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4.
탕!
이윽고 발사된 산탄.
-쐐액!
하지만 대놓고 발사된 산탄은 녀석의 몸을 꿰뚫지 못했다.
총구 방향을 예측했던 것인지, 쏘자마자 허공에 훌쩍 뛰었다가 다시 착지했다.
그러고는 찬영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그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가소롭군.
하지만 찬영의 입가에 도리어 미소가 스쳤다.
그의 눈에 비쳐진 건 핏물에 흠뻑 젖은 투명 휴거였기 때문이다.
방금 전 휘돌며 날아간 산탄에는 핏물이 묻어 있었다.
찬영이 남아 있는 마나탄 위에 죽은 사람들의 피를 잔뜩 묻힌 덕택이었다.
물론 일반적 산탄이라면 구조상 안쪽의 탄알이 날아가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일 테지만, 마나탄의 구조는 일반 산탄과는 달랐다.
표면에 붙은 마나탄이 극한의 회전력과 함께 자잘한 알갱이처럼 깨지는 것이다.
그렇게 탄이 휘돌며 묻어 있는 피를 털어 냈고, 그 피가 날아가 휴거의 몸체를 일부 적신 셈이었다.
‘이제 놈의 투명화는 무력화됐다.’
놈이 어디서 오든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두 발. 이 두 발로 놈의 숨통을 반드시 끊어야 해.’
하나 그러자면.
‘영리하게 대처해야 한다.’
한 번의 초 근접 전투, 그 접근이 정밀한 사격으로 이어져야 한다. 찬영은 장전된 A-9를 쥔 채,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인벤토리 목록이 깜빡였다.
현재 자신이 지닌 마지막 장비를 꺼내 들었다.
-브랜든이 만든 갈고리
스륵.
후크 선장 같은 갈고리에는 손잡이가 있는 쇠사슬이 달려 있었다.
투척용 갈고리인 것이다.
이 무기가 한 번은 휴거의 칼을 막아 주리라.
마침 갈고리를 손에 고쳐 쥐자마자 놈이 사라졌다.
2라운드였다.
놈도 그걸 알았던 걸까? 체감 상 아까보다 놈이 훨씬 빠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온다!’
다행인 것은 피가 번들거리는 놈이기에 육안으로 확인이 어렵지는 않다는 것 정도.
다만…….
‘엄청 빠르잖아!’
휙, 휙.
휴거 녀석이 스쳐갈 때마다 ‘붕, 붕’ 하는 소리가 들릴 만큼 놈은 엄청나게 빨랐다.
피하는 것도 용했다.
아니 사실상 피하는 게 아니라 동네북이었다.
놈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바닥을 구르고 몸을 숙이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피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서 반격할 여지도 없는 찬영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
아까 살린 각성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휴거를 모두 쓰러뜨리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는 얘기를 귓등으로 흘려버린 것 같다. 그 덕에 뿔뿔이 흩어진 다른 각성자들이 나머지 휴거를 정리할 때까진 꼼짝 없이 놈을 혼자 처리해야 했다.
냉담한 현실.
하지만 하루 이틀 겪는 현실도 아니다.
매번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홀로 살아온 삶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외롭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어갈 뿐.
그렇게 찬영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애써 차분함을 유지해갔다. 그러자 찬영의 눈에 조금씩 휴거의 일정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도 습관이 있듯.
‘놈에게도 있다.’
휴거의 칼을 겨우겨우 피해 가며 찬영은 녀석의 움직임을 읽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한 건 놈이 오른편으로 칼을 내리친 순간이었다. 찬영은 완전히 투명 휴거의 패턴을 읽었다.
‘칼을 한 번 휘젓고 위로 치켜든 순간, 놈의 가슴은 허점투성이가 된다! 하지만 가슴을 맞힌다고 한 방에 즉사할까? 아니, 아닐 수 있다. 혹은 피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어떡하지?’
스스로에게 묻자마자 찬영의 눈에 보인 건 휴거의 머리였다.
이제껏 머리를 날렸는데도 살아남은 녀석은 없었다.
‘놈이라고 다를까!’
휴거의 반복된 패턴을 활용해 머리를 맞힌다!
결론을 내린 찬영이 움직였다.
마침 놈이 칼을 휘둘렀다. 칼이 휩쓸리는 방향에 따라 강풍이 분다. 한 번 휩쓸리면 온 몸이 난자당할 것이다.
이를 꽉 다문 찬영이 구르고, 또 굴러 놈의 반경을 벗어난 다음 다시 앞으로 달렸다.
찰나의 칼부림이 끝난 휴거가 다시 칼을 위로 치켜들려 했다.
쐐액!
동시에 날아가는 갈고리.
촤라라락!
