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6.
-호신 학원
찾아온 간판의 글씨였다.
다 낡아 빠진 간판만 봐선 딱히 들어가고 싶지 않은 도장. 하지만 여러 인터넷 카페를 이리 저리 전전하며 웹 서핑한 끝에 찾은 곳이 이곳이었다.
찬영은 두 가지를 고려했다.
‘현재 가진 무기를 활용할 수 있는가? 근력 비약 소모를 대체하고, 이네이트에 조금이라도 근접할 수 있는 몸 활용법을 배울 수 있는가?’
먼저, 현재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장비는 네 개다.
두 개는 A-9와 E-9.
그간은 이 두 가지 무기로 괜찮았다. 매 서먼 홀 때마다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다는 말은 제법 경험 있는 각성자들을 만나, 그들의 공헌에 기댔다는 것.
그리고 그 덕에 마나탄을 아껴 가면서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마나탄이 없지.’
그래, 그게 직면한 현실이다.
A-9, E-9를 들고 총검술이라도 하지 않는 한 마나탄 없는 마나 총들은 당장은 쓸모없다.
그럼 남은 건 브랜든이 만든 갈고리, 그리고 오오쿠라의 칼.
하지만 오오쿠라의 칼은 자신이 쓰기엔 너무 크고 길다.
한 번 휘두르다가 먼저 칼을 맞고 쓰러질 것 같았다.
결국 갈고리뿐인 셈.
하지만 그렇다고 낙담하진 않았다.
오오쿠라 라는 이름까지 가진 네임드 휴거를 잡는 데 톡톡히 공헌한 것만 봐도 그렇다. 브랜든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튼튼하게는 만든 모양이니까.
그 외에 남은 로그인 보상 중 남은 하나는 ‘미완성 숫돌’이라는 것인데 그것도 그냥 석판같이 생긴 돌덩이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브랜든이 만든 갈고리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휴거 사냥의 효율이 달라지리라. 싫든 좋든 이젠 메인 장비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갈고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비약의 대체.’
이건 늘 생각해왔던 일이다. 그간 휴거와 싸우면서 부족한 근력을 채워 줬던 것은 근력 비약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가 사라진다면?
상승됐던 80%의 근력이 일시에 사라진다. 본래 몸으로 돌아가는 이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했다.
비약의 효력은 나흘. 특히 복용 시 제한 시간이 생기는 비약과 같은 경우에는 매번 시간을 체크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알 수 있는 것은 서먼 홀에 진입했을 때에만 복용 제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실 시간과 상관없이 다음 소환이 비약 도움을 받는 마지막 날인 셈이었다.
찬영이 이름만 호신 학원이지 시스테마를 가르치는 곳을 찾은 이유였다.
* * *
눈앞에 유리로 된 미는 문이 있었다. 아직 입구에 불과한데도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그건 호흡 소리. 하지만 희한하게 호흡 소리에 규칙이 있다.
마치 그들만의 호흡법이라도 있는 양, 그들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거친 숨을 뱉는다. 계속 일정하진 않았다.
거친 숨으로 미루어 보아 체력이 고갈되어서 그런지 간혹 불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리기도 하였으나 이내 다시 본래의 흐름으로 돌아왔다.
숨소리에 집중하며 찬영은 어느새 도장 안으로 완전히 들어갔다. 신발장이 보여 신발을 벗고 더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유아용 매트가 보였다. 시스테마는 살인 기술이나 다름없다. 한때 KGB에서 후원하던 러시아의 살인 기술. 찬영이 찾은 도장은 그중에서도 특수부대 출신 미하일 랴브코가 만든 계파였다.
그런데 유아용 매트라니…….
어울리지 않아 픽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그 웃음이 자극적이었던 걸까?
도장 사람들이 모두 찬영을 쳐다봤다.
그중 한 명이 다가왔다.
“뭡니까?”
다가온 사람은 수염을 기른 사십 대 정도로 보였는데, 근육 운동을 열심히 한 건지 팔뚝이 찬영의 허벅지만 했다.
