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이윽고.
쐐애액!
방 안 모든 문이 닫혀 있음에도 찬영의 머리칼을 휘날리게 할 만큼, 거센 바람이 방 안 가득 불어왔다.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 눈을 뜨려 했다.
하지만 눈 뜨기가 쉽지 않다.
방 안을 헤집을 정도의 광풍 때문.
쐐애액!
바람을 막으려 눈앞에 손을 올린 사이 정면에 검은색 바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삽시간에 모인 바람이 금세 빌의 형체를 이뤄갔다.
그제야 바람이 멈추기 시작했다.
찬영도 그러고 나서야 눈을 제대로 뜰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빌?’
바람이 만든 형상의 체구는 찬영의 절반 정도의 작은 키.
하지만 얼굴의 이목구비나 자세한 이미지는 복원되지 않아 그의 생전 생김새까지 알 순 없었다.
동시에 뜨는 창.
-빌이 소환되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의뢰하세요. 제작, 강화, 합성 택일. 제작의 경우 도안서만 있어도 제작 가능합니다. 단, 강화와 합성 시 회당 최대 5개까지 사용 가능합니다. 강화나 합성의 경우엔 수량 최대치까지 채우는 게 강화 확률이나 합성 품질 등에 이로운 역할을 합니다.
문구를 읽은 찬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마침내 때가 온 것이다. 찬영은 서둘러 가지고 있던 모든 장비를 내놓았다.
여왕의 총체, 오디의 극독이 맺힌 너클, 폴스의 샌들, 더블 피니시.
하나 여기까지는 총 네 개의 물건.
문구에 따르면 강화든 합성이든 한 번에 넣고 돌릴 수 있는 수량이 최대 다섯 개까지라고 했다.
빌도 다른 제작도구와 같은 룰이 일부 적용된 셈이었다.
이를 읽은 찬영은 합성의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해 굴레의 소드브레이커까지 활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총 다섯 개의 장비가 놓이고 난 뒤 빌을 똑바로 응시했다.
‘합성을 의뢰하겠어.’
찬영의 의지와 연결된 빌의 형상이 어그러지며 다시 바람으로 흩어졌다. 그 바람에 실린 다섯 개 장비가 서서히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곧 나선형으로 휘도는 바람결에 따라 다섯 개의 장비가 소용돌이치며 한데 모였다.
끼이익!
그럴수록 바람이 점점 더 거세졌고 방 안 모든 문이 덜커덩 거렸다.
쩌저적!
결국 일부 창문까지 박살 나며 창틀의 경첩까지 통째로 뜯겨져 나갔다.
하나 소란 속에도 찬영은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상황을 주시하고만 있었다. 아니, 실은 물러나지 못했다.
검은빛 바람이 찬영의 발끝을 타고 양손에 몰려들어 넝쿨처럼 그를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눈이 휘둥그레진 찬영의 눈앞에 검은빛 바람이 양손에 이어 두 팔꿈치까지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게 완벽히 제 형체를 갖췄을 때 여러 개의 창이 나타났다.
-빌의 합성이 끝났습니다. 1회 소환 사용권이 소멸됩니다. 가진 장비 중 최고 장비들을 건넨 당신의 신뢰에 빌이 흡족해합니다. 장인의 흡족함으로 인해 기존 결과물보다 2배 높은 가치의 결과물이 완성되고, 추가로 +1 강화됩니다.
그 창과 함께 찬영의 전부를 내건 도전은 성공적인 결과물을 가져왔다.
왼쪽 팔목에 착용되어 좌측 어깨선까지 덮어 버린 견갑과 팔꿈치를 타고 연결된 검붉은 빛의 건틀릿과 오른쪽 팔목에 부착되어 오른손을 전부 감싸 버린 푸른빛의 건틀릿을.
이 두 개의 건틀릿은 예술이 따로 없었다.
사실 왼쪽 건틀릿은 건틀릿이라 보기도 힘들었다.
왼쪽 팔목을 타고 어깨를 둥글게 보호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깨를 보호하는 견갑과 건틀릿의 합성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음, 이건?’
