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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7화 (17/248)

# 17

#17

이규복이 서류들을 침대 옆에 놓아 주며 말했다.

“이 서류들이 제가 말씀드린 이야기들을 증명하는 증빙 서류들이에요. 그리고 이 마지막 서류는 저희 펌과 삼 년간 전속 계약을 하겠다는 연장 계약서에요. 상부에서 받아오라는 지시가 떨어져서요.”

“그 서류는 빼고 나머지부터 처리할게요. 그건 생각을 좀…….”

“네, 깊이 해 보세요. 자, 그럼 확인해 보시겠어요?”

찬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규복이 서류를 한 장씩 찬영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 주며 펼쳤다.

팔을 드는 건 힘들었지만 손에 끼고 종이를 읽는 것쯤이야 충분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류를 검토한 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찬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상 없네요.”

“네, 그럼 진행할게요. 입금되려면 여기 제가 내미는 동의서들에 서명하셔야 합니다. 이것도 역시 읽어 보실래요?”

찬영은 고개를 저었다.

‘연장 계약서를 제외한 나머지 동의서들 쯤이야…….’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된다.

으레 동의서들이 그렇듯 쓸데없는 미사여구를 붙여 봤자 사측이나 정부에서 요구하는 중요 항목은 단 하나일 것이다.

휴거 부산물에 대한 이의 제기 불가.

그들은 부산물 연구를 원하니 부산물에 한해서만큼은 양보가 없을 게 뻔했던 것이다. 이를 충분히 예상한 찬영도 그 부분에 대해선 굳이 이의 제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아직 살펴보지 못했지만 자신은 그들과는 전혀 다른 부산물로 가득하니까. 결정을 내린 찬영이 손가락을 내밀었다.

‘주먹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서명은 좀 힘들 것 같고…….’

“지장도 됩니까?”

“물론이죠.”

대답과 함께 이규복이 인주까지 꺼내 들었다. 갈색 가방에는 없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서류 처리가 끝난 두 사람이 한숨을 후, 하며 정리를 마쳤다. 그 사이 이규복이 동의서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그럼 연장 계약서에 대한 결과는 언제쯤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의 질문에 찬영은 그리 오래 끌지 않고 대답했다.

신중히 고민하되 결정은 빨리 한다.

생각을 깊이 고민해 봐도 하루 안엔 결정 낼 수 있는 일이었다.

“내일까지 말씀드릴게요.”

“네, 상부에 얘기해 두죠. 그럼 푹 쉬어요. 대신 다음에 술이나 한잔 사요.”

“예?”

“초청 만찬에 안 간다고 하는 찬영 씨 덕분에 제가 오늘 윗사람한테 깨질 거거든요. 뭔, 말인지 알죠?”

그의 말에 찬영은 괜히 진땀이 났다.

“모를 리가…… 없죠…….”

“소맥 사요.”

“네.”

대답을 하면서 찬영은 피식 웃었다.

‘……소맥 살 사람이 한 사람 더 늘었네.’

아무래도 조만간 소맥 파티라도 열어야 할 것 같다.

드르륵.

그렇게 잡생각을 하는 동안 이규복이 병실을 빠져나갔고 동시에 찬영의 눈에 그가 남겨둔 연장 계약서 서류가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서명한다면, 꽤 긴 시간 동안 휴거 퇴치하는 일은 계속 해야 할 것이다.

맨 처음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치더라도 이젠 아닌 것이다.

그러다 문득 찬영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맺혔다.

-피식.

‘그럼 뭐가 달라지나?’

사실 강제 소환이 아니었어도 이미 마음 한편에선 휴거를 퇴치하는 일이 숙명처럼 다가온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제 와서 그 생각이 달라질 리가 없다.

‘종말? 그게 뭐? 올 테면 와보라지.’

적어도 두 눈 뜨고 있는 이상 호락호락 죽어 줄 생각도 무기력하게 멍하니 있을 생각도 없다.

마침내 찬영은 눈에 보인 연장계약서에 아직 손에 묻어 있는 지장을 거침없이 찍어갔다.

휴거 퇴치하는 일을 연장하기로 견고히 마음먹자 괜히 마음이 바빠졌다.

보름이 지났다면 로그인 캘린더만 해도 15회가 추가됐을 테고, 그 외 휴거를 잡으며 얻은 업적이나 파밍 아이템 보상 등 여러 종류의 보상들이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 눈앞에 가득한 수십 개의 ‘창’이 찬영의 기대감을 한껏 자극하는 중이었다.

이어서 아이템을 확인하려 수십 개 떠 있는 창 중, 첫 번째 창을 확인한 순간.

창에 예상치 못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전사들의 전투로 행성 경험치가 충족되어 쉬운 난이도가 종료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보통 난이도로 진입합니다.

-쉬운 난이도를 넘어선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심연의 깊은 곳, 올드 원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이게, 뭐지?’

의문과 함께 쓰인 글귀를 쭉 읽어 나가던 찬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규복과 방금 했던 대화.

