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자동보상-19화 (19/248)

# 19

#19.

그들이 가고 나서 찬영은 잠깐 미뤄 두었던 로그인 박스 보상에 집중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상위 박스를 기대하며 가진 박스들을 모두 쏟아부어야 할까? 하나씩 단품으로 개봉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까?’

솔직히 실버 5급에서 골드 10급 사이를 보상으로 주는 수수께끼 박스와 골드 10급 고정 박스 경우엔 골드에 한 번도 진입한 적이 없어 단품으로 개봉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외 추가 박스들의 경우야 실버 10급에서 실버 1급까지가 상한선이어서 모두 넣고 돌려도 상관없었다.

현재 획득한 장비들이 실버 1급 이상의 몫은 충분히 하고도 남을 장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결국 고민은…….

‘골드 박스에 확실히 진입하느냐, 아님 상위 박스를 기대해 보느냐……?’

상위박스라면 어쩌면 골드 7급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안정성 투자와 변수가 가득한 공격적 투자, 이 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찬영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이미 이 길에 들어선 이상 안정성 같은 단어를 떠올리는 게 멍청한 짓이다.

‘못 먹어도 고!’

찬영의 고민은 끝났다.

‘조합!’

찬영의 의지가 깃들자 박스 다섯 개가 모여 조합되기 시작했다.

-최초 박스 조합 업적이 달성되었습니다. 최초 박스 조합으로 인해, 첫 박스는 최상위 박스가 보장됩니다.(최상위 박스는 조합한 박스들 중 가장 높은 박스보다 다섯 단계 높습니다.)

-5급 골드 박스 획득하였습니다.

-골드 박스 최초 진입을 통해 동일한 5급 골드 박스를 추가 획득하였습니다.

보상의 종극을 찍는 결과는 끝까지 달콤했다.

만족감을 느끼면서 눈앞에 반짝이는 창을 응시했다.

공격적 투자가 아니었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보상! 그리고 그 보상은 더 없이 달콤했다.

원하던 상위 박스를 얻었을 뿐 아니라, 보상이 1+1으로 늘어났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으나 해낸 것이기에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깐 고민했다.

‘골드 5급 박스가 모아진 김에 좀 더 박스를 모아 볼까?’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공격적 투자도 좋지만 생존력을 높이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골드 5급 박스라면 이제껏 나온 것들보다 좋은 아이템이 나올 터였다. 투자가 있어야 더 큰 보상이 오는 것이다.

고로 이번에 나온 박스들을 통해선 당장의 개인 능력을 높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린 찬영은 빠르게 박스들을 개방했다.

첫 번째 박스부터 찬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골드 5급 박스를 개봉했습니다.

-타우린의 영혼 조각 3개를 획득했습니다.

-회수해야 하는 영혼 : 3/10

‘타우린?’

정확히 뭘 뜻하는 건지도 나오진 않았지만 뭔가 회수할수록 수량이 모아지는 물건인 건 틀림없었다.

‘장비일까?’

장비라면 조각을 10개나 모아야 하는 물건이니 굉장히 뛰어날 것이다. 당장 획득할 순 없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분명 큰 도움이 될 법한 물건 같았다.

‘우선 킵, 그럼 다음은…….’

찬영이 서둘러 두 번째 골드 5급 박스를 개봉하자 상상도 못한 보상이 나타났다.

-가치 측정 Lv. 2의 권한을 획득하였습니다.

바로 권한 업그레이드가 이뤄진 것이다.

‘……가치 측정의 확장도 가능했었던 건가?’

하긴, ‘Lv. 1’이라는 문구가 괜히 붙었을 리 없었다.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시스템은 내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있다고 계속 말해 주고 있는 건가?’

분명 그런 것 같았다. 찬영은 새삼 앞으로도 시스템이 알려 주는 이런 신호들을 모두 기억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을 통해 획득되는 대부분의 것들이 모두 성장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러 아이템의 가치를 한 번에 알아보는 이 능력의 업그레이드판은 대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찬영은 나타난 가치 측정 확장 내용을 빠르게 살폈다.

-가치 측정 Lv. 2

-아이템 측정 가능

-마주한 대상 모두 전투력 측정 가능

내용은 단순했지만, 보상의 영역이 한층 더 넓혀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뿐인가? 이것은 그야말로 신의 영역이었다. 사람 혹은 휴거의 강함을 숫자의 지표로 책정해 알려 준다는 이야기니까.

