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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48화 (48/248)

#48

운동 중에 나온 찬영은 이규복의 차로 블루 게이트로 이동 중이었다. 애당초 만나기로 한 것보다 2시간이나 일찍 본 것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네, 그런 것 같아요.”

이규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요?”

찬영이 묻자 이규복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대답했다.

“우선 V.O. 측 지사와 관련된 일은 아니에요. G.N.과 세드나라는 두 개의 펌이 마법 병단 3소대와 움직이다가 사단이 난 것 같아요.”

찬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동시에 이규복이 덧붙였다.

“제가 드린 던전 매뉴얼을 보시면 나와 있겠지만……. 보실 시간이 없으셨을 테니까 간략하게 말씀드릴게요.”

후두둑.

마침 차창 밖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 쏟아지는 빗방울을 와이퍼가 뽀드득 소릴 내며 걷어내는 사이 이규복이 말을 이었다.

“보통 던전을 탐사하기 전에 영주님의 마법 병단이 ‘탐색’을 시작해요.”

찬영이 집중하며 눈을 빛냈다. 앞으로 마주해야 할 일들이니 잘 알아 두어야 했다.

“영주 성에 속한 레인저 중대와 마법 병단의 공학자, 마법사 등이 던전 지역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옵저버’를 가동시키죠. 이 옵저버는 던전이 가진 마나 함유량을 측정해 줘요.”

찬영은 감탄했다.

‘과연.’

마나 공학이 발달된 세계는 확실히 그 진보가 남달랐다.

뉴 게이트 발생을 감지했던 가온의 수백 배는 진화된 버전처럼 보였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만……

그새 이규복이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큰 문제가 생겼어요. 옵저버의 오차가 발생한 거죠. 대략 마나 함유량이 80,000mp 정도 되는 장소는 ‘E급’ 던전으로 판별되거든요. 그런데…….”

말끝을 흐리는 이규복의 차가 점차 블루 게이트 지역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규복의 뒷말이 흘러나왔다.

“병력 진입 이후 수치가 160,000mp까지 상승했고 순식간에 ‘D급’ 던전이 되어 버렸어요. 당시 책임자가 직감만으로 신속한 후퇴를 명령했기에 망정이지…….”

찬영은 깊은 숨을 토해 냈다.

걱정이 담긴 듯.

“그렇지 않았으면 사망자가 더 늘어났겠네요.”

찬영의 말에 이규복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V.O.의 사람이 속하지 않았더 하더라도 각성자는 인류에게 소중한 존재다. 특히 영주 성에 속한 병력들은 더욱이 그렇다. 그들의 피해는 최대한 줄여야 한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몬스터가 물밀 듯 밀려들지 모르는 세상이다. 이규복을 포함한 V.O.가 이번 일에 예민하게 구는 이유다. 이규복이 재차 입을 열었다.

“영주 성 측은 이번 일에 대해 추가 병력을 소집했고 2차 병력 투입이 될 예정이에요. V.O.도 참여하기로 했어요.”

“그럼…… 가시는 겁니까?”

“네, 저도 가야죠.”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함께…….”

말을 잇던 찬영을 이규복이 단호히 거절했다.

“아뇨, 이번엔 좀 참아 주세요.”

“제가 나서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제대로 쉰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괜찮습니다.”

“네네, 알아요, 괜찮으신 거. 하지만 이번엔 참아 주세요.”

쉬라고 당부하는 그를 보며 찬영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그의 말을 납득해서가 아니다.

그사이에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다.

바로…….

염왕초혼심법.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를 위해.

이규복이 말한 것 같은 변수에 대응하려면, 더욱 성장해야 한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이규복은 잠자코 동의하는 찬영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웬일이십니까? 고집도 꺾으시고?”

“가끔은 그런 날도 있어야죠.”

피식 웃으며 차 시트에 등을 더 기대는 찬영을 보며 이규복은 알겠다며 웃었다.

그사이 찬영을 태운 이규복의 차가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훑고 지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곧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 * *

블루 게이트를 지나 알폰 지방에 당도한 후 이규복은 사태 파악을 위해 영주 성과 가까운 도른 광장으로 향했다. 도른 광장에 대부분의 펌의 지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저택 수십 채를 넘겨 준 건 영주의 배려였다. 그동안 찬영은 섬뢰보를 사용해 신속히 영주 성으로 향했다.

