 등 못지않았을 것이다. 찬영이 진심으로 말했다.
“여태껏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하신 것 같네요.”
“아닙니다.”
별일 아니라는 투로 대답한 카일이 지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나름 다행인 것은 몬스터들은 이제 서로 규합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영역만 확장하려 들죠. 종이 다르면 배척하며 투쟁합니다.”
찬영은 그의 말에 한 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들이 다른 지원 병력 없이 아직 놈들의 확장을 막고 있는 건…….
“저 안에서 놈들끼리 벌인 각축전이 오히려 행운이 된 거군요.”
카일은 부정하지 않았다.
“네, 가끔 무리를 이탈한 놈들 일부가 저희 측에 뛰어들긴 하지만 그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카일의 눈빛에 고심이 일렁였다.
“놈들 간의 서열 정리가 끝난 이후일 겁니다. 여기를 보시면.”
카일의 전선이 있는 북쪽 목책선을 따라, 동쪽과 서쪽엔 각각 ‘라비.’와 다른 종의 몬스터가 있었다.
“북쪽에 있던 극소수의 몬스터들은 저희에 의해 정리됐고.”
현재 골짜기의 동쪽과 서쪽에 있던 몬스터들은 각각, ‘레드 스컬’과 ‘레이븐’이라는 몬스터다. 라비와 충돌 중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곧 각축전이 끝날 겁니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몬스터도 제 동족이 부활되어 공격하는 걸 감당하진 못하죠.”
대답을 들은 찬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 그의 말대로야.’
카일은 그야말로 낭떠러지 앞에 놓인 심정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몬스터의 각축전은 끼어들 수 없다. 이 소수의 병력으로 괜히 끼어들었다간, 되레 반격 당하고 전멸 한다.
그럼 지원 병력은?
신성 왕국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기댈 수 있는 건, 영주성의 병력과 각성자들뿐. 하지만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아직 성장 중이었다. 또한 경험이 쌓이는 각성자들 역시 많지만은 않다.
하나 그들을 포함해도 영주성 병력들은 한정적. 그럼 남은 건 놈들의 각축전을 그저 지켜보고, 끝나길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아마 카일은…….
‘각축전이 끝난 직후를 노리겠지.’
각축전이 끝나고 나면 헤일로 골짜기의 다른 몬스터들이 가장 약해져 있을 것이다.
이때가 기회일 것이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놈들은 다시 세력을 키울 것이다. 찬영은 카일의 고민을 지금까지의 대화로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그 말을 내뱉진 않았다.
가뜩이나 복잡한 그의 심사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다.
“감사합니다. 충분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신 인사를 전했다.
동시에 카일이 대답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그래서 언제쯤 떠나실 계획이십니까?”
“오늘 당장 떠날 생각입니다.”
카일의 얘기를 듣자 반나절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바뀐 찬영이었다.
‘놈들 간의 각축전이 시작됐다면, 그게 내겐 기회다!’
놈들은 각자의 싸움에 주의가 분산되어 있을 테니, 이것이야말로 골짜기를 지나기 가장 적기, 더 미적대고 싶지 않았다.
그 후…….
‘헤일로 전선부터 토벌한다!’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헤일로 골짜기는 새로 얻은 로이크의 유산을 훈련하는 좋은 파밍 사냥터이자 성장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카일을 돕는 방편이 되겠지.’
알폰 지방의 완벽한 토벌을 위한 첫 단추가 시작된 것이다.
* * *
끼익.
두 사람의 대화 직후, 북쪽 전선의 목책 문이 열렸다.
헤일로 골짜기로 통하는 입구였다. 안개에 겹겹이 쌓인 입구를 보면서 찬영의 얼굴이 조금 상기됐다.
힐끗 뒤를 돌아보자 카일이 우두커니 선 채 입을 열었다.
“잊힌 세계수의 가호가 함께 하길…….”
“고맙습니다.”
무모한 첫걸음이다. 하지만 무모한 만큼 보상이 크리라.
찬영은 결연한 눈빛으로 발길을 옮겼다.