직접 겪어 보지 않아도 강함의 정도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 오태조 중령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전투력 탐색이 가능해진 찬영과 전속 계약을 하고 싶어 더욱 안달이 났으리라.

그러나 찬영은 전속 계약같이 자신의 발목을 묶어 두는 일을 자처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움직이고 싶었다.

이제껏 살아왔던 것처럼, 그대로.

“그래, 그대로…….”

그간 쌓여 있던 보상을 획득한 찬영의 가라앉은 눈빛이 밤을 향해 나아가는 노을에 머물렀다.

* * *

일주일 후.

찬영의 몸은 다 나았다. 심한 부상이었으나 이규복이 펌에 요청을 해서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희귀하다는 치료 계열의 각성자를 직접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때 보디빌딩 대회를 준비했었다는 이 근육질 남성 힐러는 수더분하게 대화를 나누며 찬영의 회복 속도를 높여 주었다. 그는 자생 속도를 80%나 높여 준다는 힐이라는 이네이트 능력자였다.

그렇게 하루 동안 힐을 받고 나자 찬영의 회복 속도는 주치의가 이대로라면 의사를 관둬야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빠르게 호전되었다.

그리고 오늘 퇴원 수속을 밟은 찬영은 병원 입구로 차를 가져온 이규복의 차에 올라 탄 채 잠실 대교를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V.O. 본사와는 다른 방향인 북한산이었다.

북한산 초입에 뉴게이트 발생이 시작됐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찬영이 누워 있던 며칠 사이 V.O.가 ‘마나’에 대해 공표했다.

이는 변혁을 예고했다.

어느 나라도 못한 일을 V.O.와 대한민국 정부가 시작한 것이다.

그건 V.O.의 대표이자 정부와의 협약을 끌어낸 각성자인 윤태규의 빛나는 업적이었다.

‘마나’그것은 원소의 이치를 포함한 미증유의 힘이었다.

놀랍게도 그 힘엔 분열과 융합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분열하는 성질이 미증유의 힘을 일으키고 그 미증유를 스스로 융합하며 제어하는 것이다. 마치 신이 인간에게 새로운 과제를 주어 준 듯 했다.

그렇게 개발 초기 단계인 이 ‘마나’는 휴거의 시신에서 채취하였고 그 채취한 마나를 활용한 여러 개발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윤태규 대표와 정부가 함께 발표했다.

더구나 그들에 의하면 이 마나는 각성자와도 연관이 있었다. 마나라는 힘이 몸속 변화를 일으켰다는 연구 결과들을 내세운 것이다.

그리고 그 논문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옳았다. 그들은 그간 개발해 놓은 두 가지 물건을 발표하고 내놨는데, 그것이…….

“‘가온’과 ‘거늘’이에요. 순우리말이죠.”

신호에 맞춰 차의 브레이크를 밟은 이규복이 말했다.

며칠 간 환자로 지내느라 뉴스, 신문 등 기삿거리를 많이 본 찬영이 덧붙였다.

“가온은 뉴게이트가 열리는 걸 감지하는 장치라던데, 놀랍네요.”

그렇다. 뉴게이트는 열리기 직전 마나 분포도가 굉장히 높다. 가온은 이 부분을 캐치해 설계된 장치였다.

“네, 맞아요. 거늘은 기존 각성자의 마나 보유치를 측정하기 위한 물건이면서 동시에 새 각성자를 찾기 위한 설비죠. 최근 서먼 홀에 소환되지 않아도 자신의 힘을 각성했다는 신규 각성자들이 늘고 있거든요.”

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새삼 세상엔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옆에 있는 이규복도 그런데 V.O.의 대표와 이를 연구해 낸 연구원들의 성과는 정말…….

‘놀랍다…….’

찬영은 그제야 이제껏 왜 V.O.가 조용하게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전에 이규복이 말했던 그대로 그들은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시대를……!’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는 찬영에게 이규복이 웃으며 말했다.

“가온으로 인해 우리가 이렇게 차분히 진행할 수 있는 거겠죠.”

이규복의 말이 맞다. 현재 북한산 초입엔 저지선이 쳐지고 뉴게이트를 대비한 준비가 일어나고 있다.

