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이규복은 왠지 수업이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며 이규복이 들고 있던 갑옷과 대검을 소환 해제 시키며 물었다.
“그럼 이제껏 대체 마나 배열 없이 어떻게 장비 소환을……?”
찬영은 조용히 이규복을 바라봤다.
‘마나 배열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평범한 이네이트와 다르다는걸.’
딱히 이를 설명할 만한 완벽한 문장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복잡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해 줄 수밖에 없었다.
“전 장비를 꺼내 씁니다.”
“예?”
“말 그대로 꺼내 써요. 이렇게.”
찬영이 한 손을 들어 올리자 오른손 위에 홀로그램 노이즈가 일렁이더니 묵빛의 철권이 매끈한 자태를 드러냈다.
“그냥 느낌대로 쓰신단 얘기죠?”
“네, 말하자면…….”
찬영의 대답을 들은 이규복은 찬영의 의도와는 달리, 지금의 설명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마나 배열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그냥 느낌 가는 데로 쓰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기초부터 설명해야겠어.’
마나 배열을 이해하는 방법부터 말해 줘야겠다고 결정한 그는 첫 질문을 통해 강의를 시작했다.
“그럼 제가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장비 말고 다른 연관 이네이트는 어떻게 사용하세요?”
찬영은 곰곰이 각인된 섬뢰보를 떠올렸다. 사실 섬뢰보는 각인되자마자 플레이 체험을 통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됐다. 몸 안의 뜨끈한 게 흘러가는 걸 순응했다. 그뿐이다.
“뜨거운 게 알아서 흘러갔어요, 몸 안에.”
“바로 그게 마나에요. 이네이트의 근원이자 서먼 홀과 뉴 게이트와 연관이 깊은 힘. 어쨌든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보면 내부 발현인가보네요.”
“내부 발현이요?”
마나 배열부터 내부 발현까지 찬영은 아직 이 단어들을 제대로 이해 못했다.
“네, 이걸 한번 볼래요?”
궁금해 하는 찬영에게 답을 주기 위해 이규복이 주머니에서 작은 펜을 꺼냈다.
찬영도 그 펜을 알아보고는 눈을 빛냈다.
처음 그를 봤을 때 보았던 그 펜이다.
펜을 허공에 휘젓자 허공이 스크린이 되어 그 위에 영상이 재생되었다. 영상에서 한 남자가 마나 배열을 통해 마법을 구현하고 있었다.
화살 형태의 얼음.
그 얼음이 하나, 둘, 셋, 넷 늘어나기 시작할 때쯤, 이규복이 화면을 정지시켰다.
“지금 보고 계신 건 협조 동의를 받아 연구한 한 각성자 분의 마법 발현 장면이에요. 회사 내 기밀 영상인 건 비밀.”
찬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이규복의 위치에 대해 의아했다. 일반적으로 대리라는 직함은 평사원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 아니던가? 그런데 대리란 직함 치고 이규복은 V.O. 내부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는데다가 심지어 그런 일들을 직접 처리하고 있었다.
좀 의아하긴 했지만 그런 의문점이야 잠깐 접어 두고 당장 중요한 이규복의 말을 경청했다.
“이 영상과 당시 건물 위를 뛰었을 때 찬영 씨의 차이를 말해 줄래요?”
찬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차이?’
잠깐 생각하긴 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영상의 경우엔 마나를 외부에 발현시키죠. 제 마나는 몸 안에서 흘렀어요.”
이어서 찬영은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섬뢰보의 첫 경험…… 그건 굉장한 체험이었다. 당시 감각을 되새기자 마나가 슬슬 움직이려 했다. 마나가 자극된 것이다. 당장 섬뢰보를 쓰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동안 이규복은 영상을 끄면서 계속 강의를 이어갔다.
“말씀하신 차이 그대로에요. 내부 발현은 마나로 신체 강화를, 외부 발현은 마나와 여러 물질을 결합해 활용하죠.”
그 말에 찬영은 가볍게 생각에 잠겼다.
섬뢰보는 그냥 습득되고 움직이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냥 느낌대로 행하고 거둬들였던 게 모두 마나 배열에 의해서였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질문이 생겼다.
“그럼 아까 말씀하신 마나 배열은 대체 뭐죠?”
“외부 소환의 경우는 아까 본 얼음 화살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그 얼음 화살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한 체계라고 보면 돼요. 반면 내부 소환의 경우에는 찬영 씨가 아까 해 준 말 그대로죠. 뜨거운 게 몸을 타고 흐르는 과정.”
