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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249화 (249/258)

249화. 심연의 성전 – 종막 (1)

“후작 각하! 기병대 복귀 완료되었습니다!”

내 부관 조제 바셰가 말을 타고 와서 보고했다.

그러나 내 눈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크록스와 가스통이 단 한 명의 악마에게 압도당하고 있는 모습에서.

프랑지아 최강의 기사와 이베리카 최강의 전사다.

그런 둘이 바엘이 미친 듯이 휘두르는 쌍검을 받아내고, 피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서 허덕이고 있다.

“허, 헉, 가세해야…….”

그 광경을 본 조제 바셰가 검을 뽑아들며 말했지만, 나는 바로 제지했다.

“나서지 마!”

“하, 하지만, 후작 각하.”

“나서봐야 방해만 된다. 기병대는 잔존 인원 재편해서 양익을 보강해.”

“아, 알겠습니다.”

나는 미칠 듯이 춤추는 검격의 향연을 바라보았다.

저 정도면 제아무리 정예라는 흉갑기병대든, 혁명 수호대든 병사들로는 끼어들어 봐야 일방적으로 도륙당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덜덜 떨리고 있는 손을 들어 올려 주먹 쥐었다.

마족들의 기병대를 섬멸하고, 바엘의 일격을 막아내느라 내 마력은 거의 소진되었다.

이럴 때 가세할 수 없다니.

나는 당장에라도 당할 것처럼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가스통과 크록스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조금이나마 마력을 회복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머리로는 그걸 알고 있는 데도, 초조함을 감출 수가 없다.

조제 바셰는 금방 돌아왔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좌익의 제국군과 우익의 크라프테군 모두 손실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1차 방어선을 포기하고 2차 방어선으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그래.”

나는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경기병대의 활약으로 일시적으로 약해졌던 공세가 다시 강해졌다.

나는 제롬 모렐이 어찌되었을지 생각해보려다 그만뒀다.

“발사!”

타타탕- 총성이 울리고 드론들이 쓰러지지만, 그러고도 드론들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달려든다.

“크흐아악!”

“아아악!”

난전이 심해지는 사이, 기관총이 흩부린 탄환의 비에 드론들에게 사격을 가하던 보병대가 단체로 쓰러진다.

뒤늦게나마 번개가 내리쳐 기관총을 파괴했지만, 확연히 속도가 느려졌다.

지젤 다비와 루이스를 비롯한 마법사들은 최선을 다해주었지만, 이젠 지친 거겠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아직 지면에 도달하기에는 먼 푸른 구체를 바라보았다.

아직 멀다. 이대로면 우리가 무너지는 것이 더 빠르겠지.

“여왕 폐하. 여력은 있으십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에리스를 보며 물었지만, 그녀의 안색은 파리하다.

속이 들여다보일 것처럼 창백한 얼굴에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고 있는 모양새.

“네, 네? 후작님?”

반응은 늦고, 그마저도 내 말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무리도 아니지.

아무리 내가 기병대를 상대하고 왔다지만, 조금 틀어내는 것이 고작이었던 바엘의 검격을 벌써 수차례 막아냈다.

크록스에게 가호를 내리고, 마지막 남은 힘까지 쥐어짜내서 나에게 몰아준 그녀는 이미 여력이 없다.

나는 낙담을 억누르며 말했다.

“폐하, 송구하나 보몽 경을 빌리겠습니다.”

“허나, 후작 각하. 저는 폐하를 지켜야…….”

“아니요, 보몽 경. 저는 이제 더는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저 하나 지키겠다고 보몽 경만한 전력을 놀릴 수는 없어요.”

“당신은 여왕 폐하십니다!”

보몽 경은 항변했으나, 에리스는 다시 말했다.

“부탁드려요, 프랑크 아저씨.”

“……여왕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보몽 경은 바로 검을 뽑아 들고, 바엘과 교전 중인 쪽으로 달려갔다.

“감사드립니다, 여왕 폐하.”

내 말을 들은 에리스는 희미하게 웃으며 답했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후작님.”

나는 그대로 무너지는 에리스를 잡아주었다.

보몽 경이 나서는 순간까지 어떻게든 버텨준 건가.

나는 속으로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곤 조제 바셰에게 맡겼다.

“막사로 모셔.”

“옛!”

* * *

모두가 기진맥진해졌어도, 전투는 계속된다.

“37연대 패주합니다!”

“26연대 투입해!”

“기관총, 조심-”

투두두두두-

“으아아아악!”

사방에서 드론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드론들 틈새에 숨어서 기습적으로 기관총이나 소총을 쏴대는 악마들이 속출한다.

