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찬영은 인벤토리를 보았다.
그동안 묵혀 두었던 하운드의 심장이다.
분명 마법과 관련 된 아이템이 틀림없다.
적어도 제이나라면.
‘이게 어디에 쓰이는 건지 알고 있을지도 몰라.’
찬영은 그녀의 능력이 그만큼 가능하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걸 좀 봐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녀가 무심한 눈을 들어 대답했다.
“그러시죠.”
찬영은 인벤토리에서 지체 없이 볼품없는 항아리를 꺼냈다.
둘 사이의 볼품없는 항아리가 홀로그램 노이즈와 함께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제이나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소환 마법인가? 분명 마나가 느껴지긴 했지만 소환 마법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제이나였다.
“이게 뭐죠……?”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에 스쳐 간 한 줄기 호기심. 찬영도 이를 알아보았다.
“글쎄요, 저도 그걸 물어보고 싶었던 참입니다.”
대답과 함께 찬영이 덮여 있는 항아리 뚜껑을 들어 올렸다.
항아리 안에 찰랑이는 것이 제이나의 눈에 들어왔다.
5서클 마법사 앞에 하운드의 심장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찬영도 괜히 긴장됐다.
과연, 하운드의 심장은 어떻게 활용될까?
* * *
제이나가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찬영을 다시 쳐다봤다.
“이 물건에 대해 전혀 모르신단 말씀인 건가요?”
“네, 전혀요.”
“좋아요, 일단 살펴보죠.”
그녀가 주문을 외웠다.
-인비져블 핸드
마법 주문을 통해 흘러나온 마나가 투명한 손을 일으켰다.
2서클의 마법.
제이나의 손끝을 따라 움직인 투명한 손이 항아리 안에 있는 하운드의 심장을 가볍게 쥐어 꺼내 들었다.
항아리 안에 찰랑이는 마법 약품이 어떤 약품인지 몰라, 직접 손을 갖다 대지 않은 것이다.
“하운드의…… 심장?”
곧 심장을 확인하며 나직하게 읊조리는 그녀. 이를 들은 찬영의 눈에도 이채가 흘렀다.
‘그녀가 이 물건을 안다?’
혹시나 싶어 물어본 것이 유효한 모양이다. 찬영은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듣고 싶어 물었다.
“아십니까? 이것에 대해?”
“잠시만요.”
하운드의 심장에 집중한 듯 그녀가 한 손을 들어 찬영의 말을 막았다. 살펴볼 테니 조금만 있다 해달라는 이야기.
찬영은 납득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계속 쓰지 못할 물건이다. 못 기다릴 이유는 없다.
그새 심장을 세밀히 살핀 그녀가 운을 뗐다.
“심장의 혈관 대부분이 보존되어 있어요. 살아생전 흘러 들어와 있던 마나들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안에 머물러 저장되어 있단 얘기죠. 자세히 살펴봐야겠지만. 레어 수준…… 아니, 그 이상.”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그녀가 찬영을 힐끗 본 후 아, 하고 짧게 신음을 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찬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심장을 다시 항아리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마법사들은 마나를 함유한 물건들의 경우엔 순도, 마나량, 보존 상태 등에 따라 구분 짓습니다. 가장 하등품이 매직, 그리고 그 윗 단계가 노멀, 레어, 유니크 등이죠.”
그제야 그녀의 중얼거림이 이해가 되는 찬영이었다.
“그럼 레어는……?”
“굉장히 진귀한 편이죠. 그러니 유니크 상위 단계는 모르셔도 됩니다.”
“왜죠?”
찬영이 반문하자 그녀가 한마디로 일축했다.
“없으니까요.”
말을 마친 그녀가 이번엔 항아리 안에 찰랑이는 약품을 살폈다.
“솔직히 하운드의 심장을 이렇게 완벽히 보존한 채 마나 밀도를 응축시킨 가공품은 처음 봅니다. 누가 가공한 거죠?”
그녀의 눈에 호기심이 일렁였다. 찬영은 그 대답을 충족시켜 줄 수 있었다.
누가 만든 건지 뻔히 아니까.
“키란이 만든 물건입니다.”
대답을 해 놓고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키란을 과연 알까?