팔에 감았던 쇠사슬이 풀리며 휴거의 칼을 돌돌 말았다. 바짝 다가선 찬영이 갈고리로 칼을 긁으며 엮었다.
갈고리로 칼을 단단히 옥죈 것이다.
하지만…….
‘억세다!’
역시나 이 투명 휴거는 오늘 만난 다른 휴거보다도 더한 괴력의 소유자였다.
순식간에 칼과 찬영을 통째로 집어 든 휴거.
찬영은 눈 깜짝할 새 칼에 매달린 채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 순간 찬영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단단히 움켜쥐었던 쇠사슬을 풀었다.
촤르륵.
쇠사슬이 풀리며 찬영의 몸이 휴거 머리 위로 붕 떠올랐다.
이대로라면 저 멀리 날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
휴거의 숨소리가 느껴질 만큼 가까웠다.
찬영이 원하던 초 근접의 거리!
바로 이 짧은 시간을 위해 달려든 것이었다.
민첩성과 유연성을 모두 갖춘 녀석에게 산탄총 A-9를 맞추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한 순간의 기회.
호흡, 호흡이 필요했다.
두 번 툭 툭. 한 번 길게……!
꿀꺽.
그간 해왔던 호흡법 때문인지 짧은 순간 녀석이 잠깐 느리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내.
탕!
두 발이 통째로 발사된 산탄이 녀석을 두드렸다.
파파팟!
정통으로 가격한 마나탄의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머리 꼭대기에서 내리 꽂힌 마나 산탄이 벼락처럼 꽂혔다.
쿵.
휴거가 드디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계속 보진 못했다. 총을 쏘느라 완전히 중심을 잃어 완벽한 착지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찬영은 먼저 들고 있던 총부터 옆으로 던졌다.
동시에 허공에 붕 떠오른 찬영이 몸을 한껏 말았다.
쿠당탕탕!
머리만 보호하자는 일념으로 땅에 박힌 찬영이 구르고 또 굴렀다. 데굴데굴 구르던 몸이 정지했다.
그제야 턱, 하고 나오는 한숨.
“제엔장…….”
찬영은 긴장됐던 몸을 풀고 대 자로 뻗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몸도 안 아픈 곳이 없었고.
그러나 찬영은 힘겹게 다시 일어섰다.
지금 상대한 휴거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고 분명 업적이라고, 등재될 만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업적이란 창이 뜨지 않은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녀석은 아직 죽지 않았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잘게 떨고 있는 휴거에게 다가갔다.
머리를 대부분 잃은 휴거는 무릎을 꿇은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숨이 붙어 있었다.
-쉐엑, 쉐엑.
휴거의 숨소리가 들렸다.
걸어가서 휴거 칼에 묶어 뒀던 갈고리를 풀었다.
촤르륵.
동시에 두 손에 단단히 쥔 갈고리를 있는 힘껏 휴거의 머리 위에 내리쳤다.
퍼억!
그 순간. 순식간에 여러 개의 창이 스쳐 지나갔다.
-오오쿠라, 제거 업적 달성. 기여치 : 100%
-기여치 100%, 업적 달성
-기여치 100% 업적으로 추가 박스를 증정합니다. 추가 박스는 현재 로그인 보상으로 분류되어 바로 지급됩니다.
-A-9 명중률이 1% 성장했습니다.
-오오쿠라의 칼을 획득했습니다.
하지만 확인해 볼 정신도 없이 죽은 휴거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손가락 하나 뗄 힘이 없었다. 끊었던 담배 한 개비가 잠깐 생각날 정도였다.
“후우…….”
한숨처럼 깊게 숨을 내쉰 찬영이 뒤늦게 기록들을 살폈다.
먼저 눈에 띈 건 A-9의 명중률 상승. 이 문구의 의미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A-9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명중률이 상승하는 거였나?’
그 말대로라면, 다른 여타 각성자들처럼 A-9의 능력을 독자적으로 수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녀석은 마나탄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지.’
마나탄이 무한대라면 매일 사격 연습이라도 해서 성장시키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A-9의 성장은 실전 전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마나탄이 아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담하진 않았다. A-9의 숙련도 상승이 자체적으로 가능하단 얘기는 다른 무기 사용들도 가능하단 얘기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혹시, 이 갈고리도?’
찬영은 힐끗 갈고리를 쳐다보며 현실에 돌아가서도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건 이쯤 해 두고.’
그다음은…….
‘오오쿠라!’
아마 자신이 죽인 휴거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찬영의 직감은 이 이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리더!
이제껏 죽인 휴거에는 이런 리더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 나온 적이 없다.
가진 바 강함 정도로 미루어 보아도 말 그대로 네임드 휴거인 것이다.
“읏차…….”
