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미니 맵뿐만 아니라 존경심 +120의 수치가 늘어난 것도 이곳 사람들이 자신에게 호감을 품은 데 큰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영주의 호의에도 그것에 영향이 있었으리라.
하나 평판이란 건 앞뒤 동전과 같은 것,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존경이 올랐다면, 반대로 급격히 떨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로 인해 찬영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느끼는 중이었다.
공부를 해 두면 좀 더 오랫동안 좋은 평판을 유지하면서 그들과 좋은 공생 관계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을 가는 건 그 이유뿐이 아니다.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고자 마나 체계와 마나의 증가 사례 등을 같이 찾아볼 셈이었다.
저벅, 저벅.
찬영이 걸음을 멈췄다.
‘이곳인가?’
하얀 기둥을 지나 나타난 금테 문. 손잡이 위에 가볍게 손을 대며 다가가자 은은한 나무 냄새가 났다.
끼익.
저벅, 저벅.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큰 홀이 보였다.
그곳엔 아주 많은 책장이 있었다.
직사각형 거대한 홀 안에 일견 백 여 개는 훌쩍 넘어 보이는 책장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우물 정井 구조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홀 입구엔 기다란 책상이 반원처럼 둘러져, 도서관 사서로 보이는 다섯 정도가 그 안에서 자기 일을 하는 중이었다.
‘여기군.’
새로운 첫 걸음이 될 영주 성의 도서관. 이를 바라보는 찬영의 눈빛에도 결연함이 깃들었다.
‘과연, 마나를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찬영은 사서들에게 다가갔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바삐 움직이던 사서들이 지나가는 찬영에게 일제히 고개 숙였다. 그중 한 사람이 다가왔다.
“……무, 물론입죠. 갓피스님을 뵈어 영광입니다. 아도스라고 합니다.”
“양찬영입니다.”
통성명을 한 사람이 황급히 도서관 안내를 자청했다.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주님께서 모든 책을 열람하실 수 있게 각별히 신경 써 드리라 하명하셔서요.”
찬영은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먼저 안내를 맡아 주겠다고 한 게 고마웠다.
그렇지 않아도 사서에게 물어볼 게 있었으니까.
막 마나량 증가에 관련된 책을 물어보려 입을 할 때, 어디선가 나타난 푸른 로브의 여인이 사서 옆에 나타났다.
“괜찮으니 가보세요. 제가 안내해 드리죠.”
사서가 놀란 얼굴을 보였다.
“바쁘실 텐데 제이나 경께서 어찌…….”
“시간이 났어요.”
짧은 대답과 함께 그녀가 찬영을 돌아보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안내를 맡아도……?”
그녀의 질문에 찬영은 잠자코 있었다.
굉장히 예쁜 여자다. 남의 외모를 딱히 신경 쓰지 않는 찬영조차도 인상 깊게 느낄 만큼.
하지만 얼핏 가녀린 몸매와는 달리 그녀의 가치는 무려…….
‘28,000.’
영주를 능가했다. 찬영은 그녀가 더욱 궁금해졌다.
“누구십니까?”
“마법 병단의 단장입니다.”
“마법 병단이라면, 혹여 마법사이십니까?”
“네, 던전에 투입되는 마법 대대입니다. 연구하는 마법 공학자와는 별개의 일을 하죠.”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궁금한 게 다 풀린 건 아니다.
“그런 분이 왜 제 안내를 맡으시려는 건지 궁금하군요.”
던전에 투입되는 인원이라면 바쁠 게 분명했다. 이규복만 봐도 그랬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도서관으로 오시는 걸 보고 쫓아왔습니다.”
“저를요?”
“예.”
꽉 찬 돌직구다. 그녀는 돌려 말하는 걸 못하는 듯 얼음장같이 무심한 표정에다 대답도 대부분 짧게 축약했다.
찬영은 내심 미소 지었다.
빙빙 안 돌리고 필요한 말만 하는 대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찾아와 준 건 오히려 찬영 입장에서 득이 되면 됐지, 실은 아니었다.
실제로 마법사란 존재를 만나보니 물어볼 게 좀 많았기 때문이다.
“가시죠. 궁금한 건 걸어가면서 여쭤보겠습니다.”
안내의 허락.