찬영은 그를 담담히 쳐다봤다.
분명 그가 위압적이긴 했지만 휴거를 하도 상대해서 그런 걸까? 오히려 근육 때문에 뒤뚱거리는 폼이 귀엽게 느껴졌다.
초면인지라 찬영이 공손히 입을 열었다.
“저…… 시스테마를 좀 배우러 왔습니다.”
그러자 위협적이던 남자가 옆으로 물러섰다.
“아, 그러시구나. 어서 오십시오. 강사님, 새 수강생 오셨습니다! 아이고, 또 주무시나 보네……. 잠깐만요.”
남자는 찬영에게 귀엽게 샐쭉 웃어 보이고는 강사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두 명의 젊은 남자는 서로 마주 보며, 꿈틀대고 있었다.
여기 들어오며 들었던 일종의 호흡 소리와 함께. 그게 뭔지 몰랐는데 저들을 보니 알 것 같았다. 마치 물속에 수영하듯 어깨를 물결치듯 꿈틀거린다. 춤출 때 하는 웨이브 같기도 하고, 부드러운 동작이다.
그런데 그 동작을 하면서 호흡이 일정하다. 묘하게 빠져든다.
“유연하죠?”
갑자기 옆에 선 남자를 보며 힐끗 쳐다봤다.
……이 사람.
그래, 한참 인터넷을 수소문해 찾은 사람이었다. 사진보단 조금 더 늙어 보였지만.
분명 이 사람이 이용태.
시스테마 인스트럭터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이다.
꾸벅하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예, 한참 눈여겨보시는 걸 보니까 동작이 신기했나 봅니다?”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영상으로만 봤었는데 직접 보니 체감이 다르네요.”
“원래 사람 일이란 게 볼 땐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해 보면 다르죠. 동식아.”
동식이라 불린 아까 그 근육질 남자가 다가왔다.
“네. 강사님.”
“차 한 잔 타 주라.”
“믹스죠?”
“남은 게 그것밖에 없을걸.”
“하나 사 와야겠네요.”
“한동안 물 먹어. 돈 없어.”
수다 떨던 그가 찬영을 보며 물었다.
“믹스 괜찮으시죠?”
“아뇨, 전 그냥 물 주세요.”
“오, 마음에 드네. 알겠어요. 동식아, 이분은 물!”
알겠다는 동식의 대답을 들은 이용태가 찬영을 사무실로 들였다.
가죽 껍질이 떨어지기 시작한 낡은 소파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이 얘기를 시작했다.
이용태가 먼저 운을 뗐다.
“음, 시스테마를 배우시고 싶다고요?”
“네.”
“……저희 아무나 안 받는 것 아시고 오셨어요?”
정확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냥 아는 게 아니고, 샅샅이 보고 확인하고 왔다.
그들은 살인 기술을 가르치는 만큼 정신력이 좋고, 누군가를 위협하지 않으며, 사회 구성원으로써 바른 사람…….
찬영은 그런 면에서 결격점이 없었다.
간단히 그간의 삶을 요약해 말해 주었다.
그러자 질문이 돌아왔다.
“그렇게 사시면 되지, 굳이 왜 배우시려는 건데요? 건강 때문에요?”
찬영은 이 질문을 듣자마자 이 강사가 좋아졌다.
낡은 간판. 유아용 매트, 낮 시간인데도 달랑 있는 두 명의 수강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에 따라 수강생을 받으려는 강사가 몇이나 있을까?
적어도 가르침을 사기로 바꿔, 대충 때우진 않을 것이다.
‘잘 찾아왔어.’
확신하며 찬영이 입을 열었다.
“삶의 유일한 목표가 내 집 마련이었는데 최근 이뤄졌어요.”
“집을 벌써 마련했어요?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네요!”
이용태는 진짜 놀란 눈치였다. 방금 듣기로 찬영은 일가친척 없는 고아였기 때문이다. 혼자서 자수성가? 요즘은 찾기 드물다. 그래서 이용태도 찬영이 마음에 들었다.
