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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22화 (22/248)

# 22

#22

내용을 읽은 후 찬영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쳤다. 재료를 대신한다? 그것만으로도 대환영이었다. 특히 뉴 게이트에서 나타나는 휴거들을 선별해서 잡을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재료 없이 제작도안서를 완성시켜 주는 스크롤이라……. 이렇게 되면 굳이 오 중령과의 거래를 통해 획득할 부산물이 아니어도, 그간 묵혀 뒀던 오렌의 절구를 완성시킬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었다.

‘+1 업그레이드 찬스권까지 더 붙여 쓸 수 있어.’

이렇게 되면 더블 피니시의 경우 +2 추가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진다.

+1 업그레이드만으로도 450,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 주었던 무기가 +3이 되면 어떤 장비가 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대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당장 강화부터 시작 해야겠다.’

지체할 것 없이 고개를 돌려 이번에 받은 스크롤을 쓰려 했다.

헌데 30회 보상 창이 사라지자마자 팡파르 소리와 함께 눈앞이 번쩍였다.

카메라 플래시를 눈앞에 두고 터트린 것 같았다.

‘이건 뭐지!’

찬영이 눈을 감았다 뜨자 그새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출석 보상 31회 달성으로 인해 1차 캘린더를 완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소울 카드를 고르세요.

촤라락!

그리고 눈 깜짝할 새 붉은색, 푸른색, 하얀색 카드가 이름 순서대로 눈앞에 나열되었다. 갑작스러운 섬광에 난데없이 나타난 카드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30회 보상 받기가 끝이 아니었어!’

알고 보니 10회씩 끊어서 보상을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31회 최종 보상까지 존재했던 것이다.

‘시스템은 내게 이 카드를 고르라고 권하고 있다.’

대체 이 카드, 소울카드라는 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시스템이 권하는 새로운 유형의 보상 방식이란 것은 확실했다.

이제껏 계속 그래왔다.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보상 방식이었다. 찬영은 이번에도 그러리라 판단했다.

‘자 그럼…….’

이미 놀란 건 접어 두고 상황을 직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찬영은 금세 차분함을 되찾았다.

찬영의 재능이 어쩌면 어떤 변화에도 괴물같이 적응하는 적응력이라고 생각했던 이규복의 판단이 정확히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눈앞에 놓인 카드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누가 봐도 이 셋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것 같았다. 만약 원하는 카드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신중히 여러 조건들을 따져가며 카드를 골랐을 테지만 지금의 선택은 그야말로 랜덤이었다. 당장은 그냥 좋아하는 색을 뽑으면 그만인 것이다.

‘하얀색으로 하지.’

어릴 때부터 마냥 하얀색이 좋았다. 하얀색은 다양한 색에 잘 섞이기도 하고 때론 독자적인 희귀함을 뽐내기도 하는, 적당한 균형감이 느껴지는 색이었다.

중도랄까? 아무튼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색이었기에 이번에도 역시 하얀색을 선택했다.

그러자마자 세 장의 카드 중 두 장의 카드가 사라지고 하얀색의 카드가 강한 빛을 뿜어내며 천천히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그 빛은 눈이 부시다기보다는 오히려 눈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따뜻한 광채가 눈을 휘감는 기분이었다. 편안함에 절로 눈을 감게 되는 아늑한 빛이 서서히 눈가 아래 스며들어 가던 때쯤, 찬영은 어느새 작고 오래된 신전에 홀로 서 있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에 떨어진 이 순간, 놀라고 황당해야 할 감정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마치 집에 온 듯 평온한 마음으로 고개를 드니 햇살이 스며든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였다.

혀를 내민 괴물들이 갈라진 대지 사이로 기어 올라오고, 날개 달린 말을 탄 기사들이 구름을 뚫고 강림하는 그림이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였다.

하늘과 땅이 울리는 전투, 이를 올려다보던 찬영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얹었다. 어깨에 느껴진 무게에 고개를 돌리니 하얀 로브의 여자가 환히 웃으며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몸이 깊은 낭떠러지에 빠지는 듯 다시 아득해졌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찬영은 현실로 복귀해 있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순간의 여운이 강해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잠시 멍한 채로 눈앞의 창을 응시했다.

