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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7화 (27/248)

# 27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걱!

어디선가 날아든 칼날. 그 칼날의 절삭력은 이규복을 쓰러트린 휴거의 목을 완전히 찢어 버렸다.

하지만 목이 하나 날아갔음에도 놈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두 개의 머리를 움직여 더욱 광분했다. 허공을 난도질하듯 휘둘러지는 방망이.

쐐액! 쐐액!

동시에 은빛기체 오른손에 착용된 묵빛 철권에서 가시 같은 작은 칼날이 수십 개 튀어나와 드릴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쿠아앙!

놈의 몸이 통째로 찢겨져 나가는 건 순식간.

단숨에 놈의 몸통을 뚫고 나온 은빛 기체가 다섯 개의 날개를 접으면서 이규복 옆에 신속히 안착했다.

“……지치셨어요?”

“설마요!”

이규복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은빛 기체가 다시 허공을 날았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 * *

다시 허공으로 솟구치자 찬영의 눈앞에 놈의 이름이 들어왔다.

-오디의 하수인12

-가치 : 2,100

그 옆을 보니 하수인10, 하수인14, 하수인22…….

‘많기도 하다.’

아마 이규복 혼자였다면 체력적으로 낭패를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다.

쐐액!

다섯 개의 날개가 한데 오므려지자 그 움푹한 가운데에서 공기와 마나의 마찰로 인해,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퍼엉!

붙기 시작한 가속도 효과 B, 고속 발진의 기능이 발현되자 제일 먼저 보인 하수인12를 빠르게 스쳤다.

쐐액!

놈의 방망이가 쫓아온 것을 보자마자 다섯 날개가 마치 배의 돛처럼 바람의 방향을 틀게 했다.

동시에 다시 솟구친 찬영, 그러나 피하려 한 게 아니다.

적당한 포지션을 취하기 위한 사전 체공일 뿐! 찬영이 울부짖는 휴거들이 일직선이 되도록 각도를 쟀다.

찰나 간 에어펌프가 충격파를 일으키자 한 줄기 극광이 찬영 아래 울부짖던 휴거들을 향해 사선으로 떨어졌다.

쾅!

압도적 충격파는 땅을 울릴 정도였다. 울부짖던 대여섯 마리의 하수인들의 몸통과 머리가 일제히 압사되어 찢겨져 나갔다.

찬영은 그에 그치지 않고 다시 일직선으로 쏘아지듯 날아갔다.

쐐액!

방망이를 휘두르던 휴거들에겐 찬영의 움직임이 그냥 스쳐 가는 빛살처럼 보일 뿐이었다. 놈들은 날개의 한 자락도 잡지 못 하고 등을 내어 줘야 했다. 등이 드러날 때마다 어김없이 묵빛 철권이 모습을 드러낸다.

콰아앙!

수십 개의 칼날을 두른 채 휘돌기 시작한 묵빛 철권은 스쳐 가는 방망이들을 지나쳐 휴거의 몸뚱이를 뚫고, 또 뚫고, 세 마리를 연달아 박살 내 버렸다.

재생력이 뛰어나 봤자 소용없다. 위력적인 파괴력 앞에 휴거들의 재생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덮으려는 격.

농락당하다 못해 한 줌의 자비 없이 박살 나기 시작한 휴거들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울어댔다.

-크아앙!

그러자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그들 간의 네트워크인 모여들었던 휴거들이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모여들던 속도만큼 흩어지는 속도도 빨랐다. 하지만 차이는 파괴력뿐만이 아니었다.

쐐앵!

속도는 더욱 차이가 심했다. 도망치던 한 휴거의 어깨 너머로 같은 종의 휴거들이 따라 붙은 은빛 기체에 의해 박살 나며 도미노처럼 우르르 잘려 나갔다. 하지만 휴거는 돌아보지 못했다.

본능적인 공포 때문이다.

쿵쾅, 쿵쾅!

그때 도망치는 휴거의 앞으로 은빛 기체가 빠르게 지나쳤다. 눈 깜짝할 새 나머지 휴거를 쓸어버리고 쫓아온 것이다. 둥실 뜬 채 휴거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은빛 기체.

-크앙!

놀란 휴거가 가죽 살을 출렁이며 방향을 틀어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놈이 도망치던 방향엔 어김없이 은빛 기체가 다시 출몰했다.

분명 사방은 훤히 뚫려 있다. 그렇지만 이 순간, 휴거에겐 사방이 모두 벽과 같다. 결국 궁지에 몰린 쥐새끼는 발악하는 법이다. 도망치던 휴거가 찬영에게 달려들었다.

쿵쾅, 쿵쾅.

방망이를 사방으로 휘두르며 돌진해오는 놈을 보며 공중에 떠 있던 찬영이 단숨에 허공을 격하고 쇄도했다.

