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사실은 알고 있었다.
주입된 게 하운드의 심장이 아니란 것을.
그건 상세 데이터에 늘어난 마나 수치만 봐도 대략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사람들의 영약 평균 흡수율이 6%라고 해도 1,120에서 늘어난 수치가…….
‘너무 적어.’
늘어난 수치를 보았을 때 제이나가 말했던 진귀한 레어 수준의 영약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레인이 진실을 이실직고를 하고 나니 모든 조각이 맞아 떨어진다.
이러면 굳이 이 의문점을 물어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지, 선택하는 것만 남았을 뿐이었다.
찬영이 눈을 굴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레인을 바라보았다.
“이유가 뭡니까?”
우선 듣고 싶었다, 레인이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
“그건…….”
레인이 머뭇거리는 사이 제이나가 나섰다.
“저 때문이에요.”
찬영이 시선이 제이나를 향했다.
‘아, 그렇게 된 건가?’
이제야 감이 잡혔다.
“제이나 씨에게 넘겨주려 했던 거군요.”
“그래요. 제 동생은 제가 찬영 씨보다 이 영약의 흡수율이 높을 걸 확신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선택을 하게 된 건, 갓피스에게만 의존하다 실패했던 과거 알폰 대륙의 역사 때문이죠. 하지만…….”
제이나의 시선이 레인을 향했다.
“옳고 그름을 제외하더라도, 제 동생은 틀렸습니다.”
“무엇이?”
찬영의 반문에 제이나가 찬영의 앞에 흡수율이 쓰여 있는 이미지를 띄워 주었다.
“당신의 흡수율이에요.”
찬영의 눈가가 놀라움으로 씰룩였다.
“이 숫자는……?”
찬영은 흡수율 수치를 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 레인의 안목은 틀렸다, 그것도 확실하게.
83%.
찬영의 흡수율 수치였다.
“이게…… 흡수율?”
제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흡수율이 높을수록 마나 영약이 품은 마나를…….”
찬영이 뒷말을 대신했다.
“훨씬 많이 흡수하겠죠.”
침묵으로 그 말이 맞다고 동의하는 제이나.
찬영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에 떠 있는 상세 데이터를 다시 살펴보았다.
그사이 제이나가 설명을 덧붙였다.
“mp는 함유된 마나량을 가리킵니다. 방금 쓰인 영약의 mp는 220이죠. 그 수치의 83%가 흡수됐다고 보면 됩니다.”
찬영은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다시 상세 데이터를 살폈다.
182.6정도가 늘어난 마나.
220의 83%라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찬영이 한동안 침묵을 지키자 제이나가 다시금 운을 뗐다.
“실질적으로는 득이 되실 겁니다. 매직급 영약이기는 하지만, 부작용 없는 영약은 어느 등급이건 구하기 힘들죠.”
“그렇군요…….”
“예, 그럼 충분한 상황 설명이 된 것 같으니…….”
그 꼿꼿하던 제이나가 고개를 숙였다.
“동생의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한 마법 병단의 단장, 지휘자가 고갤 숙인다는 건 자존심 같은 건 잠시 접어 두었다는 이야기였다. 찬영은 조용히 제이나를 쳐다봤다. 물론 그녀의 말대로 전화위복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진실을 알고 나서의 일일 뿐이다. 만약 진실을 모르고 넘어갔다면?
‘진귀한 보물치고는 상세 데이터에서 늘어난 마나 수치의 폭이 너무 적었으니, 계속 의혹이 생겼겠지.’
아무리 6%의 흡수율이 평균이라고는 해도 말이다.
그러나 의혹은 의혹일 뿐 반박하기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노력, 시간 등이 들었을 터.
하지만 제이나의 등장으로 인해 지금 벌어진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하운드의 심장을 또 주입할 것을 생각하면…….
‘이 일은 행운에 속하겠지.’
그러나 레인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은 분명, 죄다.
그것도 큰 죄.