-소울 카드는 당신을 보조합니다. 소울 카드로 획득한 영혼의 영혼 교류가 상승할수록, 영혼의 보조 능력 또한 강해집니다.

글을 읽고 나서야 정신을 조금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 되짚으며 깨달았다.

‘그럼 아까 결정한 그 카드가 이 사람과의 교류를 개방시켜 준 건가?’

그러면서 아래 나와 있는 내용을 살폈다.

-성녀 베아트리체와의 영혼 교류로 인해 베아트리체 영혼의 1.2%가 당신의 그릇 안에 첫눈을 떴습니다. 그로 인해 베아트리체의 중화中和가 각인되었습니다.

-알폰의 성녀 베아트리체

-중화中和(가치 : 1,210)

-베아트리체와의 영혼 교류로 인해 중독 시 자생 해독력이 120% 상승합니다.

모든 글을 읽고 난 뒤 ‘아’하고 짧게 신음성을 냈다. 시스템이 일러 준 대로 소울카드는 영혼 교류를 불러오고 영혼 교류를 통해 교류하기 시작한 영혼은 새로운 보조 능력을 갖추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1.2%의 영혼율은 어떻게 상승시키는 것인지는 몰라도 분명 상승시킬수록 아직 나타나지 않은 보조 능력을 보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강해진다는 글귀가 있을 리 없었다.

쉽게 말해 버프(Buff 강화 효과)였다.

찬영의 몸에 전혀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의 능력이 깃들게 된 것이다. 이건 이네이트와는 사뭇 다른 계열의 능력이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분명 능력 면에선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납득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알폰? 성녀? 거기에 어느 작은 신전까지……. 이것들만 보아도 지금의 일이 스스로의 제어 밖의 일이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미 서먼 홀에 뉴 게이트까지 일어난 판국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 포함된 능력이라고 해서 의심하기만 하는 건 웃기는 일이다.

‘그렇다면 최선의 선택은 단 하나, 뭐든 활용하고 완성시킨다.’

완성시켜서 진실에 가까워질 것이다. 성녀라고 말하는 베아트리체가 정확히 뭘 했는지, 그녀가 왜 자신을 기다렸다고 말했는지 모두 다.

‘이 정도 일에 동요하지 말자.’

베아트리체의 일 또한 성장하기 위한 주춧돌이라고 생각하면 머릿속도 복잡하지 않고 편했다.

굳이 따지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 * *

그렇게 로그인 캘린더를 비롯해 그간 쌓아 둔 박스 및 보상들을 정리한 찬영은 웃옷을 찾아 입었다.

잡템 정리와 합성, 강화를 위해 컨테이너 창고도 들르고 미루어 두었던 체육관도 가야 했다.

특히 체육관에 먼저 가서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금세 운동화를 신은 찬영은 게으름이 자라날 새도 없이 밖을 향해 나섰다.

찬영이 먼저 향한 곳은 그간 여러 일이 터지는 바람에 미뤄 두었던 체육관이었다.

이네이트를 습득한 각성자들이라면 찬영의 선택에 ‘굳이?’라며 의아해했을 것이다. 아니 비웃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럴 법했다.

이네이트는 단순히 기술을 각인시키는 게 아니고 그 기술에 맞게 신체를 성장시켜 잠재력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한계까지 운동해서 획득할 수 있는 신체 능력의 수준을 가볍게 넘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무술 등을 습득하지 않고 휴거만 잡으면서 성장하는 것이 각성자들에게는 최고의 훈련법인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영은 체육관을 찾았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체육관은 이전에 찾아왔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문이 열리고 들어섰을 때 쏟아지는 시선이 전에는 호기심, 경계 등이었다면 지금은 반가워하는 눈빛이 섞여 있었다. 훈련하는 구성원들은 바뀌었지만 강사들은 그대로였다. 동식과는 짧은 목례로 가볍게 인사한 뒤 이용태에게 시선을 돌렸다.

“왔어요?”

마침 기다리고 있던 이용태가 다가왔다.

