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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6화 (16/248)

# 16

#16.

너무 아파서 깨 본 적이 있던가?

지금이 딱 그랬다.

귀가 너무 아파 일어난 찬영이 눈을 파르르 떨며 깨어났다. 하지만 깨어나자마자 천장이 눈앞에서 빙빙 도는 것 같았다. 헛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정도였지만 다시 눈을 감고 괜찮아지길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깜빡이며 조심스럽게 천장을 올려다본 찬영은 문득 자신이 했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눈 뜨고 보고 힘든 처참한 광경.

레드비의 학살과 마침내 나타난 여왕까지.

모두 선명하고 또렷이 하나부터 열 까지 다 기억이 났다.

통증 때문에 잊고 있었던 한 가지 사실.

‘대체, 여긴……?’

하며 주위를 돌아보자 찬영은 금세 장소가 어딘지 깨달을 수 있었다.

‘병원이구나.’

장소를 깨달은 찬영이 다시 푹신한 침대 위에 누우며 안도했다.

다행히 꿈이었던 모양.

결코 다신 꾸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자신은 살아 있고.

‘그 여왕은 죽었겠지.’

그리고 기절한 자신을 누군가가 실어 온 게 분명하다.

그럼 대체 방금 꾼 꿈은…… 뭘까?

그냥 개꿈일까? 아니 그러기엔 너무 생생하다. 온 몸 가득히 땀에 절어 있는 걸 보면 정말…….

‘긴장했어.’

아까 본 그 지옥도가 잊힐 만큼 생생해서 마치 실제로 겪은 것같이 느껴졌다.

찬영은 괜한 개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끔찍했던 아까 일을 다시 되새겼다.

왜 그런 꿈을 꾼 걸까?

그리고 그 말은 대체 뭘까?

‘사명을 찾으라고?’

휴거로 성공하려는 나에게 무슨 대단한 사명감이 있을까?

찬영은 꿈이 사람을 잘못 본 것일 거라고 치부하며 아까의 꿈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때 철컥 소리와 함께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삭.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들어선 그는 들어오자마자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찬영을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찬영 씨?”

찬영이 대답 대신 가볍게 웃어 줬다.

그를 보니 자신이 어떻게 병원에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이규복.

그가 자신의 임무를 완벽히 마치고 자신까지 구해 내 병원에 데려다 준 것이다.

“언제 일어났어요? 의사가 이틀은 더 있어야 일어날 거라 하던데…….”

어쨌든 일어난 건 좋은 일이다.

“방금요.”

대답과 함께 찬영이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려 하자 이규복이 재빨리 사과를 탁자에 올려두며 침대 옆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기잉’소리를 내며 침대 상부가 자동으로 위로 올라갔다. 찬영이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상체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음……?”

찬영은 자동으로 올라가는 침대에 놀란 눈치였다.

눈빛이 흔들린 찬영을 보며 이규복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걸로 놀라는 걸 보니 그렇게 대담하게 싸우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왜요? 병원 특실 처음 와 봐요?”

“네, 병원을 와도 굳이 특실을 이용해 볼 일이…….”

이규복이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없죠.”

“네.”

한 번 피식 웃은 이규복이 그제야 하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다.

“몸은 괜찮아요?”

“쇳덩이를 달고 있는 것 같네요.”

찬영이 팔을 들어 올리려다 말고 가벼운 신음성을 흘리며 한숨을 ‘후’ 하고 내쉬었다. 실제로 더블 피니시라도 착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장비들은 다 어디 있지?’

문득 그 생각이 들어 인벤토리 창을 살피자 장비들은 본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기절하자마자 자동 해지가 된 모양이었다.

찬영은 인벤토리 창을 닫으며 다시 이규복을 비스듬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틀 뒤에 깨어난다고 들으셨다면서 어떻게 오신 겁니까? 아니, 그보다……. 제가 왜 특실을 이용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요.”

찬영의 쏟아지는 질문에 이규복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긋 웃고는 아까보다 진지해진 눈빛으로 찬영에게 물었다.

“대답해 드리기 전에 앞서, 죽을 뻔 했던 건 기억나나요?”

“네. 나죠, 아주 선명히.”

짧고 담백한 대답.

“적당히 휘저어 줄 줄 알았는데 정말 쓸어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찬영이 별 일이 아닌 것처럼 태연히 대답했다.

“뭐, 하다 보니…….”

이규복은 헛웃음이 났다, 참 찬영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하면서.

‘보통은 살아 있음을 기뻐하거나 자신의 업적에 뿌듯해하기 마련일 텐데.’

찬영은 그런 모습은커녕 늘 겪어 온 일상생활처럼 굴었다.

