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2.
눈앞이 반짝였다.
그리고 잠시 뒤 마치 몸이 어딘가에 접속하듯, 전류가 찌릿하고 몸을 한 바퀴 스쳐갔다.
바뀐 풍경이 보였다. 서울의 거리와 다름없다. 주소별로 나눠진 고층 건물 곳곳에 자리 잡은 사거리. 언뜻 보이는 여러 자동차, 골목까지도……. 늘 보던 도시의 풍경이다.
마치 평행 세계처럼 느껴졌다. 전에 소환된 적이 없었다면 모를 정도로 똑같았다.
하지만 찬영은 알고 있었다.
이곳은 한정된 장소다. 엄연히 다르다. 생환한 일부 각성자들은 반경 10km까지 나갔을 때, 반구형의 딱딱한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정보들을 남겨 주었다.
한두 번이 아니고 매번 그렇다고 하니, 정보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소환된 사람들은 현재 반경 10km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셈이었다.
‘시작이군.’
동시에 눈앞에 작은 창이 떴다.
-7 Day
-반갑습니다. 양찬영 님. 잠시 뒤 시작될 오늘 시가전은 정확히 삼십 분 후 시작합니다.
그다음 시계가 떴다. 이 시간은 이 공간 안에서 측정되는 시간이다. 현실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그간 생환한 사람들에 의하면 10:1 수준이라고 했다.
현실 시간의 한 시간이 이곳에서는 열 시간인 셈.
찬영은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며 첫 소환 당시를 떠올렸다.
***
“살려 줘!”
“끄아아악!”
“막아! 막으라고, 새끼들아!”
“도망쳐!”
곳곳에서 피가 튀고, 사람들의 팔다리가 널브러졌다.
쓰러진 사람들은 어느새 일어나서 괴물처럼 달려들었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경직된 채로 괴물들에게 공격당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
괴물들은 영화 속에서나 보던 좀비들을 닮았다.
걸어 다니는 시체.
그 시체 위엔 별(★)이 그려져 있었다.
별 옆에는 이름까지 친절히 적혀 있었다.
-★ 푸른곰팡이
‘푸른곰팡이?’
저 푸른색 좀비들을 일컫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름을 알려 준다고 한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저 시체들의 발톱에 걸리는 순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등을 보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찬영 역시 겁에 질려 몰려가는 사람들에 파묻혀 정신없이 도망쳤다.
그때였다.
화르륵!
뒤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뜨거운 열기의 근원지는 한 남성의 손.
손에서 뿜어지는 뜨거운 화염은 좀비들을 휘감았다.
-끄어어어어.
노린내를 풍기며 타들어 가는 좀비들.
‘저 무시무시한 괴물도 죽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불을 뿜어내고 지친 표정을 한 남자가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여기 오는 순간부터 각자 무슨 능력이 생겼을 겁니다!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 능력을 발휘하여 저놈들과 싸워야 합니다! 어차피…… 놈들을 다 죽이지 않으면 이곳을 나갈 수 없어요!”
저 괴물들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 보이는 남자의 외침!
그때부터였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이내 각자의 능력을 깨달았는지 하나둘씩 초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물론 불을 뿜어낸 사내처럼 전투에 특화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높이 점프하는 남자나, 투명해지는 여자 등등.
겉보기엔 그럴듯하지만 당장의 전투에 도움 되지 않는 능력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전투에 특화되지 않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더 빨리 도망가기도 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전투에 합류하여 좀비들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결 여유가 생긴 사람들 사이에서 찬영 역시 자신의 능력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문득 시야 왼쪽 하단에 깜빡거리고 있는 작은 점을 발견하였다.
‘이게 뭐지?’
그 점을 의식한 순간, 점은 순식간에 확대되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최초 접속을 환영합니다. 최초 접속 보상으로 초보자용 패키지 상자, 1일 차 접속 보상으로 브론즈 10등급 보상 상자가 주어집니다.
-접속 : 1일 차
-보상 : 초보자용 패키지 상자, 브론즈 10등급 보상 상자
-개봉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불투명한 홀로그램같이 생긴 창.
그것은 마치 어릴 적 찬영이 플레이 하던 온라인 게임의 시스템의 ‘접속 보상’과 흡사했다.
놀라움도 잠시, 찬영은 침착하게 보상을 수령했다.
‘예.’
그러자 인벤토리 보이는 홀로그램 창이 열리며, 그 안에 수령한 보상으로 보이는 아이템들이 칸마다 차곡차곡 진열되었다.
-초보자의 장검
-초보자의 갑옷
-초보자의 투구
-초보자의 방패
-초보자의 가죽부츠
-마나탄(5개)
‘말 그대로 초보자 세트구나.’
찬영은 금방 익숙해졌다.
일단 당장의 생존이 중요한 상황. 놈들의 발톱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생존율을 높이려면 장비를 서둘러 장착해야 했다.
찬영이 그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인벤토리 안의 장비들이 사라지며 몸에 장착되었다.
‘……!’