만약 안다면 시스템과 연관 있는 부분을 좀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군요. 누구죠?”
일말의 기대를 했기에 아쉬운 게 사실. 하지만 담담히 대답하는 찬영이었다.
“글쎄요, 모릅니다. 저에게도 이네이트처럼 각인 된 물건이니까요. 그러면서 막연히 알았을 뿐입니다.”
실제로도 그랬다.
로그인 박스는 각인되듯 오니까.
동시에 제이나가 물었다.
“아티펙트 소환과 같은 계열로 보면 되겠군요. 놀라운 일이야…….”
“네, 그런 셈이죠.”
말을 마친 찬영이 다시금 운을 뗐다.
아직 듣고 싶은 얘기는 듣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건 어디에 쓰이는 겁니까?”
그녀가 당연하게 대답했다.
“섭취하세요.”
“섭……취?”
“네, 하운드의 심장은 워하운드라는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진귀한 마법 영약이에요.”
“그럼 이게 섭취 가능한 영약이었단 얘깁니까?”
“맞아요, 영약 중에서도 레어에 해당하는 희귀한 물건이죠. 아직도 이게 남아 있을 줄은 몰랐군요.”
그녀는 항아리를 힐끗 내려다보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대륙의 붕괴 당시, 불티나게 팔려 구하려고 해도 못 구할 정도였죠. 심장 열 개만 팔아도 수도에 상단 하나는 차려도 될 정도였어요. 마나량 증가를 가져오는 물건인 데다가 섭취 시 부작용 전무.”
무심한 눈동자가 찬영을 향해 움직였다.
“추가로 몸 안의 마나량을 늘린다는 건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최대치가 상승한다는 얘기죠. 한 번 상승한 마나량 최대치는 영구적으로 유지됩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 완벽히 부합하죠.”
찬영은 충분히 동의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1서클 마법 한 번을 쓰던 몸이 두 번, 세 번을 쓸 수 있게 된단 얘기. 억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물건이다.
마나량 증가를 찾으면서 정작 등잔 밑이 어두웠던 셈이었다.
이제야 물건의 가치를 깨달은 찬영이 그녀를 그윽이 응시했다.
감탄이 나왔다. 값비싼 물건 앞에선 누구라도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오히려 물건을 깎아내려서 가로챌 의도를 가졌을 수도 있다.
마나량 증가를 가진 물품은 기공사든, 스킬러든, 기사든, 마법사든 모두 성장하는 데 좋은 기반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확한 기준을 말해 줬다.
그녀가 충고했다.
“절대 팔지 마시죠. 9서클에라도 이르지 않는 이상은.”
“예, 그럴 생각입니다. 한데 섭취하는 방법이 따로 있습니까? 그냥 삼키는 건 아닐 것 같은데요.”
“마나 주입용 마법진과 그에 맞는 공학 장비들이 갖춰져야 하죠. 하지만 저는 못 도와드립니다, 일이 많으니까.”
“아, 그렇습니까?”
그녀의 거절에 찬영이 그럼 어디로 가야 될까 고민하려던 찰나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신 내일쯤 하얏트 아카데미의 공학자 레인을 찾아가세요. 기꺼이 도와 줄 겁니다. 말해 두죠.”
아는 사람을 통해 선뜻 돕겠다 말하는 그녀가 찬영은 무척 놀라웠다.
“고맙습니다.”
“아뇨, 고마워 할 것 없습니다. 제 행동이 무례하다면 무례했을 일인데, 이를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간 것에 보답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겁니다.”
찬영의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그리 생각하신다면…….”
생각을 강요하진 않겠다는 말.
“그럼.”
말을 마친 그녀가 돌아섰다.
서로의 용건은 끝났다.
서서히 책장 사이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찬영은 다음 만남이 기대가 됐다.
‘다음번엔 더 놀랄 겁니다, 아마.’
……박스가 뭘 줄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찬영은 마나량 증가에 새로운 개안을 하며 짧은 수업을 마쳤다.
* * *
밤이 지나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쯤이 되어서야, 찬영은 마나 관련 기초 서적들에서 눈을 떼고 나왔다.
책들은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현실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이곳엔 원래 가능한 일들이었고 관련 사례들도 많이 보았다.