‘근성이 있네.’
찬영이 말을 이었다.
“……새 목표를 찾고 싶었고, 그게 시스테마였어요. 배워보고 싶어요. 한계까지 절 밀어붙여 보고 싶습니다.”
각성자가 되었다는 얘기 한마디면 이런 설명이 필요 없었을 터. 스스로의 목숨을 지켜야 된다는 말에 누군들 안 도와줄까? 그러나 각성자는 감출 수 있을 때까지 감출 생각이다.
상황의 여의치 않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은…….
“좋아요, 다니세요. 간단한 서류 처리를 좀 하면 이제 찬영 씨도 시스테마를 배운 사람으로 분류되는 겁니다. 밖에서 싸우면 법적으로 더 크게 처벌받아요. 알고 있죠?”
서먼 홀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게 직업이 된 이상 밖에서 싸울 생각은 조금도 없다.
“물론입니다.”
그 대답과 함께 서류를 작성했다.
이름, 주소 등등을 적고 나서야 수강비를 제출했다.
이용태는 받은 수강비를 딱히 셀 생각도 하지 않고 서랍에 넣어 뒀다.
“돈은 하루 훈련해 보고 줄지 말지 결정합시다.”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못 버티고 나간 사람이 90%예요. 찬영 씨가 10%일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죠.”
‘……대체 어떻기에?’
* * *
시작은 기초 체력 테스트였다. 도장을 뛰고, 구르고 반복했다. 딱히 동작을 배우기보단 계속 몸을 굴렸다. 하다 보니 이용태 강사의 말이 생각났다.
‘왜 다 관뒀는지 알겠네.’
영상에서 볼 때는 화려함 없이 신속하고, 확실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동작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당장 그 동작을 훈련하기보다는 똥개 훈련처럼 느껴졌다.
“더 빨리, 더!”
이용태가 직접 나와 찬영을 가르쳤다.
마치 테스트하듯.
찬영은 이를 악물었다.
근력 비약으로 인해 한층 힘을 얻은 건 사실이지만, 이제 이 비약이 사라지면 순수 힘만으로 휴거를 상대해야 한다.
시간은 짧고 준비해야 할 것은 많다. 마냥 도와줄 사람을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휴거를 찢어야 한다.
그러니 버틴다.
근력 비약이 사라져도 그 간극을 순수 근력만으로 채울 수 있도록. 근력 비약을 복용한 지금 상태 그 이상의 한계를 넘는 훈련을 계속하다보면 그 간극은 조금씩, 조금씩 좁혀질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찬영의 눈빛에는 그간 쌓아 온 독기가 짙게 서려 있었다. 찬영을 지켜보는 이용태도 굉장히 놀랐다.
‘저놈 보소.’
현재 찬영이 받는 반복 훈련은 시스테마 경험자들도 버티기 힘들다. 아니 웬만한 무도인들도 버티기 힘든 수준의 체력 테스트였다.
근력, 체력, 밸런스, 민첩, 두루두루 확인차 보려는 것이다. 안 된다고 하면 줄이고, 줄이고 하는 식으로 운용하려 했다.
‘그런데 이 녀석.’
꿀꺽.
옆에 있던 동식이 중얼거렸다.
“동작들을 다 소화하는데요?”
“그래, 나도 보여.”
“잘못 봤나?”
동식이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하지만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놀란 동식의 눈치를 힐끗 쳐다본 뒤 다시 찬영을 바라보았다. 찬영은 훈련을 소화하면서도 하체와 상체의 균형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건 온몸의 근력이 잘 붙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훈련받은 특수부대원 같다.
“밸런스가 굉장히 좋네.”
한때 러시아 특수 부대 훈련에 초빙됐던 이용태.
찬영의 모습이 그를 자극했다. 곁에 선 동식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냥 깡마른 몸인 줄 알았는데, 어디서 훈련이라도 받은 것 같은데요? 저 정도 밸런스면 하루 이틀 운동한 근력이 아니에요.”