……종말.

‘어쩌면 그 시작과 끝에 대한 것을 이 글귀가 설명해 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 그런 거라면 확실히, 생존할 희망이 없는 건 아니야. 그간 각성자들이 휴거를 잡아 온 것에 대한 보상으로 쉬운 난이도가 통과되었다는 이야기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각지의 각성자들이 휴거의 공세를 버텨 준다면?’

그렇다면 난이도 조건이 충족되어, 난이도는 계속 상승할 테고 휴거와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버틴다면…….’

‘이 전쟁이 끝난단 얘기겠지.’

그러니 앞으로 뉴게이트에서 튀어나올 휴거들의 강함이 더 상승할 거란 이규복과 V.O.의 예상은 적중한 셈이다.

‘다만…….’

헷갈리는 건 올드 원의 이목이란 부분이었다.

올드 원이 뭐기에?

시스템이 왜 자신에게 언급해 준 것일까?

한동안 깊이 생각해 보았지만 조금의 윤곽도 알아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껏 서먼 홀의 강제 소환에서도 그랬듯 차근차근 성장하며 휴거의 침공을 막아 가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의혹들이 실타래 풀리듯, 풀려가겠지.’

그 생각을 끝으로 복잡하던 머릿속을 깨끗이 비운 뒤 다음 창을 넘겼다.

해결되지 않는 걸 계속 붙잡고 고민할 바에는 그 시간 동안 산더미같이 쌓인 보상을 확인하는 게 훨씬 효율적인 선택 같았다.

다음 창, 새 페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페이지엔 처음 기대했던 대로 보상 꾸러미에 대한 글귀가 가득했다.

‘먼저…….’

잡템부터 확인했다. 이번 전투로 획득하게 된 부산물들이었다. 그걸 일일이 살피기 시작하자 레드비와 관련된 아이템 항목들이 튀어나왔다.

-레드비의 겹눈 잔털

-레드비의 날카로운 앞발

-레드비의 껍데기로 만든 가죽 장갑

-레드비의 내장

마치 레드비를 도축이라도 한 듯 녀석의 신체 대부분의 부위를 모두 획득했다.

하지만 가치 40에서 90 정도의 이런 재료들은 당장 쓸모 있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강화나 합성용으로 사용하거나 혹은, 갑자기 필요한 재료 템이 될 수도 있으니 한동안 인벤토리 창에 넣어 두기로 결정했다.

그 직후, 찬영의 눈동자가 완성형 아이템을 향했다.

-레드비의 가죽 갑옷

-레드비 사슬 장갑

-레드비의 털과 마로 엮은 검은 망토

레드비를 통해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일까?

획득한 품목 중엔 공격력을 올릴 수 있는 장비가 존재하지 않았다. 전부 방어용 장비였다. 하지만 대부분 무게가 잔뜩 나갔다.

동시에 가치 측정도 확인해 보니, 현재 메인 방어 장비인 초보자 갑옷과 가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그 말은…….

‘초보자 갑옷과 방어력 차이가 크게 나지도 않고, 무게도 훨씬 많이 나간다.’

무게가 많다는 것은 몸이 둔해진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공격을 피하거나 빠르게 움직이는 데에 제약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건 좋지 않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만족스럽지 못한 것들을 옆으로 치워 놓고 보니 쓸 만해 보이는 장비는 단 하나였다.

그 장비는 공교롭게도 찬영을 가장 애먹였던 여왕으로부터 나온 비행 장비였다.

찬영이 이를 자세히 살폈다.

이름부터 거창한 녀석이었다.

-데미아가 제작한 여왕의 총체總體

-가치 : 1,100

-효과 A : 급속 방향 전환

-효과 B : 원심력 고속 발진 시, 비행 시속 200km 5초간 증가.

-효과 C : ?(강화 시 개방 가능)

-효과 D : ?(강화 시 개방 가능)

한데 그 이름만큼 가치 수치가 엄청났다.

‘1,100?’

직접 읽고도 보고 있는 걸 쉬이 믿을 수 없다.

지금 가진 장비들 중 어느 것도 가치가 1,000을 넘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장비들은 찬영의 그다음 성장을 위한 충분한 밑거름이 돼 주었다.

더블 피니시만 해도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한 것이다.

한데 1,100이라고?

이건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골드 박스에서 나올 만한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새삼 목숨을 걸고 싸운 보람이 느껴졌다. 그래서 곧장 플레이 체험에서 장비를 이것저것 시험해 봤다.

그렇게 플레이 체험이 끝나고 난 뒤 다시 눈을 뜬 찬영은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단순히 이네이트를 습득했을 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이템 설명에도 플레이 체험이 적용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찬영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대응했다.

이미 겪어 본 바가 있기도 했고 이젠 휴거와의 싸움을 통해 가뜩이나 차분한 성품이 더욱 신중함을 더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플레이 체험이 끝나고 난 뒤 다시 눈을 뜬 찬영은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방금 경험한 총체의 사용법이 그야말로 경이였던 탓이다.