동시에 서서히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는 찬영과 함께 커다란 목책 문이 그를 두고 닫혀갔다.
끄그극. 쿵.
완전히 닫힌 문과 함께 카일이 곁에 있는 동족을 쳐다보았다.
“그가 돌아올 것 같은가?”
“모르겠습니다. 우린 어떤 것도 단언할 수 없으니까요.”
그 대답은 카일의 눈빛에 지우지 못한 씁쓸함을 남겼다.
* * *
찬영은 안개 속을 걸어가며 카일이 건네준 블린드라는 약초를 드러난 피부에 구석구석 발랐다. 몬스터에게 최대한 사람 냄새를 감추고, 골짜기에 서식하는 독충을 쫓아내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를 구석구석 바른 후에는 이동계열 스킬트리를 적절히 활용해 가며 골짜기를 누비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건 나침반의 방향이었다. 방향이 늪지대가 아닌 동쪽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라비가 떼로 모여 있는 곳은 피할 수 있겠어.’
다행인 셈이었지만 그렇다고 라비를 아예 보지 않을 린 없다. 놈들은 현재 서로 다른 종끼리 전쟁 중이다. 라비를 안 만날 리 없었다. 그래서 찬영은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게 목표였다.
찬영은 물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우거진 숲과 숲 사이로 내달렸다. 하지만 마냥 행운이 따라오지만은 않는 모양이었다. 찬영은 기어코 한 떼의 레드 스컬들을 발견했다.
레드 스컬이 지키고 있는 건 어딘가로 통하는 듯 땅굴이었다. 열 마리 정도의 개체들이 번갈아 땅굴을 오갔다. 문제는 나침반이 저 안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길은 없다. 결국, 놈들과 외길에서 마주친 셈이었다.
‘싸워야겠군.’
탐사하기 전까지 최대한 힘을 아끼려 했지만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
그럼…….
‘조속히 놈들을 처리한다.’
2m쯤 되어 보이는 놈들은 다양한 장비를 꼬나쥔 채 걸어 다니는 붉은 해골의 모습이었다.
가치는 2,300. 이제껏 상대한 것들보다 높진 않았기에 짧은 시간 내에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나뭇가지 위에 올라서 있다가 훌쩍 뛰어내렸다.
동시에 발동한 섬뢰보.
타탁.
나무 위를 밟고 달리기 시작한 찬영이 탄력적으로 땅을 보고 내달렸다.
타탁.
허공에 몸을 날린 찬영이 허리를 틀더니 방향을 선회한 매처럼 레드 스컬을 향해 쏘아졌다. 쇄도하는 가운데 찬영의 두 팔에 노이즈가 지직, 거리더니 양팔에 두 개의 건틀릿이 마나의 휘몰아침과 함께 소환됐다.
탁!
눈 깜짝할 새 레드 스컬 한 마리의 앞에 당도한 찬영.
쾅!
가속력을 보유한 위력적인 에어 펀치가 첫 번째 레드 스컬에 맞닿았다.
콰직!
새카만 어둠이 가득한 땅굴 안으로 날아가 버리는 레드 스컬. 그제야 나머지 아홉 마리의 레드 스컬의 고개가 한참 늦게 찬영을 향했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찬영이 놈들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붉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도약점 없어도 진공나찰보는 활용 가능하다.
하지만 붉은 바람은 땅을 도약점으로 놓고 삼아 싸워야 한다. 마나 소모도 진공나찰보보다 적다. 지상 전투가 벌어지면, 붉은 바람의 효용성이 더 높다.
타닥.
레드 스컬을 휘젓고 다닌 찬영의 양손이 희미하게 붉게 물들었다.
미세한 마나가 흐른 그 순간, 열 세 번째 별 로이크의 유산이 도래했다. 아직 심법이 받쳐주진 않았지만 건틀릿을 착용한 펀치력은 어마어마했다.
퍼퍼퍼퍽! 콰콱!
한 놈의 무릎을 차고 돌아서서 팔꿈치를 집어넣었다.
