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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8화 (28/248)

# 28

구르고 있는 놈을 보호하고 있는 반투명한 얇은 막, 그 막이 충격파를 사방으로 흘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충격파가 소용이 없다?’

그 생각에 이르는 사이에 짓밟는 굴레가 찬영까지 삼켜 버릴 듯 굴러왔다.

이를 피하기 위해 찬영이 다시 허공으로 솟구쳤다.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놈을 막아서지 못한 건 여전했다.

찬영이 허공에 뜬 채 막힘없이 도심으로 향하고 있는 놈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해.’

조용히 더블 피니시를 내려다봤다.

좌절한 것은 아니다, 아직 방법을 모두 쏟아부은 건 아니니까.

입술을 콱 깨문 찬영이 착용하고 있는 에어펌프 상태의 더블 피니시를 업그레이드 된 십이중 칼날로 변형시켰다. 그 직후 찬영의 시선이 저 멀리 철도 차량 기지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쐐액!

놈을 막아서지는 못했지만 앞질러서 날아갈 수는 있었다.

다시금 가속도를 이끌어내 놈을 앞질러 간 찬영은 오히려 허공에 떠 있지 않고 숲 아래 착지했다.

그리곤 차분히 놈을 기다렸다.

얼마 뒤 굉음과 함께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쾅, 쾅!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놈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했다.

1km, 400m, 50m.

놈과의 거리가 점차 좁혀왔다.

찬영이 눈을 들었다. 기다리던 상황이 왔다.

이어서 찬영이 땅을 박찼다.

그러자 솟아오른 찬영의 몸 주변으로 노란빛 기류가 생겨났다.

섬뢰보의 발현!

일직선으로 솟아오르자 놈의 가시 바퀴가 눈앞까지 당도했다. 가시가 마침내 눈앞에 완벽히 드리워진 그 찰나, 찬영이 허리를 뒤집었다.

초고속의 방향 전환.

이는 이규복으로부터 전수 받은 붉은 바람의 발현. 빙글 회전하는 찬영의 몸에 붉은 아지랑이가 휘몰아쳤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방향 전환엔 성공했지만, 그다음 스텝이 문제였다.

재차 튀어 오르려면 마땅한 발판이 있어야 하는데 놈의 몸은 온통 가시밭이다. 결국 무리를 해서라도 놈의 가시를 걷어차고 도약하는 방법밖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찬영의 발끝이 굴러가는 놈의 가시 위를 밟았다.

가시를 걸은 게 아니다.

발 주변을 뒤덮은 마나의 얇은 막이 다음, 그다음 디딤대가 된다. 그로 인해 마치 굴러가는 공위를 밟고 달리는 서커스 쇼처럼 놈의 위를 밟고 뛸 수 있다.

찬영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놈의 위를 몸을 낮춘 채 달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도약점을 밟지 않고 놈의 몸 위를 달린다?

기이한 현상이었다.

여왕의 총체인가?

아니, 다섯 날개는 가동되지 않았다.

‘이건…….’

이동 계열 스킬 트리로 획득한 진공나찰보眞空羅擦步의 발현. 모르는 새 찬영의 몸 주변에 하얀빛의 아지랑이가 바람을 따라 휘몰아쳤다.

* * *

‘성공했어!’

찰나 간 놈의 위를 밟고 있는 걸 느끼자마자 찬영은 호흡을 다스렸다.

후, 후.

지금처럼 급히 움직여야 하는 순간일수록 더욱 그렇다.

한 걸음, 한 걸음 느리지 않더라도 신중히 걸어야 한다.

균형이 흐트러지면 단숨에 가시 바퀴에 짓눌려 압사당할 것이다.

찬영은 엄청난 속도로 휘돌고 있는 놈의 위를 밟아가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처음부터 무리해서 놈에게 접근한 건 지금의 단 한 번의 공격을 위함이었다.

타닥.

다시금 섬뢰보, 붉은 바람, 그리고 진공나찰보로 이어지는 연계 이동기가 단 한 호흡에 펼쳐진 그 순간, 찬영의 몸이 허공에 치솟았다. 동시에 오른손을 뒤덮은 묵빛 철권위에 짧은 칼날 수십 개가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칼날들은 휘돌기 시작했다.

