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32화 (32/248)

# 32

질문을 듣고 난 뒤 찬영은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인벤토리 창에서 알 수 없는 마정석을 꺼내려 했다.

헌데…….

‘없다?’

인벤토리 창을 아무리 뒤져 봐도 알 수 없는 마정석은 없었다.

어쩌면.

‘오디를 깨우는 열쇠처럼 쓰이자 사라진 건가?’

그 생각이 아니면 달리, 알 수 없는 마정석이 사라진 근거를 뒷받침할 만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흐음.’

그로 인해 찬영은 그냥 말로써 직접 겪은 상황을 설명하기로 했다.

오디와의 싸움, 그리고 일어나 보니 펼쳐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언급이었다.

긴 싸움이었으나 말로 표현하니 몇 마디 되지 않았다.

모든 걸 듣고 난 영주의 표정이 묘했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이기도 했다.

영주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럼 대륙의 복원이 몬스터의 제거로 시작된다는 이야기인가? 결국 우리의 재건은 자네의 손으로 시작된 것이군.”

시드 대륙은 휴거를 몬스터로 불렀다.

이를 이해한 찬영이 곧장 대답했다.

“예, 제가 밝혀 낸 것에 따르면……그렇습니다.”

“허면 이미 몬스터 토벌을 시작한 우린…… 대륙의 재건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 거대한 땅을 우리 손으로 재건할 수 있다니!”

주먹을 움켜쥔 영주의 눈동자엔 순수한 열정이 가득했다.

이어서 그가 찬영을 뜨겁게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것 또한 이 날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닌가 싶군. 내, 자네에게 보여 주고 싶은 물건이 있네.”

영주의 눈빛엔 기대감이 한껏 올라와 있었다.

찬영과 이규복이 서로를 쳐다봤다.

대체 그는 뭘 보여 주려는 것일까?

* * *

베이콥 영주는 이규복을 방에 두고 찬영과 둘이서만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면서 복도 옆에는 초상화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베이콥 영주는 그 초상화들이 자신의 선대들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한데 얼마 걷지 않아 영주가 복도 한가운데 멈춰 섰다.

그 직후 영주의 품속에서 빠져나온 열쇠가 구멍 하나 없던 벽 안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벽 일부가 환영처럼 일렁이더니.

숨겨져 있던 계단이 드러났다.

‘마법?’

뒤에서 지켜보던 찬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이미 스킬러들의 스킬을 통해 마법은 충분히 보아왔다.

하지만 볼 때마다 신기한 게 사실이다.

영주가 뒤를 돌아보았다.

“신기한가?”

“예,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그럴 법하네. 5서클 환영 마법이란 게 흔하진 않지. 아, 5서클이란 건 우리 세상의 마법 체계를 의미하네. 자넨 생소하겠지만.”

고개를 끄덕인 찬영은 조만간 이곳의 정보들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좀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며 차분히 영주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다음 두 개의 마법 관문들을 지나친 두 사람은 여러 개의 석실들이 쭉 도열되어 있는 거대한 대전에 당도했다.

말을 탄 기사들이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장엄한 형태의 벽화가 드넓게 새겨진 대전에는 여러 개의 석실 문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리 잡고 있었다.

동시에 대전 가운데 멈춰 선 영주가 뒷짐을 진 자세 그대로 말했다.

“환영하네. 베이콥 가의 무덤 안에 온 것을.”

찬영은 깜짝 놀랐다. 그의 말 그대로라면 이곳은 공동묘지나 다름없었으니까.

“절 어째서 이곳에……?”

“데려 왔는가……. 이 말이겠지.”

“예.”

베이콥 가의 무덤에 도착하니 찬영은 이제 영주의 의중이 궁금했다.

‘그가 주려는 물건이 대체 무엇이기에? 조상의 묘까지 와야 한다는 걸까?’

영주가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그 설명을 하려면 이곳 석실엔 가문을 이끌어온 선대 영주님들의 시신이 마법을 통해 보존되어 계시다는 걸 알아야 하네. 물론 이 안엔 그분들께서 남기신 가보들도 함께 있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주의 눈동자가 근엄해졌다.

“자넨 그 가보 중 하나를 획득하게 될 걸세.”

다짜고짜 가문의 소중한 물건을 넘기겠단 영주의 말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찬영이었다.

‘차라리 쓸모 있는 물건이라면 영주가 직접 쓰는 게 나을 텐데. 어째서?’

그런 생각에 이른 순간.

영주가 입을 다시 열었다.