찬영은 아예 쓰러진 휴거 옆에 기대며 다음 내용을 읽어 보았다.
‘추가 박스라…….’
박스의 설명은 무려.
‘브론즈 2급 박스!’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씩 가벼운 미소가 스쳤다. 순식간에 일곱 단계를 훌쩍 뛰어 넘었다.
‘기여도와 관계있는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좋은 박스가 나올 리 만무하다. 확실한 것은 기여도가 높을수록 보상이 좋아진다는 사실.
어쨌든 박스가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박스엔 생존에 필요한 갖가지 물건이 있다.
각성자들에게는 여러 능력이 주어지지만 자신에게는 여러 생존 물품이 주어진다.
‘박스 안에 내가 익힐 수 있거나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을지도…….’
그 생각은 일종의 추측이었다.
방금 전, A-9의 명중률이 올랐다는 얘기는 수련이 가능하단 영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박스에 있는 물건을 통해 기술을 익힐 수 있을지 모른다는 단서까지 준 것이다.
이젠 묘한 기대감까지 생겼다.
‘나, 지금 즐기는 건가?’
그래,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휴거를 죽였을 때 그 희열. 그것은 생존했다는 안도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만족감.
사력을 다한 보상을 획득했다는 일종의 성취감이었다.
이 일, 저 일 하며 스스로의 삶을 계획해 가며 얻었던 꾸준한 성취감과는 다른 무언가.
‘그래, 맞아.’
게이머를 꿈꾸며 매번, 승리와 패배를 오갔던 외줄타기에서 느낀 희열과 같다. 찬영의 승부사적 기질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사이 나머지 휴거를 정리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게 보였다.
‘곧…… 집에 가겠군.’
찬영이 가벼운 미소를 흘렸다.
* * *
집으로 돌아왔을 때 찬영은 깊게 베였던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피 묻은 자국은 있었지만 상처는 조금도 없다. 다 나아 버린 것이다.
신기한 일이었다.
소환이 끝난 후에는 늘 이랬다. 소환 시 사용하는 물건들은 현실에서도 사용 가능했지만, 상처 입은 몸은 현실에 돌아오면 씻은 듯 나았다.
그 덕에 병원을 찾을 일도 없었다.
‘대신…….’
찝찝함은 그대로였다.
* * *
“어휴, 시원해.”
샤워를 마치고 TV 앞에 앉았다.
이 집은 다른 집보다 월세가 적다. 그럴 만도 한 게 처음에 입주했을 땐 폐가 수준이었다. 장점이라고는 직장과 가깝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것도 산비탈이나 다름없는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을 오르고 나서야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만족했다.
서울치고 월세 가격이 무척 쌌기 때문이다. 올라오기 힘든 만큼 인근에서 이보다 싼 월세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싸도, 월세를 오래 유지하는 건 좋지 않다.
전세가 돈을 모으기에는 훨씬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과 가까운 전세 매물을 구할 길이 없었다. 전세보단 월세가 판치는 부동산 시장이라 그렇고, 무엇보다 아직 계획 세워 놓은 목표 금액을 채우지 못했었다.
부어 놓은 적금을 통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놓은 게 있었던 것이다.
조만간…….
‘내 집을 구해야지.’
그건 찬영의 오래된 꿈이었다.
생각에 잠긴 사이 TV에서 예능 프로그램 ‘러닝 걸’을 방영했다.
화면 속의 사람들은 웃고 떠든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일상.
하지만 찬영은 알았다.
세상은 분명, 엄청나게 바뀌고 있다. 이 세상에 적응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다. 천천히 바닥에 앉은 뒤 인벤토리 창을 열었다. 아직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추가 박스 보상!’
미처 이걸 열어 보기도 전에 서먼 홀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제야 열어 보게 된 것이다.
‘까 볼까?’
마치 옛날에 하던 RPG 게임 같다. 이를 테면 영웅 뽑기 같은.
그런 것도 십 연속 뽑기 등을 하면 보상을 하나 더 얹어 주거나 혹은 희귀나 전설 영웅이 나오질 않았던가?
휴거 중에서도 이름이 있는 네임드 휴거를 혼자 잡았다.
그러니 어쩌면.
‘이번 보상은 기대할 만 게 있지 않을까?’
처음 박스가 주어질 때부터 기대하고 있던 두근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게 찬영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마침내 들려오는 목소리.
-브론즈 2급 박스를 개봉하였습니다.
띵.
마치 토스트에서 빵이 툭 하고 튀어나올 때 나는 소리와 함께 상자가 개봉되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물건의 정체.
그 물건을 본 찬영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단순히 장비나, 혹은 소환된 세계에서 사용하기 위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었다.
꿀꺽.
찬영의 특유의 담담한 표정이 흥분감에 잘게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