초보자 세트이지만 생각보다 단단하고 튼튼해 보이는 검과 방패, 질겨 보이는 가죽 갑옷과 투구였다.
이 아이템들이라면 좀비들의 발톱을 쉽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찬영은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좀비 무리를 바라보았다.
한결 자신감을 찾은 덕택일까? 마음이 차분해지고, 긴장으로 떨리던 몸이 잦아들었다.
‘일단 외곽에서부터 차근차근 잡자.’
죽은 남자의 내장을 파먹고 있는 좀비 한 놈이 눈에 띄었다.
찬영이 다가가자, 놈도 눈치를 챘는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크아아악!
괴기스러운 고함을 지르며 놈이 달려들었다. 찬영은 왼팔에 쥔 방패로 놈의 팔을 막으며, 오른손에 든 검으로 놈의 왼팔을 후려쳤다.
뎅겅.
툭.
좀비의 팔은 생각보다 손쉽게 잘려 나갔다. 썩은 시체라 그런지 맷집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찬영은 신중하게 방패로 녀석을 저지하며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차례대로 녀석의 오른팔과 머리를 쳐 냈다.
-크아아아악!
-끼에에엑!
“후…….”
쉴 틈도 없이 옆에 있던 좀비들이 달려들었다.
정신이 없는 상황.
퍼억.
뒤에서 달려드는 녀석을 미처 피하지 못해 발톱 공격을 허용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질긴 갑옷에 가로막힌 것.
‘안전하다!’
그걸 깨달은 이후, 전투는 찬영을 위한 시간이었다.
찬영은 둘러싸이지 않도록 거리 유지에 신경을 쓰며, 차근차근 좀비들의 머릿수를 줄여 나갔다. 그러면서 하나씩 수집되는 아이템.
직접 줍지 않아도 오로지 자신에게만 들어오기 시작한 아이템들이었다.
그야말로 자동 파밍(Farming. 게임 속 캐릭터가 아이템이나 경험치를 획득하며 점차 강해지는 일을 농사에 빗대어 표현한 용어)!
얼마나 무아지경으로 움직였을까?
찬영은 어느 순간 주변의 좀비가 없음을 깨달았다.
상황 종료.
찬영은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걸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통을 호소하는 부상자들, 말없는 죽은 자들, 마지막으로 살아남았음을 기뻐하며 환호하는 사람들…….
그들의 공통점은, 누구도 성한 사람이 없다는 것.
심지어 아까 불을 뿜어내는 압도적인 능력을 지녔던 남자도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찬영은 달랐다.
미처 보호되지 못한 손등 같은 부위의 생채기를 제외하고는 멀쩡한 상태였다.
찬영은 그때 깨달았다. 그들과 자신의 차이점을.
바로 ‘장비’의 유무였다.
그리고 그런 ‘보상’을 받는 게 자신의 능력임을.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얻는 이 능력이 무척 사기적임을.
찬영은 그렇게 첫 번째 소환을 무사히 마쳤다.
***
웅성웅성.
찬영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사색에서 깨어났다.
첫날 만났던 좀비 같은 놈들.
각성자들은 그 희한한 괴생명체들을 ‘휴거’라고 통칭해 부르는 중이었다.
찬영은 이 로그인 보상 능력으로 휴거들 틈에서 살아남았고, 이제 생존을 위해 더 큰 성장을 노렸다.
그때 시야에 떠오른 창.
이건 마치 마우스 커서 같아서 눈으로 움직이고 생각대로 끄거나 다시 보거나 하는 등이 가능하다.
누가 이 소환을 시작하는 건진 몰라도 확실한 건, 온라인 RPG 게임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
-6일 차 접속을 환영합니다. 업적 완료 개수 여부에 따라 6일 차인 오늘 접속 보상이 주어집니다.
-접속 : 6일 차
-보상 : 브론즈 8급 상자 1개
-개봉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하며 조용히 창을 쳐다보았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이 시스템을 이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이틀이었다.
첫날은 푸른곰팡이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틀째부터는 다른 각성자들과 자신의 차이를 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가진 능력에 대해 S.N.S.에든 어디에든, 대놓고 떠들어 준 덕택이었다. 그로 인해 종합하게 된 정보는…….
첫 번째, 휴거의 이름과 등급은 나만 볼 수 있다. 별(★) 한 개가 두 개보다 약했다.
두 번째, 각성자들은 서먼 홀에 진입하면 고유 스킬을 익힌다. 이를 ‘이네이트’라고 한다. 이네이트는 익히는 게 아니라 각인된다. 각인될 때 이네이트에 걸맞은 장비 등을 획득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단, 이네이트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여 개인의 신체 한계를 넘기면 의식을 잃는다.
세 번째, 이네이트를 자주 사용하고 숙련이 높아질수록 이네이트의 진화를 가져온다. 진화의 형태는 이네이트마다 다다.
네 번째, 나는 이네이트가 없다.
‘……대신, 아이템이 있지.’
찬영은 그간 여러 번의 소환을 통해 자신의 능력이 아이템뿐만 아니라 게임과 흡사한 시스템이 자신에게 적용됐다는 걸 깨달았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저들은 휴거를 잡을 때 이네이트의 숙련도가 오르지만 자신은 아이템을 획득한다.