그중 하운드의 심장처럼 마나량을 증가할 수 있는 마나 영약들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설명과 그림이 함께 있어 보기 편했던 ‘영약이란 무엇인가.’, ‘영약,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서적을 살피며 있다 보니 벌써 밤이 찾아온 것이다.
찬영이 느긋하게 원래 머물던 방으로 향했다.
동그란 나침반 형태의 미니 맵 위에 걷고 있는 그를 가리키는 붉은 점이 반짝였다.
* * *
새로운 세계의 시간은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낮, 밤이 있고 24시간이 하루다.
자정이 되자 모든 마법 시계들이 새벽이 찾아온다는 걸 알렸다.
댕.
찬영이 앉아 있는 방에 있는 시계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로그인 캘린더가 2차 11회가 개방됐다. 다음 번 20회 보상 받기를 힐끗 본 후 창을 없앴다. 그러자 창들이 사라진 천장이 보였다. 천장을 보고 있자니 오늘도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다시 깨어나서 최근 겪게 된 일들은 모두 그랬다. 준비하고, 또 준비하다보니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일까?
영주의 우려처럼 정신병에 올 만큼 혼란스럽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이곳에 오며 모든 게 명확해졌다.’
갓피스 중 일인이었다는 걸 알았고, 로그인 캘린더의 2차가 시작되었으며, 왜 싸워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영주 성에 잔뜩 모여 있었다.
물론 낯선 문화를 접하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밥먹는 것, 생활하는 것……. 모두가 그랬다.
하나 영주가 했던 말처럼 살아 있기에 그게 가능하다.
그러니 내일도, 모레도 아마 오늘처럼 이렇게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끝이 보이게 될 것이다. 찬영은 레인과의 만남을 고대하면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마인드맵부터 장비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한 플레이 체험까지. 자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수두룩했다.
* * *
다음 날 새벽.
두어 시간 잠을 청한 찬영은 성에 있는 훈련장을 찾았다.
찬영이 제일 먼저 출근한 건지, 아직 훈련장엔 아무도 없었다.
뿌드득.
며칠 간 앉아만 있었더니 몸이 비명을 지른다.
몸을 격렬히 스트레칭 한 뒤.
시스테마를 시작했다.
휴거 아니, 몬스터로 명명된 괴물들과 싸워야 하는 마당이지만 매번 시스테마 훈련을 거르지 않는 건 스텟 때문이다.
훈련의 노력이 성과를 가져온다.
단순한 논리.
하지만 이 논리 덕에 찬영은 매번 단기 목표를 세울 수 있다.
근력 증가, 마나 등.
‘그러고 보니…….’
이번에 추가된 게 있다. 오디와의 싸움을 통해 획득한 민첩성 개방이었다.
‘반응 속도와 이동속도, 초감각 등에 영향을 받는다……?’
초감각이 뭘 뜻하는 진 모르겠지만 동물적 본능, 같은 걸 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첩성의 개방으로 인한 현재 상세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근력가치 : 29+(0)
-마나 가치 : 1,120(F)
-민첩성 가치 : 93(F)
근력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300% 근력 상승을 가져왔던 더블 피니시가 사라지자, 가져온 결과였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높은 가치의 장비를 얻었으니 후회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안주하는 건 금물이다. 근력 300% 로 인한 간극을 좁히려면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의 순수한 힘을 증가시켜야 한다.
그래야 효과가 배가 된다.
이와 반대로 민첩성의 경우 장비 착용을 하지 않더라도 93이란 수치를 가지게 됐다. 굉장히 높은 수치였다. 이동속도 등에 영향을 받는다니, 분명 그간 익힌 세 개의 이동 계열 이네이트가 민첩성 스텟에 영향을 준 게 틀림없었다.
확실했다.
이동 계열 이네이트의 숙련도가 상승한 것만 봐도 그랬다.
붉은 바람은 3%에서 7%로.
섬뢰보는 최초 숙련도 20%에서 그간의 전투로 차츰차츰 올라 29%로.
이동계열 스킬트리를 통해 획득하게 된 진공나찰보까지 6%에서 11%로 성장했다.
‘결국…….’
숙련도 상승이 곧 민첩성의 증가폭을 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