아니, 뉴게이트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는 장소마다 저지선이 쳐지고 V.O.와 정부의 요청을 받은 수많은 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찬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규복은 퇴원하자마자 뉴게이트로 가게 된 게 미안하다며 거듭 사과했지만 찬영은 그저 고개만 저었다.

그가 미안할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선택한 길인데다…….’

당장, 이번에 획득한 장비들을 사용해 보고 싶어졌다.

‘전부 다……!’

그때 이규복이 조수석 서랍을 가리켰다.

“그 안에 오늘 작전 구획 표시, 브리핑 등이 다 있어요. 태블릿 PC를 켜고 확인하면 돼요.”

찬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서랍을 열고 태블릿 pc를 꺼내 브리핑을 듣기 시작했다.

아이패드를 켜자 동영상이 나왔다.

‘어, 이 사람?’

찬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오태조 중령이 동영상 브리핑에 직접 나와 작전 설명을 해 준 탓이다. 찬영의 미세한 갸웃거림을 느낀 것인지 이규복이 먼저 덧붙였다.

“오태조 중령은 저희 팀을 포함해 추가로 한 개 팀을 더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그의 부하들이 저지선에 자리 잡고 있어요.”

오태조 중령이 여러 작전을 짜는 데스크를 맡는단 이야기였다. 알아들었다고 눈짓을 한 찬영은 다시 브리핑에 집중했다.

작전명 ‘산마루’. 가장 중요시되는 일은 휴거로 인해 산에 고립되어 버린 인명을 구출해 내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신속할수록 좋은 법, 시간이 지체될수록 휴거로 인한 인명 피해는 더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막히기 시작한 대로에는 차들이 가득했다.

차에 사이렌까지 달고 있었으나 앞에 있는 차들은 여전히 요지부동, 다들 비켜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규복이 찬영을 보며 물었다.

“공군 지원은 이미 급한 팀들이 먼저 받은 터라 어쩔 수 없이 회사 차를 이용했는데……. 이거, 생각보다 차가 많이 막히네요.”

“흐음…….”

찬영은 가득 막힌 차를 보며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뉴게이트가 열리기 전에만 도착하면 되니, 원래라면 힘을 비축해 두고 편히 차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브리핑도 듣고 이규복과 간단히 해야 할 얘기들도 몇 가지 있었고…….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겠지.’

찬영이 이규복에게 달리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무작정 차 문을 열고, 대로 위로 나섰다.

이규복은 그의 행동에 갑자기 그가 왜 이러나 싶어 빤히 쳐다봤다.

그 순간.

차창 너머 찬영의 상체 위에 흐릿한 물체가 홀로그램처럼 노이즈 현상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그 압도적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규복의 입이 절로 쩍 벌어졌다.

‘대체, 이건 또 뭐야?’

이제 이 사람에게 웬만한 건 놀랄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여지없이 틀렸다.

“이, 이게 뭡니까?”

차에서 내린 이규복은 찬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웬만한 일엔 눈 하나 꿈쩍 않고 차분한 그였지만 도대체 찬영의 일엔 그럴 수가 없다.

이규복이 한 눈에 보기에도 매끈해 보이는 상체 슈트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묵빛의 철권과 묘하게 잘 어울리는 은색의 갑주.

사람과 유사한 모습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 같기도 하다.

날개는 어떤가? 고급스러운 은빛 원뿔 형태를 가진 세 개의 날개가 잠시 오므려지며 강한 풍압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쐐애애애!

풍압에 비해 소음은 거의 전무한 정도……!

꿀꺽…….

욕심 없는 이규복마저 이 장비를 마른침까지 삼키며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찬영이 착용된 헬멧을 머리에서 해체 시키며 돌아봤다.

“음…… 날개입니다.”

“아, 아니요. 제가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죠…….”

더 자세한 얘길 듣고 싶던 이규복에게 찬영이 더 말할 수 없게 말을 끊었다.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그거야 그렇죠.”

찬영이 성큼성큼 이규복에게 다가왔다.

“그럼, 이게 답입니다. 잠시…….”

어느새 이규복의 허리를 꽉 끌어당긴 찬영이 마주한 이규복에게 덧붙였다.

“높은 곳이라, 귀 좀 아플 겁니다.”

푸앙!

찬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 * *

56사단 용마부대.

전시 전엔 북한산 국립공원에서 산불 진압 수행 능력을 향상 시키는 훈련을 주로 했던 부대였다.