단숨에 연계 주먹을 뻗자, 레드 스컬이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놈의 목을 아작 냈다. 뼈가 무너져 주저앉아 버린 또 다른 레드 스컬. 놈의 머리를 발바닥으로 밟아 버렸다.
콰콱!
이 순간 찬영은 양 떼에 뛰어든 늑대였다. 여덟 마리의 레드 스컬은 반항도 못했다. 그러자 창이 뜨기 시작했다. 놈들을 죽이자 자동 파밍 되기 시작한 아이템들. 죽어가는 놈들이 하나 씩 늘어날수록 파밍 됐다는 창도 함께 늘어났다.
팔꿈치, 두 주먹, 두 다리.
이어서 염왕권을 펼치자 모든 몸이 무기가 됐다. 아직 모든 동작에 마나를 듬뿍 실을 줄 모르긴 하지만, 염왕권 자체엔 마나를 움직이게 하는 신묘한 힘이 있었다. 동작을 따라 아주 미세한 마나들이 더 높은 근력을 일으켰다. 고작 2,000 대의 가치를 지닌 레드 스컬이 감당할 수 있는 위력이 아니다.
콰칵!
마지막 남은 레드 스컬이 찬영이 뻗은 건틀릿에 가슴이 뚫렸다. 하지만 놈은 장기가 없다. 놈이 반항을 하려 들고 있던 도끼를 휘둘렀다.
쐐액!
그 때 찬영의 반대편 주먹이 도끼를 든 놈의 팔을 아작 냈다.
퍽! 탁!
팔과 함께 힘없이 떨어진 도끼. 뒤따라 가볍게 뒷발을 박찬 찬영의 주먹이 아래에서 솟구쳐 올랐다.
쐐액!
단숨에 분쇄된 놈의 목과 머리.
솨학!
그것으로 놈의 붉은 안광이 완전히 잿빛이 돼 버렸다.
‘후…….
이윽고 돌아선 찬영의 뒤로 아까 동굴 안으로 날려 버린 놈이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가슴이 박살이 난 채, 저벅 저벅 걸어오는 놈. 하지만 어둠에서 걸어 나온 건 놈뿐만이 아니었다. 놈을 필두로 수십 개의 붉은 안광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이런…….
찬영은 혹시나 싶어 다시 나침반을 내려다보았다. 나침반은 여전히 동굴 안을 가리켰다. 돌아갈 데가 없으니 전진하는 수밖에. 찬영이 붉은 안광들을 마주하며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기익. 기익.
굴에서 기어 나온 것들은 못 해도 수십 마리.
하지만 한 번의 싸움 덕분일까? 적당한 긴장 정도가 몸에 돌 뿐 낯선 적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타닥.
진각을 밟고, 첫 번째 보인 놈을 격살했다.
콰직!
이것들은 팔, 어깨 등을 박 내도 움직인다. 모든 뼈를 뭉개지 않으면 또 다시 공격해 오는 것이다. 손에 걸리는 건 다 부숴 버려야 한다.
쾅! 쾅!
찬영이 눈 깜짝할 새 십 수 마리의 레드 스컬을 정리하던 차.
크크킁.
또 다른 레드 스컬이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을 발했다.
그러나 뭔가 달랐다. 안광이 두 배는 큼직했고 두 발로 기어오는 게 아니고 네 발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짐승인가?’
생각하던 찰나, 그게 쐐액 하고 달려들었다.
찬영이 본능적으로 붉은 바람의 스텝을 밟으며 뒤로 물러났다.
‘후!’
물러난 자리에 뼈로 이뤄진 하관이 보였다. 그 사이로 쭉 뻗은 송곳니. 동시에 펼쳐지기 시작한 등에 붙은 뼈의 날개. 두 날개의 크기는 찬영의 몸을 덮을 정도다. 뼈로 이뤄진 날개 달린 대형 늑대였다.
기기긱!
놈이 섬뜩한 소리를 냈다.
-LEADER 저주 받은 하운드로 깨어난 레드 스컬
가치 : 5,200
동굴의 맹수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