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5.
큰 보상일 거라 당연히 예견했다.
첫 리더 휴거를 잡고 난 후 보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찬영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인벤토리 창을 가만히 쳐다봤다.
-쓸모없는 다이아몬드 원석 13ct
‘맙소사……!’
서먼 홀에서나 그렇지 현실에선 전혀 쓸데없지 않다.
생전 보석 같은 건 입으로 깨물어 본 적도 없고 만져 본 적도 없었다. 손아귀에 가득 잡히는 녀석을 인벤토리 창에서 꺼내 살짝 들어 보았다.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정말 다이아몬드인 건가?’
부모님이 남겨주신 사진 중, 돌잔치 사진에서 금을 잡는 사진을 본 적 있다.
아마 빛나는 걸 실제로 쥐어 본 건 그때 말고 지금이 처음일 것이다.
스스로의 분수에 맞게 살고자 딱히 사치품이라고 생각한 것에는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적은 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결국 박스에 든 물건은 단순히, 서먼 홀에만 관련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오늘 일만 봐도 그랬다.
그 얘기는.
‘……앞으로 현실에서 쓸 만한 물건이 나올 경우도 있다?’
이쪽 세상에서의 목숨을 건 싸움이 단순히 목숨 이상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목숨을 건지면 그 대가로 얻는 보상, 그리고 그 보상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식의 선순환.
그게 가능할지 모른다.
아니, 이미 시작된 것 같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찬영이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다이아몬드를 감정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
* * *
한달음에 찬영이 달려간 곳은 유색 보석, 특히 고가 보석인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을 모두 취급하는 보석 감정원을 겸한 거래소였다.
“흐음…….”
고가의 안경을 쓰고 있는 감정사가 이윽고, 깊게 한숨을 토해냈다.
찬영은 조용히 그걸 지켜봤다.
“좋네요. 대체 이런 걸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소환 얘기는 좀 껄끄러워, 찬영은 가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눈을 빛내는 감정사.
이어서 그는 찬영에게 이만한 다이아몬드가 또 있냐는 질문을 했고 찬영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나직이 물었다.
“얼마 정도 할 것 같습니까?”
직접적이지만 필요한 질문이었다.
“글쎄요, 원석의 경우엔 가공 전후의 가격이 워낙 다릅니다. 하지만 가공에도 돈이 들죠. 그만한 장인을 구해야 하고요. 그래서 추천해 드리진 않습니다. 하지만 원석 그대로라면 쉬운 말로 이만한 색과 깊이, 그리고 내포물의 희소성을 따져 봤을 때 적어도 오억 원 이상은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감정 절차를 해 봐야 알 테지만 제 소견 상 그렇습니다. 감정 절차 후 매각 절차도 같이 진행해 드릴까요? 저희 회사에선 가능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찬영은 턱 하고 숨이 잠시 막혔다.
분명 기뻤다. 하지만 마냥 기쁘다기보다는 그 감정이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껏 평생을 일해 모은 돈은 약 일억 원 정도.
그것도 택배 상하차나 야간 공장 일용직 등 고된 일을 두루두루 거치면서 모으게 된 돈이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싸움.
그 싸움이…….
‘오억 원을 넘게 벌게 해 줬어.’
이건 단순한 공돈이 아니었다. 목숨을 던진 노력, 스스로의 삶을 지키고자 한 인내가 가져온 일종의 보상이었던 것이다. 찬영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했다. 이 순간 찬영의 머릿속에 스친 단어는 단 하나…….
기회.
‘그래, 삼촌이 말했었던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그 기회가 이런 형태로 온 건 아닐까?’
찬영은 그 순간 깨달았다.
더 이상 서먼 홀에 진입하는 것은 강제가 아니라는 걸.
이제부터 서먼 홀 진입은…….
‘내 선택이다!’
뒤를 돌아볼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한 번 결정 하면, 묵묵히 해낸다.
끝이 뭐든…… 이 기회를 잡을 것이다.
결정을 내린 찬영은 감정사를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겼다.
이제껏 무작정 돈을 아끼려고만 하지는 않았다.
필요하다면 거침없이 쓰고 굳이 필요하지 않는 것들을 아끼는 방식으로 살았다.
그렇기에 당장 손에 쥐고 있어 봐야 딱히 쓸모도 없는 다이아몬드를 굳이 품속에 꼭 붙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차라리 팔아서 다른 효용 가치가 있는 물건 등을 사는 게 낫다.
