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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4화 (24/248)

# 24

그렇게 여왕의 총체 덕분에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간 찬영은 소파에 대 자로 뻗은 채 누군가를 기다렸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그때였다.

딩동.

마침 들려오는 벨 소리에 찬영이 얼른 옷을 챙겨 입고 바삐 움직였다.

철컥.

문을 열자 오래 기다렸던 사람이 붉은 헬멧을 쓰고 나타났다.

“비빔밥 시키셨죠?”

찬영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철가방에서 비빔밥을 내어 준 배달부가 비빔밥 위에 모듬전 소량이 담긴 그릇을 올려 주었다.

이를 본 찬영의 눈에 의아함이 담겼다.

‘모듬전은 안 시켰는데?’

그때 전까지 올려놓은 배달부가 생색을 냈다.

“사장님 서비스래요. 매일 비빔밥만 드신다고……. 모듬전도 술안주로 좋아요. 다음에 한 번 시켜보세요.”

생각지도 못한 서비스였다. 사장님이 꽤 손이 크신가 보다. 어쨌든 매번 같은 곳에서 시켜 먹은 보람이 있었다.

“아, 네. 고맙습니다.”

그사이 찬영이 사는 층의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남의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겠거니 생각하며 찬영이 배달부에게 거스름돈을 받을 때쯤 문 뒤에서 익숙한 낯빛의 남자가 고개를 배꼼 내밀었다.

“혹시 제 것도 있습니까?”

남자의 등장에 찬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 * *

집에 들어선 이규복이 비빔밥을 꿀꺽 마시듯 먹으며 말했다.

우물, 우물.

“이야! 여기가 이사 왔다는……?”

어느새 찬영의 비빔밥은 이규복의 것이 되어 있었다. 그건 최근 바빠서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었을 게 틀림없을 이규복을 위한 찬영의 배려였다.

“네.”

“아, 그렇구나……. 흐음, 잘 먹었습니다.”

어느새 한 그릇을 싹싹 비운 이규복이 기분 좋게 웃었다.

“식사도 못 하시죠, 요즘?”

찬영의 물음에 이규복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두 말 하면 잔소리죠! 뉴 게이트에 진입하느냐, 진입 안하느냐로 말들이 많아요. 그 덕에 회의 자료도 매번 다르게 준비해야 하고 앞으로 닥칠 변수니 마케팅이니……. 죽겠네요.”

이규복이 혀를 내둘렀다.

하긴, 그럴 것이다, 정부와 V.O.의 입장에서는 제어 가능한 영역이 될 것이라 믿었던 뉴 게이트가 대중에게 또다시 제어가 불가능해져 가는 것처럼 비춰지는 게 싫을 테니.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제반 사항들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 바쁜데…….’

“아까 전화는 무슨 일로?”

찬영은 그게 꽤 궁금했다. 사실 비빔밥을 시키기 전에, 아까 걸려왔던 한 통의 전화를 확인했고 이규복과 짧은 통화를 나눴다.

그래서 왜 전화했는지 물었지만 이규복은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하겠다며 굳이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 궁금했다.

‘이사하며 계약상으로 변경된 주소야 이미 메일을 통해 알려 줬고, 뉴 게이트 문제야 전화로 하면 될 텐데……. 굳이 만날 이유가 뭐가 있지?’

그 대답을 해 주기 위해 이규복이 씩 웃으며 물었다.

“잊었어요?”

그 순간 찬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설마?’

이규복. 그리고…….

‘이네이트!’

찬영은 그제야 그가 온 이유를 깨달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챈 것이다.

바로 이네이트 수업.

계약에 기입했으나 최근 이규복이 워낙 바빠, 배우지 못했던 그 수업을 오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강의, 맞습니까?”

“네, 그러니까 왔죠!”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고대하던 수업이 눈앞에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뒤이은 이규복의 말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도 몇 시간 못 내요. 그 말은 찬영 씨의 소화 역량에 따라 진도 차이가 있을 거란 얘기겠죠.”

