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7.
집으로 가는 길은 동식 덕분에 학원차를 이용했다. 조수석에 탄 찬영은 차 시계를 힐끗 본 후 창 밖에 눈을 돌렸다.
이젠 고개가 뻣뻣하긴 했지만 조금씩 움직일 만하다.
벌써 밤 열 시. 시간이 무척 빠르다.
‘네 번째 소환이었던가.’
당시 만난 각성자와 잠깐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녀가 말하길.
-최근 알아낸 건데……. 소환 횟수가 많이 쌓이신 분들은 더 이상 매일 소환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소환 시기에 변화가 온 겁니까?
-네, 그런가 봐요. 적어도 소환 횟수가 제법 쌓이신 분들에 한해선 그랬어요.
-그럼, 아가씨도 더 이상……?
-맞아요. 저도 나흘 만인가 소환된 거거든요.
잠깐 스쳐간 인연을 떠올린 찬영이 생각에 잠겼다.
경험이 많다.
그건 결국 오랫동안 살아남았단 얘기이며 그들이 여러 번의 소환을 견뎠다는 말이기도 했다.
여러 번의 소환, 말이 여러 번이지 그들은 수십 번, 어쩌면 그 이상의 소환을 버텨 냈을지 모른다. 그야말로 역전의 용사들.
하지만 그들에 비해…….
‘나는 그리 경험이 많지 않아.’
그러므로 아직은 매일 소환 확률이 높다. 아마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오늘은 소환이 또 시작될 것이다.
빵!
운전하던 동식이 가볍게 클락션을 눌렀다.
“에이, 왜 이렇게 똥매너야.”
갑작스레 차선 변경하는 검은 차에 한바탕 욕을 쏟아 부은 동식이 찬영을 힐끔 봤다.
“내일 나오실 거예요?”
이미 경적 소리에 기억 되새기는 일은 끝났다.
가볍게 웃어 주었다.
마음 같아선 반드시 그러고 싶다.
“그래야죠.”
그 대답에 동식이 흠칫 놀랐다.
‘……사람 되게 독하네.’
이 정도 훈련량을 소화하고도 나온단 얘기를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던 동식이었다.
* * *
찌릿.
가벼운 전류가 도는 느낌.
‘그래, 또 시작이군.’
눈을 뜨자 주변의 풍광이 들어왔다.
오늘은 조금 색다르다. 단순히 사거리가 있는 도시 풍경이 아닌 바다가 있는 마을이다.
방파제가 미끈한 도로를 따라 쭉 늘어서 있고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뒤를 돌아보자 기와집 지붕과 현대식 컨테이너 지붕을 가진 집들이 어울리지 않게 섞여 있다.
딱 요즘 바닷가 마을이다.
풍광을 적당히 인식할 때쯤, 익숙한 전자음이 들렸다.
-8 Day
-반갑습니다. 양찬영 님. 잠시 뒤 시작될 오늘 시가전은 정확히 두 시간 뒤에 시작합니다.
머릿속으로 가볍게 스킵하며 힐끗 시간을 봤다.
‘두 시간이라…….’
이제껏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삼십 분, 한 시간 등의 대기 시간은 소환되는 사람 숫자에 비례한다.
그럼 모르긴 몰라도 오늘 소환되는 사람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백 명? 혹은 이백 명? 그 이상이 될지도…….
생각에 잠긴 사이 전자음의 뒷이야기가 스킵 되고 보상 시간이 찾아왔다.
-7일 차에 생존하신 시간, 업적 완료 개수 여부에 따라 8일 차인 오늘 로그인 보상이 주어집니다.
-실버 수준의 10급 박스가 주어집니다.
-박스 안엔 장비, 기술 서적, 등 다양한 아이템이 존재합니다.
-개봉하시겠습니까?
‘실버 단계?’
이미 추가 보상을 브론즈 2급 보상으로 후하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실버 박스 보상을 받다니.
네임드 휴거에게 큰 기여를 한 게 큰 영향을 끼친 게 틀림없다.
‘……이번엔 어떤 아이템이지?’
웬만하면 당장 쓸 만한 장비가 좋겠다.
혹은 마나탄이라든지.
띠링-!
-실버 10급 박스를 개봉했습니다.
-빌의 망치.
첫 실버 박스. 기대하며 박스 내용을 살폈다.
동시에 망치를 직접 꺼내 봤다. 적당히 무겁다.
하지만 시중에서 판매하는 망치와는 생김새부터 다르다. 옛날 대장간에서 대장간, 장인들이나 휘둘렀을 법한 모루용 망치처럼 생겼다.