위이잉!

공회전하기 시작한 묵빛 철권을 놈 위에 내리꽂았다.

쐐애액!

이 순간 놈의 얇은 막은 어떤 방해물도 되지 못했다. 원거리 공격을 방어하는 데만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놈은 지금처럼 근접 공격에는 무척 취약했다.

콰지지직!

눈 깜짝할 새 내리 찍은 묵빛 철권은 드릴처럼 휘돌아, 놈의 가시와 가죽을 모두 부수고 찢으며 놈의 살가죽 안까지 파고들어 버렸다.

-키에엑!

놈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멈추지 않고 놈의 몸 깊숙이 파고들어갔다.

사방으로 놈의 살점과 녹색 혈관들이 터지며 피가 폭발하듯 비산했다.

그러자 다신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거대한 가시 바퀴의 회전력이 차츰 차츰 줄어들었다.

쿵! 콰직!

마지막 나무가 기우뚱, 부러지고 나서야 놈은 완전히 정지됐고, 옆으로 기울어갔다.

쿠웅!

이윽고 녀석이 쓰러졌다. 훌쩍 뛰어올라 허공에 날아오른 찬영은 배를 뒤집고 누워 버린 놈의 시신을 내려다봤다.

죽으면서 공처럼 말고 있던 자세가 풀린 것이다. 그것을 보고 나서야 쓰고 있던 헬멧을 해제시켰다.

헬멧이 해제되자마자 드러난 찬영의 얼굴에는 물이라도 흠뻑 맞은 양 땀이 가득했다. 그만큼 방금 전의 전투로 인해 많은 체력을 사용한 것이다.

추가로 남은 마나는 150 정도.

최근 이네이트 습득과 훈련을 통해 성장하기 시작한 총 마나량이 920까지 올라갔다는 걸 감안했을 때, 대부분의 마나를 쓴 것이나 다름없다.

그럴 만도 했다. 이네이트는 하나 사용할 때마다 마나와 체력 소진이 만만치 않다. 그걸 세 개 연달아 쓰면서 마나를 활용한 더블 피니시의 일격까지 먹였으니…….

“후우.”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고되다.

하지만 굴러가던 놈이 민간인 피해까지 주지 않게 막으려면 이 방법이 유일했었다.

‘다행이다.’

찬영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하면 아무 것도 해 보지 못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볼 뻔 했다.

막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한동안 놈을 보며 앉아 있던 찬영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는 건 이 정도면 됐다.’

B 구역이 완전히 정리된 것도 확인해야 했고 이규복이 투입된 다른 구역도 지원해야 했다.

그리고 이 일이 벌어진 진짜 이유엔 아직 접근하지도 못했다.

바로…….

‘뉴 게이트!’

저게 사라지지 않는 한 지금 같은 상황은 이 차, 삼 차로 일어날 게 분명했다. 그럴 바엔 조속히 진입해 뭐라도 하는 편이 낫다. 찬영의 시선이 뉴 게이트가 자리 잡고 있을 구역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끝을 내야지.’

* * *

전투의 막바지.

A 구역에서 싸우고 있던 각성자들은 한데 모여 마지막 저항전을 펼쳤다.

처음엔 불리했다.

하지만 통신이 끊겼던 이규복의 합류는 그들의 사기와 조직력을 극대화시켰고, 그로 인해 살아남은 도합 다섯 정도의 각성자들과 이규복은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A 구역을 사수했다.

그로 인해 결과는 승리였다. 이규복이 날뛰는 휴거의 숨통을 끊어 놓는 것으로 이 일대의 토벌이 종료됐다.

소수 정예가 어떤 지원도 없이 임무를 부여 받은 구역을 완벽히 지킨 것이다. 이규복은 휴거의 시신에서 대검을 빼어든 뒤 뒤를 돌아보았다. 팀원들의 눈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찬영을 보낸 구역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판국이다. 어서 재정비를 해서 그를 도우러 가야 했다. 그가 흩어져 있는 팀원들을 다시 소집하려던 그때였다.

쉬이익!

멀리서 날아온 은빛 기체가 순식간에 그들 한 가운데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를 본 이규복의 입가에 빙긋이 미소가 서렸다. 그의 등장이 의미하는 건…….