‘일단 팔자.’
그럼 다음은 오억 원을 어디에 쓰냐는 건데…….
예전이었다면…….
‘가격대가 맞는 적당한 전세 집부터 찾았겠지. 그리고 원래 다니던 일도 다녔을 테고.’
하나 이젠 고려해야 할 현실이 두 곳이다. 그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럼, 어떡하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긴 찬영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늘 그랬듯 우선순위를 두고 생각해야 한다.
먼저, 목숨이 없으면 순금이건 뭐건 아무 가치도 없다.
소환당했을 시 목숨을 부지할 생각부터 해야 한다.
그간은 생업도 포기할 수 없어서 현실의 생업과 또 다른 세계에서의 싸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지.’
오억 원 정도가 생길 테니 굳이 다니던 직장을 머무를 필요가 없어졌다. 생업을 한동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였다.
혼자 살만한 전셋집을 얻고 남은 돈은 생활비, 혹은…….
‘……다음 소환을 대비하는 비용으로 사용한다.’
사실 이제까진 생업 외에 남는 시간 전부, 운동에 투자했다. 하지만 전투를 겪을수록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이상 기초 체력 운동만 하는 건 주먹구구식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시간, 돈을 갖추고 그 이상의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다음 휴거 사냥을 위해서. 더 뒤돌아볼 필요는 없었다.
“매각 하겠습니다……!”
이후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관계자는 아는 전문 용어를 섞어가며 여러 얘기를 전달해 주었다. 하지만 가장 주의 깊게 들은 이야기는 그들이 떼 가는 수수료, 세금, 입금 절차에 관한 얘기였다.
금액이 제법 큰 지라 요청한 계좌에 금액이 들어가는 건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본사, 감정 회사 등 연락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금세 정오가 넘었다. 찬영은 거래 공증서 비슷한 걸 받으며 거래소를 빠져나왔다.
다음 향한 곳은 이제껏 함께 일해 온 사장님의 아파트였다.
철컥.
문을 닫고 들어가자 깔끔한 성격처럼 집도 깔끔했다.
“마실 거라도 주랴?”
“아뇨.”
찬영이 거절하자, 사장도 더 묻지 않고 집 안의 식탁으로 찬영을 이끌었다. 사장과 함께 앉은 뒤 찬영은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신중히 생각한 일을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사장님.”
사장은 다 식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서 물었다.
“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무슨……. 넌 돈 받고. 난 돈 주고. 서로 윈윈(Win Win)이었는데……. 음?”
대수롭지 않게 말하던 그가 찬영에게 뭔가 위화감을 느낀 듯 눈을 가볍게 치켜떴다.
여러 개의 점포를 개업하기도 하고 폐업하기도 하면서 괜한 시간을 보낸 게 아니다.
눈칫밥은 충분히 먹을 만큼 먹었다.
“관두려고?”
나직한 물음. 그 물음에 찬영은 담담히 대답했다.
“네.”
“언제부터?”
“당장, 내일부터요.”
“뭐?”
짜증 지수가 확 오른 사장이 눈을 부라렸다가 다시 차분해졌다.
“뭐가 문제야? 배 점장 때문이야? 그거라면 걱정 마. 그 못난 인간이야, 내 선에서 잘 정리했다.”
“아뇨, 그 분 때문이 아니에요.”
“그럼?”
사장이 의자에 기대며 팔짱을 꼈다. 찬영이 그를 그윽이 보다가 말했다.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짧은 대답으로 일축한 이유는 각성자가 됐다는 걸 밝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답에 사장이 아주 놀랐다.
“다른 길? 갑자기 진로를 바꾸려고? 너도 서른이야.”
이런 말을 하면서도 사장은 조금 어색했다. 평소에 이런 훈계 같은 건 되려, 자기가 찬영에게 하기보다는 찬영이 자신에게 종종 하고는 했었다.
‘워낙 철이 빨리 든 녀석이라…….’
그래서일까?
찬영이 건드릴 수 없는 꿈에 괜한 모험을 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장은 이 상황이 굉장히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중 유독 이상해 보이는 건 찬영의 눈빛.
‘되게 활기차 보이네.’
일할 땐 그냥 담담하기만 하던 눈빛이 오늘은 마치 꿈이라도 찾은 사람처럼 힘이 넘쳐 보였다.
그때 잠깐 침묵하던 찬영이 대답했다.