이용태는 사실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찬영이 관두었다고 생각했다. 그냥 빡세게 굴린 것도 아니고, 웬만한 사람은 구토하고 병원에 실려 갈만한 아니, 그 이상으로 훈련시켰다.

겁먹고 오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찬영의 그 흔들림 없는 눈빛은 포기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래서 ‘사람을 잘못 봤나?’하던 차에 오늘 찬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리고 그 전화를 통해 그간 오지 못한 이유에 대해 짧고 명쾌하게 듣게 되었다. 뉴 게이트. 그리고 각성자.

‘역시, 그랬던 거로군.’

각성자가 되고 나면 탈인간의 신체가 된다고 들었다. 찬영이 지독한 훈련을 담담히 견뎌 낸 데에는 그런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찬영을 보는 이용태의 눈빛에는 강렬한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각성자의 경우 어느 정도로 신체 능력을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 것이다.

이건 그가 평생 버릴 수 없는 강함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었다.

“시작할까요?”

웃옷도 벗기 전에 급하게 훈련을 시작하려는 이용태를 보며 찬영은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뭐가 그렇게 급하신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침 입고 온 옷도 트레이닝복이었기에 곧장 훈련에 돌입하기로 했다.

* * *

의외로 훈련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 이뤄졌다.

시작은 명상부터였다. 이용태가 매트 위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은 찬영의 주변을 거닐며 말했다.

“시스테마는 부딪치고 깨지고 장애물을 넘고, 구르는 등의 훈련을 주로 합니다. 왜? 외부 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과 저항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용태가 조용히 손만 까딱여 동식을 불렀다. 동식이 조용히 다가와 진검을 건넸다.

스릉.

검을 뽑은 이용태가 찬영의 어깨에 검등을 올리며 말했다. 찬영은 슬며시 눈을 떴다. 어깨에 올려진 날카로운 검이 보였다.

‘당장 베일 것 같다.’

“……호흡을 유지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흐트러지지 말아요. 후, 후 계속. 호흡을 놓치면 생체 리듬이 깨지고 생체 리듬이 깨지면 동작이 굳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찰나에 굳어 버린 몸으론 아무 것도 못 하고 얼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말을 잇던 이용태가 부지불식간에 검을 휘둘렀다. 날아오는 검은 정확히 찬영의 목을 노렸다.

후, 후!

찬영이 본능적으로 한 손을 짚고 뒤로 텀블링하며 피해 냈다.

쐐액!

찬영이 앉아 있던 곳에 스쳐 가는 검. 하지만 찬영의 숨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이용태의 눈에 잠깐 놀라움이 스쳤다.

‘과연……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이든 검이 다가오면 호흡이 흐트러지기 마련이었다. 찬영을 급습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두렵거나 놀라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마시면서 호흡을 멈춘다. 내뱉으려 하지 않고 숨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방금 전의 일 검도 찬영의 호흡 템포가 계속 유지되는지를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만약 호흡을 놓쳤다면 호되게 혼낼 참이었다.

그러나 찬영은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세를 다시 잡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자리에 앉았다.

호흡은 그대로였다. 가르쳐 준 걸 마치 물 먹는 솜처럼 있는 대로 다 빨아들인다.

‘이대로라면 며칠 안 가서 가진 밑천을 다 털리겠어.’

하지만 기분이 좋다. 평생 해 온 시스테마를 훈련시키면서 데리고 있는 동식 말고는 훈련 과정을 제대로 따라오는 녀석을 본 적이 없다. 동식은 하나를 던져 주면 하나 그대로 먹는 것도 모자라, 두 개를 던져 달라는 듯 쳐다본다.

찬영은 굳이 비교하자면 세 개 아니, 네 개 이상을 원한다

특히 천성이 완전히 돌부처여서 조급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뿐인가? 가르쳐 주는 것도 잊지 않고 그대로 활용한다. 아니, 활용하다 못해 어느새 호흡이 몸에 익숙해진 듯 편안하게 습득되어 있다.

‘미친…….’

잠깐 말을 잃고 서 있는 이용태에게 찬영이 수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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