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9.
“와…….”
다들 그의 움직임을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찬영 역시 그를 차분히 바라보았다.
이규복.
그는 말투만 차분한 사람이었다. 전투는 그야말로…….
‘미쳤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대 휴거용 블레이드, 그는 그 두꺼운 칼을 굉장히 잘 썼다.
순식간에 썰려 나가는 아가미를 가진 도마뱀들.
놈들은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팔, 다리 할 것 없이 이규복을 뜯어 가려 했지만 그때마다 그의 붉은색 갑주가 어김없이 피다일의 이빨을 막아 주었다.
붕! 붕!
감탄스럽다.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지? 저것도 그의 이네이트가 반영된 건가? 칼 쓰는 걸 익히고 싶은 게 아니다.
저 무거운 칼을 한 번, 두 번, 세 번 휘두를 때까지 한 번도 헛된 곳을 가르지 않는다. 그건 스스로 다음 진로 방향을 예측한 것이겠지만 그보다는.
‘저 스텝……!’
찬영의 눈엔 그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디디는 발이 제일 먼저 보였다.
여덟 살인가, 삼촌 손을 잡고 간 작은 태권도장에서 처음 봤던, 붕붕 날아다니던 사범님들.
그건 어린 나이에 감히 접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지금 저 스텝은 딱 그 정도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강약을 조절하는 완벽한 보조 스텝이었다.
그리고 그 스텝은 한 번의 정확한 발차기를 위해 쌓이고, 또 쌓인다. 이규복에게 대입했을 땐 한 번의 칼질을 위해 쌓이는 보보步步랄까.
육중한 보보.
화려하진 않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묵직하게 상대를 파고드는 저 발걸음이 끌렸던 것이다.
군침이 돌만큼 매력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배우고 싶다.
하지만 그의 이네이트를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걸까?
설혹 그런 일이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펌이 아닌 이상 힘들 것이다.
‘……단, 제약 없는 프리랜서라면 몰라도.’
찬영은 쓴 웃음을 가볍게 지은 후 뚜렷해 가는 전황을 차분히 응시했다.
그새 이미 1그룹이 상대하던 휴거는 2그룹의 합류와 함께 순식간에 휩쓸리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금세 상황이 정리될 것 같았다. 도리어 모래사장을 휩쓸고 다니는 그의 전투에 이제껏 그에게 반기를 들던 사람들까지 사색이 될 정도였다.
평화로운 진행 상황.
곧 전투는 끝이 나고 다들 그리워하는 집으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이제껏 끝났다고 한 전투는 늘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며 이어졌다. 적어도 찬영의 몇 안 되는 경험 중엔 늘 그랬다.
그래서일까?
3그룹의 대부분이 집에 돌아갈 수 있겠다며 안심하는 동안 찬영 혼자 표정이 좋지 않았다. 평화로움을 조금 몇 발자국 떨어져 지켜본 것이다.
관망과 관조는 다르다.
찬영은 관조를 하기 시작했다. 그건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럴수록 이상스러운 고요함이 의아했다.
왜지?
‘너무 쉬워.’
거듭 생각해 봐도 이건 쉬워도 너무 쉽다.
이규복같이 소환 경험이 풍부해 보이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이렇게 끝날 리 없어.’
이건 단순한 직감이라기 보단,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그랬다. 하지만 찬영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승리하고 있다는 생각에 도취된 것 같았다.
그럴수록 경계심이 더 고개를 들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사방을 주시하던 찬영의 예민함이 무언가를 눈치 챘다.
-스르륵.
어딘가에서 빨려들 듯 모래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주의 깊게 기울이지 않는다면 모를 정도로 미세한 소리였다.
‘이런!’
찬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불길함의 정체를 깨달은 것이다. 반경 30m가 모두 그랬다. 모래 아래에서 스멀거리며 튀어나오는 촉수 끄트머리가 보였다. 모두 모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촉수는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 찰나 찬영은 땅 밑에 있는 녀석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무리에서 벗어난 별주부
무려 별 네 개짜리였다.
놈이 땅 밑에 있는 것이다. 마른침을 삼킨 찬영이 다시 고요해진 모래의 흔적을 계속 주시했다.
꿀꺽.
느낌이 싸늘했다. 그리고 다시 촉수 끄트머리가 나타났다.
그건 3그룹과는 거리가 떨어진 30m 지점, 촉수는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흠칫하며, 촉수의 예상 진행 방향에 눈을 돌렸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슬금슬금 드러나는 촉수. 진행 방향이 불 보듯 뻔해 보였다.
‘선두에게 가고 있다!’
