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30화 (30/248)

# 30

뎅! 뎅!

갑자기 종이 울려 퍼졌다.

그건 작은 신전에서 나는 종소리였다.

찬영이 종소리에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주위에 보이는 것들. 익숙한 예배당의 광경이다.

‘가만, 여긴? 알폰의 성녀와 처음 교류했을 때 자리 잡았던 그 예배당이 아닌가?’

희한했다. 분명 방금 전 휴거와 싸우다가…….

‘빛에 휩싸였건만.’

설마 죽어서 천국이라도 온 걸까?

찬영은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헛웃음을 흘렸다. 뭐가 어떻게 됐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순간 옆 의자에서 무척 친숙하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셨어요?”

하얀 로브를 두른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얼굴, 일전에 보았던 그녀.

‘알폰의 성녀, 베아트리체?’

놀라서 입만 벌리고 있자 어깨 위에 그녀가 손을 얹어 왔다.

그러고는 마치 마음을 꿰뚫어 본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당신은 죽은 게 아니랍니다. 그러니 차분히 앉아 보세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니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자애로운데다 안정감까지 주었다. 그 덕분에 찬영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의 옆에 자리할 수 있었다.

조금 진정된 직후 물었다.

“죽은 게 아니라니……. 그럼, 이건 무슨 상황입니까?”

“당신 안에 제가 깃든 거지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머릿속이 더 복잡했다.

“좀 더 쉽게 말해 주세요. 이해가 하나도 안 가니까요.”

“저와 당신은 교류 중이죠. 그 때문에 당신의 생존은 제 생존이기도 해요. 당신의 영혼이 소멸되면, 저와 당신의 교류도 끝이겠죠.”

“그래서 어디엔가 제가 살아 있는 것이다, 이겁니까?”

“맞아요.”

대답해 준 그녀가 찬영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당신의 용기 있는 선택이 지금의 짧은 대화 시간을 선물한 것이랍니다.”

잠자코 있던 찬영이 물었다.

방금 전의 일을 생각해 보면 그녀가 말하는 용기 있는 일은 역시…….

“휴거를 죽인 일 말입니까?”

그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는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드 원의 하수인들을 그리 부르는 모양이군요. 어떤 이름이든 상관없겠죠.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이름이든 당신의 영을 삼키려 들 거예요.”

듣다보니 찬영의 눈빛에 이채가 흘렀다. 그녀라면 이제껏 의문스럽던 것들을 모두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올드 원이든 그 하수인이든……, 아무튼 좋습니다. 대체 그들이 왜 우릴 노리는 겁니까?”

“모두를 노리는 게 아니에요. 갓피스를 삼키려 드는 거죠.”

“갓피스가 뭐기에?”

그 질문을 하자마자 찬영의 눈에 띈 건 그녀의 손끝이 모래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뭐지?’

당황한 찬영이 손을 빼자 방금 전까지 그의 손등 위에 올라가 있던 그녀의 손이 황금빛 모래처럼 허공에서 흩날려 갔다.

그리고 소멸은 그녀의 팔을 타고 계속되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일련의 상황에 놀란 찬영이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하지만 그녀는 도리어 별 일 아니라는 양 웃기만 했다.

“괜찮아요. 제게 소멸은 필연적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제 당신을 만났으니 우리는 다시 볼 수 있어요. 아쉬워하지 말아요.”

찬영은 마른침을 삼켰다. 목이 탔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다시 만날 수 있다고는 하나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르는 상황.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못 다한 이야기를 물어봐야 했다.

“대체 갓피스란 게 뭡니까?”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가치. 그것은 사람일수도, 물건일 수도, 당신의 곁에 있는 동물일 수도 있죠. 무엇이든 갓피스가 될 수 있어요. 이를 그들보다 먼저 찾으세요.”

그녀가 말하는 ‘그들’이란 분명 휴거일 테다.

고개를 끄덕인 찬영이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채 질문을 이어 나갔다.

“어떻게 알아보죠. 갓피스를?”

“당신에게 모여들 거예요. 원하지 않아도……. 소멸된 제가 당신의 곁에 함께 하게 된 것처럼요. 그럼 당신을 알아볼 수 있겠죠, 당신은 우리 모두의 열쇠니까.”

말을 마친 그녀는 이제 다리, 팔 모든 게 사라져 있었다.

가슴팍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그녀를 보니 마음이 더욱 급했다.

“그럼 올드 원은 대체 누구죠?”

“세상의 중심, 가장 오래된 자들. 그들의 눈은 모든 차원을 꿰뚫어 볼 거예요. 나 또한 그들을 마주한 적이 없죠. 그럴 틈도 없이 모든 게 붕괴되어 버렸으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입술이 반쯤 사라져가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녀가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다.

“사명을 찾으셔야 해요. 당신의 뜻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차원 다리를 지배하고 있는 올드 원의 하수인들을 걷어내세요. 시드 대륙이 모두 재건되면 암막 속에 숨겨진 그들이 모습을 드러낼 거예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찬영은 그녀와 더 있고 싶어 사라지는 그녀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아니, 시간을 좀 더 벌고 싶어 외쳤다.

“어떻게 하면 다시 당신을 만날 수 있습니까!”

그녀가 사라지면서 웃었다.

“나아가세요, 지금처럼…….”

그리고 그녀가 완전히 사라짐과 동시에 찬영은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듯 몸이 저 멀리 아득한 홀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어두워졌다.

마치 유체이탈이 된 양 부유하는 것만 같았다.

