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21화 (21/248)

# 21

#21

“불법 취식 행위까지 얹으세요.”

찬영의 조언에 이규복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불법 취식 행위도 추가하세요.

통신 직후 이규복은 꽤 놀란 눈치였다. 평소 자기 일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던 찬영의 반응이 이규복에게는 꽤나 의외였던 것이다.

“찬영 씨가 한 몫 거들 줄은 몰랐네요.”

찬영이 단호히 대답했다.

“틀렸으니까요.”

이규복이 아니었어도 누구든 이 자리에 있었다면 술 취한 산행객을 따끔히 혼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사람이 죽은 걸 생각하면…….’

찬영도 이규복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이렇게나마 정신을 차리게 해 주고 싶다는 이규복의 마음에 동의했다.

“어쨌든 목숨 구해 준 대가치곤 싸게 받으셨네요.”

“그러게요. 받으실 분은 따로 있는데 말이죠.”

이규복이 웃음 지으며 찬영을 바라봤다.

“사양할게요. 충분히 만족합니다.”

고개를 저은 찬영이 이미 죽은 시신들을 돌아보았다.

가슴이 먹먹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치인 것을 안다. 이런 감상에 빠져 있을 사이에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행동을 취하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마음의 짐 같은 것은 아직 산 사람들을 위해 흘려 두자.

찬영의 무거운 눈빛을 읽은 이규복이 일부러 어깨를 두드렸다.

“그만 가죠. 우릴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요.”

찬영은 마지막으로 눈앞에 나타난 획득창을 힐끗 쳐다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어 획득창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알 수 없는 마정석

-가치 : 230

이때까지만 해도 찬영은 이 자그마한 마정석이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마침 동료의 죽음을 듣고 저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 베트킬이 보였다.

* * *

그렇게 백방으로 휩쓸고 다닌 지 한 시간 만에 이규복의 팀 전부는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

불가피한 인명 피해가 있기는 했지만 뉴 게이트의 예측이 가능했던 가온과 제 때 와 준 이규복의 팀 덕택에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 후 반경 20km 안에는 더 이상 어떤 휴거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임시 텐트에 모여든 군과 V.O. 합동 대처 테스크포스 일원들은 전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중 이규복 팀과 군부대의 협력을 조율하는 역할, 그리고 여러 브리핑 등 데스크를 맡은 오 중령이 이규복에게 통신했다.

-위성으로 확인해도 더 이상 휴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부에서도 이젠 저지선만 치고 물러나란 지시입니다.

그 답신을 들은 이규복은 무전을 내려놓으며 저 멀리 검은색과 붉은색의 소용돌이가 커튼 자락처럼 섞여든 독립문 크기 규모의 홀을 응시했다.

그것은 찬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삼오오 모여든 팀원들보다 세 걸음 앞서 홀을 들여다보고 있던 찬영은 이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휴거의 전멸과 함께 닫혀야 할 뉴 게이트가 기이하게도 계속 열려 있었던 것이다.

“이건 또 왜……?”

찬영이 조용히 미간을 찌푸렸다.

* * *

뉴 게이트 정지 파동 발생 직후.

찬영은 새로 이사한 집에서 씻고 있었다.

쏴아.

뻗어져 나오는 물줄기에 흠뻑 젖었던 땀이 씻겨  나갔다.

‘아, 시원하다.’

고된 일을 마치고 난 샤워는 역시나 꿀과 같다.

“후아.”

흠뻑 적신 머리를 올백으로 쓸어 넘긴 찬영은 마주한 거울을 쓱쓱 닦으며 데스크를 맡은 오 중령이 했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당분간 상부 지시 있을 때까진 열려 있는 뉴 게이트 근처로 접근하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입니다. 다들 그리 알아요.”

그 지시 이후로 별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직 닫히지 않고 있는 북한산 뉴 게이트에 접근해 보고 싶었다.

닫히지 않는 뉴 게이트에 시스템이 반응했던 탓이다.

그게, 아마…….

-돌발 현상 수배 (F)

-오디

-가치 : 4,400

-알 수 없는 마정석 보유 시 오디가 나타납니다.