‘맙소사…….’

데미아가 대체 누군진 몰라도 이건…….

‘예술이다.’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방향 전환과 비행이 가능한 기체機體일 줄이야.

가치로 보아 좋은 장비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좋은 효율성 높은 물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체험 시 보았던 기체의 형태는 등에 부착하는 비행 장치였는데, 착용 시 상체 위에 은색 상체 슈트가 덧씌워졌다.

거기다 무게는 또 어떤가? 느껴지는 것만 따지면 거위 털 점퍼를 입은 정도의 무게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안감, 무게 모두 여왕이 가졌던 껍데기와 속살 등이 포함됐기 때문일 터.

버릴 게 하나도 없는 녀석이었다.

그 외에도 상체에 총체를 착용하면 목 부근에서 찬영의 목과 얼굴을 보호하는 헬멧이 상체 슈트 목 부근에서 한 겹이 분리되어 자동으로 착용됐다.

추가로 헬멧 안에는 여왕의 생체 구조를 바탕으로 제작된 일반적 공기 호흡기보다 진화된 형태의 호흡기가 갖춰져 있어 더 이상 높은 고도의 전투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특히 어깨선부터 등까지 타고 내려온 상체 슈트 후방 위에는 긴 뿔 형태를 가진 세 개의 날개가 양 어깨와 등허리에 각각 하나씩 부착되어 있었는데, 여왕의 거대한 몸체를 지탱했던 날개들이 프로펠러의 기술과 결합되어 추진기 역할을 했다.

즉, 여왕의 물질로 제작한 세 개의 은빛 날개가 체공이 가능하게 할 추진기와 방향 전환을 맡고 슈트의 외부 장치가 목과 얼굴을 포함한 상체 전부를 도맡는 셈이었다.

그야말로 휴거와 싸울 또 다른 날개를 달게 된 거다.

휴거와의 치열한 싸움이 찬영을 더욱 성장시키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거기에 더해 휴거에겐 불행하게도 찬영의 보상 정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보상 박스 관련 ‘창’은 찬영이 개봉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는 기다릴 게 없었다.

찬영은 새로 얻은 장비에 만족하지 않고 다음 보상을 위해 눈을 돌렸다.

어떤 것부터 열어 볼까?

‘이것부터…….’

-보통 난이도 최초 진입,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추가 박스 세 개가 주어집니다.

추가 박스 부분, 개수는 무려…….

‘세 개?’

난이도 상승이란 큰 변화 때문인 게 틀림없다.

그 외에도.

-레드비 오십 마리 제거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등등 여러 업적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추가로 업적 완료 개수에 수반된 로그인 박스 한 개까지 주어졌다.

레드비 전투 이후 서먼 홀에 소환된 적이 없으니 마지막 전투로 박스 개수가 결정된 것 같았다.

책정된 로그인 박스의 등급은 골드 10등급.

첫 골드 박스의 진입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나 좋아하긴 일렀다. 아직 로그인 캘린더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캘린더를 떠올리자, 찬영의 앞에 캘린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페이지 한 가득 펼쳐진 캘린더를 보자, 보상 받기들이 선명히 반짝이고 있었다.

비 소환 시의 혜택을 보름 동안 병원에 누워 있느라 받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캘린더에 체크된 로그인 횟수는 24회.

10회씩 보상 1회라, 두 번의 보상 받기가 가능했다.

대체 어떤 보상이 나올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보상 획득 페이지가 나타났다.

-로그인 캘린더 10회 출석 조건을 달성해 실버 5급에서 골드 10급 랜덤 박스를 획득하였습니다.

-로그인 캘린더 20회 출석 조건을 달성해 + 1 영구적 업그레이드 찬스권을 획득하였습니다. 무엇이든 + 1 상승이 가능합니다.

단숨에 실버 5급에다 골드 박스 진입이 가능한 랜덤 박스를 부여 받은 것도 만족스러운데 영구 + 1 찬스권까지 획득했다.

찬영의 눈동자가 이규복으로부터 보상 얘기를 들었을 때만큼 커져 갔다.

이것은 많은 걸 의미했다.

그간 제작 도구 완성이 수반되어야 가능했던 더블 피니시의 추가 강화가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현재 애용하게 된 폴스의 샌들이나 방금 얻은 여왕의 총체를 강화하는 것도 가능해진 것이다.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졌단 이야기.

하나 아직 개봉해야 할 박스가 많이 남아 있었고 더 좋고 효율적인 보상이 나올지 모르는 가능성을 빼고 싶지 않았다.

특히 필요한 제작 도구를 갖추지 못한 지금의 상황에선 이 영구 강화 + 1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니 모든 보상 획득이 끝난 뒤에 +1 업그레이드 찬스권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해도 늦지 않다.

‘……그래, 신중히 쓰자.’

그래서 당장엔 강화 찬스권을 미뤄둔 뒤 이번에 모으게 된 다섯 개의 박스를 개봉시켰다.

그 순간, 의도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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