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절차는 여타의 청문회와 흡사했다.
발언대로 나온 찬영이 진실을 위해 더함과 보탬 없이 일체 진술을 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맹세를 서명 날인하여 직접 위원장에게 제출함으로써 블루 게이트 안건의 질의응답이 신속히 진행됐다.
위원장은 외교부 장관이 직접 맡았는데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 일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뜻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 외교부 장관은 사태를 지켜볼 뿐인 방관자이자 관찰자나 다름없었다. 실상 다른 나라에서 파견 나온 이들과 동일한 포지션이라 해도 무방했다.
이 가운데 찬영이 발언대에 서서 수많은 질문 공세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대로구나.’
찬영은 질문에 차분히 대답해 가면서 이규복이 했던 말을 되새겼다.
- 다른 나라의 대표 각성자들이나 그들과 함께 나온 정치인, 외교부 등은 아마 뒷짐 지고 지켜보기만 할 거예요. 그들은 진실만 알면 되니까, 외교적 분쟁까지 만들어 가면서 찬영 씨를 옥죌 필요가 없거든요. 그래서 아마 대부분 G.N.과 연결점이 있는 이들이 발언 기회를 가질 거예요.
그 말이 맞았던 것이다.
지금도 그랬다.
전직 국회의원이자 대형 일보의 논설위원까지 맡았던 장칠순, 현재 G.N.의 임원직을 맡은 그가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방금 전 G.N. 소속 상무가 발언 기회를 얻었었는데 곧장 G.N.에서 다음 발언 기회까지 얻는다는 건 이번 소환이 G.N.이 직접 짠 판임을 드러낸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두 이의 없이 침묵했다. 여기 모인 대부분은 블루 게이트 뒤에 숨겨진 진실을 원했고 진실이 밝혀지는 것, 그거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찬영의 안위 따위야 별 관심도 없다. 분쟁 없이 원하는 것만 가져가면 되는 것이지, 굳이 G.N.이든 V.O.든 어느 한쪽의 편에 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질문하는 G.N.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들의 방관이 고마웠다. 진실만 던져 주면 그들은 G.N.이 찬영을 옥죌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묻겠습니다. 그 시각 양찬영 각성자께선 어디에 계셨습니까.”
찬영은 조용히 장칠순을 쳐다보았다.
벌써 문장만 다르지 똑같은 질문만 다섯 번째. 빙빙 도는 쳇바퀴나 다름없었다.
‘어디에 있었나.’
‘무엇을 했나.’
‘왜 들어갔나.’
‘G.N.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하지만 찬영이 듣기에 그 질문의 요지는 뻔했다.
V.O.와 결탁한 당신이 G.N. 소속 각성자들에게 해코지를 한 건 아니냐?
G.N.은 찬영의 입에서 그 소릴 듣고 싶은 게 분명했다.
찬영은 헛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멸망을 앞둔 상황이나 다름없는 순간에 함께 싸워야 할 각성자를 왜 죽인단 말인가?
이규복의 팀원들 대신 그들이 뉴 게이트에 진입했었기에?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심지어 그들은 찬영이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실종됐었다.
하지만 G.N. 사람들은 그건 찬영이 짜놓은 덫이 아니냐며 물고 늘어졌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릴 말이 되는 것처럼 얘기했다.
이런 게 진흙탕 싸움이란 건가 싶을 정도로 계속, 또 다시, 또 계속.
결국 찬영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사실 없습니다.”
“예, 저 역시 찬영 씨의 말씀을 믿고 싶네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죠?”
“예.”
대답하는 찬영에게 장칠순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묻는 겁니다. 그때 어디에 계셨는지 증명할 방법을 대 보세요. 그럼 해결될 문제 아닙니까? 뭘 숨겼기에 그렇게 꽁꽁 감춰 두세요?”
