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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자동보상-12화 (12/248)

# 12

#12.

시스템이 찬영에게 물었다.

-심득이 찢어진 섬뢰보를 습득하시겠습니까?

‘그래.’

다른 사람들은 당연한 선물처럼 받아온 이네이트를 돌고, 돌아 갖은 노력을 통해 얻었다. 익히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순간.

찬영이 보고 있던 환경이 인적 하나 없는 도심으로 바뀌었다. 건물이 보이고 신호등과 쭉 펼쳐진 도로들이 보인다.

‘뭐, 뭐지?’

깜짝 놀란 찬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해가 안 된다.

분명 컨테이너 창고였는데, 왜 갑자기……?

그 생각을 하자마자 찬영의 앞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섬뢰보 플레이 체험을 시작합니다.

동시에 반투명한 그림자가 찬영의 곁을 쌩 하고 스쳐 지나갔다.

입고 있는 옷이 나풀거릴 만큼 빠른 속도……. 그 속도를 일으킨 그림자는 달리던 속도 그대로 단번에 뛰어올라 찬영의 앞으로 질주했다.

그 속도가 마치 자동차에 견줄 만했다.

하지만 그러길 잠시 한참 달리던 그림자가 한 100m쯤 앞서가다 말고 찬영을 뒤돌아보았다.

마치 언제 올 거냐고 묻듯.

찬영은 그 광경을 직면하고 나서야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래, 이제 알 것 같다.’

방금 읽은 문구와 함께 혼란스럽던 상황들이 머릿속을 스쳐가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이건…….

‘섬뢰보를 펼쳐보라는 거야.’

그래, 그리고 자신의 말이 맞다면 평소라면 따라갈 수 없었을 저 그림자를 자신은 똑같이 따라할 수 있을 것이다.

‘난 방금 섬뢰보를 익혔으니까!’

그렇다면 이 공간을 벗어나려면 저 그림자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을 터.

‘좋아,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상황을 꿰뚫어본 찬영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땅을 박찼다.

타탁!

한데 달리자마자 찬영은 몸이 붕 떠오른 기분이었다.

그냥 붕 떠오른 게 아니다.

너무 빨라서 발끝이 가볍게 떠 있는 기분이었다. 마치 미끄러운 물 위를 가볍게 떠서 다니는 자동차 바퀴 같다.

‘빠르다!’

눈을 부릅뜬 찬영이 황급히 땅을 박찼다. 그러자 불가능할 것 같았던 화살표 사이의 거리가 눈 깜짝할 새 좁혀졌다.

어마어마한 도약.

당장 올림픽을 나가 금메달을 휩쓸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타탁!

눈 깜짝할 새 그림자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 버린 찬영의 뒷모습을 그림자가 한참 지켜보다 말고 뒤따르기 시작했다.

타탁!

그때부터 그림자와 찬영이 서로 앞 다투어 달리며 화살표를 따라 움직였다.

달리면서 세워져 있는 가로등을 피하기도 하고, 자동차 또한 밟고 도약했다.

그렇게 익숙해질 때쯤 동시에 달리던 그림자가 사라지며 눈앞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음? 뭐지?’

그림자가 사라지자 찬영도 황급히 발을 구르며 속도를 줄여갔다.

스륵.

완전히 멈춰선 찬영의 눈앞에 연달아 여러 개의 창이 나타났다.

-섬뢰보 플레이 체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종료된 이후부터 원할 때마다 플레이 체험이 가능합니다.

찬영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 모든 건 섬뢰보를 플레이 체험 안에서 펼쳐보게 끔 진행된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새로운 문구.

-소유자의 신체를 기반으로 섬뢰보의 최초 숙련도가 결정됩니다.

그 글을 보자 찬영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음. 체험 플레이 당시 느낀 속도를 그대로 가져오진 못하나 보군.’

살짝 아쉽긴 했다. 하지만 자신에겐 시간이 있고, 노력할 근성이 있다. 최초 숙련도가 몇으로 측정되든 말든, 금방 완성 숙련도를 만들리라. 마음을 다지는 동안 최초 숙련도가 결정됐다.

-소유자의 최초 숙련도는 20%입니다. 완성 숙련도는 100%입니다.