“쯧. 넌 아직 멀었다. 잘 봐. 동작이 투박하잖아. 저건, 순수 신체 능력인 거야. 밸런스가…….”
이용태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괴물인 거지.”
찬영이 도장을 빠른 도마뱀처럼 좌우로 허리를 비틀며 기고 있었다.
* * *
그 후 얼마쯤 흘렀을까?
찬영의 전신은 땀에 젖어 있었다.
“헉, 헉.”
비 오듯 떨어지는 땀방울.
간혹 눈에 들어가는 땀이 걸리적거리기도 했지만 기분은 끝내 줬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한계 이상의 힘을 끌어내는 게 아니라, 목표를 위해 한계를 끌어낸다.
혼신渾身.
쓰러지듯 누워 있는 찬영에게 이용태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할 만합니까?”
찬영은 웃기만 했다. 체력을 모두 쏟아 부은 터라 말 할 기운도 없었다. 입 안에 단내가 가득했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아무리 고개를 들려고 이를 악물어도 혼자서 고개를 못 들어 올릴 정도면…….
‘말 다 했지.’
그럼에도 이용태가 찬영의 두 손을 질질 끌었다. 반항할 힘도 없어서 반 강제로 바닥에 끌려갔다.
직접 일어나고 싶은데 힘이 없다.
“읏차, 상체부터 일으켜야지.”
이용태가 찬영의 가슴을 끌어안고 몸을 반쯤 접게 했다.
그러고는 앉은 채 상체만 겨우 숙인 찬영의 등을 꾹 누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짧은 신음성.
“아…….”
지켜보던 동식마저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초심잔데 너무 심한데. 내일은 안 나오는 거 아냐?’
그 생각이 들 만큼 이용태는 찬영에게 무척 가혹했다.
“근육 풀어 주는 스트레칭이에요. 숨 쉬어요, 숨! 숨 안 쉬면 심장 멎습니다. 쫄지 마요! 농담이니까. 하하!”
아무도 웃지 않았다. 찬영의 얼굴만 하얗게 질렸을 뿐.
동시에 대답도 안 하고 숨만 고르게 쉬려 노력했다.
사실은 대답을 못한 게 맞았다.
‘더럽게 아프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이용태의 요구 사항엔 쭉 따랐다.
어느새 찬영은 긴장될 때 버릇처럼 하는 호흡을 제쳐두고 다른 호흡법을 시작했다.
시스테마에 적합한 호흡법.
“……짧게 툭. 그리고 또 툭. 긴 호흡은 근육을 이완시키죠. 몸이 늘 긴장되어 있어야 펀치든 발이든 뭐든 나가는 겁니다.”
이용태가 찬영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찬영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한 번 맞을 때마다 골이 흔들리는 것 같아 죽을 맛이었다.
“좋아. 그거야. 계속 뱉어요. 쉬지 말고, 습관 되게!”
그 덕분에 한동안 후, 후 소리만 가득하던 와중 끙, 하는 신음성과 함께 찬영의 몸이 허물어졌다.
등을 꾹 누르고 있던 이용태가 드디어 물러난 것이다.
“좋아, 통과! 맛보기 체험은 끝났으니까 내일부턴 수강비 환불 안 됩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이용태와 멍한 눈빛으로 천장만 보고 있는 찬영.
어느새 구경꾼이 되어 버린 수강생 두 명과 동식이 슬금슬금 찬영에게 다가왔다.
동식이 물었다.
“집에 갈 수 있겠어요?”
찬영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는데 이거 원…… 고개 저을 힘도 없다. 찬영이 겨우 입을 뗐다.
“예…….”
동식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더니 수강생 한 명에게 말했다.
“야, 이분, 형 차에 태워라.”
그러고는 다시 찬영을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댁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찬영은 눈 깜빡임 한 번으로 고마움을 보였다. 첫 강의 치고는 예상보다 혹독했다. 하지만 찬영은 아직 몰랐다.
훈련이 가져올 성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