-주의사항 : 오디의 방망이가 가진 반탄력은 바람도 튕겨냅니다.

고정 보상 : 흔적 (1)

이것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들어갈 수 없었다.

정부와 V.O.에게는 지켜 줘야 할 선, 쉽게 말해 룰이 있었던 것이다.

찬영이 갖은 설명을 다 한다 치더라도 지도자들은 신중하게 찬영의 말을 검토할 것이다.

그들은 룰 안에서 활동하길 원한다. 잘못하면 여러 가지로 편의를 봐 주던 관계가 틀어질 수 있었기에 찬영은 우선 지켜보기로 결정하며 한 발 물러나는 걸 택했다.

좋은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이득들을,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저버리는 우둔한 짓은 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또 그런 선택에는 진입이 머지않았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아무리 합의를 한다고 해도 제 마당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보고 있는 것은 그 어떤 지도자라도 싫을 터였다.

그럼 그 폭탄을 가장 잘 다룰 만한 사람을 보내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각성자들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조건에 부합한다. 해서 찬영은 일상으로 돌아가서 앞으로 닥쳐올 전투를 준비하기로 했다.

어차피 오디의 가치는 4,400.

무려 1,000이 높다.

같은 팀원들이 함께 하더라도 분명 높은 수치인 셈이었다. 그러니 전투력의 상승은 불가피했다.

물론 그러자면 다른 뉴 게이트에 파견을 나가는 편이 제일 나은 방법이었지만 그것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다.

각성자는 찬영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고, 그 팀을 운용하는 주체는 V.O.와 정부였다. 각자 맡은 구역이 있어서 이리저리 움직이려면 수반되는 서류가 한 가득이었던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찬영은 전투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샤워만 마친 후 전투 때문에 잠시 미뤄 두었던 보상들부터 개봉하기로 했다.

병원에 입원하며 쌓아 온 로그인 캘린더가 비로소 31회까지 도달해 보상 박스를 받았고, 베트킬을 이 잡듯 죽여 획득한 잡템과 그로 인해 쌓인 업적들로 획득한 골드 8급 박스도 개봉해야 했던 것이다.

탁.

그새 샤워를 마친 찬영은 하체만 큰 수건으로 두른 채 욕실 밖으로 나왔다.

군살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근육질의 매끈한 몸.

거북이의 등딱지처럼 오밀조밀하게 붙은 견고한 근육들은 찬영이 수건을 털며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렸다.

무식하게 크기만 한 근육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른 체형인 듯 보이나 그 속에 꿈틀거리는 견고한 근육은 마치 짐승의 근육 밀도와 흡사했다, 이제는 탈인간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정작 본인은 감탄은커녕 일전의 전투들을 떠올리며 부족하다고만 생각했지만.

이윽고 소파로 걸어가기 위해 전에 살던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넓어진 27평 아파트 거실을 가로질렀다.

이제 경제 사정은 충분히 넉넉했다.

다이아몬드도 처리했고 통장에는 V.O.에서 지급되는 수당, 정부의 지원금까지 있어서 매달 생활비로는 넉넉하다 못해 넘쳤다. 그 덕에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이 없어서 좋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몸을 닦은 뒤 대강 웃옷을 입으면서 오랜만에 TV를 켰다. 마침 최근 유명세를 탄 각성자 이호현이 나왔다. TV를 통해서도 가치 측정은 가능했다. 소파에 앉으며 그의 가치를 확인했다.

-이호현.

-가치 측정 결과: 6,200

괜히 유명해진 게 아니라는 판단이 들 만큼 놀라운 능력을 보유한 남자다. 이규복도 대단했다고 느꼈는데 그런 이규복보다 두 배 정도 더 강함을 보유한 사람이다.

대한민국만 해도 이런데 전 세계엔 얼마나 강한 각성자들로 득실거릴까? 자만이 들다가도 금세 고개를 숙이게 된다.

