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오래 기다리셨어요. 워낙 고가의 영약이라 신경을 많이 쓰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네요.”
볼을 긁적이는 그녀에게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감사 인사를 하는 중에 그녀가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이런 연구 성과들은 다 기록으로 쌓이는 거거든요. 최근 보이지 않았던 레어급 마나 영약을 다루는 건 사실, 제게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직접 취급해 보는 건 처음이라…….”
오히려 그녀의 대답에 찬영은 조금, 빚을 던 기분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 윈윈 게임을 한다는 게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이윽고 모든 장치가 연결된 마법진 위로 찬영이 올라섰다.
가운데 서자 그녀가 다가와 찬영의 배 주변에 촉수 같은 것들을 부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당부했다.
“사실 레어급 영약을 다루는 게 처음이라 어느 정도의 마나가 주입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주입되는 양이 많을수록 고통이 배가 되실 거예요. 조금 위험할 수도 있을 텐데 정말 괜찮으세요?”
걱정되는 눈치. 하지만 찬영은 그냥 씩 웃기만 했다.
두렵긴 하지만 그보단 설렘이 더하다.
‘최대치라…….’
과연, 얼마만큼의 마나가 늘어날까?
“전 준비됐습니다.”
찬영이 힘 있게 말했다.
준비되었단 찬영의 말이 끝나자, 레인은 유리관 안에서 찬영과 함께 섰다. 본래 그녀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마나의 주입이 끝나면 마법진의 가동을 멈추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갓피스님이 심장에 있는 마나를 얼마만큼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어.’
마나 주입은 그만큼 힘든 일 보통 주입 수치보다 버리는 수치가 더 많을 정도다.
그동안 쌓인 연구 실적만 봐도 그랬다.
100%의 흡수율을 보인 사람은 이제껏 아무도 없었다.
80%가 있긴 했다. 바로 그녀의 언니.
‘하지만 우리 언니는…….’
마나 친화력이 이미 초인적 수준이다.
마나의 개발이 시작되지 않았던 지구란 세상에서 일반 사람이 마나주입을 받는다면?
‘흡수율은 분명 낮겠지.’
그는 갓피스이기 이전에 이방인.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하운드의 심장이 너무 아깝다.
무려 레어 영약이질 않나?
부작용 없이 무려 1,600mp라는 수치를 갖고 있다.
그녀의 언니가 이를 주입받는다면 더 큰 선물이 될 텐데.
그래, 그럴 텐데.
그 생각 때문일까?
그녀는 명상하듯 눈을 감은 채 상황에 집중하고 있는 찬영을 빤히 바라봤다.
‘그가 갓피스라고 해서, 또 다시 세상의 운명을 그에게만 맡겨야 할까? 아니, 이젠 재능 있는 사람들이 나서야할 때야.’
갓피스들에게 기대는 건 이미 한 번 실패한 세상이다.
또 다시 기대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언니가 알면 정말 혼이 나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차라리 한 번 질끈 눈 감으면 돼.’
그만 모르면 된다.
‘그래, 잘한 일이야.’
사실 그녀는 하운드의 심장을 받기로 한 날부터 미리 계획을 수립해 두었다.
저 마나 주입 관은 지금, 하운드의 심장과 연결 된 게 아니다. 그냥 그렇게 보였을 뿐, 실질적으로 선이 연결된 건 하운드의 심장이 아니라 다른 영약이다.
다크벳이란 부작용 없는 영약이었다. 이것도 비싸긴 하지만 매직 등급 정도에 주입 mp는 220mp, 하운드의 심장의 1600mp와는 비교도 안 될 수치다. 하지만 레인은 이게 옳다고 생각했다. 능력 없는 갓피스보단 능력 있는 마법사에게 부여 하는 것, 이게…….
‘세상을 구원할 또 다른 길일 테니까.’
그녀는 자신의 손을 더럽히더라도 이게 옳은 길이라 확신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찬영은 담담히 레인에게 물어보았다.
“저, 하나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녀가 별 일도 아닌데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네? 어떤……?”
“이런 경우 주입에 의한 흡수는 온전히 되는 편입니까?”
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아뇨. 보통 6%도 채 되지 않아요. 레어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요? 그럼…….”
“네, 크게 증가된 느낌을 받으실 수 없을 수도 있어요. 각자 마나 친화력에 따른 신체 재량으로 흡수율이 정해져서요.”
“음……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찬영은 괜히 긴장이 됐다.
‘어느 정도 마나가 증가하려나?’
가능한 한 많이 되었으면 싶었다.
“시작 할게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느 순간부터 찬영에게 서서히 마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가뿐하다.
‘아직까진 괜찮은 것 같은데……?’
아플 거라고 당부했던 레인의 말이 거짓말 같을 정도.
하지만 방심하진 않았다.
레인이 당부의 말을 남긴 것만 봐도 이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걸 말해 줬다.
‘아니, 쉬울 리가 있나?’
신장 이식만 하더라도 그 부작용이 상당하다는데…….
하물며 몬스터에게서 채취한 심장을 통해 부여 받는 마나다.
‘만만치 않을 거야…… 곧…….’
그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배아래 쪽부터 시작된 열기가 차츰, 차츰 혈관을 타고 올라왔다.
누가 봐도 마나로 인한 열기가 틀림없다.
찬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를 악물었다.
‘이제부터다!’
서서히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웅, 웅, 웅.
덩달아 마나 주입관이 연결된 보관실도 진동이 오기 시작했다.
진동과 함께 보관실의 기록이 그녀의 눈앞에 마법 이미지로 투영됐다.
이미지엔 영약의 보존량과 주입되고 있는 수치, 주입된 후 찬영의 몸 안에 유지되는 유지량까지 숫자로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그 모든 걸 통틀어 계산된 ‘흡수율.’ 이 있었다.