전투 중반까지만 해도 지속적인 포격을 통해 효과적으로 저들을 줄일 수 있었지만, 적의 대포병 사격이나 마법에 많이 당했다.

결정적으로, 무너지는 중군을 지키기 위해 산탄 포격을 날리려다 바엘에게 대포 채로 썰려버리며 생긴 손실이 크다.

화력이 약해지자, 지치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는 드론의 파도는 점점 우리를 한계로 몰아붙이고 있다.

“크윽, 실책을!”

“카로크!”

전장을 든든하게 지탱하던 애꾸눈의 오크 카로크마저 한 팔이 너덜너덜해져서 물러나야만 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바엘 쪽을 보았다.

“이제 그만 죽어라, 하등한 것들!”

“우우웃!”

“허억, 허억…….”

꺼지지 않는 분노를 뿜어내며 쌍검을 휘두르는 바엘은 지친 기색이 없다.

그러나 그에 맞서고 있는 크록스와 가스통, 보몽 경은 엉망이다.

땀과 피로 엉망이 된 몸, 헐떡이는 숨결.

중간에 보몽 경이 가세하지 않았다면, 둘은 저 괴물 같은 악마에게 이미 당했겠지.

나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야속하게도, 마력은 아직 그리 회복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내가 가세해야 하나?

지금 가세했다가 얼마 안 되는 마력을 전부 소진해버리면 내가 허무하게 당할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가세하지 않았다가, 셋 중 하나가 당해버리기라도 하면 결국 전부 무너지게 될 거다.

저 악마의 마력은 얼마나 남았지?

지금은 세 사람을 상대하느라 바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아까 같은 검기를 날릴 수 있나?

어떻게 해야 하지?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끌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도.

아니, 아니다.

당장 이 진영의 뒤에서 크리스틴이 이곳에서 보급 관리에 힘쓰고 있고, 탈진한 에리스도 쉬고 있다.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

“후작 각하,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제 한계입니다.”

“나도 알아!”

니콜라 네의 말에 반사적으로 나간 답은 나도 흠칫할 정도로 신경질적이었다.

“아니, 미안하네. 장군의 선봉대는 충분히 분전했는데.”

전투 초장부터 싸운 니콜라 네의 선봉대는 사실상 전멸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다른 부대에 편입되어 싸우고 있거나, 더는 싸울 수 없는 부상자뿐.

사실상 지휘할 부대조차 남지 않아 누구보다도 무력감을 느끼고 있을 그에게, 내가...

그러나 니콜라 네는 어쩐지 열기가 넘치는 답을 했다.

“후작 각하. 저는 부하들에게 그들이 버티는 일분일초가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최후까지 자리를 지키다 죽으라고 명했습니다.”

“……그래, 훌륭했네.”

에리스는 무력화.

기병대는 이미 양익에 전개되었고, 예비대는 전부 소진.

여기서 뭘 더 해야 하지? 뭘 더 할 수 있지?

네에게 답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빠르게 생각이 맴도는 사이.

“저 또한 제 명령을 지키겠습니다.”

마지막 말을 남긴 니콜라 네는 앞으로 뛰어나갔다.

“뭣? 돌아와, 네 장군!”

뒤늦게 반응해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오른손에 검을 쥔 채, 세 명과 바엘이 정신없이 싸우는 곳을 향해 달렸다.

“멈춰-!”

“엇?”

“이야아아아아아!”

크록스와 두 기사가 모두 당황하는 사이, 네는 기합성을 지르며 바엘에게 달려 들었고-

바엘이 휘두른 검은 네의 검과 팔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팔이 잘려나간 어깨에서 피를 뿜으며, 니콜라 네의 몸이 천천히 바엘의 발치로 쓰러진다.

“제길……!”

대체 왜 저런 무모한 짓을!

그러나 다음 순간.

니콜라 네가 품고 있던 수류탄이 데굴- 바엘의 발밑으로 굴렀다.

“음?!”

폭음이 울렸다.

바엘은 마력 방벽을 발치로 집중해서 그 폭발마저 막아냈다.

“큭, 버러지 따위가- 크아아아악!”

그러나 저 강대한 악마조차 마력 방벽을 발치로 집중시킨 사이, 삼면에서 가해진 검격을 전부 막아내지는 못했다.

바엘의 등에서 푸른색의 피가 솟구친다.

“으아아아아아!”

상처 입은 악마가 절규한다.

바엘은 분노에 차서 검을 휘둘러댔지만, 아까 전의 예리함에는 확연히 미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그의 상처에서 푸른 피가 쏟아져 나온다.

저자도 지쳐 있던 거다. 그런 상황에 입은 중상은 바엘 쪽으로 기울어있던 무게추를 간신히 이쪽으로 당겨왔다.