* * *

타탁.

마지막 하수인31을 끝으로 이 인근엔 더 이상 휴거가 보이지 않았다. 헬멧을 해제시킨 찬영이 깊은 숨을 토해 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역한 비린내와 함께 찬영이 휩쓸어버린 휴거들의 시신들이 보였다. 장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정리하는 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더블 피니시를 내려다보았다.

제작도안서 1회 완성 스크롤을 통해 완성한 오렌의 절구. 그 절구를 통해 넉 달 전 +2 로 강화시킬 수 있었던 더블 피니시는 확실히 강화된 값을 보여 줬다.

-더블 피니시 +2 (MAX)

-가치 : 1,120.

-효과 A: 더블 피니시 착용 시 근력 300% 증가.

-효과 B: 마나 50 소모 시 훨윈드 피니시 발생.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2로 상승한 더블 피니시가 더 이상 강화될 수 없다는 조건이 생겨 버렸다는 거다.

이 때문에 +1 영구적 업그레이드 찬스권은 고민 끝에 이동 속도를 늘릴 수 있는 여왕의 총체 강화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덕택일까?

‘확실히 강화 후, 속도와 체공 시 균형감이 늘었어.’

총체의 외관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삼 상체 슈트에서 전신 슈트가 되어 버린 여왕의 총체를 내려다봤다.

-데미아가 제작한 여왕의 총체總體 +1

-가치 : 2,090

-효과 A: 급속 방향 전환.

-효과 B: 원심력 고속 발진 (5초간 +200km/h, 비행 시)

-효과 C: 에어 실드 (3초간, 마나 120 소모)

-가치 4,000

-효과 D: ? (강화 시 개방 가능)

그동안 뒤에 남은 휴거의 마지막 목을 쳐 낸 이규복이 찬영에게 다시금 다가왔다. 찬영도 그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헌데 이규복의 걷는 동작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얼핏 멀쩡해 보이긴 했다. 그러나 그의 스텝을 전수 받은 찬영은 작은한 차이도 놓치지 않았다. 평소 봐 온 그의 걸음걸이보다 훨씬 무거워 보였던 것이다.

부상을 입은 게 틀림없다.

“다치셨군요.”

걱정이 되어 묻자 이규복이 별것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아직은…….”

더 싸울 수 있다는 말. 분명 걱정이 되긴 했지만 휴거는 많고 투입된 인원은 적은 게 분명했다. 누구든 설사 다쳤더라도 계속 싸워 줘야 했다.

시간이 없었는지 이규복이 빠르고 짧게 현재 상황을 브리핑해 주었다.

“싸우면서 통신기가 박살 난 덕택에 브리핑은 오 중령님 대신 제가 합니다.”

이규복이 박살 난 통신기를 슬쩍 들어 올렸다.

아까 방망이를 두드려 맞을 때 통신기가 박살 나 버린 것이다.

통신기를 옆으로 내던진 이규복이 다시 말을 이었다.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총 3종의 휴거들이 뉴 게이트를 빠져나왔어요. 진입했던 다른 팀은 전멸. 생존자가 있는지 없는지 아직 파악도 안 돼요.”

찬영이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상황이야 어쨌건 누군가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는 게 그들을 애도하는 길일 테고……. 이규복도 같은 생각이었다.

“1종은 방금 전멸. 나머지 휴거 2종, 3종은 수유동과 우이동 두 방면의 저지선으로 향하고 있어요. 아니, 지금쯤이면…….”

말끝을 흐리는 이규복을 보며 찬영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뚫렸을 거다.

굳이 전부 얘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됐다.

“그쪽 통신도 진작 끊겼어요. 직접 가보는 것 말곤 방법이 없죠. 지원은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도착 못할 테고.”

“그럴 생각 없습니다. 도착하기 전에…….”

벌써 저편에선 각종 포격으로 인해 일어나기 시작한 산불이 일렁였다. 휴거를 빨리 정리하고 불을 끄지 않으면 산 전체가 타 버릴 테고 화재는 도심까지 번질 가능성이 높다. 뒤로 젖혀 있던 헬멧이 찬영의 얼굴을 다시 감쌌다.

“끝내시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찬영의 기체가 이규복과 함께 위로 솟구쳐 올랐다.

* * *

이후 B 구역을 정리한 찬영과 이규복은 빠른 속도로 구역 지원에 나섰다.

찬영은 먼저 날아가는 길에 C 구역에 이규복을 이송시켜 주고, 신속히 A 구역으로 향했다.

그곳이 뚫리면 철도 차량 기지가 타격 당한다.

공공시설과 민간인의 피해를 막기 위해 찬영이 출발한 것이다.

* * *

A 구역. 우이령과 도봉산 우이암으로 이어진 길 초입.