그러면서 장칠순은 V.O. 사람들이 앉아 있는 쪽을 힐끔 쳐다보며 씩 웃었다. 장칠순은 사냥개가 먹이를 몰아가듯 점차 찬영을 몰아가는 중이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 해도 받아치는 쪽의 증거가 불충분하면 진실이 되는 경우가 있다.’
장칠순은 그런 경우를 종종 보아 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V.O.는 찬영의 상황이 녹화되었을 액션 캠에 대해 이제껏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건 틀림없이 그 액션 캠이 그들이 쓸 수 없는 패일 것이란 의미였다.
결국 찬영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설사 있다고 한들 상관없다.
애초에 아무 지시도 없이 뉴 게이트에 들어간 찬영이다. 당시 소식이 끊긴 G.N. 소속 각성자들이 있는 장소로 찬영이 직접 걸어 들어갔단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일 터.
그걸 물고 늘어지면 되는 것이다.
찬영이 G.N. 각성자를 죽인 게 아니냐는 추측으로 얼마든지 찬영을 옭아맬 수 있었다.
“왜 말씀이 없으세요? 묵비권이라도 행사하시는 겁니까?”
“그 시각, 저는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고 정신을…….”
장칠순이 대놓고 찬영의 말을 잘랐다.
“예, 잃으셨다고 진술하셨죠. 압니다, 아니까 묻는 거예요. 제대로 된 팩트는 뒤로 감추고 계시잖아요.”
찬영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직은 준비한 패를 꺼내들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G.N.에서 모든 패를 다 쏟고 나면 그때 받아칠 생각이었다.
그의 의중을 모르는 장칠순이 이내 비아냥거렸다.
“그런 걸 보면 레퍼토리는 어느 시대건 똑같네요. ‘기억이 안 납니다,’ ‘무슨 말씀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이러면 끝입니까?”
잠자코 있던 찬영이 말했다.
“그런 얘기 한 적 없습니다. 진실만 말씀드렸을 뿐.”
“예, 예, 그러시겠죠. 진실! 듣기엔 참 좋습디다. 그런데, 진실이란 게 뭡니까, 거짓이 없는 사실이죠. 그런데…….”
그가 심드렁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거짓이 없으려면 모두가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죠. 그런데 우린요? 증거가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그냥 양찬영 각성자 진술밖에 없죠.”
찬영은 그 말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미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모두 다 했다. 오디와 싸웠고 G.N. 소속 각성자들과는 마주치지 못했으며 그 이후엔 정신을 잃었다고.
하지만 이들은 그걸 뒷받침할 증거를 원한다. 눈으로 확인할 명확한 것, 아니, 그 증거를 원하지 않기에 이런 질문을 해 대는 게 맞다. 장칠순은 찬영이 대답을 못 할 거란 전제하에 이런 질문을 해 대는 것이니까.
그사이 장칠순이 호소하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우린 아무 것도 모릅니다! 본인만 주장하는 의견을 진실처럼 얘기하지 마세요. �, 이상입니다.”
가볍게 코웃음 치며 의자에 등을 기대는 장칠순. 그의 얼굴에 득의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 쯤 되자 위원장이 찬영에게 물었다.
“발언하시겠어요?”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계속 질문 듣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러자 또 다시 발언 기회를 가진 의원들이 정해진 5분이란 제한 시간을 한 20초쯤 쓰고 계속 G.N. 차례가 돌아오게 했다.
또 다시 돌아온 장칠순의 발언 기회. 장칠순이 시원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힘드시죠? 물 한잔 드세요.”
“아뇨, 질문 듣겠습니다.”
“들으시면 뭐해요, 답변을 제대로 안 하시는데. 그냥 물 한 잔 시원하게 드세요.”
그러자 V.O 측에서 항의해 왔다.
“소환 내용과 관계없는 얘깁니다.”
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위원장이 장칠순을 쳐다보았다.
장칠순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블루 게이트에 진입했던 양찬영 각성자는 한 거대 몬스터를 제압했고 그 이후 베이콥 영주께 발견되었다 이거죠?”