마침 그가 토크쇼에 나와 말하는 것을 들으며 최근 동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최근 동향은 정말 눈 깜짝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혹시 신변에 피해가 될까 싶어 숨어 있었던 각성자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휴거를 정리하는 영상들도 TV 혹은 여러 매체를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소위 얼굴 마담들이 슬슬 브라운관에 모습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호기심과 경외를 동시에 받기 시작한 것이다. 각성자가 연예인처럼 하나의 브랜드화가 되어 가는 셈이었다.

지금 보이는 이호현 역시 그래 보였다. 한동안 이호현이 말하는 토크쇼를 듣고 있던 찬영은 다시 TV를 끄고 일어났다.

삐익.

대중의 관심을 즐기며 스스로의 희생에 자부심을 갖는 각성자들과 자신은 애초에 길이 달랐다. 딱히 그들을 한심하다거나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상황에 적응하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고, 자신 또한 노력이란 방식으로 어떤 형태로 찾아올지 모르는 내일을 준비한다. 그저 가는 길이 다를 뿐인 것이다.

그렇기에 찬영은 TV를 끄고 저번 전투에서 느낀 바를 떠올렸다.

‘기압을 좀 더 오래, 그리고 견고하게 견뎌야 해.’

베트킬과의 싸움에서 한 시간이 넘게 허공에서 휘젓고 다니자 온 몸이 물 먹은 듯 무거웠던 경험을 떠올렸다.

아무리 여왕의 총체가 몸을 보호한다고 해도 기압을 견뎌 내는 데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정신력과 신체적 기반인 것이다. 결국 장비를 입든 입지 않든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몸과 정신이었다. 새삼 그 점을 느낀 찬영은 순수한 신체의 성장에 목마른 상태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목이 꽤나 텁텁했다.

‘샤워 뒤엔 역시 맥주인데 말이지…….’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를 관리하려면 술은 무조건 기피해야 한다.

“하아.”

가벼운 한숨을 푹 쉰 찬영은 번잡한 머릿속을 달래려 로그인 보상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잡념을 털어내는 건 보상 개봉 만한 게 없다.

‘여왕의 총체처럼 쓸 만한 게 나오면 좋을 텐데……. 시작해 볼까?’

찬영은 가치 측정으로도 여타 쓸모없어 보이는 잡템을 접어 두고 박스들을 개봉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개봉한 것은 업적을 통해 획득한 박스 보상이었다.

-골드 8급 보상을 개봉하시겠습니까?(예/아니요)

‘물론.’

띠링.

늘 듣던 기분 좋은 소음과 함께 보상 데이터가 나타났다.

-인라의 퍼즐조각 (1)

-가치 : ?

-설명: 인라는 퍼즐을 흩트려 놓아 유산을 남겨 뒀다.

-퍼즐을 전부 획득 시 ‘인라의 유산’의 위치가 드러난다.

동시에 하나의 그림이 나타났다.

그림은 마치 녹슨 왕관을 쓴 채, 세 개의 눈을 가진 사람이 삐딱하게 앉아 있는 조각상을 그려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완성되었던 그 그림이 퍼즐처럼 마구 분리되더니 세 개의 눈 중 하나의 눈만 남았다.

나머지 그림은 전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쯤 되자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저 그림을 다시 완성시키라는 뜻인가?’

대체 어떤 유산인진 몰라도 이렇게 어려운 길을 찾게끔 만든 유산이라면 단순한 물건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당장 사용할 수 없는 아이템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강화에, 현상 수배에, 이젠 퍼즐까지……. 다음엔 어떤 보상이 나올지 기대가 됐다.

하지만 찬영은 몰랐다.

31회 로그인 캘린더가 줄 보상에 비해 지금의 보상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 * *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모르는 찬영은 신속히 다음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반짝이고 있는 로그인 캘린더 30회 보상 받기가 보였다.

최근 ‘+1 영구적 업그레이드 찬스권’까지 준 로그인 캘린더이다.

그 이상의 보상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찬영은 기대감 속에 보상 획득을 손에 넣었다.

-30회 출석 조건을 달성해 제작도안서 1회 완성 스크롤을 획득하였습니다. 가치 1,000 이하의 도안서일 경우 종류를 막론하고 재료 없이 완성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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