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23화 (23/248)

# 23

“저, 진짜 베려고 하신 건 아니죠?”

이용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음, 뭐…….”

머뭇거리는 대답에 찬영이 눈을 흠칫 떴다.

맞나보다.

“괜찮죠?”

“네.”

“그럼 됐습니다.”

이용태가 얼렁뚱땅 넘어가며 물었다.

“준비해요.”

“예?”

‘이번에 또 뭐를?’

이용태가 검을 갈무리하고는 웃옷을 벗기 시작했다.

“대련.”

찬영은 어안이 벙벙했다.

나란히 선 이용태가 덧붙였다.

“대련이라고 해서 놀랄 거 없어요. 치고받고 싸우면 내가 지죠. 각성자를 내가 어떻게 이기겠어요?”

“그럼…….”

“찬영 씨는 맞기만 하는 겁니다. 대신 버텨요, 쓰러지지 않게 중심을 잡고.”

찬영이 볼을 긁적였다.

‘그건 대련이 아니지 않나?’

의구심이 들었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쓸모없는 걸 성심성의껏 가르쳐 줄 것 같진 않았다.

맹목적 신뢰가 아니었다.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누가 시간이 많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을 주도할까? 이용태는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답례할 수 있는 건…….’

그가 일러 주는 모든 배움을 하나도 빠짐없이 소화하는 것이다. 그 훈련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갑니다!”

어느새 글러브를 낀 이용태가 땀을 흘리며 움직였다.

동작이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같이 원을 그렸다. 발이 원을 그리면 손이 그다음 원을 그렸다. 찬영을 가운데 둔 이용태는 찬영의 급소를 가볍게 툭툭 치며 말했다.

“호흡 유지! 자극이 되는 곳에 집중해요, 우리 몸의 반응은 집중 여하에 따라 한계 이상의 효율을 내니까. 집중을 통한 신체 변화, 그리고 인지……. 그다음은? 정답을 맞히면 반격할 기회를 한 번 내어 드리죠.”

그 와중에도 찬영은 대놓고 두드려 맞았다.

하지만 단순히 맞는 게 아니라 밀쳐지고, 다리가 걸리면서 계속 중심부가 흔들렸다.

찬영은 균형을 유지하면서 그가 낸 퀴즈를 생각했다.

‘인지? 인지한다는 게 뭘까?’

이제껏 그간 말해 준 대로라면 신체 변화를 느낀다는 것일 테다.

‘그래, 느끼지 못할 리 없다……. 이렇게 두드려 맞고 있는데.’

“대답 없네. 하루 종일 맞겠어.”

한 발이 밀려 넘어질 듯 기우뚱 하다가도 찬영은 아슬아슬하게 버텨 냈다. 곡예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답도 맞춰야 하니 머릿속도 빙빙 돌 지경이었다.

그러나 찬영에게 동요란 없었다. 그간의 싸움은 찬영 스스로의 내면을 다지는 데 어느새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마음은 이전보다 더욱 견고해졌다.

그렇게 둘 모두 서로에게 집중하며 시간이 흘렀다.

그 순간 맞기만 하던 찬영이 맞서지 않고 이용태에게 한 발 다가섰다. 이용태가 물 흐르듯 스텝을 밟으며 사각지대로 다가서자, 이번에도 역시 찬영의 어깨가 이용태의 가슴 깊이 들어서서 그가 양손을 뻗는 리듬을 끊어 놓았다.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어도 두 번은 아니다.

하지만 이용태는 계속 움직였다. 그러나 세 번째, 네 번째에도 찬영은 그의 흐름을 기가 막히게 끊어 놨다.

흐름이 연이어 끊기자 처음으로 이용태가 물러섰다.

곧 씩 웃는 이용태.

“정답.”

찬영이 물러난 그를 보며 후, 하고 호흡을 내쉬었다.

‘그래, 그의 말대로 인지란 스스로의 몸을 제어하는 것이다.’

느끼고 집중하고 신체 감도를 높인다. 그리고 그건 비단 자신의 몸뿐만이 아니다. 상대의 신체 감도까지 온전히 느껴야 했다. 이용태가 내놓은 퀴즈의 답은…….

“상대까지 느껴라.”

찬영의 혼잣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용태가 글러브를 바닥에 던졌다.

