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근력을 늘렸던 것처럼 스스로 훈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뜻이었다. 새벽녘에 찬영이 훈련장에 나온 이유였다. 물론 몸이 완벽이 회복되었다곤 생각되지 않는다.
하나 베아트리체의 버프 덕분인지 컨디션이 하루 지날 때마다 훨씬 좋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과연…….’
베아트리체의 버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고무될 점은 그녀와의 영혼 교류가 1.2% 에서 4.8%까지 상승했다는 것.
아마…….
‘그때의 만남이 영향을 미쳤던 거겠지?’
찬영은 그 날을 떠올리며 새삼 % 수치에 주목했다.
4.8%에 이른 수치는 아직 별 다른 변화가 없긴 하지만 아직은 모를 일이다.
언젠가 다시 그녀를 보게 되고 % 수치가 상승한다면…….
‘다른 변화가 생길지도 몰라.’
추측이긴 하지만, 시스템은 늘 이유 없는 데이터를 늘어놓지 않아왔다.
그녀의 경우도 그럴 것이란 확신이 든다.
그러니까 오늘의 꾸준한 훈련이 다음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리라.
찬영이 발끝이 마나를 품고 이네이트를 발동했다.
레인을 만나기 전에 흠뻑, 땀을 쏟아 낼 작정이었다.
* * *
아진병원, 중환자실.
삐. 삐. 삐.
기계음과 함께 간헐적 호흡 소리조차도 쉬이 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죽어 가는 환자를 내려다보던 중년인은 차분히 돌아서서 병실 바깥으로 나왔다. 면회는 끝났다.
드륵.
중환자실 자동문이 열리고 중년인을 기다리고 있던 검은 양복의 남자가 다가왔다.
이를 본 중년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만 가지.”
“예. 국장님.”
G.N.의 전략기획국장 김진수. 그는 돌처럼 단단한 남자였다. 몸도, 마음도 모두.
한때 V.O.에서도 요직에 머물렀었던 그는 스카우트를 받아 전략기획국장에 오를 만큼, 작전 통제 실황을 주도하며 수많은 성과를 이뤄 냈다.
뒤늦게 투자를 받아 시작한 G.N.이 이제 V.O.의 아성에 맞설 만큼 명성이 오른 것도 그의 능력이 한 몫 했음이다.
일각에선 해외 유수의 펌의 투자자들이 그의 영입을 노린단 얘기가 심심찮게 들릴 정도였다. 대부분이 헛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니 더 놀라웠다. 그러니 그의 직함 정도면 1분 1초가 모두 돈으로 환산했을 때, 어마어마한 수준일 터.
그런데 그가 등장했다는 건 이 일이 그만큼 중요하단 얘기였다.
“블루 게이트로 모시겠습니다.”
비서가 그의 뒤를 자처하며 말했다.
김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가 볼 참이었다.
저벅, 저벅.
구둣발 소리만 들리던 가운데 김진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넨 이 일을 어떻게 보지?”
“그건…….”
비서는 쉽게 말을 못했다.
김진수는 그런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누가 이 일을 밝힐 수 있을까?
그저 결과적으로 보면 G.N.은 실패했고 V.O.는 성공했다는 정도다.
수많은 정예를 투입했건만…….
남은 건 대부분의 실종, 그리고 유일하게 돌아온 생존자는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도 못한 채.
하지만 반대로 V.O.와 노선을 별개로 했던 각성자는 달랐다.
세계와 세계를 잇는 접점이 되었다.
마치, G.N.과 V.O.를 구분해 블루 게이트가 끌어들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양찬영이라고 했던가……?”
그가 꽉 낀 넥타이를 힘 있게 풀면서 말했다.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한데, 서먼 홀이 열리기 전까진 대표할 만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홀에서 주방장이 되었다는 것 정도.”
김진수가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주방장?”
“예.”
“이해가 안 되는군. 하긴. 이해가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당연한 건가?”
혀를 찬 그가 방금 나온 중환자실을 돌아보았다.
마침 그가 접견하고 나온 중환자실에 환자의 보호자들이 향하고 있다.