“그렇군요.”
찬영은 그 말을 듣고 나니 확실히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그 과정을 완벽히 터득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찬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마나 배열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를 포함한 V.O.에서 내린 결론은 명상이에요.”
“명상이요?”
“네, 적어도 각성자들에 한해서, 명상이 시작되면 마나를 느낄 수 있어요. 마나가 어디서 흐르고 어떻게 돌아오는지. 그게 반복되는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가지고 있는 이네이트의 내부 마나 배열에 대해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거군요.”
“네, 그리고 그로 인해 시작되는 영향은 확실하죠.”
“어떤?”
찬영이 되묻자 이규복이 차분히 대답했다.
“마나 배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이해도가 없을 때보다 효율성이 배가 되거든요. 현재까지 나타난 연구 성과로 봤을 때는, 이해도의 상승이 마나와의 동화율을 높여서 그렇다네요.”
“동화율이요?”
찬영으로서는 처음 듣는 단어였다.
묻는 건 당연했다.
이규복이 재빨리 답변해 주었다.
“아, 그 동화율이란 신체가 마나를 받아들이는 데 적합해진다는 그런 의미에요. 그 뒤에 복잡한 연구 설명들이 있긴 한데. 그건 패스.”
결국 마나 배열을 제대로 인지하고 쓰느냐, 아니면 인지하지 못한 채 껍데기만 알고 쓰느냐의 차이였던 것이다.
그새 이규복이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찬영에게 해 줄 이야기가 무척 많았다.
“방금 이야기 한 걸 현재 세계 유수의 여러 펌은 평화적 공유 아래 이 방법을 ‘마인드맵’이라고 일컫기로 했어요. 그 외의 외부 발현은 ‘스킬’, 내부 발현은 ‘기’라고 불러요. 이를 쓰는 각성자들은 각각 스킬러Skiller와 기공사氣功師라고 부르고 있죠.”
“음, 현상에 대해 이름을 짓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무슨 이유가 있기에 하나하나 명칭을 지었을까 싶어 묻는 찬영에게 이규복이 대답해 왔다.
“네, 쓸모없는 일 같지만 우리가 아는 단어로 이름을 짓는다는 건, 기이한 현상들이 우리의 제어 아래 있다는 뜻을 강조시킨다는 표현으로 비추어진다고 하네요.”
“그건 시민들의 불안함을 일부 잠재우겠다는 뜻도 있을 테고요.”
“하여튼, 눈치 빠르셔.”
씩 웃은 이규복이 두 손을 짝, 마주치며 덧붙였다.
“자, 그럼 다음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섞은 유형을 말해 줄게요. 예를 들면…….”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킨 이규복이 덧붙였다.
“저와 같은 유형이죠. 장비 소환을 통해 외부 발현도 되고 내부 힘을 발현시켜 싸우는 사람. 좀 드문 경우라 따로 분류되어 ‘블레스드’라 불러요. 진짜 축복일진 모르겠지만 표면상으론 축복 받았단 의미죠. 찬영 씨도 이 유형에 해당할 것 같은데? 맞나요?”
이규복이 묻자 찬영은 대답하기 전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장비는 오로지 합성, 강화 그리고 박스 등의 형태를 통해 획득된다. 마나 배열을 쓰지 않으니 이에 대해 확신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마나의 힘이 깃들지 않았다고 단언하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이규복의 말에 일부분 동의했다.
어쨌든 장비 소환과 이네이트를 겸해서 쓰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예, 그런 것 같네요.”
찬영의 대답을 들은 이규복이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장비 소환에만 기대는 스킬러라면 제걸 배우기 더욱 힘드셨을 거예요.”
“그렇군요.”
“네, 주로 마법, 장비소환 등 외부발현에 치중된 스킬러들은 신체 능력이 기공사나 블레스드보다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거든요. 아, 그리고…….”
이규복이 안경을 갈무리하며 덧붙였다.
“사실상 외부 발현의 마나 체계는 내부 발현보다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해요. 각인이 되지 않는 이상 설명을 통해 배우는 건 불가능하죠. 그래서 다들, 이 부분은 공유하고 싶어도 공유를 못해요. 연구 중에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규복이 찬영의 앞에 일보를 내딛었다.
