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11.
이규복은 잠자코 찬영을 바라보았다.
“이네이트를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되게 특이하네.’
이규복이 볼을 긁적이는 사이 찬영은 방금 한 얘기를 재차 물었다.
“네, 현재 익히고 계신 이네이트를 제가 배워 보는 게 가능 합니까?”
그가 새로운 거래처가 되어 준다면야 기꺼이 가르쳐 줄 마음이 있었다.
V.O. 펌에 들어선 게 꼭 자신의 성공과 펌의 발전을 위한 것만은 아니니까…….
이규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찬영은 원하는 대답을 듣고도 깜짝 놀랐다.
생명을 지키는 기술인 이네이트를 가르쳐 달라는 게 어려운 부탁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뭐든지 도와주겠단 말을 지킨 것이다. 하지만 그러겠다고 하면서도 이규복은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그가 찬영을 보며 염려스럽게 말했다.
“다만 걸리는 게 하나 있어요.”
“어떤……?”
“저야 이네이트가 각인된 터라 쉽게 사용할 수 있지만 선생님은 제가 가르쳐 드리는 동작들을 직접 습득해야 하잖습니까?”
칼을 휘두를 때 어떤 동작인지,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정도야 충분히 알려 줄 수 있다.
하지만 신체의 한계는 다르다.
자신의 경우 이네이트가 처음 적용될 때 신체 또한 이에 맞게 재구성됐다.
이전보다 더 날렵하고, 강한 근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능할까?’
그는 자신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의 이네이트를 전부 활용하진 못할 것이다.
그래 봐야 30% 쯤?
그것도 많이 쳐준 셈이었다. 하지만 찬영의 눈빛엔 동요가 없다. 이규복은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야 말았다.
하긴, 그것을 자신이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습득하는 건 온전히 그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찬영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고집스러웠다.
이윽고 찬영이 입을 열었다.
“나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 * *
새벽 다섯 시.
강남 인근 24시간 하는 체인점 커피숍이 있었다.
소환에서 돌아온 찬영은 그곳에 앉아 미리 연락해 둔 이규복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현실로 막 돌아가기 전 이규복이 했던 얘기가 스쳤다.
-현실로 돌아가시면 저희 펌에 관해, 경제면에 몇몇 재미있는 소식을 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말 대로였다. 현재 스마트폰엔 V.O.에 관련된 기사들이 마구 쏟아지는 중이었다.
-V.O. 공식 출범.
-그간 S&D 제약 기업의 암막 아래에 가려져 있던 그들이 발돋움하다.
-V.O. 출범. 서먼 홀의 대항마가 될 것인가?
-V.O. 출범이 신세계로의 도약을 가져올까? 정식 투자를 결정한 국내 대기업만 벌써 다섯 곳…….
스마트폰을 통해 여러 사이트를 쓱 살피기만 해도 V.O. 관련 기사는 쏟아져 나왔다.
정부와의 첫 계약도 앞두고 있다고 하니 이만하면 이규복이 했던 말은 대부분 거짓이 아니라 해도 무방했다.
그의 회사 소개를 각성자들이 대부분 몰랐던 이유도 이들이 정식 출범일을 앞두고, 투자 회사들을 통해 감춰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굳이 그럴 이유가 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야…….
‘그들 맘이겠지.’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일찍 오셨네요?”
친절한 목소리. 현실이나 서먼 홀이나 그는 여전히 밝았다.
뒤로 돌아 인사를 꾸벅 건넸다.
“아, 괜찮습니다. 저도 온 지 얼마 안됐습니다.”
이규복이 씩, 웃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이제야 통성명하는군요. 성함이……?”
“양찬영입니다.”
거래를 하러 온 마당에 더 이상 이름 밝히기가 껄끄러울 리 없다.
이어진 가벼운 악수.
“옆에 앉아도?”
“그러시죠.”
고개를 끄덕인 찬영과 함께 이규복이 기다란 바에 나란히 앉았다.
“이건, 계약서입니다. 저희 쪽 프리랜서로 활동하신다는 증명서죠.”