다만, 최근엔 임무가 좀 추가되었다.

북한산 산중에 일전에도 뉴게이트가 출몰했던 탓에 군과 V.O. 합동 편제 팀이 당도하기 전까지 저지선 안팎을 지키는 임무가 하달된 것이다.

임무는 까다로웠다.

뉴게이트가 나타는 게 워낙 광범위해서 출입 금지 구획도 못 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게이트가 나타나면 산행객들을 일일이 대피시켜야 하는 실정이었다.

이번 뉴게이트의 출현 지역인 북한산 도선사 근처 역시 그랬다.

‘씨발,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용마부대 9중대 1소대 유탄 사수인 도훈은 식은땀이 났다.

북한산은 그야말로 포격 속에 휩싸여 있었다.

크레모아와 여러 포들의 포격까지 쏟아 부으며 병력이 전부 저지선 바깥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때를 놓친 도훈과 도훈을 따르는 소대는 예외였다.

고립된 것이다.

이유? 바로 옆에 있는 여자 산행객과 술 취한 산행객 덕분이었다. 여자 산행객이 술 취한 산행객을 돕다가 도움을 청했고 하필 그 도움의 목소리를 도훈과 도훈의 소대가 듣고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구출은 여의치 못했다.

그들이 술 취한 산행객을 옮기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이미 열린 뉴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괴물들은 그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퇴로를 모두 막아 버렸다.

‘이번에 생겨 먹은 놈은 마치…….’

그래, 잠자리 날개를 등에 다섯 개쯤 매단 괴물 같았다.

체형은 2m쯤? 하지만 양 손이 끔찍하리만치 기괴했다.

양손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생겨서 부딪치는 순간 몸이 절단날 것 같았다.

그래서 도훈과 소대원들은 최대한 놈들을 피하기 위해 퇴로 지형을 타다보니 결국…….

길을 잃어버렸다.

이젠 숲 사이에 숨은 채 지원을 기다릴 뿐, 당장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몸을 숨길 수 있는 나무 뒤에 옹기종기 모인 민간인 둘과 군인 여덟 명.

그들의 얼굴에 동일시된 건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가장 침착한 눈빛을 보이는 건 여자 산행객이었다.

하산하라는 방송을 듣고 내려가던 중, 술 취한 산행객을 구하기 위해 직접 뛰어 내려갔다는 당찬 그녀는 오히려 군인들을 다독이며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저씨들 없으셨으면 이 분과 저는 벌써 죽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의 말에 군인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죽는 건 시간문제기 때문이다.

‘그저 일찍 죽느냐, 조금 시간을 끌다 죽느냐의 문제일 뿐…….’

도훈은 아직도 술 취해 해롱거리는 산행객을 힐끗 보았다.

‘술 처먹고 산을 왜 타, 타긴……!’

원망스러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더 내색했다간 괜히 다른 소대원들도 어수선해진다.

‘그냥, 참자.’

“하사님이 뭐래……?”

무전을 끝내고 온 서 상병이 잔뜩 풀 죽은 얼굴로 말했다.

“못 온댑니다. 지원……. 이미 뉴게이트 가 열려……. 으악!”

말을 잇던 서 상병의 옆으로 커다란 칼날이 쑥 하고 들어왔다.

서 상병의 머리가 그대로 댕강.

터져 나온 핏물이 눈 깜짝할 새 도훈의 얼굴을 피범벅으로 만들어 버렸다.

“으, 으악!”

소대원들이 모두 주저앉거나 옆으로 나뒹굴었다.

그리고 휴거가 튀어나왔다.

-크르르!

“쏴! 저 새끼부터 쏴!”

그나마 정신을 차린 도훈이 소총을 갈겨댔다.

타타타탕!

하지만 웬만한 소총으로 뚫리지 않는 놈의 가슴팍은 마치 딱딱한 껍데기가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타타타탕!

총을 쏜 도훈을 발견한 놈이 고개를 돌려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동시에 녀석 등에 달린 좌우 날개가 나비가 날개를 접듯 접혀선 비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터져 나온 소음!

끼이이익!

칠판 긁는 소리의 스무 배쯤 되는 것 같다.

그 소음에 숲을 헤치고 속속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휴거들.

마치 소리가 놈들을 한 데 모으는 것 같다.

셋, 넷, 다섯.

결국 세기를 포기한 도훈은 총을 놓고 귀를 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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