“네, 아까도 말씀드린 얘깁니다.”
“안 믿겨서 그래요, 안 믿겨서. 당시 투입됐던 인원이 무려 스물이에요, 스물. 찬영 씨보다 나으면 나았지, 덜한 사람들이 아니란 겁니다.”
“…….”
“그런 그들이 찬영 씨 역량으로도 잡을 수 있는 몬스터를 못 잡아서 그렇게 됐단 겁니까? 뒤에서 수작부리지 않고서야 그러기는 쉽지 않잖아요.”
잠깐 한 템포 호흡을 가다듬은 장칠순이 덧붙였다.
“좋습니다. 찬영 씨가 그만큼 대단한 각성자라고 전제하고 얘기해 보죠. 오, 그러고 보니 그렇게 전제를 깔아 두니까 제 주장이 좀 더 그럴 듯해 보이네요. 그래도 일단 그건 접어 두고.”
어깨를 으쓱인 장칠순이 찬영을 매섭게 쏘아보면서 말했다.
“어쨌든 그 정도로 대단하고 강한 사람이 개인이란 말이에요. 네, 아무 제약도 없죠.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닙니까?”
장칠순이 호소했다.
“이제 지구에선 위험이 사라졌어요. 저 위에서는 영주가 저희 일을 대신하죠. 그럼 찬영 씨는? 제가 볼 땐 이거, 찬영 씨는 국가 소유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찬영 씨는 더 이상 민간 업체의 프리랜서로 활동하면 안 돼요. 더 규제하고 더 강제성을 둬야 한다는 거죠, 안 그래요?”
제어 불가능한 각성자, 그리고 이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는 장칠순.
모두가 그의 말에 빠져들었다. 일부는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까지 끄덕인다.
국가 귀속. 그게 말은 좋은 말이지, 찬영의 자유를 억압하고 강제성을 두겠단 얘기였다.
찬영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제…… 슬슬.’
그리고 다시 눈을 뜬 찬영이 멀찍이 자리한 이규복과 눈을 마주쳤다.
‘움직여야겠어.’
하루이긴 했지만 찬영이 준비하고 이규복이 보조해 온 이번 일, 찬영은 아무 각오 없이 회의장에 온 게 아니었다.
이제껏 조용히 있던 찬영이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하는 장칠순이 아닌 위원장에게 입을 열었다.
“잠시 미뤄 두었던 발언을 모두 지금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껏 아무 발언 기회도 없이 충분히 기다려 왔던 찬영이기에, 위원장도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찬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 저벅, 한 발자국씩 내딛으며 단상으로 걸어가던 찬영의 눈에 김진수가 보였다.
김진수의 가벼운 미소, 그것은 바로 여유였다.
아마 그는 자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침묵하는 건 약해서가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경우일 수도 있다는 걸.
단상에 선 찬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길 봐 주십시오.”
힐끗 고개를 돌리자 이규복이 빠르게 TV 모니터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준비해 둔 찬영의 액션 캠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 *
- 놀랍군.
세드나의 임원, EVP를 맡고 있는 제이슨이 영상을 보면서 조용히 신음성을 흘렸다. 곁에 있던 수행 매니저가 조용히 속삭였다.
- 영상을 복원시킨 모양입니다.
- 아마도.
소곤거리는 둘처럼 다른 나라의 임원들 역시 함께 온 수행원이나 거물 정치인들과 긴밀히 의견을 나눴다.
현재 영상에선 찬영과 오디와의 싸움이나 그 배경이 훤히 보이는 상태.
찬영이 영상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건 제가 투입 당시 찍은 영상입니다. 제가 상대한 몬스터죠. V.O. 측에서 영상을 복원하느라 공을 좀 들였습니다. 자, 이제…….”
찬영이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G.N.의 김진수를 힐끗 본 후 다시금 입을 열었다.