직접 들어 보니 갈고리란 근접 장비가 있긴 하지만 확실히 파괴력 면에서는 망치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써 봐야 알겠지만…….’
-최초 실버 박스 진입, 업적 달성
-실버 박스 최초 진입을 통해 현 시간부로 ‘가치 측정’이 가능해집니다.
순간 찬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가치 측정이 가능해졌단 얘기를 듣고 다시 망치를 보았다. 망치에 거뭇한 글씨가 보였다.
‘음?’
-가치 : 120
찬영은 연이어 일어난 일을 주목했다.
그러니까, 실버 박스 진입을 통해서 가치 측정이 가능해졌다는 건데.
‘……그럼 혹시?’
찬영은 재빨리 갈고리를 꺼냈다. ‘브랜든의 갈고리’ 역시 가치 측정이 가능했다.
-가치 : 140
갈고리까지 확인하자 이젠 가치 측정이란 게 어떤 용도로 쓰이는 건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희귀도를 구분하는 방법인 거야.’
만약 그렇다면 이건 또 다른 의미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도통 어디에 활용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히는 숫돌 또한…….
‘가치를 매길 수 있지.’
말하자면 객관적 지표 같은 것이 생긴 셈이었다.
그럼 그 가치 측정은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아도, 이게 쓸모가 있는 지 없는 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좋아, 그럼.’
찬영은 얼른 인벤토리에 있던 잡템들을 꺼내 들었다.
대부분이 가치 5, 8 등 30 이하의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그중 눈에 띈 건.
‘이거 굉장히 높잖아?’
가치 80에 이르는 미완성 숫돌. 제일 쓸모없어 보이던 녀석인데……?
이윽고 미완성 숫돌을 꺼내 들어 살펴보았다.
그 직후 한 손엔 숫돌이 다른 한 손에 망치가 들리자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다.
-빌의 제작 도구 2/2 수집 , 업적 달성
-빌의 초급 제작 도구를 완성했습니다. 이제 초급 제작 도구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가치 400 이하의 장비만 강화, 합성 제작이 가능합니다).
이어서, 일목요연하게 쓰여 있는 설명을 읽었다.
제작 방법은 단순했다. 숫돌 위에 장비를 두고 망치를 두드린다. 그리고 100%가 되면 완성이었다. 그건 강화, 합성 등 전부 동일했다.
설명이 끝난 뒤에도 잠깐 멈춰 서서 망치와 숫돌을 번갈아 보게 됐다. 글씨를 읽지 못하지 않는 이상 제작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었다.
제작.
말 그대로 또 다른 장비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게 가능하다면 오오쿠라의 칼같이 계륵 같은 물건들을 재가공할 수 있다는 것.
‘……그래, 한번 시도해 보자.’
오늘이 최후의 싸움이 될 지도 모르는 판국에 못 쓰는 장비들을 아껴 두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둘씩 꺼내 든 장비들. 어떤 장비가 될지 모르기에 보험용으로 ‘브랜든의 갈고리’는 제외해 둔 차였다.
그러자 숫돌 위에 세 개의 장비들이 나란히 쌓였다.
-A-9
-E-9
-오오쿠라의 칼.
힐끗 보자 A-9 와 E-9는 각각 가치 120과 240이었다.
생각보다 높은 수치.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대형 일본도같이 생긴 오오쿠라의 칼이었다. 녀석은 무려…….
‘395?’
가장 계륵인 장비가 다른 어떤 장비보다 높은 수치라니 확실히 네임드 휴거에게 나온 물건이 맞나 보다 싶었다.
하지만 자신에겐 그 정도의 가치가 없다. 395의 가치는 그저 오오쿠라가 사용했을 때 이야기였다. 당장 사용할 장비가 필요한 찬영에겐 사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정 내린 찬영이 빌의 망치를 손에 고쳐 쥐었다.
그리고…….
땅!
망치에 부딪친 장비들이 일제히, 금속음을 냈다.
그러자 눈앞에 글씨가 스쳤다.
-오오쿠라의 칼 / A-9 / E-9의 합성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땅! 땅!
횟수가 늘기 시작하자 장비 옆에 막대 바와 퍼센티지가 보였다.
현재 3%.
꾸준히 두들겨야 할 것 같다.
땅! 땅!
지금 3%이니, 두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어떤 장비가 나올지 두고 봐야겠지만 당장 쓸모 있는 녀석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 *
장비 합성을 끝낸 찬영이 방파제로 다가갔다.
모래사장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미 모래사장엔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그리고 도로에서도 하나둘씩, 소환된 사람들이 웅성댄다.