‘끝이 났군!’

쉬이익.

착지를 마친 찬영이 걸어오며 입고 있던 장비를 해제시켰다.

노이즈와 함께 사라진 기체와 함께 걸어오는 찬영. 눈빛은 평소와 같이 투지로 가득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하나 몸이 무거워 보였다. 찬영이 이규복의 걸음걸이를 통해 그의 부상을 눈치챘듯, 이규복도 찬영이 지쳤다는 걸 직감했다.

“힘든 싸움이었나 봅니다.”

걱정 섞인 눈치.

“쉽진 않았습니다.”

찬영이 솔직히 토로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이규복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무사히 끝나려나 봅니다.”

곧 지원 병력이 올 테고 상황은 평소처럼 후속 부대에 의해 정리되고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규복과는 달리 찬영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뭔가 굳은 결심을 한 듯 찬영이 조용히 물어 왔다.

“상부와의 통신은 아직 끊겨 있습니까?”

“예, 하지만 곧 살릴 겁니다. 그런데, 그건 왜?”

빤히 이규복을 바라보던 찬영이 나지막이 덧붙였다.

“뉴 게이트에 진입할 생각이에요.”

듣자마자 이규복이 눈살을 찌푸렸다.

‘좋지 않다. 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들어간단 말인가?’

무모하기에 동의해 줄 수 없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가는 편이…….”

가만히 듣고 있던 찬영은 길게 말하지 않고 짧게 되물었다.

“언제까지요?”

입을 열기 시작한 찬영이라고 이규복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이규복은 신중하길 원할 것이다.

‘그래, 그의 뜻을 알기에 더욱 들어가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타이밍을 놓친다.’

“팀장님 뜻에 따라, 그리고 팀장님 윗사람들의 뜻에 따라 자그마치 넉 달을 훈련하며 기다려 왔습니다. 그 대답은…….”

전혀 상관없는 펌의 정예 팀이 뉴 게이트에 진입 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딱히 실망하지는 않았다. 복잡한 건 몰라도 그 안에 많은 모략, 로비, 수많은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을 것이란 것쯤은 짐작이 가능하다.

‘정치란 게 그런 거니까.’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니까 충분히 이해하고 넘겼다. 그렇기에 지금이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지금 시기를 놓치면 또 다시 신중함을 명분으로 차일피일 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 이해관계가 발목을 잡을 테고, 우린 다시 기다리게 될 겁니다.”

“그건…….”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이규복도 입 열기를 멈췄다.

찬영의 말이 틀린 게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도 참기 힘들었다.

이제껏 계속 상황을 관망하며 좌시하고만 있다는 게.

어쩌면 찬영 같은 사람이 나타나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사이 찬영이 다시 입을 뗐다.

표정은 진지했고 눈빛은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단호했다.

“저는 통신이 안 됐던 겁니다. 휴거에 이끌려 의도치 않게 진입하게 된 것이고, 팀장님은…….”

찬영이 이규복을 보며 웃었다.

“그 이후로 절 못 본 겁니다.”

이규복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같이 갑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뉴 게이트 너머로 찬영만을 보낼 수는 없었다. 이규복은 이미 함께 가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팀장님은 변수를 대비해 이곳을 지키셔야죠. 그래서 팀장이란 직함이 있는 거 아닙니까? 어떤 직함이든 그에 맞는 무게를 짊어지기에 그 직함을 달아 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어떤 상사가 부하 직원이 뻔히 사지로 들어가는 데 그냥 지켜봅니까?”

그러자 찬영이 상황에 안 맞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잊으셨어요?”

“예?”

의아한 듯 바라보는 이규복에게 찬영이 돌아서면서 대답했다.

“전 프리랜서잖아요.”

그게 마지막 대답이었고 찬영은 이규복이 더 말릴 틈도 없이 뉴 게이트가 있는 구역을 향해 날아갔다.

* * *

바람이 휘몰아치는 뉴 게이트 앞.

휴거들이 뛰쳐나올 때 생긴 발자국들이 즐비한 이 인근은 더 이상 인적 없는 폐허와도 같았다.

한동안 이곳을 바라보던 찬영은 차분히 걸음을 뗐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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