속이 문드러질 것이다. 아들이 죽었으니…….
“보상은 확실히 하도록 해. 자식을 잃은 분들이다.”
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성과를 보이고픈 욕심에 굳이 V.O.를 제치고 애들을 투입시켰었다.
한데 이번엔 결과가 좋지 못했다.
“네.”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다시 발길을 돌리는 김진수였다.
그의 눈빛엔 예리함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양찬영이라.’
손을 놓지 못했던 바쁜 일들이 대부분 정리되었으니 그를 만날 때가 된 것 같다.
* * *
그 시각.
찬영은 하얏트 아카데미 초입에 서 있었다.
영주 성의 칠분지 일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정도니, 과연 그 규모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
‘와…….’
사실 아카데미라 해서, 커 봐야 평범한 대학교 정도의 건물이라고 예상했지만.
이건…….
‘웬만한 타운 수준인데?’
찬영은 여신을 본따 만든 조각품들을 지나며.
저벅, 저벅.
멀찍이 동그란 돔 형태의 건물들이 거대한 정원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걸 보았다.
건물 크기는 저마다 달랐지만 평균적으론 지구의 고등학교 건물 네 곳은 합쳐 놓은 정도로 컸다.
특히 건물 사이사이 자리 잡은 정원 옆엔 마차 세 대는 다닐 수 있는 길들이 서로 서로 연결되어 펼쳐져 있었고, 인파가 바글거렸다.
마법사, 병사, 공학자, 펌의 소속된 이방인들까지…….
그렇게 탁 트인 길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던 찬영의 등을 누군가가 툭 치고 지나갔다.
“아이고. 미안합니…….”
막 말을 잇던 콧수염 남자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갓피스?”
예복을 입고 있던 콧수염 남자는 찬영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찬영의 눈을 보고, 그의 정체를 파악한 것이다.
그러자 이를 들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찬영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눈 깜작할 새 쏟아지는 시선.
‘이런…….’
딱히 주목을 바란 건 아니었기에 얼른 시선을 피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하나 타운 수준의 하얏트 아카데미에서 레인을 찾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길을 한 열 번쯤 묻고 나서야 찬영은 한 마법 공학 연구소에 들어설 수 있었다.
연구소는 보안이 철저했다.
안에 진입하자 이곳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이 찬영을 입구 카운터로 안내해 줬다.
방문 목적을 말하자, 카운터에 있던 사용인이 찬영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방문증을 내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아, 네.”
방문증을 받자마자 사용인이 덧붙였다.
“잠시 기다리시면 레인 경께서 나오실 겁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시겠어요?”
“아닙니다. 그냥 기다리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십 분쯤 서성였을까?
멀찍이서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음?’
들려오는 소리에 찬영이 고개를 돌렸다.
멀리 테가 도은된 안경을 낀 아담한 체구의 주근깨가 있는 여자가 보였다.
문득 제이나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싸늘한 눈빛. 무표정. 등 차가운 인상.
하지만 레인은 그 반대 지점에 있는 매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활기찬 인상이었다.
“하아, 안녕하세요. 레인이라고 해요.”
뒷머리를 질끈 묶은 그녀는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인사를 건넸다. 곁에 있는 사람까지 좋아지게 만드는 웃음.
“양찬영입니다.”
가벼운 미소로 화답한 찬영.
“자, 그럼……?”
가자는 그녀의 시늉에 찬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와 발맞춰 걷기 시작했다.
“언니한테 부탁을 받고 깜짝 놀랐어요. 원래 사적인 부탁은 잘, 안 받아 주시는 분이거든요.”
“언……니요?”
찬영이 깜짝 놀라 다시 물었다.
‘둘이 자매라는 게 믿기지 않는데?’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되게 놀라시네요?”
“자매십니까?”
“네, 좀 안 닮았나요?”
홍조로 가득한 볼을 긁적이는 그녀.
“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조금 무례했나요?”
“하하. 아뇨. 익숙한 반응이라 괜찮아요. 저와 언니가 자매라고 하면 대부분 많은 분들이 놀라거든요.”