처음 본 사람이라면 이런 반응에 꽤 놀랄 테지만 벌써 여러 번 보다 보니 이규복 역시 찬영의 이런 강한 담력과 괴물 같은 차분함은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서울 시장 표창부터, 대통령 표창까지 받으셔야 될 표창만 열 가지 정도 되실 겁니다.”

난데없는 이야기였다. 찬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요?”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질문에 상을 받을 것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찬영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규복이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네. 그럼 여기 질문하는 저를 제외하고 찬영 씨 외에 상 받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찬영은 그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생전 상이라고는 학교에서 받은 개근상 말고는 없었는데, 상이라니?’

생각도 못한 보상에 찬영은 의아했다.

“의외신가보네요.”

“네, 뭐…….”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왜냐고? 자신은 스스로를 구원하려했지 남을 구원하려 한 게 아니다.

희생정신? 그런 게 있었다면 지금 주려는 상들도 그러려니 하고 받았을 테지만…….

“전 상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찬영의 반응을 예상했기에 이규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상 준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거든요.”

“아무튼……. 상은 됐습니다.”

“흐음, 그렇게 생각하시면 어쩔 수 없죠. 청와대 초청 만찬 리스트에 찬영 씨 이름은 제외시킬게요. 만찬하면서 밥도 먹고 격려도 받고 뭐 상도 받고……. 알죠? 형식상……. 자,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탁자에 놓았던 사과를 다시 집어 들며 그가 덧붙였다.

“상을 받았다는 건 찬영 씨가 국가에 큰 공로를 했다는 이야기이고, 다시 말해 저희 회사에서도 찬영 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럼 이 특실은……?”

“회사에서 지원한 거죠.”

“대리님도…….”

“전 찬영 씨가 입원한 후부터 계속 곁을 지켰죠. 물론 회사에서 시켜서요.”

의식을 회복하는 데에 이틀 남았다고 했는데 이규복이 온 게 이제야 말이 된다.

헷갈리던 여러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찬영이 물었다.

“그럼……. 제 전담이 되신 겁니까?”

“네, 회사에서 저더러 단독으로 찬영 씨의 전담 마크를 부탁하던 걸요? 왜 이제껏 단독으로 계약을 진행하면서 제대로 말도 안 해 주었냐고 잔소리도 좀 들었어요.”

어깨를 으쓱인 이규복이 찬영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할 얘기가 많은데 앉아도……?”

“아, 네. 물론이죠.”

“네, 고맙습니다.”

밝게 인사를 건넨 이규복이 침대 옆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특실이 좋긴 좋네요, 소파도 푹신한 게.”

그의 넉살에 한 번 미소를 지은 찬영이 뒤이어 물었다.

“제가 한 일이 회사에 모두 전해진 겁니까?”

“네. 액션 캠을 통해 생생하게요. 거기다 찬영 씨가 잡은 녀석이 여왕 노릇을 하고 있었단 게 이번 조사로 밝혀졌어요. 전투형 여왕과 알을 낳는 여왕이 따로 있었거든요.”

입을 떼기 시작한 이규복의 이야기는 찬영의 예상을 뛰어 넘는 상상이상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찬영은 몰랐지만, 아직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 * *

정말 믿기 힘든 말이었다. 눈을 크게 뜬 찬영이 되물었다.

“보름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보름이요. 보름을 누워 있으셨어요.”

이규복이 짤막히 대답했다. 그러자 누워 있던 찬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규복이 굳이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

그럼 정말…….

‘보름이 지났다고?’

찬영은 헛웃음을 흘리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믿기지 않는다.

분명 보름이 지났다면 서먼 홀에 강제 소환되어 진작 몸을 회복했어야 정상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의문과 함께 문득 그간의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서먼 홀에 첫 소환된 이후 빠르게 흘러간 그간의 과정들.

설마 이 모든 게 끝이 났다는 걸까?

“모두 끝난 겁니까?”

“모두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우선 돌아가는 상황을 봐선 그래요. 저희 펌에서 집계된 통계 자료만 봐도 서먼 홀의 강제 소환은…….”

이규복이 안경테를 가볍게 치켜 올리면서 말했다.

“끝났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 펌에 소속된 각성자들을 포함해 끈이 있는 다른 나라의 각성자들 역시 더 이상 강제 소환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지긋지긋하던 서먼 홀이 끝났다.

그 말은 찬영에게도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죽음의 그림자가 한 꺼풀 사라졌단 얘기로 들렸다.

찬영은 분명 기뻤다.