“내 조상 중 28대 영주께서는 한때 갓피스와 깊은 연을 맺으신 적이 있지. 갓피스는 그분의 죽음에 슬퍼하며 스스로의 혼이 담긴 물건을 내놓았다고 전해지네. 그리고 그 물건은 생전 어떤 영주도 사용하지 못했지. 나 또한 이제껏 갓피스와 연을 맺은 적이 없어 이 물건을 내놓지 못했네만…….”

영주가 한 석실을 그윽이 바라보며 덧붙였다.

“이젠 때가 된 것 같군. 어떤 보물도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지 못 하면 그 빛을 완벽히 내지 못 하네. 자네라면 가능하지 않겠나?”

찬영은 잠자코 영주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그의 가보였다.

그리고 그 가보를 받는다는 건 그의 의지를 어깨 위에 하나 더 올린다는 뜻.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잠시 고민이 됐다.

“제가 정말 마땅한 주인이 될 수 있다 보십니까?”

영주가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아니, 그렇지 않네. 난 자네를 잘 모르지. 그저 자네가 갓피스라는 것 외에는……. 그래서 자네의 그릇을 쉽게 판별할 수 없네. 하지만 기대 쯤은 걸어 보고 싶군.”

“기대…….”

“그렇다네. 이것은 나의 일말의 기대라네. 그대가 갓피스라는 걸 발견하고 깨어난 그대가 알폰의 성녀의 목소릴 들었다고 말했던 바로 그 순간!”

영주의 눈빛에 열망이 실렸다.

꿈처럼 느껴졌던 다시 살아 보겠다 발버둥치는 대륙 재건에 대한 열망.

그는 기대하고 싶었고 희망의 불을 지피고 싶었던 것이다.

눈을 내리 깔았던 찬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영주를 올려다보았다. 마주한 그의 눈이 보였다.

그래, 그는 막연하나 ‘기대’란 것에 모든 걸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럼 자신은?

살아남고자 어떤 각오가 되어 있지?

‘그의 가보가 주는 마음의 무게조차 견디지 못할 거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찬영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꾹꾹 눌러 담아 입을 열었다.

“영주님의 뜻,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대답, 기다렸노라. 갓피스여.”

드르륵!

동시에 방금 전 영주의 시선이 향했었던 석실 문이 찬영을 향해 열리며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찬영은 영주를 뒤에 두고 그 빛을 쫓았다.

다가갈수록 서서히 잦아드는 빛.

그리고 손끝이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구릿빛 나무 상자에 닿은 그 순간.

나무 상자가 제멋대로 덜컥 열리고 그 안에 감춰져 있던 검은빛 팔찌가 찬영을 향해 날아와 손바닥 안에 스며들어갔다.

이어서 눈앞에 띄워지는 창.

-베일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대장장이 베일의 흔적을 통해 분해 Lv. 1을 습득하였습니다.

-분해 Lv. 1은 가치 측정 30,000 이하의 아이템 분해가 가능합니다.

아이템 분해를 통해선 랜덤 재료가 획득되며 통합 분해는 1회당 10개까지 가능합니다.

획득되는 랜덤 재료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흔적 흡수 최초 업적 달성하였습니다. 최초 업적 보상으로 베일의 자손이자 한때 대륙 10대 대장장이 중 한 사람이었던 빌의 1회 소환 사용권이 주어집니다.

사용권 사용 시 본인이 지닌 아이템에 국한되어 가치 40,000 이하의 아이템 제작 등을 청탁할 수 있습니다. 단, 결과물은 빌의 마음입니다.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그 창을 직면하고 나서야 빛나고 있던 빛들이 완전히 소멸되었다.

찬영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노, 놀랍다.’

손바닥을 내려다보자 아까 손 안에 빨려 들어갔던 검은색 팔찌의 형체는 보이지도 않았다.

완전히 흡수된 것이다.

마술처럼.

심지어 빌이란 사람이 대륙 10대 대장장이란 것까지 덤으로 알게 되고 1회를 임시 소환할 수 있게 됐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대단한 일이다.

“놀랍군. 정말 놀라워.”

한참 경악하고 있는데 들려오는 영주의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영주는 보석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눈을 반짝였다. 흥분한 눈치였다.

영주가 중얼거렸다.

“전대 갓피스의 물건이 후대의 갓피스에게 전해진다, 이건가?”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찬영 역시 이 기이한 현상에 더 없이 기뻤다.

지금의 상황을 대입해 봤을 때 대륙, 혹은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을 다른 갓피스의 물건들이 찬영에게 추가적인 힘을 보태 준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하던 찰나, 영주의 질문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그럼 흡수된 후 어떤 변화가 있나? 힘이 용솟음친다거나, 그런?”