“오늘 수업 끝! 남은 시간은 가르쳐 준 것들을 복습하든 공부하든, 알아서 하면 됩니다!”

말을 마친 이용태는 곧장 사무실로 돌아갔다.

탁.

문을 닫고 들어간 그는 소파에 앉자마자 거친 숨소리를 내며 헉헉댔다. 그냥 공격만 했는데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겉으로 보기엔 설렁설렁 움직인 것 같지만 찬영의 균형을 깨며 넘어트리려고 이용태가 쏟아부은 집중력과 힘은 그야말로 한계 이상이었다.

그런데 찬영은 단 한번도 넘어지거나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괴물, 괴물이 들어왔네.”

천장을 올려다보는 이용태의 만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다음 번 수업은 이걸 가르쳐 봐야겠다. 젊었을 적 이루지 못 한 목표들이 찬영을 통해선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할 것이다.

‘하물며 각성자라잖아. 아휴, 힘들어.’

오랜만에 움직였더니 벌써 관절이 시큰했다.

* * *

이용태가 사무실에 들어가자 찬영은 쉴 틈 없이 스스로의 훈련에 돌입했다.

슬슬 생각해 뒀던 걸 시작해 볼 차례였다.

찬영이 본격적으로 훈련을 준비하자 동식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찬영의 행동을 지켜보던 다른 수강생들의 눈빛엔 경악으로 가득했다.

“저, 저 사람 뭐야?”

“몰라. 말려야 되는 거 아냐?”

쑥덕거리는 소리를 동식이라고 못 들을 리 없다.

그래서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저, 정말 괜찮겠어요?”

자기가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던 찬영이 고개를 잠깐 들어 올리더니 말없이 끄덕거렸다.

“그렇다면야 뭐…….”

뒷머리를 긁적인 동식이 한 발 물러나자, 찬영이 앞에 놓인 역기를 손에 천천히 잡아들어 올렸다.

그런데 가뿐하다.

하지만 들기만 했는데도 동식은 너무 놀라 나자빠질 것 같았다.

평범한 역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새 주렁주렁 매달린 원반 무게만 따지자면…….

‘400kg?’

동식은 경악했다.

역기를 들어 올린다면 세계 신기록은 가뿐히 넘고도 남는다.

‘제보라도 할까? 여기 신기록을 달성한 사람이 있다고? 금메달 내놓으라고?’

찬영이 각성자라는 사실을 들었을 땐 신기하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감탄스럽다 못해 경탄스러웠다.

‘각성자들은 찬영 씨처럼 전부 다 이런 건가?’

실제로 각성자를 처음 마주한 동식은 찬영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들고 있는 원반들의 무게 때문에 그가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마음도 이젠 싹 달아나 버렸다.

“허!”

그냥 헛웃음만 흐를 뿐이었다.

마침 눈이 마주친 찬영이 말없이 씩 웃었다. 괜찮다는 무언의 대답이었다.

‘예, 어련하시겠습니까?’

동식도 그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이젠 그냥 그가 어떤 놀라운 모습을 보여 줄 지 숨죽여 지켜 볼 뿐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놀란 건 동식뿐만이 아니었다. 찬영도 놀랐다. 이제껏 더블 피니시를 착용하지 않은 채로 스스로의 순수한 육체 힘을 시험해 본 적은 없다.

‘한데 이건…….’

분명 놀라운 변화였다.

섬뢰보의 습득이 순수 육체의 한계를 한 꺼풀 벗겨 낸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비를 제외한 순수한 육체의 능력은 장비를 착용한 상태에 비해서는 턱 없이 부족하다. 나태해질 여유가 없다.

곧장 강사가 가르쳐 준 호흡을 뱉으며 역기를 들어 올리기 위해 호흡을 되새겼다.

하지만 배가된 400kg의 중량은 한 번 엉덩이를 뺐다가 올리는 걸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중량 때문에 자꾸 허리가 앞으로 고꾸라지려 했다.

그러자 절로 입이 다물어지며 호흡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안 돼!’

스스로의 호흡을 붙잡으려 하던 그때, 동식이 찬영의 호흡하는 집중력을 돕기 위해 보조해 주었다.