“그러세요.”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 * *
저벅, 저벅.
도서관에 안 쪽 책장에 접어들면서 찬영이 먼저 운을 뗐다.
“마나량 증가에 관한 책을 찾고 있습니다. 안내 좀 부탁드릴게요.”
찬영의 질문이 의외였던지 제이나가 걷다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의외네요. 왜 쫓아왔는지부터 물어보실 줄 알았는데.”
“제가 갓피스이기 때문이겠죠. 이유야 그것 말곤 없지 않습니까?”
“네, 맞아요.”
제이나도 부정하지 않았다.
찬영이 재차 물었다.
“탐색입니까?”
“네, 탐색입니다.”
찬영인 헛웃음을 흘렸다. 직설적인 수준이 자신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았다.
‘아니, 더 하려나?’
찬영은 대놓고 탐색하러 왔다는 그녀에게 말했다.
“어떤 부분에서요?”
“그건 하나의 질문이면 됩니다. 질문 하나면 제 탐색도 끝이 나겠죠.”
“무엇을 물어볼 건지 궁금하네요.”
걸음을 멈춘 그녀가 책 한 권을 뽑아들어 건넸다.
“질문 먼저 할까요, 아님 안내를 먼저 할까요?”
찬영이 책을 받아들며 말했다.
“안내를 마치고 나서 질문하시죠, 실망하실 경우도 고려해야 하니까. 그럼 같이 있는 게 저나 제이나 경에게 모두 곤욕일 테니까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생길락 말락 하다 다시 사라졌다.
“신중하시군요.”
덧붙인 그녀에게 찬영이 ‘마나란 무엇인가.’ 책의 제목을 살피며 반문했다.
“그럼 탐색 시작입니까?”
“아마도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찬영이 제목을 읽은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이유가 있습니까?”
제이나에게서 그에 대한 대답이 나왔다.
“그 책을 고른 이유는…….”
한 번 말을 가다듬은 그녀가 말했다.
“이방인들은 마나에 대한 기초가 전무하다시피 하더군요. 인상적이다 싶은 건 주인에게만 반응하는 아티펙트 소환 정도였어요. 그런 건 처음 봤으니까.”
“장비 소환을 말하는 겁니까?”
“네, 이방인들이 그리 부르더군요.”
찬영은 새삼 놀랐다. 제이나 말에 따르면 장비 소환 말고는 대부분의 이네이트가 마법사들에 의해 충분히 계산된다는 뜻이었다.
시드 대륙의 마법 지식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짐작하게 했다.
이어서 그녀가 덧붙였다.
“마나량 증가를 말씀하셔서 드린 얘기이기도 해요. 마나 심법은 마나를 제어하고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련할수록 최대치가 계속 늘어나죠. 마나 심법이 가진 수준에 맞게요. 좋은 심법일수록 최대치의 늘어나는 폭이 높아요.”
“그럼 이걸 권해 주신 건…….”
“맞습니다. 마나에 대해 알고 난 후 마나심법을 익히라는 얘길 드리려는 거죠.”
“그렇군요…….”
“네, 하지만 그러려면 정해진 훈련을 받고 자격 요건에 들어야 하죠. 이방인들은 모두 그리 하고 있으니까.”
“어떤 훈련인가요?”
처음 듣는 얘기다. 하긴 이규복이 더 길게 말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으니 이런 얘긴 낯설기 짝이 없었다.
“많은 걸 모르시는군요.”
정곡이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찬영도 순순히 인정했다.
모르는 게 많다. 하지만 알아 가면 그만이다.
“네, 하지만 보시다시피 알아가려 노력 중이죠. 괜찮으시다면 계속 듣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제이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갓피스라며 오만하지 않고 태도가 공손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그는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갓피스라는 이름의 무게가 무겁다며 불만을 갖지도 않는다.
그저 스스로 할 일을 하나씩 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존경은 받지만 각자의 이해관계에 발목이 묶여 있던 시드 대륙의 갓피스들과는 달리, 그는 전혀 다른 존재인지도 몰랐다.
자유로우며 스스로 이 지옥을 디디고 서려는…….
찬영이 그녀의 그윽한 눈빛을 느끼며 말했다.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 눈빛이 무엇인지 금세 이해했다.