검붉은 견갑 위엔 빌이 새긴 독특한 음각이 있다. 무슨 글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힘 있는 필기체로 새겨져 있어, 희귀 맞춤형 장비란 느낌이 들었다. 그건 푸른 건틀릿과 이어진 철권의 손등 위도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어깨와 팔목까지 내려오는 라인의 건틀릿은 마치 화염이 팔에 일렁이다가 그대로 굳어 버린 듯 했고, 푸른 건틀릿도 주먹을 쥘 때 손등 관절 하나, 하나가 두텁고 견고하면서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그 위에는 은이 함께 뒤섞여 있는 것인지 슬쩍 움직일 때마 광택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시스템이 내주는 보상들은 이렇게 하나같이 완벽하고 놀랍다.
처음 여왕의 총체를 맞이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비가 낯설고 차가웠지만 한 편으로는 기대감이 넘쳤다.
취익.
손을 움직이자 물샐 틈 없이 맞물려 있는 장치들이 공기 바람을 뿜어내며 용의 비늘처럼 움직였다.
팔목을 좌우로 움직이자 겉을 둘러싸고 있는 두 개의 건틀릿은 두 팔의 방향 전환에 가장 적합한 상태를 보조했다.
그래서인지 착용감도 좋다.
착용된 게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럽고, 손의 일부 같았다.
‘여러모로 마음에 드네.’
그렇게 만족해하며 푸른빛의 건틀릿을 내려다보았다.
나타나는 상세 데이터는…….
-빌의 스물한 번째 역작
-스툼 +1.
-세트 효과 : 빌의 스물한 번째 역작 모두 보유 시 폭렬爆裂 사용 가능.
-가치 : 6,700.
효과 A: 에어 펀치, 마나 150 소모 시 고속 발진 시속 300km 2초간 가능 (초고속 발진시 방향 전환 불가능).
효과 B: 마나 100 소모 시, 1km 이내 목표 지점에 반경 10m 그래비티 필드 생성. 단, 필드 유지 시간 3초. 3초간 속박 가능.
효과 C: 스툼 브레이크 발동 가능.
추가 효과 : ? (강화 시 개방)
이를 쭉 읽어 본 찬영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허공에 쭉 떠 있는 체공 유지는 사라졌지만 그 밖의 활용도 높은 기술이 생겼다.
거기에다…….
‘세트 장비일 줄이야.’
짝이 맞는 또 다른 세트 장비가 있을 것이란 사실은 빌의 제작 도구를 처음 만들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또 다른 세트 장비를 보유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불어 이 두 개의 건틀릿엔 세트 장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 능력까지 추가되어 있었다.
굉장히 흡족하다.
어서 반대편 건틀릿도 확인해 보고 싶다.
서둘러 왼쪽 어깨를 타고 팔목을 뒤덮은 검붉은 건틀릿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어서 변경된 상세 데이터.
-빌의 스물한 번째 역작
-헬레 +1
-세트 효과 : 빌의 스물한 번째 역작 모두 보유 시 폭렬爆裂 사용 가능
-가치 : 6,700
효과 A: 포이즌 포그 발사 시 반경 15m 중독 시킬 수 있다. 단, 독 저항력이 높을수록 효과가 감소한다.
효과 B: 서클 번, 마나 130 소모 시 일직선상 50m까지 화염 적중 가능.
추가 효과 : ? (강화 시 개방)
이를 빠르게 살펴보자 두 번째 건틀릿도 첫 번째 건틀릿에 비해 전혀 못함이 없었다.
오히려 공격 활용 면에선 첫 번째 건틀릿을 압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독과 화염이라…….
두 가지 기술을 한 번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또 다른 공격 패턴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빌이 내어 준 선물 같은 결과물이었다.
그러니 그를 소환해 모든 장비를 쏟아부은 건 틀림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장비의 성장은 생존력과 결부된다.
빌의 손이 닿은 이 두 개의 장비로 인해 찬영은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치의 공격 패턴과 공격력을 보유하게 된 셈이었다.
이는 앞으로의 전투에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벌써 몸이 근질거린다. 하지만 중독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 괜한 무리로 회복 시간을 더디게 할 순 없다. 그렇다고 시간을 그냥 축내는 건 썩 내키지 않는다.
이럴 땐.
‘플레이 체험이 최고인데……. 장비엔 통용 안 되려나?’
하고 아쉬워하던 그 때, 눈앞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창의 문구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치 합산 10,000 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로 인해 획득한 아이템에 한해 플레이 체험이 개방됩니다.
‘그새 업그레이드 된 건가?’