그가 가져온 서류 봉투를 꺼내 찬영에게 건넸다. 받아 든 찬영이 서류를 꺼내 탁자에 올려뒀다.
동시에 이규복이 덧붙였다.
“서류야 절차라는 것 때문에 쓸데없이 미사여구 붙여서 쓰는 게 많아 괜히 머리 아프실 겁니다. 그러니 제가 구두로 설명해 드릴게요.”
설명을 듣고 계약서를 따로 살피긴 하겠지만, 설명이 잘 반영됐나만 확인하면 되니 훨씬 효율적 절차였다.
찬영 역시 마음에 들었다.
“네.”
“일단 저희 쪽에서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종의 채취물일 경우엔, 인센티브 지급됩니다. 천만 원 정도 지급될 것 같아요.”
‘……천만 원이라.’
예전 하던 직업으로 받던 월급의 세 배는 많다.
그런데, 그게 인센티브라니.
그럼 다른 건?
마침 이규복의 말이 이어졌다.
“다음은 이미 발견된 종의 채취물일 경우인데요. 무게나 보존 형태 등을 고려해서 가격이 책정되겠습니다. 하지만 20kg당, 삼천만 원 정도가 평균선일 거예요.”
20kg당 삼천만 원이라……. 이렇게 퍼주고도 남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럴 법도 하다.
이들이 원하는 채취물은 서먼 홀에 진입하는 각성자들의 목숨 값이 기반이다.
희생을 감수하고 벌어들이는 돈인 것이다.
그 외에도 이규복은 계약서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해 줬고 찬영은 모두 듣고 난 뒤 6개월 갱신 내용이 있는 계약서까지 모두 살폈다.
결과는 이상무.
하지만 찬영에겐 당장 돈보다도 필요한 게 있었다.
이규복의 이네이트. 그래서 따로 계약서에도 명시해 뒀다.
이규복이 서명을 시작한 찬영의 모습을 살피며 말했다.
“……매일 한 시간 이네이트 강습 내용까지 계약 조항에 추가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찬영이 서명이 끝난 펜을 옆에 두며 대답했다.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다 됐습니다.”
“아, 예.”
이규복이 찬영이 서명한 서류를 자신의 가방에 넣으며 커피를 홀짝, 마셨다.
“계약도 끝났으니 이제 가 봐야겠네요. 저녁 아홉 시에 뵐게요.”
아홉 시. 오늘 강습 시간으로 정한 시간이었다. 그는 그러고는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정식 출범이 된 지라 새벽부터 일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찬영도 굳이 바쁜 사람 오래 붙잡을 생각은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때 막 돌아서려던 이규복이 찬영이 다시 쳐다봤다.
“저, 찬영 씨?”
“예?”
“이제 세상이 바뀌기 시작할 거예요. 준비 바짝 해 두세요.”
뭔가를 암시하는 듯 말하는 그. 찬영 또한 그게 무슨 뜻인지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 세상은 변하고 있다. 티 나지 않게 조용히 변하고 있을 뿐.’
찬영이 덧붙였다.
“……이미 하고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규복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카페를 나섰다.
* * *
이규복을 만나고 돌아와 부동산을 통해 창고를 구입했다.
말이 창고지, 컨테이너 박스다.
대개 물류 회사의 창고로 쓰이는 이곳은 찬영이 사는 동네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다.
찬영은 미리 훈련에 필요한 용품 등을 미리 사 뒀다.
훈련한답시고 집에서 뒹굴 순 없어 선택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을 구입하는 데 큰 결정을 하게 만든 건 역시…….
툭. 툭. 툭.
인벤토리에 가득 차 있던 온갖 잡템들.
매번 인벤토리를 가득 채워 달고 다닐 수 없으니 이곳 창고에 남은 물건들을 두고 다닐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아이템들을 이규복 대리에게 판다면야 돈은 꽤 될테지만…….’
생각해 보면 자기에게만 보이고 파밍되는 아이템을 보여준다면야.
이규복은 두 손 두 발 들고 만세 삼창을 부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생존이 우선시되어야 가능하다.