쓸데없는 잡템이 더욱 많지만 가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장비가 나오기도 한다.
마나탄을 장전해 사용하는 마나소총 E-9나 마나 산탄총 A-9 등이 그랬다.
어쨌든 필요하지 않은 잡템들은 100칸의 인벤토리 각 칸에 박아 두면 그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소환 횟수가 늘어날수록 더 강력한 휴거들이 등장할지 모르니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찰나, 다시 뜬 보상 창을 봤다.
-마나탄 한 박스(20개)
아주 마음에 드는 보상. 이 정도 탄알이면 적어도 이번 소환은 버티고도 남으리라. 그렇게 보상을 확인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앞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통통 튀듯 활기찬 목소리는 마치 확성기를 쓴 것처럼 사거리 일대에 울려 퍼졌다.
“안녕하십니까? 부산 사는 김종두입니다. 절 아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유튜버라서요.”
한 번 기침을 한 뒤 그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자, 거두절미하고, 오늘따라 처음 소환되신 분들이 많이 보여 제가 나섰습니다. 우선 기뻐하세요! 여러분들은 오늘 집에 살아 돌아갈 겁니다.”
아줌마들이나 약한 노인들은 김종두의 말에 안심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찬영은 덤덤히 다른 일을 준비했다.
지금부터 그가 할 말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소환당한 사람은 대부분 후방에 위치해 지원을 담당한다.
조금 익숙해지면 대열에 합류하는 식이다.
그 전까진 이 일에 능숙한 사람들인 전방을 맡는다. 차라리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저 김종두라는 사람이 리더와 비슷한 역할을 할 것 같다.
찬영은 굳이 나서지 않았다. 앞에 나서서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거나 시키는 일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럴 바에야 스스로 움직이고 직접 해결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사람 다루는 걸 즐기는 듯 보이는 그와는 조금 다른 유형의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김종두는 찬영의 예상대로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적어도 세 번 이상 소환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앞으로 나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독 행동은 좋지 않습니다. 지금은 같이 싸워야 될 때입니다.”
김종두의 말에 따라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그렇게 모인 1군은 찬영을 포함해 서른 명.
지휘를 맡는 무리들은 대개 김종두를 포함해 그와 함께 움직이는 세 명이었다. 그 네 명은 이미 소환되기 전부터 친분이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김종두는 동료 한 명에게 캠코더로 자신을 계속 찍도록 시키고 있었다. 운 좋게 함께 소환된 모양이었다.
“야, 잘 찍고 있냐?”
“화면발 제대로 받는다. 존나 멋있어.”
“지리는구먼!”
김종두는 한 번 씩 웃고는 자기 앞에 모인 사람들을 쳐다봤다.
‘이 사람들이 1군이라 이거지?’
이들을 잘 통솔해서 이번 휴거 소탕도 잘 끝내놓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리면, 아마 자신의 채널은 갈수록 승승장구할 것이다.
‘벌써 조회 수가 기대되는군.’
“자, 그럼 각자 능력을 좀 공유해 볼까요? 여기 형님? 형님부터 말씀해 보세요.”
그때부터 1군으로 모인 사람들은 각자의 능력을 공유하고 어떻게 사용할 지 상의했다.
어떤 종류의 휴거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원거리 혹은 장비나, 기술을 사용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은 후방 전열에, 그 외에 사람들은 각기 능력에 맞춰 전방 혹은 여러 높은 상층부 건물에 배치하기로 했다.
찬영은 전방 두 번째 열에 자리 잡기로 했다.
굳이 근접전 총을 택한 건 보상 때문이다.
어차피 목숨 걸고 싸울 거라면…….
‘다음과, 그다음 싸움을 대비한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휴거를 잡아야 하고, 그러려면 더욱 녀석들에게 접근해야 했다. 방심하지 않고 차분히 그리고, 하나씩 정리하며 접근해 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선 원거리보단 근접전이 나았다. 시시각각 바뀌는 전황을 좀 더 명확히 보고 판단하는 것은 근접전이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온다!”
정찰 능력의 이네이트를 가진 사람이 3km 전방에 있다가 풍행보라는 축지법 같은 이네이트를 익힌 사람의 등에 업혀 돌아왔다.
동시에 김종두가 보고를 듣고 소리쳤다. 확성기 대신이었다.
“놈들의 개체 수는 오십 정도! 들고 있는 무기는 긴 일본도 같답니다! 그리고…… 또 뭐라고요? 아, 생긴 건 악어같이 입이 툭 튀어나왔고, 닌자같이 뛰어다닌답니다! 체구는 우리만 하다니까 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쓸모 있는 정보였다.
찬영도 들려오는 정보를 잘 새겨듣고, 산탄총을 고쳐 쥐었다.
“원거리 형님들! 준비해 주세요! 시작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 여러 그림자들이 도로의 아스팔트와 고층 건물을 빠르게 뛰어넘으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온다!’
찬영이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