그들을 잠깐 바라보다가 팔을 이리저리 붕붕 돌려 보았다.
‘역시…….’
늘 그랬듯 현실에서 서먼 홀로 건너올 땐 근육통이나 상처 등이 낫고, 서먼 홀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갈 때도 동일하다.
결국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최상의 컨디션.’
거기에다 첫 훈련이긴 했지만, 오늘 고생해서 훈련한 성과가 일부분 몸에 추가됐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몸이 오늘따라 가볍게 느껴졌다.
아마 이 이점을 잘만 이용하면…….
‘무한 회복 루틴으로 훈련 과정을 돌릴 수 있을 지도……!’
반나절 만에 몸이 회복되니 다시 한계치까지 몸을 굴리고.
또 회복되면 굴리고…… 그렇게 계속 굴리다보면 몸의 성장은 쉼 없이 계속될 것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말이지.’
부푼 계획을 잠깐 떠올렸던 찬영이 웅성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첫 발걸음을 옮겼다.
여덟 번째 소환.
그 서막이 열렸다.
걸어가는 찬영의 두 손엔 갈고리 말고, 다른 장비가 하나 더 들려 있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
최초 합성 업적 달성 창이 떴을 때만 해도 이 정도 장비가 나올 줄은 몰랐다. 물론 추가 보상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반드시 주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당장은 손에 찬 이 녀석만으로도 충분했다.
찬영은 걸어가며 오른손부터 팔목까지 덮여 있는 합성 장비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자동으로 들어오는 검은 글씨.
-더블 피니시
-가치 : 399
손을 두른 검은색 철제 장갑이 보였다.
하지만 생김새만 딱딱하고 건조해 보일 뿐, 살이 닿는 접합 부분은 부드럽고 아늑하다.
끝이 아니었다.
손등 위에는 원통형 구멍이 두 개 부착되어 달려 있는데, 각 구멍 둘레는 경찰의 진압봉 정도였다. 그 원통형 구멍 안에서는 탄이 필요 없이 자체적 충격파를 발사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에어 펌프.
그로 인해 충격파를 일으켜 타격 및 밀어내기를 동시에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마나탄이 필요 없다는 것도 물론 효율적이었다.
그럼 근접전은?
그게 더블 피니시란 이름이 붙은 진짜 이유였다.
팔목을 한 번 옆으로 돌려주면.
철컥.
원통형 구멍들에서 사람 팔목만 한 칼날 두 개가 튀어나왔다.
마치 집게벌레의 집게 형태, 하지만 곡선을 그리는 집게가 아니라 곧게 뻗은 직선의 집게다.
손가락과 수평 구조인 셈. 추가로 날이 사중이다.
바깥쪽 이중 안쪽 이중. 안에 걸리든 바깥에 스치든 한 번 베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절삭력이야 아직 시험해 보지 못했지만 시퍼런 날로 봤을 땐.
‘오오쿠라의 칼 못지않겠어.’
찬영은 무척 고무됐다.
첫 착용이 몇 분 흐른 지금도 잘게 전해져 오는 은은한 흥분감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이 가슴 두근거림은, 분명 설렘.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살면서 필요한 장비를 갈구하는 욕구는 본능과 같다. 하지만 찬영은 이제껏, 그런 욕구들을 제어해 왔다.
자동차, 시계 등을.
대신 필요에 따른 우선순위, 그 원칙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구입했다.
그런데 이건 계륵 같은 장비를 사용해 고효율을 냈다. 원칙에도 완벽히 부합한 셈이었다.
가성비로 봐도 그야말로 최고, 아니, 최선인 것이다.
거기다 독자적 색과 형태는 마음에 쏙 든다.
멈추지 않고 계속 두근거리는 어쩔 수 없는 지금의 감정.
웬만하면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는 차분함의 대명사인 찬영을 뒤흔들 정도니 더블 피니시의 가치는 이미 399 그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찬영이 한참 내려다보다말고 튀어나온 칼을 다시 에어펌프 상태로 되돌렸다.
철컥.
손재주가 있기도 하고 그간 여러 장비와 실전을 거치며 처음 보는 장비도 어렵지 않게 다룰 줄 알게 된 찬영에게 더블 피니시는 손에 착 달라붙는 것 같았다.
작동 방법도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
당장 실전에 쓰일 정도.
우선 어떻게 활용할지 대강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지만 그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한다면……!’
‘그래, 까짓것…….’
못할 것 없다.
이제 와 겁먹고 물러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찬영의 발걸음은 어느새 사람들 틈바구니 사이에 접근하고 있었다.
경험 많은 각성자들이 제각기 소리를 높이는 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