“네, 짐작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럴 것이다. 최근 습득한 섬뢰보는 자동 습득을 통해 각인되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이네이트를 각인이 아니라 설명과 훈련을 통해 익힌다는 것은 이제껏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미친 생각이었다. 이규복의 말대로 얼마나 소화를 잘하느냐의 차이에 따라 효과가 크게 나타날 것이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작도 안 해 본 채 겁먹고 싶지 않았다. 효과가 있건 없건 간에 가능하다면 무조건 시도할 것이다. 어떤 시도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면야!

스스로 결연함을 다지는 사이에 이규복이 씩 웃었다.

“하지만 꼭 그 이유 때문에 이곳에 온 건 아닙니다.”

“그럼?”

이규복이 휴지로 입술을 닦으면서 대답했다.

“겸사겸사 집들이죠. 그래서 전통의 두루마리 휴지도 사왔고요.”

이규복이 힐끗 자기가 사온 휴지를 보며 웃었다.

“아, 네. 잘 쓸게요. 고맙습니다.”

장을 보지 않아 마침 생필품이 모자라던 차였다. 그의 선물이 고마웠다. 찬영이 휴지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이규복이 뒷말을 보탰다.

“사실 저도 싱글이 된 지 오래라……, 쉬는 날엔 좀 허전했는데 잘 됐다 싶네요.”

그의 대답에 찬영은 조금 놀랐다. 항상 그의 네 번째 손가락엔 늘 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그래서 결혼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하지만 결혼 여부는 누군가에게 예민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직접 묻진 않았다. 찬영이 침묵하고 있자, 정적을 느낀 이규복이 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사별했어요.”

찬영의 표정이 덩달아 굳었다.

“미안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반지를 쳐다본 자신의 의아한 눈빛을 느꼈을 것이다. 의아해함으로써 굳이 그에겐 떠올리기 싫었을 과거를 떠올리게 한 것이라 생각했다.

사과는 당연했다.

“아니에요.”

대답을 한 뒤 이규복은 문득 그녀를 떠올렸다.

첫 소환. 그리고 그녀의 죽음.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건.

‘살아……. 꼭……!’

그녀의 한마디. 그 한마디 붙잡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다. V.O. 펌에 합류하게 된 것도 모두 그녀로 인해서였던 것이다.

한때 그의 모든 세상, 그 세상을 무너트린 또 다른 세상, 유언을 지키기 위해선 두 개의 세상을 견뎌 내야 했다.

그래서 찬영의 선택엔 늘 고마웠다, 이유를 붙여 외면할 수 있었음에도 기꺼이 합류해 주어서.

그동안 어느새 먼저 일어난 찬영이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말했다.

“출발 할까요?”

“어디로?”

“제 훈련 장소가 따로 있어요.”

“그래요, 갑시다.”

상념을 끝낸 이규복이 함께 일어났다.

* * *

드르륵.

찬영의 훈련장이자 창고인 건물의 문이 열리자마자 이규복이 감탄했다.

“와…….”

들어서자마자 보인 시설들 때문이었다.

별의별 게 다 있었다.

굉장히 두터워 보이는 맞춤형 샌드백은 물론이고, 엄청난 무게의 원반까지.

마치 운동 분야를 가리지 않고 운동에 필요한 모든 운동 기구는 전부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감탄하던 이규복이 원반을 가뿐히 들어 올리면서 물었다.

“헬스장 차리시게요?”

“설마요.”

대답과 함께 창고 문을 닫은 찬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최근 수확한 부산물을 포함한 잡템들을 창고 안에 구비해 두지 않아서 그렇지, 현재 인벤토리 창에 있는 것들을 모두 창고에 갖다 놓으면 여러 가지 필요한 게 생길 것이다.

그러자면 필수적인 것이 보안이다. 잡템뿐 아니라 여러 중요한 아이템이나 장비들도 모두 창고에 둘 생각인데, 혹여나 누군가 필요한 재료를 훔쳐가기라도 하면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 전화를 통해 보안 설비 회사에 견적을 문의해 두었다.

직접 찾아와 기타 제반 사항에 대해 논의하자고 해서 당장 내일 만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부산물들을 가져다 놓을 두 번째 창고에 관해서도 처리해 뒀다.