“꿈을 꾼다기보다 기회를 찾았다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기회? 너한텐 내 옆에 있는 게 기회야. 앞으로 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열어야 할 점포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 이대로 나가면 후회한다?”
후회라……. 그 따위 사치를 부리기엔, 한 번 내린 결정이 너무 확고하다.
찬영은 말없이 그냥 쳐다보는 것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후회에 ‘후’ 자도 꺼내지 않는 찬영을 보며 사장은 직감했다.
이제껏 본 녀석의 모습은 황소고집이다. 몇 백 번 주입식 교육 해 봐야 도로 아미타불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성실한데다 지각 한 번 한 적 없다. 거기다 새로운 일에 대한 적응도 빠르고, 제 할 일 똑소리 나게 해 준다.
‘이런 녀석을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이야?’
그래도 사장은 이쯤에서 마음을 접었다.
“알았다, 알았어. 가라 가. 그래도 너, 다시 돌아올 생각 하지 마. 오랜만에 종지 그릇 발동했으니까.”
사장이 속 좁은 얘길 한다고 해도, 찬영은 알고 있었다. 사장의 걱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몇 년 간 함께 일을 해온 사람이다.
정이 없을 리 없었다.
서운함을 에둘러 표현하는 걸 알기에 찬영이 엷게 미소 지었다.
“그릇 크시잖아요.”
“네가 사람 잘못 본 거야.”
“아니요, 저, 사람 잘 봅니다.”
“잘 보긴 개뿔! 나 졸부 출신이라 더 그래, 인마.”
사장의 대답과 함께 잠깐 정적이 흘렀다.
사실 대답을 하면서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잡을 수도, 잡히지도 않는다는 것을. 이윽고 찬영이 먼저 입을 뗐다.
“사장님께서 신경 쓰지 않으시도록, 제 공석으로 생길 분란은 미리 제 선에서 정리할게요.”
애당초 그만두겠단 얘기를 할 때, 그에 관련된 계획은 미리 세워 두었다. 기존에 민식과 주방 이모들의 계좌에 사장 대신 직접 추가 수당을 넉넉히 지급하고 일일이 전화로 사과할 생각이었다. 이 정도면 그들도 충분히 이해해 주리라.
사장이 투덜대듯 말했다.
“그거야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믿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투정이다.
그걸 아는 찬영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오냐.”
드륵.
의자를 밀고 찬영이 일어났다. 사장이 배웅하려 뒤따라갔다. 현관 앞에 마주 서자 사장이 목덜미를 긁적였다.
“너 나한테 빚진 거야. 대한민국에 이렇게 쿨하게 보내주는 사장이 어디 있어?”
“네, 압니다.”
“알면 다음에 소맥이나 한잔 사라. 안사면 다시 고용한다!”
“암요.”
대답하면서 찬영은 새삼 느꼈다.
정말 시작이라고.
* * *
사장과 대화가 끝나고 아파트 밖으로 나서자 벌써 오후 네 시였다. 얼른 근처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버스 창가에 앉아 밖을 보니 조금씩 늦은 오후가 되는 게 느껴졌다.
시계는 오후 네 시를 가리켰다.
‘아침 일찍 서둘렀는데도 시간이 무척 빠르네.’
하지만 마음은 가뿐했다. 해야 할 일들을 잘 치렀고, 무거운 마음을 가질 필요 없이 원래 하던 일은 잘 돌아갈 것이다.
이제껏 느낀 사람 일이란 게 다 그렇다. 내가 빠지면 당장 일이 어렵게 돌아갈 것 같아도, 정작 발을 툭 하고 빼고 나면 멀쩡히 잘 돌아간다.
사장님도 지금은 아쉽겠지만 금방 자신이 없는 자리에 누군가를 잘 채워 갈 것이다. 이번에 오픈한 영업장도 곧 그렇게 될 테고.
끼익.
버스 멈추는 소리와 함께 승강장에서 내리자,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출발한 버스와 함께 버스로 가려졌던 반대편 건물들이 보인다.
쌔앵.
차들이 그 사이 도로를 쌩쌩 지나다니고 있었다. 지나치는 차들 사이로 찬영이 건물을 찾았다.
바로 저 상가 건물이다.
저기 중에 찬영이 가야 할 장소가 있었다. 말하자면 지금보다 두 배 혹은 그 이상의 근력 강화를 다질 곳.
터벅터벅.
가까운 횡단보도로 걸음을 떼는 찬영의 눈빛에 활력이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