영주를 직접 접견할 생각이었다. 마침 영주는 사무를 보며 영주 성에 있었다.

그는 방문을 허락해 달라는 얘기에 시간 끌지 않고 찬영을 들여보냈다.

안에는 먼저 접견하고 있던 제이나가 있었다. 가볍게 그녀와 눈인사를 한 뒤 영주에게 인사를 건넨 찬영이 입을 열었다.

“내게 부탁한 일은 잘 정리되었나?”

“예, 영주님 덕분입니다.”

“잘 처리되었다니 다행이군. 축하하네. 신성왕국의 자국민이 된 것을. 한데, 먼 길을 다녀왔으면 쉴 것이지, 여기까진 무슨 일인가?”

“오는 동안 급보를 하나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오는 길입니다.”

“아, 그 일이 차원 너머로 건너갔던 자네의 귀까지 들어간 모양이군.”

“네, 그리 됐습니다.”

찬영의 대답에 영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이나를 바라보았다.

“흐음…… 제이나 경.”

“예.”

“그만 물러가게. 조심하고.”

영주의 말에 제이나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때마침 그녀를 쳐다본 찬영이 바라본 그녀의 눈빛은 유독 결연해 보였다.

뭐랄까?

결전을 앞두고 있는 눈빛이다.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영주전을 빠져나갔다. 동시에 영주가 찬영을 다시 바라보았다.

“혹여 이번 일에 투입되고 싶어 날 찾아온 거라면……. 물론 허락하네.”

영주는 찬영이 이번 사태를 일으킨 던전에 다른 펌과 함께 투입되고자 허락을 맡으러 온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찬영은 이규복에게 함께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곳은 다른 일 때문에 온 것이다.

“실은 그 때문에 온 게 아닙니다.”

영주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하면?”

반문하는 영주에게 찬영이 말했다.

“던전 단독 탐사를 허락해 주십시오.”

“어떤 던전을 이름인가?”

“아직 모릅니다만, 던전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찬영은 로이크가 남긴 얘기를 떠올려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단 걸 깨달았다. 그래서 영주에게 온 것이다. 모든 던전 탐사는 그의 허락이 있기에 가능하다.

만약 가려는 장소에 던전이 있다면?

그때 가서 허락을 받긴 늦다. 미리 얘길 하고 가는 편이 여러모로 신뢰감을 유지시킬 것이다.

룰이란 건 그런 거니까.

영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자네에게 뭔가 복안이 있겠지. 아니, 그런가?”

“왜 더 묻지 않으십니까?”

“물어 뭐하겠나? 자네의 행보가 영지에 실이 되진 않을 터인데. 다만……. 조심하게.”

“예, 감사합니다.”

그간 쌓인 신뢰가 적은 게 아니었던지, 영주는 찬영의 행보에 대해 어떤 의구심도 품지 않았다.

다만 의아한 게 있었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군. 왜 굳이 혼자서 가려 하나? 협력하는 병력이 있다면 더 수월히 다녀올 수 있을 터인데.”

“그건…….”

잠깐 말끝을 흐린 찬영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 가는 행보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판국에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은 단순히 던전 탐사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던전 탐사가 목적이 아니다?”

“예,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은 것 같습니다.”

찬영이 눈을 들어 영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을 들여다본 영주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래, 가게. 눈빛을 보니 말릴 수 없겠군. 대신 영지 내에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뭐든 지원 받게.”

“감사합니다.”

“아닐세, 자네의 성장은 대륙의 복원을 향한 발걸음이 될 터인데 응당 지원해야지.”

영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폈다.

“으, 사무 일을 너무 오래 봤더니 몸이 다 굳은 것 같군. 아무튼 군수창고에서도 지원 받을 수 있게 미리 언질을 해 두지. 부족하면 공학자들에게도 연락을…….”

찬영이 조용히 웃었다.

“이미 도움 받을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오, 그래? 그새 친구를 사귀기라도 했나? 아님……?”

영주의 눈이 의미심장해졌다.

“애인?”

찬영이 딱 잘라 대답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조금 겸연쩍어진 영주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영주전 밖으로 물러나는 찬영을 보며 영주가 혼잣말로 괜히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니 무엄하구먼. 영주를 민망하게 하다니 말이야. 험험.”

영주전의 모든 기록을 적는 서기관이 물었다.

“영주님, 이것도 적을까요?”

영주가 단호히 대답했다.

“적지 말거라!”

