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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40화 (40/248)

# 40

평소 표정 없기로 유명한 그녀조차도 쉬이 놀람을 감추지 못 하는 지금 찬영은 직감적으로 뭔가 느꼈다는 걸 확신했다.

분명 지팡이의 존재감을 느낀 것일 테다.

어쩌면 세상 유일무이한 자신의 커스텀 장비이니, 서로 당기는 기분이 들 수도 있을 테고.

아무튼…….

‘주인에게 줘야겠지.’

찬영은 쥐고 있던 지팡이를 두 손으로 쥐고 공손히 제이나에게 건네주었다.

“제이나 경. 당신 겁니다.”

울고 있던 레인도 눈물을 멈추고 갑자기 일어난 일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제이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 같았다면 이런 선물은 부담스러워 거절했을 일이지만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인 그녀는 장비가 속삭이는 소리를 완벽히 들을 수 있었다. 아니, 마법사가 아니어도 들었을 것이다.

장비는 그녀만의 것이었다.

“대체 어디서 나신 겁니까?”

쉽게 말을 잇지 못 하며 지팡이로 다가서는 그녀. 찬영은 그저 웃었다.

‘무엇으로 설명할까? 이 진귀한 일을.’

백 마디 말보단 지팡이를 한 번 쥐게 하는 게 더 확실한 설명이 될 것이 뻔했다.

“받으세요.”

찬영은 달리 설명 없이 그녀에게 지팡이를 완벽히 건넸다.

설명은 나중에, 그녀에게 주어진 장비를 건네주는 게 우선이었다.

탁.

마침내 지팡이를 건네받은 그녀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스으윽.

어마어마한 마나량이 몸 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건 불편한 게 아니었다.

휘몰아치는 마나는 기존의 마나와 뒤섞여 그녀가 끌어낼 수 있는 마나량의 최대치를 상승시켰다.

스스스스.

덩달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칼이 사방으로 흩날리자 레인이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달려가려 했다. 찬영이 황급히 레인의 손목을 붙잡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곤 속삭였다.

“잠깐, 기다려 봐요. 괜찮아질 겁니다.”

“하지만…… 언니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레인, 찬영도 말로 설명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를 진정시켜야 했다.

“언니를 믿어 봐요. 당신의 언니 역시…….”

찬영의 눈을 바라보는 레인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갓피스니까.”

휘몰아치는 바람이 제이나의 몸을 타고 더욱 거세졌다.

찬영은 이를 보며 설레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녀는 이번 기회로 얼마나 달라질까?

그리고…….

‘나 역시.’

* * *

찬영이 레인의 놀람을 진정시키는 사이 제이나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던 바람도 잦아들었다.

서서히 눈을 뜨는 제이나. 눈을 뜨자마자 그녀가 매혹적인 입술을 달싹였다.

“툴챠가 말을 하네요. 제가 갓피스라고.”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팡이 툴챠는 그녀라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안고 있던 레인도 놓아주었다.

“언니!”

레인이 황급히 제이나의 곁으로 다가갔다.

“괜찮아? 방금…… 마나가…… 마나가 날뛰었어!”

제이나가 레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괜찮아. 마나가 폭주한 건 아니었어. 다만…….”

말을 잇던 그녀가 찬영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늘어났을 뿐이야.”

레인이 방금 전, 찬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언니가 정말 갓피스야?”

그러면서 제이나를 살피는 레인. 놀랍게도 제이나의 눈동자엔 나뭇잎이 동공 위에 새겨져 있었다.

“저, 정말이었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제이나를 보며 레인이 헛바람을 들이 삼켰다. 하나 가장 혼란스러운 건 제이나였다.

‘대체…….’

그녀가 찬영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찬영이라면 알 것이다. 그러나 찬영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저 역시. 그저 그 지팡이의 주인이 당신이라는 걸 정확히 깨달았어요.”

“지팡이가 갑자기 소환되어서?”

“네.”

제이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

“네.”