심득이 찢어진 섬뢰보閃雷步

-가치 : 388

-숙련도 : 20%

-습득 시 영구적으로 시속 30km 상승합니다.

-심득이 찢어져 가치 평가 절하되었습니다. 찢어진 내용을 획득하면 복구가 가능합니다.

책정된 숙련도를 살피던 찬영은 섬뢰보가 가진 능력에 새삼, 놀랐다.

시속 30km 추가된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30km라면 체험해 본 것만큼은 아니지만, 단거리 운동선수들에 버금가는 속도일 터.

거기에 추가라는 얘기가 붙었으니, 자신의 달리기 속도에 시속 30km가 더해진다는 말이 분명했다.

그야말로 총알 탄 사나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단,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음…….”

찬영은 섬뢰보가 가치 평가 절하되었단 문구를 팔짱을 끼고 쳐다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자신이 보기에 섬뢰보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충분히 활용 가능성 있는 이네이트였다.

아직 습득한 상태를 체감해 보진 못했지만, 체험 플레이만 느꼈을 때 느낀 그 어마어마한 속도는 분명 초인적인 힘이 맞았다. 그런데 이 힘이 완성되지 않았다니? 도통 이해가 안 된다.

‘그럼 완성되면 대체 어떤 능력을 보일 수 있다는 거지?’

아니, 그건 둘째친다 하더라도 조각을 완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합성을 통해 찾는 게 가능하진 않을까?

그때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드으으으.

‘음? 이건 내 스마트폰 소리인데?’

희한했다.

분명 자신은 스마트폰이 있는 컨테이너 박스와는 전혀 다른 공간에 와 있는데 어떻게 스마트폰 소리가…….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찬영이 인지하지 못한 사이 어느새 찬영이 서 있는 공간이, 다시 컨테이너 박스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원하던 대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찬영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말이나 하고 좀 바뀌던지.”

보상과는 별개로 괜히, 한 번 투덜댄 찬영이었다.

그 사이에도 찬영의 스마트폰은 계속 울렸다.

드으으으.

계속 들리는 소리에 찬영은 방금 전의 생각을 잠시 접어 두고 스마트폰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스륵.

잠시 던져뒀던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 든 찬영은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부터 확인했다.

요즘 스팸이 하도 넘쳐서 모르는 전화는 대부분 거르기 때문이다.

‘음? 강사님?’

찬영은 전화가 걸려 온 사람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시스테마를 배우러 갈 수업 시간도 아니었는데, 무슨 일이지?

우선 들어봐야 알 것 같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양찬영입니다.

-아, 찬영 씨? 제 번호는 아시죠?

-네. 근데 무슨 일로……?

-아, 다름이 아니라 오늘 오시나 궁금해서 전화 드렸어요.

수련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하지만 신체 방어 훈련을 준비해 두는 건 분명, 필요한 일이다. 거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네,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이따 봅시다. 하하.

그렇게 안 봤는데 꽤 싱거운 강사님인 것 같았다. 이후 찬영은 대략 기본 예의 갖춘 인사를 건네고 스마트폰을 다시 본래 자리에 두려 했다.

그때 또다시 의외의 이름이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나타났다.

화면에 뜬 이름은 ‘이규복.’

‘헤어진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네이트 강의를 좀 더 일찍 당겨서 해 주려는 건가?

여러 잡생각을 하며 놓으려 했던 스마트폰을 다시 들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그 순간 찬영의 귓가로 꽤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찬영 씨, 오늘 수업은 못해 드릴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네? 실례가 안 된다면 이유를 여쭤 봐도…….”

-아, 그게…….

이규복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찬영의 눈빛이 매섭게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잠자코 듣던 찬영이 무겁게 입을 열어갔다.

“혹시…… 합류, 가능합니까?”

-합류요?

찬영의 질문에 전화를 받은 이규복이 꽤 놀랐다.

서먼 홀은 본래 소환한 각성자들에게 강제성을 띤다.

하지만 수업을 못 가게 된 결정적 이유이자 도시에 갑자기 나타난 검은색의 서먼 홀과 그 홀에서 나타난 휴거들.

이것들을 상대하는 건 강제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솔직히 피하려 했다면 언제든 피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찬영은 오히려 나서서 합류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몇 번 보지 않았지만 이제껏 봐 온 찬영의 성향을 되돌아봤을 때 이규복으로서는 이런 찬영의 선택이 의아스러운 데가 있었다.