두 번째 창고의 용도는 부산물을 보관할 냉동고의 역할을 할 건데, 이 역시도 조속한 시일 내에 견적을 내 달라 청했다.

냉동고의 높이는 7m 정도.

얼핏 들은 가격만 해도 ‘억.’ 소리가 날 만큼 상당했지만 이젠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성장하는 자신의 못지않게 창고 역시 규모가 커져가고 있는 셈이었다. 하나하나 목표한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웃옷을 벗기 시작한 이규복이 기지개를 펴듯 스트레칭 하며 호흡을 골랐다.

“자, 슬슬 시작해 볼까요?”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던 바다. 아까 한 근력 운동으로 몸이 찢어질 것같이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오늘 아니면 또 그의 수업을 미뤄야 할 것이다.

웅, 웅.

곧이어 마나가 이규복의 주변으로 응축됐다.

이네이트의 발현.

별무리 같은 붉은 빛들이 이규복의 몸을 감쌌다.

화르륵.

붉은 빛들은 작은 불꽃이 되어 이규복의 팔을 타고 휘몰아쳤다. 불꽃들은 이내 그의 상징이자 힘의 근원인 붉은 풀플레이트와 거대한 검의 형상을 갖추었다.

지켜보던 찬영의 눈빛에 이채가 흘렀다.

“지금 가지고 계신 그 갑옷과 무기도 이네이트를 통해 획득하신 겁니까?”

“네, ‘붉은 사슬’과 ‘붉은 거인’. 이렇게 두 가지에요.”

“아.”

동시에 이규복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이네이트의 이름은 이를 각인시킨 미지의 존재가 지었는데, 창피함은 자기 몫이란 게 얼굴이 붉어진 이유였다.

“크흠!”

이규복은 짧은 헛기침으로 민망함을 무마한 뒤 계속 강의를 이어 갔다.

“어쨌든 두 가지 모두 제 기본 이네이트에서 뻗어 나간 연관 이네이트죠.”

그의 말을 이해한 찬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규복이 대검을 어깨에 들쳐 메며 말했다.

“사실 어떻게 수업을 해 드리는 게 좋을지 고민해 보았습니다만……. 역시 질문을 통해서 시작해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따로 이유가 있습니까?”

“네, 있죠. 찬영 씨의 경우엔 이네이트가 조금 다른 것 같아서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네이트라고 보기엔…….”

찬영이 대신 덧붙였다.

“다르죠.”

충분히 공감했다.

분명 이규복은 추가 되는 장비들에 대해 의아한 게 많을 것이다. 얼마 전 비행 장비에 대해 물어봤던 것도 그에 기인한 것일 테고…….

잠깐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차에 이규복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이네이트를 가르쳐 드리기 전에 찬영 씨와 저의 차이점부터 파악하고 효율적인 강의를 시작해 볼까 해요.”

차이를 공유하고, 점점을 찾은 뒤에 가장 효율적인 배움을 주겠다는 말이었다.

일리 있다.

“알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질문부터 시작해 볼까요?”

그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찬영이 그간 품고 있던 의문들을 쏟아 냈다.

“방금 전 장비 소환하는 이네이트의 경우엔 사용 방법이 어떻게 됩니까?”

“장비 소환이요?”

“네.”

“의외네요. 당연히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 찬영 씨의 장비도 마나 배열을 통해 생성되는 게 아니었나요?”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마나 배열?’

찬영은 처음 듣는 소리다.

이규복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이제껏 마나 배열 없이 장비를 소환한 거예요?”

희한한 일이다. 마나 배열이란 단어부터 각성자 관련 단어 등은 세계의 여러 펌을 통해, 혹은 여러 각성자들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지고 있다.

당연히 웬만한 숙련 각성자들도 마나 배열에 접근하는 방법에 능해졌다.

한데 찬영은 거기엔 관심조차 없었던 눈치다. 그럼 대체 이런 것도 모르고 어떻게 오래 버텨왔던 걸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영이 무심히 대답했다.

“예.”

‘굳이 따지면 소환이라기보다 합성이라 해야겠지.’

이규복의 눈빛에 경악이 실렸다.

‘이 사람……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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