흡수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1%, 2%.
10%로 가기까진 찬영의 입에선 신음성 한 번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10%가 넘자 찬영에게서도 가벼운 신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크흐…….”
지켜보던 레인은 이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10%라니…….’
끽해 봐야 이 영약도 10% 이내 정도 흡수되고 말거라고 생각했던 판단이 오산이었다.
‘갓피스로서의 능력 때문인 걸까?’
레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때 기척도 없이 다가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하운드가 아니야.”
화들짝 놀란 레인이 뒤로 물러났다.
“어, 언니?”
‘지금쯤 던전으로 갔어야 할 언니가 어떻게?’
당혹스러움, 의아함, 민망함이 뒤섞인 채 레인이 잘게 떨리는 눈빛으로 제이나를 쳐다봤다.
제이나도 말없이 레인을 바라보았다.
투영된 이미지만 보더라도 mp 수치가 턱 없이 낮다. 다른 영약인 것이다.
“하아…….”
짧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부여잡는 제이나. 그녀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한동안 가만히 서 있자, 레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어떻게 왔어?”
“출정일을 미뤘어. 내일 떠나. 그래서…….”
제이나가 찬영을 바라보았다.
직접 보러 왔다. 그가 가진 능력을 일부 테스트해 보기 위해. 마나 흡수율만 보더라도, 그가 갓피스로서 어느 정도 역량을 가졌는지 조금은 파악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이건…….
예상 못한 상황이다. 아니, 어쩌면 조금은 예상했지만, 레인이 설마 그렇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옳고 그름 정도야 구분할 줄 아는 사랑하는 동생이니까.
“언니, 언니만 눈 감으면 돼.”
“뭘……? 남의 물건을 빼앗으면서까지?”
“알아, 나도…… 내 방법이 틀리단 걸. 하지만 좋은 물건이 좋은 주인에게 가는 게 더 나은 대의를…….”
듣고 있던 제이나의 눈빛이 단호해졌다. 아니, 평소 레인에게만 보이는 따뜻한 눈빛이 아니다.
차갑다. 무척.
이를 본 레인은 짐작했다. 자신에게 이런 눈빛을 보일 땐 제이나가 정말 화가 났다는 거다.
그리고 역시.
“두 번 말 안 해. 정식으로 사과하고 하운드의 심장으로 주입해 줘.”
제이나의 목소리는 무척 날이 서 있었다.
레인이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멈출 수가 없었다.
“흑, 나는…… 나는 언니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 했어. 갓피스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잖아. 모든 게 끝장났을 때!”
제이나는 말없이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녀라고 왜 모를까? 레인이 어떤 뜻으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다 안다. 도움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이 다시 망하지 않게끔.
그러나…… 자신은 원칙주의자다. 옳지 않거나 룰이 틀리다면 고쳐야 성미가 풀린다. 이럴 때 레인 말대로 한 번만 딱 눈 감으면 좀 더 높은 서클의 마법사로 성장할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그래, 그럴 거다.’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못한다.
평생 오점 하나 남기지 않은 인생을 갓피스 때문에 남길 순 없다. 그러니까 제이나의 시선이 마나가 주입되는 찬영에게로 향했다.
‘당신, 운 좋았어.’
제이나는 동생을 혼내고서라도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울먹이며 흡수율을 확인하던 레인의 눈이 경악으로 일렁였다.
“……어 ……언니?”
제이나를 돌아보는 그녀.
제이나 역시도 이미지 창을 확인한 뒤, 다시 찬영을 쳐다봤다. 마나 심법 한 번 익혀 본 적 없는데다, 마나를 깨닫지 못한 세상에서 살던 이방인의 흡수율치고는, 아니 시드 대륙을 통틀어도 분명히 드문 수치다.
제이나조차 가볍게 눈가가 떨렸다.
‘갓피스는……갓피스라는 건가?’
그녀가 말없이 마른침을 삼켰다.
* * *
마나 주입이 끝난 찬영이 정신 차렸을 때.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제이나였다.
‘제이나?’
그녀가 왜? 지금쯤이면 던전에 가 있어야 할 그녀인데?
“이곳엔 어떻게……?”
찬영이 물었다.
“출정일을 미뤘어요.”
“저 때문에 말입니까?”
제이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대답을 대신했다.
찬영이 엷게 미소 지었다.
의도가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을 신경 쓰는 게 분명했다.
그 이유가 갓피스 때문이건 아니건 시간을 빼서 온 것 같은 호의로 느껴진 게 사실이었다.
“고맙습니다.”
찬영의 인사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몸은 어때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제 몸이 아닌 것같이 살짝 붕 떠 있는 느낌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견딜 만…….”
막 말을 잇던 찬영이 눈이 퉁퉁 부어 있는 레인을 보았다.
‘울었나?’
누가 봐도 서럽게 운 사람. 레인이 찬영의 시선을 힐끗, 보았다가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었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찬영이 다시 제이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라도?”
제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히 입을 열었다.
“레인.”
그러자 머뭇거리던 레인이 잔뜩 얼굴이 붉어져선 말했다.
“죄, 죄송해요……정말. 사실……. 방금 주입 받으신 건 하운드의 심장이 아니에요. 사실 더 낮은 등급의 영약을 대신 했어요…….”
그녀는 말을 마친 뒤 찬영을 쉽게 올려다보지 못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할까? 온통 그 생각뿐이다.
제이나 또한 그가 화를 낸다면 담담히 지켜볼 작정이었다.
분명, 누구라도 화를 내고 남을 상황이고 오히려 영주를 찾아가겠다고 말하면 일이 크게 번질 것이다. 물론 동생을 위해서 선처는 부탁해 봐야겠지만.
“그리 된 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