하지만 기쁘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렇게 쉽게 끝나 버릴 일이었다면 애초에 왜 시작되었던 것일까?’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적어도 찬영이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그리고 이규복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말을 잇는 이규복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펌에선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보고 있어요. 도심 한가운데 소환된 형태만 봐도 그렇죠.”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찬영의 눈빛에 이채가 흘렀다.

“광주 무등산 국립공원에 첫 소환이 시작된 직후 우리나라만 총 스무 곳의 서먼 홀이 열렸어요. 새로 명명한 이름은 ‘뉴게이트’, 그야말로 지옥문이 열린 거죠.”

이규복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소환의 형태에서 휴거가 이동하는 다리 형태로 바뀐 서먼 홀.

아니, 뉴게이트.

우리가 소환되는 형태인 서먼 홀에서, 휴거들이 우리 세계로 건너오는 문의 형태인 뉴게이트로 바뀌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그리고 당연히 궁금해진 것은…….

“어떻게 닫았습니까, 뉴게이트는?”

서먼 홀이야 정해진 숫자의 휴거를 모두 제거하면 소멸된다 치지만 뉴게이트 역시 같은 조건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었다.

“자연적으로 닫혔어요. 휴거를 모두 잡은 뒤에…….”

“닫히는 방식은 서먼 홀과 동일하군요.”

“네, 하지만 늘어난 휴거의 숫자와 전투력은 각성자들이 소환되던 서먼 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죠. 펌에선 다음 뉴게이트 때에는 이번 게이트 때보다 강한 휴거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가능한 얘기죠, 어쩌면…….”

말끝을 흐린 이규복을 보며 찬영은 깨어나기 전 꿨던 꿈이 실제로 벌어질 것 같아 솜털이 한 올, 한 올 모두 곤두섰다. 찬영이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종말일지도…….”

“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죠. 하지만 스피노자도 멸망 전까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잖아요. 우리도 멸망 전까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봐야죠.”

찬영이 진심을 토해 냈다.

“어렵군요…….”

“매일이 그렇죠.”

빙긋 웃은 이규복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지 짝, 소리를 내며 갈색 서류 가죽 가방을 가져왔다.

“어쨌든 내일은 내일인 것이고…… 당장 오늘 처리해 주실 서류들이 한 가득이에요.”

“서류요?”

무슨 서류인지 모르는 찬영이 의아함 가득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 * *

이규복이 서류를 꺼내고 난 직후.

“……얼마요?”

찬영이 물어왔다.

“흐음, 어디보자……. 회사 측에서 나온 생명 수당에, 공헌도에 따른 인센티브 추가, 정부 차원 수상자에게 지급된 소정의 휴거 퇴치 정부 보조금까지…….”

꽤 두터운 서류를 몇 장 골라낸 이규복이 덧붙였다.

“여타의 세금을 제하면 십억 이천오백구십만 삼천이백오십일 원이네요. 다 제 선에서 처리했는데……. 괜찮으세요?”

“허…….”

찬영은 잠깐 헛웃음을 흘렸다. 예상보다 주어진 금액이 워낙 컸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뻤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생명 수당이라고 해 봐야 많이 쳐줘 봐야 일억쯤이라고 생각했고 사실상 휴거 제거에 뛰어든 건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건…….’

예기치 않은 부차적인 보상이다. 사실 방금 전까지 종말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직 현실은 여전하다. 먹고 사는 데 돈은 필수적인 요소이고 종말은 궤가 다른 문제, 내일을 걱정하는 것과 오늘을 당장 사는 것의 차이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보상은 찬영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안정된 삶을 취할 수 있게 도와 줄 것이었다.

“정말 크네요, 금액이…….”

“그렇죠? 웬만한 사람들은 평생 쥐어 보지도 못하는 돈이니까요.”

“팀장님도 받으신 겁니까?”

“전 생명 수당을 따로 받지 않아요. 대신 연봉이 세죠. 사측 전문 현장 인원들의 연봉은 아마 귀띔만 해 드려도 놀라실 거예요.”

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런 건가……?’

그럼 그 날 보았던 버스에 탔던 각성자들은 전부 적지 않은 보상을 받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큰돈은, 여전히 큰돈이다.

찬영은 생각을 마치며 이규복을 쳐다봤다. 충분히 놀랄 만큼 놀랐다. 그러니 이제는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할 차례였다.

하지만 찬영에게 이미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서류 세는 일은 꽤나 머리 아프다. 이런 일을 대신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괜히 트집 잡을 생각은 없다.

마침 이규복이 다시 물어왔다.

“그럼…… 괜찮으신 걸로 알면 되겠죠?”

“아, 네. 물론입니다.”

이규복이 대답 대신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규복이 또 다른 서류를 꺼내 들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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