“네 장군…….”

나는 방금 전의 폭발이 일어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용맹하지만 성격이 급하고 생각이 단순하여 선봉장으로 적당한 장군.

내게 겨우 그 정도의 인식이었던 남자는 시신조차 온전히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시선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푸른 구체는 이제 거의 머리 위에 있다.

마탑주의 예고한 대마법의 격돌까지 이제 1시간가량. 그것만 버티면 된다!

방어선은 전면 붕괴 직전이지만, 바엘을 상대하고 있는 세 사람은 일당백의 용사들이다.

당장 나까지 합세해서 바엘을 처단하고 모두가 방어선에 투입되면 어떻게든-

“이런, 이런. 아주 감동적이군요.”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전장의 피와 먼지로 더럽혀진 보랏빛의 드레스.

핏빛의 긴 머리칼과 같은 색의 눈동자.

“파이몬……!”

“그 누구도 상처 입히지 못한 마왕에게, 일개 열등 종족의 희생이 상처를 입혔다라. 진부하지만, 뭐…….”

파이몬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등에서 피를 뿜으며 격노하여 싸우고 있는 바엘을 보곤 웃었다.

“나름대로 보는 맛이 있군요.”

제길, 앞으로 한 발.

겨우 한 발인데, 하필이면 이럴 때.

“자, 그럼. 이 기나긴 희극도 볼 만큼 봤으니…….”

파이몬은 히죽 웃으며 선언했다.

“피날레입니다. 이제 슬슬 끝내도록 하죠, 피에르.”

* * *

드론들이 끝도 없이 밀려든다.

“제길!”

중상을 입고 기세가 많이 꺾인 바엘을 상대하던 세 사람조차 시도 떼도 없이 달려드는 드론들을 상대하느라 바엘을 끝장내지 못한 사이.

“으아아악!”

“살려줘, 살려줘어어어-!”

사방에서 비명과 절규가 터져 나온다.

방어선이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나도.

“크으윽!”

지면을 타고 미끄러지며 파이몬이 휘두른 팔을 가로막자, 검이 찌이잉 울린다.

“이런이런, 어찌 된 겁니까, 피에르? 저보다는 강해지신 줄 알았는데…….”

파이몬이 요사스럽게 웃는다.

빌어먹을, 마력이고 신성력이고 전부 소진된 다음에야 와서 저딴 소리를 해도.

“허억, 허억…….”

얄밉게 웃는 파이몬의 얼굴이 흔들린다.

시야마저 통제가 되지 않는 것은, 한계까지 쥐어짜낸 체력 탓인가.

“아하하하, 애썼습니다, 피에르. 솔직히, 이 정도까지 버텨낸 것만으로도 당신은 인간을 초월했습니다. 뭐, 결국 조금 부족했습니다만.”

“하, 내가 혼자 인간을 초월해서 버텼다고?”

“예에, 대단히 인상적이었죠.”

“여기까지 와서도 넌 나밖에 안 보이나 보군.”

“흠, 누굴 높게 쳐줄까요? 기병대로 자살 돌격해서 고작 얼마 안 되는 시간을 벌어준 멍청이? 아니면 오라도 없이 자폭을 하고도 고작해야 바엘에게 상처 하나 입힌 버러지?”

승리를 확신한 악마는 조소를 흘렸다.

“그래봐야 결국, 어비스 코퍼레이션의 계획이란 계획은 다 엎어놓은 당신의 인도를 받고도 패배할 운명일 뿐인 열등 종족들인 것을.”

저 빌어먹을 악마의 입을 찢어놓고 싶은데, 이제는 팔이 들어올려지질 않는다.

그런가.

그 모든 선택과 희생들이.

실패 후 다시 맞이한 삶도.

크리스틴을 살려낸 것도.

에리스를 데려온 것도.

루이 왕에 맞선 전투도.

리오넬의 의지도.

폭풍의 마녀를 향한 돌파도.

국민의회의 저항도.

발리앙에 맞선 승리도.

제국에 맞선 전쟁도.

대왕에게서 살아남은 항전도.

이 섬에서 벌인 우리의 그 모든 분투와 희생조차도.

전부, 힘이 부족해서 실패했다는 단 하나의 귀결로 끝나버리는 건가.

“아하,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피에르, 지금 당신의 표정, 굉장한 걸작입니다. 아십니까? 아아, 거울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네. 직접 보여줘야 하는데.”

파이몬은 웃음을 터트리더니,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자, 보시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드론들이 밀려드는 가운데, 버티다 못한 군사들이 도망치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저 뒤에는.

마탑주가.

에리스가.

크리스틴이 있는데.

파이몬이 선언이 귀를 때렸다.

“당신의 패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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