그 순간 이규복의 발걸음이 한 걸음, 한 걸음 느리지만 차분히 여러 방위를 밟아갔다. 그냥 차분한 걸음 같지만 이미 몇 번 그의 전투를 겪어온 찬영은 큰 대검을 휘두름에도 결코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이 저 스텝에서 기인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바로 저거다. 저걸 위해 이 자리에 있었다!’
어느새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찬영에게 이규복이 스텝을 멈추고 돌아서면서 덧붙였다.
“내부 발현은 전수 가능합니다. 고되겠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규복이 마치 춤을 추듯 바닥을 상하좌우 밟고 다녔다. 물러나거나 전진하기도 하고, 두 걸음을 연달아 내리 밟으며 빠르게 돌진하기도 했다.
빠르지 않은 속도, 하지만 이규복의 걸음은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허리와 하체 그리고 흔들림 없는 상체가 삼위일체를 이룬 게 이 스텝의 요체였다.
허리가 틀어질 듯한 급격한 방향 전환에도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는 중도中道. 보고 있을수록 찬영은 몸이 달아올랐다.
그새 세 걸음을 단숨에 격하고 다가온 이규복이 깊은 호흡을 토해 내며 말했다.
“어렵죠?”
찬영은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네.”
솔직히 말하면 섬뢰보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스텝이다.
섬뢰보가 달리기라면 이규복의 스텝은 권투나 펜싱 등에 들어가는 이동 방법 같았다.
“붉은 바람이란 스텝이에요. 유연성, 반응 속도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텝이죠. 때론 관성의 법칙도 무시합니다.”
찬영은 코너를 빙글 돌며 밟고 유연하게 움직이던 그의 자세를 떠올려 봤다.
빠르게 달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가속도가 붙으면 정지하려 할 때 몸이 앞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규복은 그럴 때마다 중심을 잡고 골반으로 방향을 트는 등의 동작들로 관성의 법칙을 가지고 놀았다.
여러모로 감탄하는 찬영이었다.
“놀랍네요.”
찬영은 진심이었다. 헛웃음까지 흘러나올 정도니까. 이규복이 별것 아니라는 양 손사래를 치며 화제를 돌렸다.
쑥스러웠던 탓이다.
“음, 전수는 방금 보여 드린 동작들을 하나씩 쪼개서 구분 동작들로 보여 드릴게요. 여타 상황에 맞게 변형해 쓰는 건 직접 하셔야 할 테지만.”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수만 된다면야 그 정도 감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고난이도의 동작이라면 그에 맞게 연습의 연습을 더 하면 된다, 늘 해오던 것처럼 그렇게.
“찬영 씨라면 가능할 겁니다.”
그사이 격려도 잊지 않는 이규복이었다.
하지만 가르침은 이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
바로 마나 배열이었다.
“음, 이젠 마나 배열의 전수에 관한 부분인데……. 이건 어떻게 보면 어려운 게 하나도 없어요. 어쩌면 찬영 씨도 알고 있는 대답이거든요. 예로 몸이 뜨거워졌던 때를 떠올려 봐요.”
질문을 받자마자 찬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섬뢰보를 펼칠 때를 묻는 것이다.
그거라면.
“마나 배열로 인한 내부 발현. 그 때문에 신체 강화가…….”
막 말을 잇던 찬영이 순간 말을 멈췄다. 뭔가 생각이 난 것이다.
‘굳이 자기가 가르쳐 준 걸 되물을 필요가 뭐가 있지?’
문득 생각나서?
아니, 그럴 리 없다. 가르치는 입장인 이규복에겐 분명 의도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럼 왜 이런 질문을 한 걸까?’
생각을 되새겨보자 당시의 일이 속속들이 스쳐 지나갔다.
섬뢰보의 첫 발현. 몸 안의 열이 오르기 전 자신의 모습. 그때는 섬뢰보를 생각했고 지체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릴수록 몸 안의 뜨거움이 높아졌고 그럴수록 속도가 배가 됐다.
‘……아!’
찬영은 그제야 깨달았다.
섬뢰보는 결코 마나 배열만으로 펼치는 게 아니다.
마나, 마나 배열, 신체. 그 세 개의 결합이 내부 발현을 일으킨다.
그러니 꼭 마나 배열을 먼저 알아야 될 필요는 없다.
마나 배열이 신체 운동을 일으켜서 내부 발현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신체 운동이 마나 배열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찬영은 그제야 전수가 가능한 이유를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