“아, 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녀의 말엔 확실히 동의했다.
그러는 사이 계단을 제법 올라간 두 사람은 삼층에 있는 연구실로 들어갔다.
연구실은 제법 컸다.
“제 개인 연구실이에요. 편히 앉으셔도 되요.”
먼저 들어간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어디에 앉으라는 거지?’
찬영은 주위를 둘러봤지만 딱히 앉을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잡동사니가 연구실에 잔뜩 쌓여 있어서 발 디딜 틈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찬영이 주저하며 못 앉고 있자 그녀가 연구실을 휙 둘러보더니 그제야 뭔가 깨닫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앉을 데가…….”
찬영도 조금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예, 없네요.”
“치워 놓는다는 게 정신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그녀가 고개를 재빨리 끄덕였다.
“네, 갓피스님.”
빙긋 웃는 그녀를 보며 찬영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양손을 비비며 잔뜩, 기대된다는 눈치를 보였다.
“그럼 한 번…… 보여 주시겠어요?”
찬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하운드의 심장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항아리가 소환되자 그녀가 감탄했다.
“오!”
소환을 마치자마자 그녀가 득달같이 항아리로 달려들었다.
“아차차!”
그러다 뭔가 깜빡한 듯 연구실을 가득 메운 물건들 사이에서 푸른 장갑을 찾아냈다.
“여기 있다.”
“혹시 그건 뭡니까?”
어깨 너머로 보던 찬영이 묻자 그녀가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아, 이건 마나 영약을 훼손하지 않게 쥘 수 있는 아티펙트예요. 마나를 함유한 물품은 예민한 게 많아서, 자칫 손상될 위험이 있거든요. 그럴 때 이런 물건을 사용하죠. 블루 시트라는 물건이에요.”
“아, 그렇군요.”
이들에 생활엔 마나를 활용한 공학품이 정말 많이 쓰였다.
또 다시 그들의 지혜에 감탄한 찬영은 반대편 유리벽을 보았다.
바깥에서 들여다보이는 안쪽 방, 바닥에는 푸른 선이 그어진 것 말고 특별한 게 없었다. 하지만 별 다른 설명 없이도 저 방의 목적을 알 것 같았다.
“혹시 저게 마법진입니까?”
레인이 심장을 항아리에 돌려놓으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마나 주입의 경우엔 마나 심법을 익히지 않아도 주입이 가능하거든요. 하지만……. 주입하고 나면 마나 심법을 익히시는 편이 나으실 거예요.”
찬영은 그 말을 알 것 같았다. 일전에 제이나도 같은 말을 하지 않았나.
‘마나 심법은 제어하는 데 큰 활용성이 있다고 했었지.’
레인이 설명하는 바와 같은 말일 것이다.
그럼…….
‘이번 일이 지나면 하루 빨리 마나 심법을 배워야겠어.’
몸도 제 컨디션으로 돌아오고 있는 마당에 더 지체할 필요는 없었다. 제이나가 말해 준대로 마나에 대한 기초 공부만 마치면 마나 심법을 익히기 위해 곧장 움직여야겠다.
혼자만의 생각도 잠깐, 찬영이 레인을 다시 쳐다봤다.
“이제 들어가도 될까요?”
“아, 네.”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환히 웃으면서 동의하자 찬영은 유리문을 열고 작은 유리방 안으로 들어섰다.
심플한 하얀 방에 들어간 찬영의 뒤로 그녀가 두 손에 가져온 하운드의 심장을 푸른 관구 형태의 보관실 안에 집어넣었다.
스륵.
“됐다.”
그때부터 그녀는 서둘러 움직였다.
청소기 호스 같은 관들을 이리 저리 연결하고 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마법진 위에 그것들을 맞물려 장착시켰다.
‘이런 게 마법 공학…….’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는 몰라도 마법진의 가동을 위해 준비하는 것일 터. 찬영은 구슬땀을 흘리는 그녀를 보면서 잠자코 기다렸다.
“후우…….”
한참이 지나고서야 빙긋 웃은 그녀가 찬영을 돌아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