“오히려 제가 득을 보았으니 선처를 해달란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선처를 부탁한 건 그저 언니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결정은 여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부탁임에도 제이나는 비굴해 보이지 않았다.
그건 그녀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고개를 숙일지언정, 원칙을 고수하기에 찬영의 어떤 결정을 하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찬영 역시 고민에 빠졌다.
영주를 찾아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까?
‘그래, 분명 레인은 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이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신성 왕국 내부의 규율 혹은 영지의 법에 따라 정해질 터. 제이나는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할 테고, 혹시 모를 동생의 옥살이를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날 원망하겠지.’
제아무리 원칙주의자라도 가족에게 해를 가한 사람에게 좋은 마음을 품긴 어렵다.
설사 그게 동생이 잘못한 일이더라도.
그러니…….
“좋습니다.”
찬영의 생각은 신중했지만 그 결정은 빨랐다.
“이 일을 모두 덮어 두겠습니다. 단!”
누군가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같이 온다고 했었지. 아마 오늘 같은 일을 두고 말한 것일 테다. 찬영은 그들의 호감도를 올려주는 스텟인 존경심 +120을 떠올렸다. 평판은 내려가기는 쉽지만 올리기는 어렵다. 올리기 어려운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이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렸을 때, 주위 평판이 바뀌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제게 빚지신 겁니다, 두 분은.”
담담히 덧붙이는 찬영.
그제야 잔뜩 긴장해 움츠리고 있던 레인이 깊은 숨을 토해 내며 경직되어 있던 어깨를 조금 늘어트렸다.
하얗게 질렸던 얼굴이 조금 풀린 것 같다.
제이나도 마찬가지로 잔뜩 돌처럼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 풀렸다.
여전히 무표정이긴 했지만 경직된 것과 충분히 구분되었다. 레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릴 들으며 찬영이 말했다.
“아직 제 이야기가 끝난 게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의 칼자루는 여전히 찬영 손에 있었다.
찬영의 의중을 눈치 챈 제이나가 넌지시 물었다.
“빚을 졌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고 싶군요. 만약 제 역량 이상의 일을 부탁하시려거든, 차라리 제가 제 동생의 일을 영주님께…….”
만약을 우려하는 그녀를 보며 찬영은 한숨을 가볍게 쉬었다. 정말이지, 볼수록 꼿꼿한 대나무 같다.
‘이거 원…….’
이런 대쪽 같은 사람, 오랜만에 보네.
보통 대쪽같다는 말을 듣는 쪽은 내 쪽이었는데…….
볼을 긁적인 찬영이 말을 이었다.
“제이나 경이 뭘 우려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접어 두세요.”
“그렇습니까?”
“네.”
“그럼 그 빚이라는 건……?”
그녀의 물음에 찬영이 속내를 밝혔다.
“제가 원하는 건 단 하나, 두 분과 단발성 만남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썩 유쾌한 시작은 아니었지만.”
말을 잇는 찬영이 레인을 한 번 쳐다보자 레인이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얼른 숙였다.
이를 본 찬영이 다시 제이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이나 경의 말씀처럼 저는 갓피스이기 이전에 이방인이니까요. 이곳에 적응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제 노력만으로는 분명 부족합니다, 여러모로. 그래서 이곳에 적응할 기반이 좀 필요합니다.”
제이나가 반문했다.
“기반?”
“네, 기반. 어느 곳이든 사람이 제일 중요한 기반이니까요. 두 분이 저의 첫 기반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찬영이 레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게 이 일을 덮는 제 조건입니다. 응하실 겁니까?”
레인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참고 있던 게 터진 것이다.
“흐끅…… 흐끅…….”
아예 주저앉아 우는 그녀를 보며 찬영은 약간 당혹스러웠다. 울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그 생각을 하는 중에 제이나가 레인을 익숙히 토닥이며 말했다.
“잘 웁니다, 원래.”
“아, 그래요……?”
겸연쩍어 하는 찬영을 보며 제이나가 말했다.