찬영은 몸이 주위를 떠다니다가 본래 몸으로 들어온 것 같은 이상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서서히 간질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손 끝, 팔, 그리고 느껴지는 모든 오감…… 찬영은 모든 감각들이 돌아오는 걸 느끼며 서서히 눈을 떴다.

-알폰 지방의 재건으로 인하여 알폰의 성녀와 영혼 교류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성녀의 영혼이 8% 상승하여 총 9.2%가 되었습니다.

-오디의 제거로 인해 흔적 (1)을 획득하였습니다. 흔적 (1)은…….

-2차 로그인 캘린더가 개방되었습니다. 현재 2차, 9일차

-민첩성(F)가 개방되었습니다. 민첩성은 반응속도, 이동속도, 초감각 등과 연관이 있습니다.

최초 진입 보상으로 알폰 지방의 미니 맵이 주어집니다. 지도, 시야 등으로 한 번 확보된 맵은 영구적으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최초 진입 보상으로 알폰 지방의 일원들에게 존경심 +120을 획득합니다.

-최초 진입 보상으로…….

그리고 가장 먼저 그를 반긴 건 끝도 없이 나열된 보상들이었다.

찬영은 헛웃음을 흘렸다.

‘살아 있다는 말이 맞았어.’

베아트리체가 옳았다.

보상들이 이렇게 나열된 것으로 보아 오디는 죽었고, 자신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최초 진입 보상을 받았다. 다른 펌의 진입이 최초 진입을 의미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오디를 부르고 제거하는 일이 최초 진입 보상의 조건임이 틀림없었다.

물론 손 끝 하나 움직이는 게 힘들 만큼 몸이 무거운 건 당연했지만…….

찬영이 침대에서 내려서며 몸을 일으켰다. 우선 보상들을 확인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게 있었다.

‘대체……. 여긴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얀 시트의 침대는 현대식의 침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눈을 돌려 창가 앞,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을 바라보았다.

창틀, 그 옆에 놓인 서랍장, 그리고 탁자와 화려한 기사 그림이 그려진 액자까지……. 마치 유럽 궁전 안에라도 있는 느낌이었다. 순간 베아트리체가 해 줬던 얘기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알폰 지방의 재건, 만약 그게 말 그대로라면? 그럼 혹시?’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덜컥’하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있는 방향으로 찬영의 눈이 향한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나타났다.

“대, 대리님?”

찬영이 깨어났을 줄 몰랐는지 방에 들어선 이규복의 눈에도 놀람이 가득했다.

“맙소사!”

나직이 중얼거린 이규복이 한 달음에 다가와 찬영을 꽉 끌어안았다. 엉겁결에 그에게 안긴 찬영에게 이규복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됐어, 이렇게 살아 있으면 됐습니다! 정말, 정말 고생했어요.”

상황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찬영은 말없이 그의 등을 토닥였다. 지금은 그러고 싶었다. 그의 온기 덕분인지, 살아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으니까.

* * *

격한 재회 후 찬영은 이규복으로부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듣게 되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찬영 씨가 머무는 이곳은 베이콥 영주의 성이에요. 그는 라이크 신성 왕국의 스무 번째 검이라더군요.”

그 말을 들은 찬영은 한동안 이규복을 쳐다보기만 했다.

전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이규복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그럴 법도 했다.

그는 뉴 게이트에서 블루 게이트가 되어 버린 이 상황을 이해할 정보 기반이 부족할 테니…….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요?”

뒷머리를 긁적인 이규복에게 찬영이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전부 다요.”

“음, 그럼 찬영 씨가 뉴 게이트로 진입한 후의 일을 말해야겠네요. 부상 입은 찬영 씨를 치료해 준 건 이곳의 지도자인 베이콥 영주님이에요.”

“그럼…….”

오디와의 전투 직후 벌어진 일들에 대해선 이규복보다는 이곳의 지도자란 사람을 만나 봐야 자세히 알 것 같았다.

그렇기에 이규복도 찬영이 떠난 직후 일어난 변화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쪽을 택했다.

“네, 사실 찬영 씨가 영주 성에서 치료 받고 있다는 알게 된 건 찬영 씨의 실종 이후, 나흘 뒤였어요. V.O.의 도움이 컸죠. 저 같은 일개 사원이 영주 성에 들어오기까지는 많은 절차가 필요했거든요.”

그 얘기를 하자면 오늘 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규복은 그 부분을 가뿐히 건너뛰고 찬영의 뉴 게이트 진입 후, 지구에 펼쳐진 변화에 대해 말해 주기로 결정했다.

“뉴 게이트의 변화부터 말씀드릴게요.”

이규복이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래, 이것부터가 좋겠다.’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곳이 어디일 것 같습니까?”

이제껏 지나온 상황만 보더라도 찬영이 추측할 수 있는 건 하나.

“다른 세계입니까?”

가장 확실해 보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이규복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여긴 다른 세계가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면 우린 같은 지구에 있으니까.”

찬영이 이해가 안 되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죠?”

“……우린 공중 도시에 있어요. 어떤 비행체로도 접근할 수 없는 곳이죠. 오로지 각성자들에게만 접근 권한이 허락된 이세계이자 현실이 바로 이곳이에요.”

가만히 듣고 있던 찬영이 큰 숨을 들이켰다.

그냥, 왠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침 이규복이 그의 생각에 도움이 되고자 품속에서 펜을 꺼냈다.

이규복이 펜을 조작하자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영상에는 헬리콥터 소리가 먼저 났다.

두두두!

곧 헬리콥터 내부가 드러나고 창밖의 풍경이 드러났다.

“허…….”

상상 이상의 영상이 펼쳐졌다. 생전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입을 다문 찬영의 눈에 경악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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