그새 없던 영웅심리라도 생긴 건가?

그래서 물었다.

-저희 쪽 직원들과 얽히는 건 극도로 꺼려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찬영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자신이 각성자 중 하나라는 걸 어떤 인연 없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내리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 비공식적 거래를 하고 싶지, 공식적 거래는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가끔…….

모든 걸 다 구미대로 맞출 순 없는 노릇이다.

지금이 딱 그랬다. 이미 결정을 내린 찬영이 재차 입을 열었다.

?불특정 다수를 소환하던 서먼 홀이 이젠 도심 한복판 여러 곳에 나타났습니다. 전에 말씀하셨죠.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그의 말이 맞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니, 이미 변했다.

찬영의 말에 이규복이 덧붙였다.

-네, 그랬죠.

?그럼 세상이 변하는 흐름에 맞춰 저도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계속 해 나가야 합니다. 이번 경우처럼요.?

찬영의 말처럼 서먼 홀은 변화하고 있었다.

강제 소환은 둘째 치고 도심 한복판 곳곳에 홀이 열리고, 휴거들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공식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기피할 겨를이 없었다.

변화에 뒷걸음질 치기보다는 오히려 선두에 서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성장할 기회를 잡을 기회들이 더 늘어날 테고, 계속 될 휴거와의 싸움에서 견뎌낼 성장을 일궈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종래엔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이 싸움을 끝낼 기회를 어쩌면…….

‘손에 쥘지도 모르고.’

그 생각까지 미치자 찬영은 이 싸움에 반드시 합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안전은 정부에 달려 있다.

또한 정부는 국민의 안위를 위해 여러 가지 법들과 제약들을 확인해 가며 움직인다.

그러니 싸움에 합류하고 싶다고 무작정 달려가는 것엔 여러 가지 제약들이 있다.

하지만 이규복이 도와준다면?

이미 정부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을지 모르는 V.O.의 도움이 있다면 정부의 협조나 여러 가지 복잡하고 귀찮은 일들을 굳이 마주치지 않아도 원하는 것들을 성취해 갈 수 있으리라.

찬영이 이규복에게 합류를 제안한 건 바로 그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규복에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 혼자 결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특히 찬영 씨의 경우엔 정식 계약을 하신 것도 아니니까요.

?네.”

물론,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도심에 있는 서먼 홀에 접근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찬영이 다른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던 찰나.

-하지만 당장 도움의 손길이 하나라도 필요한 이상 상부에서도 거절할 리 없을 겁니다. 단 이번 전투를 통해 획득하는 휴거의 잔여물들은 국가의 존립을 위해 저희 V.O.와 정부 주도 하에 쓰일 테고요.

“나라에 직접적 타격이 있기 때문이군요.”

-네. 정부 입장에선 이 다음, 그다음 일을 예방하고 싶을 테니까요.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정부 입장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국민이 있어야 정부가 있고 나라가 있다.

정부 입장에선 국민의 안위를 예방하는 일이 최우선이 될 터.

찬영은 당연한 일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그다음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그래서 전투에 가담하는 저희 회사 직원들은 생명 수당만 받기로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가능하시겠어요?

“네, 물론이죠.”

찬영은 대답을 주저하지 않았다. 당장 법적 잡음 없이 V.O.의 합류가 가능해진 데다 재료나 아이템이야 휴거를 죽일 때마다 인벤토리에 쌓이는 판에 생명 수당이라…….

찬영 입장에선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상부에 말씀드리고 제가 있는 팀에 배속시키겠습니다. 현장으로 바로 오세요.

“그곳이 어딥니까?”

-서대문구. 독립문 근처요. 그 근방에 오시게 되면 통제 구역들이 보일 겁니다. 이미 근방 군부대가 그 지역을 통제하고 있어요. 그러니 혼자서는 못 들어갈 겁니다. 상진대 입구에서 픽업할게요. 그럼……!

이규복의 말을 끝으로 통화 역시 종료됐다.

끊어진 스마트폰을 옆에 둔 찬영 또한 서둘러 돌아섰다.

‘상진대라…….’

찬영은 곧 마주하게 될 새로운 형태의 휴거들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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