선두, 즉 1그룹과 2그룹이 한데 합쳐 싸우고 있는 격전지였다. 다른 종의 휴거가 등장했다고 이야기해 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선두와 거리가 제법 벌어진 탓에 직접 다가가야 할 것 같았다.
뒤에 남은 3그룹 각성자들 중엔 이 소식을 전달할 만큼 빨리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 난전 속에 큰 소리라도 지를까도 싶었지만 전투에 집중하느라 아마 귀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가야해!’
이대로 두면 선두는 그대로 급습당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은 오히려 전투에 방해가 될까 뒤로 물러나 있는 3그룹. 서로 합의한 대로라면 나서지 않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따위 합의고 나발이고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찬영은 육상 선수가 스타트 블록에서 첫발을 떼듯 모래를 박차고 튀어 나갔다.
탁!
3그룹 사람들이 뭐야, 하며 그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후, 후.
찬영이 들숨, 날숨을 뱉었다. 가벼운 호흡.
그건 긴장을 없애는 호흡이 아니라 시스테마를 통해 배운 몸을 다루는 호흡.
이유는 모르지만 한 번 뱉을 때마다 조금이라도 발끝을 더 뻗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완, 수축, 동시에 연속적인 피칭.
이 찰나 간의 피칭은 그간 찬영이 일구어 낸 저력과 같았다.
몰루스카의 비약이 유연함을 기반한 탄력성을!
알페힘의 비약이 탄력성을 지탱할 균형점을!
이 두 가지의 융합.
그로 인해 한계 극한을 끌어내는 스피드, 이 스피드를 유지하기 위해 뱉는 호흡까지!
처음엔 어설펐으나 달릴수록, 새로 배운 호흡법이 조금씩 자리 잡혀갔다.
그로 인해 속도는 프로 육상 선수의 평균 속도를 가뿐히 넘어섰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그 때.
아까보다 세 개쯤 더 늘어난 촉수가 10m 앞에 다시 나타났다.
거리 차이가 얼핏 짧아 보이나, 둘 다 달리고 있다면 이건 먼 거리다.
이를 따라잡으려면 녀석보다 훨씬 빨라야 했다. 급격한 속도 증가가 필요하다. 달리는 찬영의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속도 증가라면 터보 달린 자동차가 그렇듯 기압을 일제히 대기 기압을 올려, 팍……! 그거라면, 아주 쓸 만한 게 있다.
콰악.
찬영이 철권을 콱 쥐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도약.
마치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솟아오른 찬영이 뛰어온 방향으로 더블 피니시를 장전했다.
철컥.
그리고 펑!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찬영의 몸이 그 반탄력을 받아, 허공에서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 * *
‘……더럽게 많네! 벌레 같은 자식들!’
헬스 트레이너를 하면서 갖가진 운동은 다 해 보았지만 서먼 홀에 소환된 이후로는 유산소는 안 해도 될 정도였다.
오태홍은 신경질적으로 생선 아가미 같은 걸 잡아 뜯어 버렸다. 쇳덩이가 되어 버린 몸은 외양뿐만 아니라 힘, 체력, 완력 등을 증가시켜 주었다.
그러니 이까짓 것들은 하룻강아지다. 하지만 그의 숨결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헉헉…….”
쇳덩이 같은 얼굴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나왔다. 그러면서 힐끗 이규복을 쳐다보았다.
이규복은 그야말로 짐승. 아직도 휴거를 헤집으며 날 뛰고 있었다.
‘저 새낀, 지치지도 않나?’
아까의 앙금이 좀 남은 터였는지, 승부욕이 발동한 오태홍은 이규복의 움직임에 뒤처지지 않으려 했다. 그 탓에 체력 조절에 실패했다.
결과는…….
“우엑……!”
힘을 한계까지 쓴 탓에 헛구역질까지 나올 정도였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것이다.
‘에라이…… 일진 사납네.’
겉은 철이 됐어도 두통은 똑같다. 오태홍은 머리가 빙빙 돌았다.
-케엑!
그때, 또 다른 물고기 휴거가 어깨를 깨물었다.
‘귀찮은 새끼들…….’
놈을 쳐 내려 잡아채 땅바닥에 집어 던지려는 그때 갑자기 땅 밑에서 촉수 같은 게 솟아올랐다.
쐐액!
그 촉수는 순식간에 오태홍의 눈을 찔러 버렸다.
“끄악!”
오태홍이 두 손으로 눈을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뚝, 뚝.
심지어 녹아내린다.
산성 독까지 갖춘 촉수다.
그 덕에 실제 철판인 오태홍의 안면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으허허엉!”