쐐액!

허공을 가르는 찬영의 은빛 기체가 불타고 있는 산자락을 지났다. 오는 동안 각성자들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A 구역에 투입된 각성자들은 전멸했거나 혹은 후퇴했을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참 저공비행을 하던 그때, 불타는 산자락을 뚫고 엄청난 속도로 구르고 있는 한 마리의 휴거가 보였다.

대형 휴거였다.

웬만한 수십 마리의 휴거보다 강해 보이는 녀석은 온몸이 2m짜리 붉고 뾰족한 가시로 무장됐다. 마치 가시 있는 밤송이 형태였다.

-LEADER 가시굴레

-가치 : 3,420

높은 가치의 녀석이었다. 놈에겐 거칠 게 없었다.

나무, 돌, 얕은 계곡 따위에 멈추지 않고 구르면서 닿는 모든 것을 박살 내고 파괴했다.

‘……깔리면 흔적도 안 남겠어.’

그것뿐일까?

이게 건물 한 가운데 틀어박히기라도 한다면?

콘트리트든 철근이든, 뭐든 다 무너질 것이다.

‘그 전에 막아야 한다.’

저공비행을 하던 찬영이 놈보다 앞서서 하늘을 가로질렀다.

동시에 방향을 전환 한 뒤 숲 위에서 놈을 조준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놈의 구르는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나무들 때문에 놈들을 정확히 조준하기 힘들었다.

‘후우, 후우.’

찬영은 호흡했다.

괜찮다. 차분히 쏘면 된다.

저공비행 상태를 유지한 채 충격파를 신중히 발사했다.

펑!

공기 찢어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하늘을 뒤덮은 순간, 극광이 사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콰!

그리고 나무 열 그루가 일제히 폭발하며 흙먼지가 공기 소용돌이와 함께 위로 솟구쳤다.

뿌연 먼지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놈이 맞은 게 틀림없다. 헌데 뭔가 이상했다. 이제껏 휴거가 죽으면 꼭 자동 파밍이 됐다. 쓸모없는 가치의 잡템이라도 꼭 하나가 들어왔단 얘기, 하지만 이번엔 그런 게 없다.

아니면…….

‘놈이 살아 있다?’

하나 방금 전 나무의 잔해와 함께 솟아오른 흙먼지 안쪽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했다. 그때였다.

찬영이 눈을 부릅떴다.

‘대체 무슨……?’

다시 놈이 맹렬한 굉음을 내며 폭발 잔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보고 있자니 입이 바짝 말랐다.

‘방금 전 공격에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건가?’

앞 뒤 상황만 봐도 그런 게 확실해 보였다.

‘어떻게?’

그 방법까진 모른다. 가까이서 지켜본 게 아니라 어떤 것도 단정 지을 수 없다. 허면 방법은 하나, 놈에게 최대한 접근한 상태로 데미지를 입혀 봐야 한다. 그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쐐액!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찬영이 다시 가시 굴레의 뒤를 바짝 쫓았다. 확실히 속도는 찬영이 앞섰다.

쐐액!

찬영이 가시굴레를 빠르게 지나쳐 한참 앞으로 날아갔다. 그사이 아까보다 훨씬 더 저공비행을 행한 탓에 날개의 수풀이 닿기 시작했다. 이보다 더 낮게 나는 것은 무리다. 빼곡히 심어져 있는 나무들 때문에 날개가 제대로 펼쳐지질 못한다.

그러니…….

‘이 정도가 최선.’

더 근접하지 못 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데미지를 입은 놈의 변화 정도야 충분히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찬영은 허공에 둥실 뜬 채 엄청난 속도로 나무를 부수며 다가오는 가시굴레를 똑바로 노려봤다.

두려움?

있다.

하지만 그걸 이겨 내면 지금보다 다음날, 그다음날을 견뎌 낼 보상을 받는다, 늘 그렇듯.

철컥.

조용히 에어펌프를 장착하고, 호흡을 다스렸다.

그새 지름 15m짜리 녀석이 시야에 들어왔다.

놈이 눈에 확연히 보이자마자, 지체 없이 사격을 시작했다.

펑!

단숨에 발사되는 충격파가 놈을 당장 산산조각 낼 듯 거침없이 발사됐다.

쐐애액!

엄청난 속도로 쏘아진 충격파는 맞닿는 나무들을 공기소용돌이와 함께 박살 내며, 맞은편에서 굴러오고 있는 놈과 부딪쳤다.

그리고…….

쾅!

그제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타격과 함께 구르고 있는 놈 위에 펼쳐지는 반투명한 막을. 심지어 그 막은 충격파와 맞닿자마자 충격파를 반으로 쪼개 양 옆으로 흘려버렸다.

완벽한 방사放射

이제야 알겠다. 찬영의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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