* * *

찬영은 그 길로 레인을 만나러 갔다.

따로 약속하진 않았지만, 언제든 찾아와도 좋다는 그녀의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마침 그녀는 한창 연구에 몰두하는 중이었고 찬영은 잠깐 시간을 낸 그녀의 연구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또 마법영약이라도 생기셨어요?”

잔뜩 기대한 눈치였다.

“아뇨.”

“이런…… 아쉽네요. 최근에 영약 흡수율을 인위적으로 0.1% 상승시킬 수 있는 연구가 막바지에 이르렀거든요.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다음에 한 번…….”

조심스레 묻는 그녀에게 찬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요.”

“와아, 고맙습니다!”

그녀는 이미 이전의 일은 전부 잊어버린 양 마냥 해맑기만 했다. 성격이 원래 그런 듯했다. 찬영은 괜히 죄책감을 느끼는 유형보다는 막무가내로 활기찬 게 낫다 생각하며 재차 입을 뗐다.

“……옵저버 관련해서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옵저버요? 그건 왜요?”

찬영은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에게 개별적으로 던전 탐사에 임한다는 얘기를 전달했다. 그녀가 경악한 건 당연했다.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우선 해 봐야죠.”

“흐음, 그럼…….”

그녀가 연구실을 뒤지면서 말했다.

“D급 던전용 옵저버부터는 군수창고에 말씀드려서 대여해야 해요. E급까지는 제가 당장 만들어 드릴 수 있는데…….”

“아, 그래요? 군수창고에 들러 봐야겠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찬영과 함께 그녀가 잠깐, 고심하다 말했다.

“음, 그럼……. 저는 대신 다른 것들을 좀 보여 드릴게요.”

“다른 거요?”

“네, 던전 탐사에 도움이 될법한 시제품들을 몇 개 만들어 놓은 게 있거든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씩 웃는 그녀의 눈빛에 자신감이 넘쳤다.

* * *

레인의 시제품들을 인벤토리에 잔뜩 채워 넣은 찬영은 곧장, 군수창고에 들러 D급 옵저버를 빌렸다.

D급 옵저버는 찬영 정도 크기의 비행체였다.

작동을 시작하면 가동 팔찌의 반경 10km 안을 벗어나지 않았고, 작동 시작 시 기다란 몸체 양 옆에서 잠자리 날개 같은 두 개의 날개가 뻗어져 나와 비행이 가능하게 했다.

군수창고 서기관은 이를 빌려주면서 제발, 흠집 하나 남기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굉장히 비싼 물건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상위 단계의 C급 옵저버는 빌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찬영 역시 이번 일의 향방을 알 수 없었기에 D급만 빌려가도 이렇게 노심초사하는 서기관의 간담을 더 서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괜히 이 이상의 등급을 가져갔다가…….

박살이라도 내면?

영주 보기가 조금 민망해질 듯 했다.

‘물론 영주는 괜찮다고 말할 테지만…….’

어쨌든 이것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찬영은 나침반이 향하는 장소로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영주 성 동쪽으로 빠져나와 이규복이 있을 도른 광장을 지나 베이콥 시를 완전히 빠져나왔다.

이때부터 미니 맵을 켰다.

미니 맵을 켜자 알폰 지방의 지도가 펼쳐졌다.

레인이 넘겨 준 물건 중에 알폰 지방의 옛 지명과 현재 개척민들이 진출해 있는 지역이 정확히 표기된 지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찬영은 반나절 만에 북동쪽의 보튼 마을에 접어들었다. 보튼 마을을 포함한 보튼 지구는 던전 탐사가 완료되어 개척민의 땅이 된 곳이라 충분히 안전했다.

하지만 머물진 못한다. 이곳은 그저 거쳐 가는 곳일 뿐.

* * *

영주 성을 떠난 지 삼 일째 되는 날.

찬영은 오슬로 구릉이란 작은 골짜기를 지났다. 오슬로 구릉은 잔존 몬스터가 대부분 정리된 곳이다. 하지만 헤일로 골짜기 인근 지역이어서 그런지 슬슬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곧 헤일로 골짜기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곳은 아직 개척조차 못한 미확인 던전으로 넘쳐난다. 변수, 위험 등이 도사리는 건 당연했다.

이 와중에 나침반은 여전히 앞으로 가라고 한다.

‘시작인가?’

찬영의 얼굴에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교차했다.

최초 던전 탐험의 서막이 열렸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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