가뜩이나 휘청댔는데 울음이 터진 그가 이젠 균형도 못 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약자를 알아보는 건 휴거의 본능.
물고기 얼굴을 가진 휴거들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마치 피라냐가 따로 없었다. 녀석들 입 안을 가득 채운 붉은 이빨이 오태홍의 몸을 뜯어 대려 했다.
순식간에 다섯 녀석이 오태홍에게 달려들었다.
“이히익!”
오태홍이 팔을 좌우로 흐느적댔지만 그의 힘은 평소의 10%도 남지 않았다. 회생 불가능한 발악처럼 보였다.
부앙!
그 순간 풍선 수백 개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저기다! 하늘을 봐!”
피 터지게 싸우던 각성자가 모두 고개를 돌렸다.
이규복마저 그랬다.
허공을 본 직후 그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풍선이 아니었다.
자동차 배기음보단 소음이 훨씬 크다.
쐐애애액!
허공에서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는 찬영이 오태홍의 몸에 떼로 붙어 있던 휴거들을 노려봤다.
오태홍이 다칠 수도 있겠으나 다 물어뜯기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철컥.
동시에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진 양. 원통형 두 구멍에서 강렬한 충격파가 땅을 향해 내리꽂혔다.
부앙!
퍼퍼퍼펑!
찬영의 1그룹 데뷔를 알리는 완벽한 축포였다.
푸아앙!
충격파에 닿자마자 오태홍 위에 붙어 있던 피다일 다섯 마리 몸체가 일제히 터졌다. 모래사장의 모래들도 마찬가지였다. 충격파에 부딪쳐 물줄기처럼 동시에 솟아올랐다.
펑!
쿠쿵!
그것도 모자랐는지 오태홍 주변의 땅이 잘게 흔들린다. 찰나 간 중력의 무게가 세 배는 늘어난 듯이 느껴졌다.
“우에엑!”
그 덕에 오태홍도 피를 토했다. 위에 있던 피다일 다섯 마리가 죽어가며 방파제 역할을 해 줬지만 그래도 역시 쏟아진 충격파의 위력은 철을 두른 그조차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덕에 살았다. 이 순간 누구도 찬영의 도움을 부정하지 못했다.
지켜보던 눈들 중 찬영의 평가를 못미더워하던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뭐야……?”
“쩐다!”
“누가 저 사람 3그룹으로 보냈어?”
이규복의 부하 직원도 그랬다.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이규복과 눈이 마주친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규복의 말이 옳았단 뜻이리라.
이규복은 나름 흡족했다. 그리고 저 친구가 마음에 들었다.
‘이런, 직접 증명해 보였네.’
겸손한 듯 보이나 자기 할 말은 하고 산다. 일견 봐도 주장이 결코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지켜보고 있었을 뿐.
그러다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왕 하고 튀어나온 것이다.
서걱!
재차 거대한 칼을 휘두르며 흡족해하던 이규복은 순간 쓰러지는 휴거를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근데 하필, 왜 지금?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글쎄. 몇 마디 안 나눠 봤지만 그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나타내려 안달이 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필요에 따라 움직이겠지.’
그럼 당장 그가 나서야 할 무언가가 있었단 이야기인데……?
‘휴거들이 정리되는 상황에 굳이 그가 나설 필요가 뭐가 있지?’
동시에 이규복의 머릿속에 잘 싸우다 눈을 부여잡고 쓰러진 오태홍의 모습이 스쳤다.
싸우느라 오태홍을 제대로 못 봤다. 그리고 그가 왜 쓰러져 있는지조차 몰랐다.
“잠깐……?”
그리고 멈칫하며 돌아선 이규복의 눈동자와 착지를 마친 찬영의 눈동자가 부딪쳤다.
찬영의 입은 분명 ‘밑을 봐!’였다.
그리고 어설프지만 하나둘씩 촉수를 베어 가는 철권의 칼날.
그걸 본 이규복의 발밑에서도 촉수가 솟아올랐다.
‘이런!’
동시에 이규복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는 녹록치 않았다.
타닥.
어느새 빠른 스텝을 밟으며 촉수들을 거침없이 베어냈다.
물론 찬영을 통해 이미 대비했기에 가능한 동작이었지만.
그건 다른 각성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찬영의 외침에 호응하듯, 모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산성 촉수를 막아 냈다.
촉수가 모조리 잘려 나가자, 모래가 쿵쿵 울렸다.
밑에 있는 놈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콰콰콰!
마침내 모래 사이로 휴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런.’
이를 지켜보는 이규복이 조용히 자신의 칼을 고쳐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