찬영은 대답 대신 볼을 긁적였다.

아이템 분해를 어떻게 설명할까 싶었다. 고민하고 있을 때 영주가 다시 말했다.

“아니야, 됐네. 설명은 필요 없지. 후일 자네의 명성이 내 영지에 울려 퍼질 때 이 날을 떠올리며 뿌듯해하면 될 테니.”

영주는 그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자, 이제 나가세. 영면하신 선조들께 충분히 무례를 범했으니. 그리고…….”

그는 먼저 걸어가며 껄껄 웃었다.

“몸이 낫는 데로 채비하게. 자네가 섭렵해야 할 던전은 저 멀리까지 수두룩하다네.”

한동안 찬영이 서 있는 대전 안에 영주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 * *

무덤을 다녀온 찬영이 방으로 다시 돌아왔을 땐 이규복은 자리에 없었다.

대신 쪽지 한 장만 침상 옆 탁자 위에 펄럭였다.

-급한 일이 있어 가봅니다. 내일쯤 도착할 거예요. 슬슬, 몸 만드세요. 투입되어야 할 던전이 수두룩하거든요.

영주와 똑같은 얘기를 하는 이규복이다.

여러 사람이 이리도 채근하니 한시라도 바삐, 훈련을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전에…….’

중요한 일이 남았다.

찬영은 얼른 침대 위에 올라가 앉았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인벤토리 창을 띄우는 것. 그 후에는 먼저 쌓아 뒀던 부산물들을 빠르게 정리해갔다.

제일 먼저 오디의 보상부터 정리해갔다.

먼저 흔적 (1)이라 명명됐던 보상부터였다.

이를 통해 획득한 건 나침반이었다. 한데 방위를 가리키는 뾰족한 철침이 한 방향만 가리키고 있었다.

의아스럽긴 했으나 확실한 건…….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게 틀림없어.’

오디가 남긴 게 뭔지는 몰라도 몸이 완벽히 준비되면 홀로 나침반을 따라 가 봐야겠다 싶었다.

‘다음은.’

새로운 세상에 접어들면서 잡은 휴거들로 인해 획득한 보상이었다.

먼저 여러 업적들을 통해 획득한 골드 6급 고정 박스 한 개와 실버 3급에서 골드 8급까지 얻을 수 있는 랜덤 박스 한 개.

추가로 가시 굴레를 잡으면서 추가된 가치 920의 굴레의 소드브레이커라는 칼과 블루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까지 싸웠던 모든 휴거들의 신체 일부들을 포함한 잡템들이 있었다.

대략 가치 40에서 180 사이의 잡템들.

그러나 잡템을 포함한 박스들은 모두 뒤로 미뤄 두었다.

잡템이야 강화 확률을 올리는 방법이나 아니면 언제 필요한 재료가 될지 모르는 터라 일단 두기로 했고, 박스는 박스 조합이 가능해진 이후로 박스가 다섯 개 획득될 때까지는 모아 둘 참이었다.

얼마 전에도 상위 박스의 만족감을 충분히 맛봤으니 그 선택은 당연했다.

현재 박스는 두 개, 그러니 앞으로 세 개만 모으면 된다.

‘좋아, 그럼 이제는…….’

찬영이 인벤토리 창에서 시선을 옮겨 이 먼 세계까지 인도할 수 있게 도와줬던 장비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놀라운 것들이다.

날렵한 이동 능력을 보태 주었던 여왕의 총체, 폴스의 샌들, 그리고 강력한 원거리 공격과 근접 공격에서 한 번도 부족함이 없었던 완벽히 강화된 더블 피니시.

추가로 이번 오디 사냥을 통해 획득하게 된 최초 진입 보상 중 유일한 장비 아이템.

가치 2,230의 ‘오디의 극독이 맺힌 너클’까지.

어느 것 하나 빼고 싶지 않은 필수적인 장비였다.

하지만 찬영은 이번에 획득한 기회를 굳이 묵혀 두고 싶지 않았다.

당장 가진 최고의 제작 도구라고 해 봐야 가치 700 이하의 합성, 혹은 강화만 가능하다.

그러나 빌의 1회 소환 사용권은 다르다.

가진 바 모든 장비를 단 번에 쏟아부으면 그 이상의 아이템을 획득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실패한 망작이 나올까 두렵다.

하지만 이미 빌의 1회 소환권을 획득한 순간부터…….

‘내 결정은 끝났어.’

찬영의 의지가 빌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