그러자면 역시 이네이트의 공백을 메울 템발이 최선이었다.
찬영은 현재 소지한 무기 중 제일 강하고 높은 가치를 지닌 더블 피니시를 꺼냈다.
그러고는 가진 잡템들도 모두 꺼내 놓았다.
피다일을 비롯한 소환 당시 잡은 휴거들을 통해 주워온 잡템들.
그 잡템들을 통해 강화를 시작하려 한 것이다.
최근 휴거에 의해 찢겨져 나간 초보자 갑옷을 생각하면, 더더욱 가지고 있는 장비 강화에 마음이 쏠렸다.
‘……시작해 볼까?’
물론 그 전에 결정해야 할 게 있긴 했다.
‘강화를 해야 할까, 합성을 해야 할까?’
가진 걸 모두 넣고 합성을 돌려 버리기엔 쓸모없는 잡템이 나올 확률이 높다.
별주부한테 나온 방패 말고 다른 잡템들은 대부분 가치 10에서 80 사이의 물건들.
상식적으로 총 아이템의 평균 가치로 따져 봐도 모든 아이템을 전부 돌리는 건 최악의 수가 분명하다.
그럼?
두 가지 안이 있다.
이대로 모든 아이템을 더블 피니시의 강화 재료로 선택하거나, 더블 피니시를 두고 다른 장비를 새로 제작하는 것.
어떤 게 나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딱히 더블 피니시를 두고 다른 장비에 주력할 필요가 없단 결심이 들었다.
좀 더 가치 있는 보상을 다음 로그인 보상, 혹은 캘린더 등으로 획득할 때까지 더블 피니시를 강화한다.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찬영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동시에 망치를 두드렸다.
먼저 잡템을 모두 넣고 한 번에 강화를 돌렸다.
그러자.
띵!
한 번에 강화할 수 있는 숫자는 다섯 개까지라는 창이 떴다.
‘……제한이 있는 건가?’
어쩔 수 없이 강화용 잡템을 다섯 개씩 분류해 돌렸다.
그때부터 매번 강화 성공 확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강화 재료의 총 가치 합이 110 일 때 확률이 10% 그다음 80일 때 8%…….’
두 번쯤 강화를 돌린 후 찬영은 이제 강화 시스템에 대해 명확히 알 것 같았다.
‘강화 재료의 총 가치 합산이 강화 성공 확률에 영향을 끼치는군.’
그러지 않고서야 가치 합산이 낮은 쪽의 확률이 낮게 책정될 리 없었다. 강화 시스템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알게 된 찬영의 작업 속도가 더욱 빨라져 갔다.
땅. 땅. 땅.
하지만 가지고 있는 잡템의 가치 합산은 강화 성공률을 고작 10% 이상 끌어 올리지 못했고 그 덕에 계속 실패만 맛 봐야 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찬영은 실패에 굴하지 않고 계속 망치를 두드렸다.
그리고 끈기 있게 버틴 인내로 인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 강화되었습니다.
-+1 강화로 인해 더블 피니시의 가치가 450으로 상승합니다. 더 이상 빌의 제작도구로 강화하실 수 없습니다. 가치 450 이상의 제작 도구를 획득하셔야 진행 가능합니다.
-더블 피니시 +1 강화 성공으로 인해 더블 피니시 착용 시 효과 A : 근력이 300%가 증가합니다.
찬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근력 300%. 한때 비약으로 인해 근력 상승을 겪어 봤기에 얼마나 효과가 좋은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데 100%도 아니고 300%라니.
이제껏 체험했던 80% 근력 비약은 마치 체험판같이 느껴질 정도.
어서 체감해 보고 싶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애써 접게 한 건 맨 마지막에 뜬 글자 때문이었다. 그게 찬영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최초 장비 강화 성공으로 새로운 제작 도구 도안서를 획득하였습니다.
제작 도구 도안서라고?
도안서라면…….
‘내가 제작 도구를 직접, 제작할 수 있다는 건가?’
운 좋게 파밍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도구를 제작한다?