찬영은 똑같은 대답을 해야 했다, 그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때론 사실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않는다. 제이나는 계속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당연했다. 대륙의 멸망 당시에도 갓피스가 아니었던 자신이 순식간에 갓피스가 되어 버린 현실이다.

당혹스럽다.

“그래서……. 전 이제 갓피스군요.”

찬영이 대답했다.

“네, 그렇죠.”

“당신도 그랬습니까?”

불현듯 묻는 그녀. 갓피스로 자각한 일이 이렇게 갑자기 찾아왔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네, 이렇게 어느 날 갓피스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찬영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겁니다. 싸워야 하는 건 여전하고…….”

결국 갓피스 이전에 사람이니까…… 그렇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걱정하며 매일과 내일을 견딘다. 이제껏 살아온 것과 다르지 않다.

먼저 갓피스가 된 찬영이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었다. 달라진 건 그저 스스로가 갓피스란 걸 깨달은 것 말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몇 가지 변화들이겠지.’

찬영은 눈앞에 떠 있는 창들을 잠시 접어 둔 뒤 제이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 전해 줄 얘기도, 해 줄 일도 없다.

그럼 남은 건…….

‘주입인가?’

찬영이 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레인을 바라보았다.

“슬슬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아직 주입되지 않은 하운드의 심장을 통한 두 번째 주입을 말한 것이었다.

갓피스는 갓피스고…….

하던 일은 끝내야 하니까.

* * *

츠으으.

찬영의 몸 주변에 스파크가 튀었다. 워낙 응집력이 강한 마나가 분열되어 흡수되는 과정을 거친 탓이었다. 지금 찬영에게 다가가면 안 된다. 찬영 스스로 마나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인 것이다.

“이게…… 가능한 거야?”

레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은 흡수율이 나타난 이미지에 향해 있었다.

그곳엔.

90%라는 수치가 한 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함께 있던 제이나도 고개를 저었다. 레인의 말처럼 이건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과연 90%의 흡수율을 보일만큼 마나 친화력이 강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분명, 잊혀진 과거의 갓피스들 사이에선 있었을 것이다.

하나 당장 알폰 지방엔 90% 흡수율을 보일 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처음 보는 일이야. 이런 경우는…….”

“믿기질 않는다. 정말. 갓피스란 게 이렇게 대단한 거였어? 아까 영약은 83%였잖아? 그사이에 흡수율이 더 상승했다고?”

갓피스를 실제로 대면한 건 레인이나, 제이나나 둘 모두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제이나도 쉽게 그렇다, 라고 말해 줄 수 없었다.

그저…….

“글쎄.”

평소답지 않은 애매모호한 말로 말끝을 흐릴 수밖에.

“으음…….”

그러는 사이 찬영의 신음성이 그들에게 들려왔다. 소리를 들은 레인이 귀를 쫑긋 세웠다.

“깼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찬영이 무겁게 눈을 떴다.

‘죽겠군.’

처음 눈을 뜨고 난 소감이었다.

정신력 소모로 인해 몸이 물 먹은 듯 무겁고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진 기분이어서 당장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억지로 호흡을 다스리며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러는 사이 제이나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이미 찬영이 겪고 있는 상황을 알고 있는 듯했다.

“많은 양의 마나가 주입 된 경우엔 보통 그런 어지러움 등의 현상이 나타나요. 이상해할 것 없습니다. 으레 겪는 일이니까.”

찬영이 어지러움에 인상을 쓰며 물었다.

“격려입니까?”

제이나가 단호히 고갤 저었다.

“아뇨,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알 것 같은데……?”

그 순간 제이나가 입 꼬리를 웃을 듯 말 듯 씰룩였다.

착각인가 싶을 만큼 찰나 간이라 뭐라 말할 새도 없었다.

“그럼 또 뵙죠.”

오히려 그 말을 남기고 떠나는 제이나였다.

그녀가 가고 나서 레인이 슬쩍 다가오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 방금 그 말……. 격려 맞아요, 확실히.”