‘나에 대해 그녀 스스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 진 모르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며 묻고 답할 뿐……. 각자 원하는 뭔가를 서로에게 얻어 가면 그만이다.
마침내 제이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하나씩 말씀드리죠, 어려운 것도 아니니.”
그 직후 그녀가 얘기해 준 것에 따르면…….
현재 지구에서 넘어온 각성자들은 지구의 연합 정부와 베이콥 영주 사이에 맺은 협약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협약 아래 여러 유수의 펌들이 활동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새로운 시드 대륙에 적응하며 블루 게이트를 드나든다.
각 펌들은 협약 아래 각자의 노선들을 가고 있으며 마법 병단이나 기사단 등 마나 심법이나 검술을 전수할 수 있는 곳엔 이미 수련생이 넘쳐나고 있다고 했다. 언제 멸망 할지 모르는 판국에 비전의 마나 심법을 감출 필요 없다고 선언한 베이콥 영주의 덕택이었다.
한참 얘기를 잇던 제이나가 당부했다.
“단 마법사와 기사는 마나 심법의 체계가 달라요. 이방인들은 이를 마나 배열이라고 부르더군요.”
“많이 다릅니까?”
“네, 달라요. 간단히 말하자면……. 몸 안에 마나를 몸 안에 가둬서 사용하는 쪽은 기사, 마나가 거쳐 가는 그릇 정도로 사용하는 쪽은 마법사에요.
“그럼 아티펙트 소환은요?”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아요. 그건 이방인들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각인 같은 거예요. 아티펙트 마다 정해진 주인이 있는 거죠.”
찬영은 감탄했다. 그녀의 설명으로 이제껏 놀랍기만 하던 변화들이 충분히 설명되었다. 굳이 마나 기초 책을 권해 준 것 역시 확실히 이해가 됐다.
“그럼 말씀하신대로 마나부터 이해하는 게 먼저이겠군요.”
“그래요. 어차피 정식으로 마나 심법을 배우려면 거쳐야 하는 훈련 관문이니까요.”
그녀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질문은 끝났나요?”
“아뇨, 아직 많습니다. 마나 심법 이외에도 마나량을 늘릴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궁금하거든요.”
“모두 대답을 드릴 순 없어요. 방법은 많지만, 그 방법들은 기상천외하고 어렵죠. 그 이야기가 시작되면 모든 책을 다 뒤져야 할 거예요.”
“그럼……. 제 질문이 더 이어지려면 제이나 경과 두터운 교분이 있어야 가능해지겠군요.”
“그렇겠죠. 전 당신의 스승이 아니니까.”
“그럼 제 질문은 끝입니다.”
제이나가 말했다.
“제 차례군요.”
“네.”
찬영은 사실 조금 긴장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와의 인연을 좀 더 쌓고 싶었다. 그녀는 마법사.
그것도 단장이란 직함을 가진 뛰어난 마법사일게 틀림없었다. 그녀를 통해 배우고 들을 수 있는 지식 수많은 책들보다 더할 터.
‘반드시 흡족한 대답이 나올 수 있게 하겠어.’
기다림 끝에 제이나의 입술이 다시금 열렸다.
“질문은…….”
제이나가 눈을 들어 자기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찬영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끝났어요.”
찬영이 혹시, 하며 물었다.
“이 모든 게 질문이었던 겁니까?”
“네, 사람의 가치관은 말과 행동에 자연스레 묻어나오니까요.”
“그럼, 나름 선방인가요?”
“솔직히 말할까요?”
“네.”
“조금 놀랐습니다. 인상 깊을 정도로. 단 인상은 변하기 마련이죠. 후일, 당신의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가 걸어왔던 길을 돌아봤다.
“이제 가 봐야겠군요.”
헤어질 시간이 온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녀와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성장할 기회라고 느낀 탓이다.
“가끔 찾아 봬도 됩니까?”
그녀가 순순히 허락해 주었다.
“영주 성에 머무는 동안 만요. 하지만 드물죠. 대부분 던전에 있으니까.”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마법사라고 했으니 대부분의 시간을 던전 투입에 보낼 것이다.
‘그럼…….’
그녀와의 대화를 마무리 지을 마지막 질문을 꺼낼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