섬뢰보 때부터 플레이 체험의 확장은 슬슬, 조짐을 보여 왔다. 장비가 늘어나고 그 활용도가 복잡해질수록 플레이 체험의 활용도가 필요하다는 걸 시스템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아니, 내게 필요한 걸 예측한 것이겠지.’
아무튼 기다렸던 바였다. 하루 종일 주어진 장비를 활용하는 연습에 매진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내일 찾아올 2차 로그인 보상 10회를 기다리기엔 가장 효율적이고 완벽한 기다림이었다.
곧 찬영이 앉아 있던 침대 위가 낯선 풍경으로 바뀌었다.
다음 날이 찾아왔다.
플레이 체험을 하며 여러 공격 패턴을 연구하다 보니 막상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플레이 체험은 정말……. 놀라웠다.’
그럴 만도 한 게 두 개의 건틀릿은 플레이 체험 안에서 상상 이상의 활용성을 지니고 있었다. 위력, 활용성,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활동성까지 어느 것 하나 이전의 장비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다.
괜히 가치가 6,000 이상을 넘은 장비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훈련을 겪으며 아쉬운 점도 확인했다. 플레이 체험의 경우에는 힘을 무한정 사용할 수 있다. 마나 등의 제약이 없는 것이다.
하나 현실 전투에 대입했을 땐? 마나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날 터. 현재 마나 수치는 1,120이었다. 920이었던 이전보다는 200 정도 늘어난 수치다.
오디와의 전투 시 사용했던 이동 계열 이네이트들의 숙련도가 높아진 게 마나의 증가도 가져온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마나량은 여전히 부족하다.
1,120으로는 장비의 부차적인 효과들을 몇 번 사용한 후에 금세 밑 빠진 독 신세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세트 기술 ‘폭렬’은 가진 마나를 일제히 소모시켜야 한다. 물론 마나량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이 될 것 같긴 한데, 마나 소비가 너무 크다.
한 번의 공격에 모든 마나를 전부 소모하기 때문에 정말 위험한 순간이 아니라면 사용하고 싶지 않다.
‘산 넘어 산이군.’
오디까지 제거한 무력이지만 여전히 성장해야 할 길은 무척 길어 보였다.
그러나 괜찮다.
길이 보인다는 건 앞으로도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말이었다.
부족한 마나는 이네이트의 훈련을 포함해, 증가할 다른 방법을 찾아가면 그만이다.
오히려 부족한 게 보이는 것에 훨씬 단단히 의지를 다지게 된 찬영이었다.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해나가면 돼.’
먼저 다시 시작된 캘린더부터….
찬영이 눈을 돌렸다.
벌써 10회 보상 받기까지 진행된 2차 로그인 캘린더가 보인다.
‘얼마 만에 얻는 로그인 캘린더 보상인지 모르겠네. 그럼 시작해 보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보상 받기를 이어갔다.
-2차 로그인 캘린더 10회 보상 받기가 완료되었습니다. 10회 보상으로…….
뭐가 나올까 싶어 찬영의 눈이 잠깐 크게 뜨이던 그때, 다음 창이 나타났다.
-키란의 볼품없는 항아리를 획득했습니다.
-가치 : 940
‘볼품없는 항아리? 박스면 박스지 대체 항아리는 뭐지?’
의아해 하는 사이 연관 창이 계속 떴다.
-볼품없는 항아리가 찰랑입니다. 가공되지 않은 하운드의 심장이 마법 약물에 잠겨 있습니다. 복용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내용을 읽어 보니 당장 복용할 수 있단 물품이란 얘기인데
더불어 이런 복용류의 아이템엔 플레이 체험 대입이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래서일까? 쉽게 내키진 않았다.
시스템이 다양한 보상과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긴 하지만 영문도 모르는 물품을 덥석 입 안에 넣을 순 없다.
‘먼저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부터 찾아봐야겠어.’
어떻게 쓰일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보상은 그냥 준 게 아니야.’
어딘가에 쓰임새가 있을 터.
‘마법 약물과 관련이 있다고 하니 알폰 영지 내에서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차차 알아 가야겠다.
그나저나…….
‘이거 배상을 해야 될 것 같은데.’
할 일에 몰입한 나머지 신경 쓰지 못한 것들이 보인 것이다.
찬영은 뜯겨져 나간 창문을 보며 멋쩍게 볼만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