찬영은 자매 덕에 문득,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어지러움이 어느 정도 사라진 뒤 찬영은 다음을 또 기약하며 레인의 연구실을 떠났다. 하지만 발걸음이 가벼웠다. 일석이조라고 하면 맞을까.

아니, 그 이상이다.

마나 주입만을 위해 간 길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마나를 주입 받았을 뿐 아니라 두 마법사의 친화력을 높였다.

그로 인해 박스에 마법 관련 물품이 나오면 지체 없이 상의할 수 있는 조언자들이 생긴 셈.

거기에다가…….

탁.

어느새 방 안 침실에 털썩 앉은 찬영이 미뤄두었던 창들을 다시 열어 보았다.

‘이 모든 것들을 얻었지.’

플래티넘 박스과 갓피스 앨범의 등장이다. 갓피스 앨범을 먼저 띄우자 은테로 둘러진 작은 정사각형 위에 ‘?’글씨가 적혀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정사각형은 한 칸씩 나뉜 가로 한 열엔 총 백 칸이 있었고 세로는 끝이 안 보였다. 해서 이를 확대해 한눈에 보려 하자 순식간에 앉아 있던 공간이 바뀌었다.

‘뭐지?’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끼자마자 주위엔 어둠이 가득했다. 마치 우주 안에 있는 듯했다.

그 순간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바닥이 보였다.

‘설마……?’

찬영이 빠르게 빛을 따라 눈을 돌리자 어둡던 바닥 중 한 칸의 불빛이 번쩍 하고 들어왔다.

이어서 정사각형이 연달아 방에 불이 켜지듯 한 칸씩, 한 칸씩 빛이 들어왔다.

탁, 탁, 탁.

이어서 드넓게 펼쳐지기 시작한 빛들.

그건 끝이 안 보이는 갓피스의 앨범이었다.

그리고 찬영이 서 있는 가운데, 두 칸의 정사각형엔 찬영의 얼굴과 제이나의 얼굴이 ‘?’ 대신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나니 모든 게 명확해졌다.

‘?’는 아직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깨어나지 않은 비활성 갓피스들이리라. 그리고 얼굴이 들어와 있는 정사각형엔 활성화된 갓피스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 결국 이 앨범을 완성시키는 게.

‘베아트리체가 말했던 내가 할 일 중 하나…….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셀 수 없이 펼쳐진 수많은 비활성화 칸들을 보니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길인 게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길이 쉬웠던 적이 있긴 했던가?

하긴, 애초에 각성자의 길을 택할 때부터 각오한 일이다.

앨범에 무엇이 있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겠다.’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또 다른 보상이 될 건 당연했으니까, 이번 제이나의 경우처럼.

생각을 마친 찬영이 다시 방금 머물던 침실로 돌아왔다.

* * *

침실로 돌아온 찬영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당연히 플래티넘 박스였다. 그토록 기대했던 골드 이상의 박스, 과연 뭐가 나올지 설레기까지 했다.

‘개방.’

그의 의지가 실리자.

-플래티넘 10급 박스가 개봉되었습니다.

-잊혀진 권법가의 염왕권炎王拳을 획득하였습니다. 즉시 습득하시겠습니까?

찬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나 최초 플래티넘 박스는 기대에 부응했다.

드디어…….

‘새로운 이네이트!’

가볍게 몸이 떨렸다. 흥분감이 인 것이다. 각인 기술서로 처음 획득했던 섬뢰보만 해도…….

‘초인적인 이동 기술이었어.’

하지만 이번엔 그간 획득한 박스들 중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을 개봉해 얻게 된 각인 기술서다. 결코 그 가치가 낮을 리 없다.

‘고민?’

사치였다.

‘습득.’

그 생각이 일자마자 또 다른 창이 나타났다.

-염왕권의 습득으로 인해 염왕권에 담긴 스토리 체험이 시작됩니다. 스토리 체험으로 아이템에 깃든 영혼이 원하는 조건을 완수하면 아이템의 봉인된 힘이 개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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