“네.”
“그래서 제 제안은……?”
찬영이 다시 물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겠군요.”
제이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승낙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쳤다.
-존경심 조건 달성으로 ‘긍지’가 개방되었습니다.
-‘긍지’의 개방으로 인해 비공개 갓피스 앨범이 개방되었습니다.
-갓피스 앨범에 ‘긍지 -제이나.’ 합류합니다.
-갓피스 앨범의 최초 개방으로 플래티넘 박스 10급을 획득합니다.
-플래티넘 박스 최초 진입 보상으로 ‘스텟 농장’ 이 열립니다.
-스텟 농장의 최초 진입 보상으로 개방된 스텟에 한해 ALL +10 추가 상승합니다.
수없이 뜬 또 다른 보상 목록을 뒤에 둘 만큼, 제이나가 갓피스란 사실은 찬영을 강하게 자극시켰다.
‘뭐? 갓피스?’
그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모든 시간이 멎었다.
오로지 찬영 혼자만 숨 쉬고 있었다.
울고 있던 레인, 이를 다독이던 제이나, 나풀거리던 먼지, 가벼운 공기…… 모든 게 그대로 정지되었다.
그곳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찬영, 그 밖에 없었다.
‘대체 뭐지? 이건?’
갑자기 일어난 일이 잠깐 당황스럽긴 했지만 찬영의 눈빛이 이내 차분해졌다. 이미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연달아 나타난 창들로 충분히 납득이 되고도 남았다.
결국…….
‘제이나, 그녀가 갓피스 중 하나였다?’
베아트리체의 말처럼 갓피스는 사람, 물건 등 수많은 형태로 나타난다더니…….
그래, 그 말은 정확했다.
찬영이 굳어 버린 그녀를 바라보던 그때.
‘저게 뭐지?’
그녀와 찬영 사이에서 공간이 지퍼가 열리듯, 반으로 쩍 하고 갈라졌다.
동시에 쏟아지는 빛. 눈이 부셔 황급히 팔로 눈을 가려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리고 나타난 창.
-긍지의 전용 장비가 소환됩니다.
‘전용 장비?’
창을 보고 나서야 빛이 사그라졌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제대로 눈을 뜨자 찬영과 제이나 사이엔 흔해 빠진 흑갈색 지팡이 둥둥 떠 있었다.
광휘가 사라진 흑갈색 지팡이는 그리 특수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찬영에겐 그 안의 미증유의 힘이 보였다.
그는 열쇠였다,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가치 측정.’
탁.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 * *
찬영은 그도 모르게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소매로 닦으면서 쥐고 있던 지팡이의 상세 데이터를 살폈다.
-위그드라실의 뿌리를 가공한 지팡이 ‘툴챠.’
-가치 : 4,200
-긍지 전용
-효과 A: 마나 +1,400
-효과 B: 긍지의 광휘 (80% 확률로 감전, 5초간, 마나 700 소모)
-효과 C: ?(강화 시 개방 가능)
기함할 일이다.
영구적으로 마나가 1,400 수치나 증가한다니.
아니, 그것 말고도 다른 효과마저도 사기에 가까울 정도의 위력이다. 하지만 누구도 쓸 수 없다.
오로지…….
‘그녀만?’
주인이 있는 물건이 따로 있다는 말은, 오늘 같은 때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욕심이 들만도 하건만 찬영은 욕심 부릴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이미 그녀의 물건이 아니어도 찬영은 그녀를 통해 무수히 많은 보상들을 획득할 수 있게 개방되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얻지 못했을 일이겠지.’
오히려 그녀는 찬영에게 진짜 열쇠가 되어 준 것이다.
“그건…… 무슨?”
시간이 멈췄던 건지도 모르는 제이나는 찬영이 들고 있는 흑갈색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어디서 났는지, 갑자기 어떻게 나타난 건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팡이의 존재감을 여실히 느꼈다는 것.
‘대체 이 지팡이는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