노력으로 가능하단 이 문구가 찬영의 오기를 자극했다.
이윽고.
-오렌의 절구, 제작 도안서가 지급되었습니다. 절구 제작에 해당하는 재료를 획득하시면 도안서를 통해 합성 가능합니다.
촤르륵.
그리고 손에 쥔 도안서.
도안서에는 제작 방법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제작 방법이라기보단 사실상 제작하기 위한 재료를 구한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그리고 오렌의 절구는 예상 가치가 무려.
‘700?’
700이라면 현재 더블 피니시를 한 번 더 강화하고도 남는 제작 도구 수치였다.
‘반드시 획득해야 될 제작 도구겠어.’
현재 최고 성능을 가진 장비인 더블 피니시를 더 강화시키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인 셈.
찬영은 오렌의 절구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빠르게 살폈다.
‘쿠크의 눈알. 휴이거의 발톱……. 각각 스무 개씩이라. ……음? 이건?’
심지어 별 세 개짜리 리더 휴거의 이름까지 적혀 있으니…….
생각보다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소환을 직접 선택해서 갈 수도 있으면 좋겠네.’
어차피 갈 거라면 직접 재료가 있는 서먼 홀로 가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찬영이었다.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고 소환 시 재료로 쓸 휴거가 나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작정 재료를 기다리며 차분히 기다리기엔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다.
재료를 획득 시간을 단축할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찬영의 머릿속에 문득 이규복과의 거래가 떠올랐다. 그가 원하는 것도 사실상 휴거의 재료가 아니질 않나.
그렇다면 서로 원하는 걸 바꿀 기회가 있진 않을까?
굉장히 유연한 사고를 가진 그간의 이규복을 보면 그게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만약 서먼 홀에 오 다니는 각성자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을 V.O. 재료 창고를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볼 수 있다면?
‘굳이 소환에서 제작 재료를 구하지 않아도 교환을 통해 획득할 수 있어!’
그렇게만 된다면.
재료를 구할 시간을 훨씬 더 단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좋은 생각이라 생각하며 도안서를 옆에 툭 던져 둔 찬영은 이번엔 남은 잡템들을 합성하기로 했다.
더 이상 더블 피니시를 강화 하지 못하는 한계치에 부딪쳤으니 다른 장비들을 효율적으로 굴릴 생각에 이른 것이다.
‘그럼, 남은 게…….’
찬영은 더블 피니시를 제외하고 남아 있는 장비 세 개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제껏 합성을 하면 장비만 기대했었는데 오늘 나온 제작 도안서를 보니 확실히 합성 역시 랜덤 박스처럼 다양한 물건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그럼 주력 무기를 제외한 이 물건들을 통해서 효용 가치 있는 아이템을 획득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리라.
찬영은 지체하지 않고 오랫동안 써먹던 장비인 갈고리와 새로 얻은 방패를 합성에 때려 넣었다. 뭐가 나올진 몰라도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좋을 터.
땅! 땅!
그 순간 갑자기 빛이 피어오르더니 찬영의 예상 그 이상의 물건이 터져 나왔다.
-희박한 확률로 가치 400 이하의 각인 기술서가 합성되었습니다. 각인 기술서란…….
그건 그간 여러 번의 강화 실패들과 찬영의 인내가 가져온 또 다른 기회였다.
꿀꺽.
찬영은 손안에 쥐게 된 각인 기술서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게 무엇인지에 대한 시스템의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설명을 길게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들었다.
이건 분명…….
‘하나의 이네이트.’
놀라운 일이다. 누군가에겐 선물처럼 하나만 내려온다는 이네이트가 자신의 노력이 담긴 합성을 통해서도 부여될 수 있다니, 이게 알려진다면 아마 각성자들 모두가 혀를 내두를 것이다.
하지만 이네이트 역시 노력으로 인하여 숙련도가 높아지는 능력이었다. 이네이트가 하나 부여된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훈련해야 하는 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날개가 하나 추가된 건 사실.
찬영의 손끝이 각인 기술서를 와락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