“숨이 약해졌어요. 토해 낼 때 확실히 토해 내세요!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있는 힘껏 숨을 토해 냈다.

그 짧은 찰나에 근력들이 힘을 써야 할 부근에 한데 집중됐다. 동시에 호흡을 유지하며 번쩍 들어 올렸다.

기어코 찬영이 400kg의 역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것이다. 심지어 허공 위에 들린 역기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찬영은 여기서 한 번 더 근력을 짜냈다.

들어 올린 역기를 던져서 내려놓는 게 아니라 천천히 얼굴을 지나 바닥에 느리게 내려놨다. 이런 식으로 반복하자 역기를 들어 올릴 땐 온 몸이 찢어질 것 같았고, 역기를 내려놓으면서 몸을 낮출 때는 무릎은 둘째 치고 허벅지와 허리가 당장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들려오는 동식의 목소리는 분명 집중력의 초점을 맞추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찬영은 그의 보조에 맞춰 몸을 더욱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그럴수록 개수 세기는 진작 포기했고 개수 세기를 포기하자마자 ‘힘들다, 포기하고 싶다, 그만 다 놓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갔다.

하지만 찬영은 그럴 때마다 죽은 여러 사람들을 떠올렸다. 너무 슬펐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이었고 사연이 있고 가족이 있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으로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희생은 분명 고귀하고 값지지만, 휴거는 여전하고 또 다른 죽음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희생이 반드시 변화를 불러오는 건 아닌 것이다.

‘살아야 한다.’

악다구니를 써서라도 생명의 끈을 쥐고 인내하고 견뎌 내야 했다.

그러니까 손에 쥔 건 아무 것도 놓지 않을 것이다.

생명이든 의지든, 어떤 것이든.

그리고 순간 그토록 기다렸던 창이 나타났다.

-근력 가치가 +1 상승하였습니다.

탁.

그 창을 보자마자 찬영은 들고 있던 역기를 지쳐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천천히 내려놨다.

찬영이 입 안 가득 찬 단내를 삼키고 환히 웃었다.

‘……됐다. 예상이 맞았다.’

한때 마나 소총 조준력이 상승했던 것을 비추어 볼 때 근력 데이터 또한 훈련을 통해 상승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다.

그건 안내 창을 통해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앞으로 가져올 영향은 컸다. 매 순간 성장하는 걸 체감할 수 있고, 목표치도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보이는 목표를 단기적으로 설정하며 한 계단, 한 계단 성장하는 사람과 다른 각성자들처럼 보이지 않는 목표를 두고 성장해야 하는 사람의 격차는 크다.

특히나 찬영은 순수한 육체에 장비의 능력치가 보태지는 특이한 케이스. 장비의 강화와 더불어 순수 육체의 힘이 강해질수록 그 시너지 효과는 굉장했다.

여러모로 육체 성장을 위한 훈련들은 찬영에게 포기할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여러 훈련을 손에 놓을 수 없었다.

“하아, 하아.”

거칠긴 하지만 여전히 호흡을 멈추지 않는 찬영이 동식을 돌아보며 물었다.

“한 번 더 도와주시겠습니까?”

* * *

그 후 훈련은 계속 되었고 찬영은 초주검 수준이 되고 나서야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훈련 성과가 확실했기에 기쁜 마음이긴 했지만 몸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평생 운동 안 하다가 헬스클럽 하루 가서 운동하면, 일주일 내내 앓아눕는 경우 있지 않은가? 지금이 딱 그런 때 같다.

‘아, 죽겠네.’

그런 와중에 스마트폰이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걷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급한 게 아니라면 좀 끊지.’

다행히 스마트폰은 두 번, 세 번 연달아 울리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울렸다면 급한 일이라 판단하고 받았을 테지만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방금 온 전화는 집에 가서 확인하잔 생각으로 체육관 밖으로 힘겹게 나섰다. 그러고 나서 여왕의 총체를 타는 건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졸지에 여왕의 총체가 대중교통이 되어 버린 순간이기도 했다.

마침 창 밖으로 찬영이 날아가는 걸 지켜본 이용태가 놀란 토끼 눈으로 동식에게 물었다.

“찬영 씨 대중교통 타고 다닌다고 하지 않았냐?”

동식도 얼이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요즘 대중교통은 날아다니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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