“G.N. 측에서 공개용 영상으로 채택한 생존자 영상을 틀어 주셨으면 합니다.”
찬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위원장이 그 요구를 허락했다.
하지만 의외로 김진수가 고개를 미세하게 저었다. 그러자 그의 수행원이 얼른 장칠순에게 다가가 몇 마디를 속삭였다.
동시에 장칠순이 발언 했다.
“저희 측 영상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찬영이 물었다.
“이유가 있습니까?”
“대답할 의무는 없습니다.”
찬영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증거로 채택된 영상입니다. 공개하지 않겠다면 채택하신 이유가 뭡니까?”
장칠순이 단호히 대답했다.
“말씀드렸습니다, 대답할 의무가 없다고.”
“위원장님, 저는 이곳에 계신 다른 귀빈들께 보일 진실을 위해 위원장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이 순간 위원장은 중재가 아닌 칼자루를 쥐게 되어 버렸다.
오히려 식은땀을 흘리게 된 위원장. 그는 잠시 G.N.측을 조용히 보다가 다른 나라의 의원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을 알기 위해 저마다 한마디씩을 던지며 의원장에게 영상의 재생을 요구했다.
G.N.이 자기네 판을 짜기 위해 초청한 인사들이 순식간에 G.N.에게 칼을 들이밀게 된 상황이었다.
-저희는 보길 원합니다.
-저희 측도.
-이쪽도.
계속해서 나오는 공개 의견에 결국 의원장도 영상 재생을 거절하는 G.N.의 요구만을 수용하진 못했다.
단번에 판이 뒤집힌 것이다.
조용히 이를 지켜보던 김진수가 굳게 다문 이를 더욱 꽉 물었다.
“……빌어먹을.”
일이 너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인지 속에 있는 말이 입 밖으로 툭 하고 튀어나왔다.
그가 쓰디 쓴 침음을 목구멍으로 삼키는 동안 위원장이 G.N.이 채택시킨 증거물을 공개시켰다.
그러자…….
-이런.
-이게 가능한 건가?
-흐음…….
이번 사안 때문에 각국에서 초청된 소환 의원들의 리액션은 모두 달랐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모두 같았다. 그건 바로 놀람이었다.
찬영의 액션 캠을 통해 찍힌 공간과 G.N. 생존자에게서 찍힌 공간이 모조리 달랐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공간에 진입한 듯 전혀 달랐다.
물론 그 내용이 끔찍해서 전부 보진 않았지만, 일부 내용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 영상의 공간에 큰 차이가 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웅성웅성……. 위원장이 소란스러워진 장내를 향해 정숙해 달라 얘기했지만, 여전히 모두의 표정엔 경악이 가득했다.
찬영은 그들의 놀람을 이해했다.
자신 역시 그랬으니까.
‘그래, 들어간 통로는 같았어도 연결된 통로는 달랐던 거야.’
이로써 증명됐다. 똑같이 북한산 뉴 게이트에 진입하긴 했지만 G.N.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투입됐고 찬영만이 오디와 싸웠던 공간에 도착했다는 걸.
‘이제껏 먼저 투입된 그들의 자취를 왜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을까?’라고 궁금해 했던 모두의 의구심이 일부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찬영에게 쏟아진 추측성 가설들을 단번에 봉쇄시켜 버린 반전의 카드이기도 했다.
G.N. 생존자의 액션 캠을 한 번도 못 본 찬영조차도 사활을 내걸었던 도박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준비한 게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이번 소환을 받아들인 결정적 이유이자 앞으로 이런 분란을 정리하고자 택한 선택, 그걸 얘기할 차례였다.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댄 찬영이 김진수에게 보란 듯이 덧붙였다.
“말씀드릴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장칠순이 상기된 얼굴을 들며 물었다.
“대체 또 뭡니까.”
찬영이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먼저 찬물이나 한 잔 시원하게 드세요.”
이제부턴…… 말도 못 하고 속만 끓으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