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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248화 (248/258)

248화. 심연의 성전 – 최후의 저항 (7)

“후욱, 후욱…….”

크록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거대한 몸이 호흡을 따라 요동칠 때마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액체가 떨어졌다.

어디까지가 땀이고, 어디까지가 피인지는 크록스 본인도 몰랐다.

늘 자랑이던 그의 강인한 근육질 육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자상이 새겨져 있었다.

“방금 전의 기세만은 좋았는데…….”

크록스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바엘을 노려보았다.

“역시나 하등 생물에 불과하군.”

프랑지아에서 인간을 수급할 수 없게 되자, 대신 이베리카 반도의 종족들을 드론의 재료로서 모은다.

그걸 입안한 것이, 눈앞의 이 악마.

크록스는 들끓는 분노를 억누르려고 애쓰며 숨을 골랐다.

그 사이 전신에 난 상처가 천천히 회복되고 있다.

그 광경을 본 바엘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과연, 성녀의 가호인가. 조금 귀찮군.”

크록스는 송곳니를 씰룩거렸다.

-으하하하, 성녀의 가호? 그런 건 필요 없다네! 성녀왕에겐 다른 이들을 도우라고 해! 나는 우리의 신을 믿으니!

-아니. 그래도 받아줬으면 좋겠어, 형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잠시나마 저 악마를 붙잡아둘 수 있는 건 그대 정도야. 그런 그대를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우리의 배려야.

그때 형제의 간청을 못 이기는 척 들어준 것이 천만다행이다.

지금껏 그와 대등하게라도 겨룰 수 있는 자를 본 적이 없는 크록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베리카 최고의 전사라는 그가 고작해야 치명상을 피하는 것이 전부라니.

성녀왕의 가호가 아니었다면 이미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와중에…….

“치잇, 이것들 만만하지가, 으아앗!”

크록스는 흘긋 곁눈질로 샨드라가 공중제비 돌며 공격하다가 악마의 검격을 가로막고 그대로 붕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크음……!”

카로크도 신음성을 내뱉으며 버티는 것이 고작이다.

바엘의 친위대는 프라이드라는 이름값을 차고 넘치도록 하고 있었다.

그의 심복들도 당해 내기 버거워 하는 자들 앞에서, 혁명군과 이베리카의 형제들 할 거 없이 쓸려나가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들에게 공격을 집중할 수도 없도록 끝없이 쏟아지는 드론들까지.

“물러서지 마라! 계속해서 싸워라!”

선봉대의 니콜라 네까지 분투 중이었지만, 점차 밀리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게다가…….

“이만 정리하도록 하지.”

크록스가 숨을 돌리고 있자, 바엘은 바로 등을 돌려 아군을 공격하려고 들었다.

“어딜!”

크록스는 바로 달려들었고-

그가 양손으로 휘두른 도끼는 바엘의 검 하나에 가로막히고, 그대로 다른 검이 그의 목을 노렸다.

“웃!”

급하게 피했으나, 이번에도 바엘의 검은 그의 목에 핏줄기를 그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렇다고 그가 상대해 주지 않으면 연합군을 도륙 내려고 하니, 매 합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싸움을 계속 강요당하고 있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결국 네 죽음으로 끝날 뿐.”

바엘의 말은 사실 그대로를 담고 있었으나, 크록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하…….”

그에 바엘이 처음으로 미간을 좁히자, 크록스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이미 달라지고 있지 않나. 악마.”

“흠?”

바엘은 의아함을 품었다.

그리고 이내 방금까지만 해도 잔뜩 적진으로 몰려들며, 그의 친위대와 함께 금방이라도 방어선을 붕괴시킬 것만 같던 드론들의 행진이 멈췄다는 것을 깨달았다.

* * *

“이랴, 이랴!”

말발굽이 땅을 박차고, 다리를 지나 말의 몸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

빠른 속도로 내달리며 맞이하는 바람의 상쾌함.

“으, 으앗?”

“미개한 인간 놈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핫하! 미개한 인간님의 칼을 받아라, 잘나신 마족들아!”

그 가속도를 전부 담아 휘두른 검이 살을 파고드는 감각과 그에 부딪히는 저항감, 이내 그것을 끊어버리며 전해지는 해방감.

다리에서부터 허리로, 손에서부터 어깨로, 그리고 머리에 이르기까지.

그 짜릿한 전율과 전투의 고양감, 흥분.

제롬 모렐은 말위에서 맞이하는 그 모든 감각을 사랑해 마지않았다.

“이야아아아아!”

“프랑지아 만세!”

모든 이들이 그와 같은 기분으로, 만용에 한없이 가까운 용기를 담아 질주하며 적진 후방에 무방비하게 있던 포병대를 학살하고 있다.

그들은 숱한 전쟁을 겪어오며 경기병대로서 쌓아올린 승마 실력과 기동 전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좌익에서부터 멋지게 파고들어, 제대로 중앙을 휘저으며 후방까지 침투하는데 성공한 거다.

“핫하, 끝내주는 구만! 역시 기병은 돌격이지!”

제롬 모렐은 쾌재를 울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휘유- 장관이네!”

드론, 드론, 드론, 드론.

적진을 헤집으며 기동한 그들을 쫓아, 드론들이 사방에서 바글바글하게 밀려들고 있다.

그의 친우, 라파엘 발리앙은 이 꼴을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제롬 모렐은 실없는 생각을 했다고 픽 웃으며, 수가 꽤 줄어든 그의 부하들을 보았다.

돌격 과정에서 적지 않은 기병대가 쓰러졌다.

누군가는 드론들에게 당했고, 누군가는 총에 맞았고, 누군가는 포격에 당했고, 누군가는- 글쎄. 아무튼 전장에서 영광스럽게 죽었다.

대부분 30세가 되기도 전에 죽은, 겁 없는 멋진 경기병들이다.

지금 그의 옆에서 소위 ‘우월한’ 종족 주제에 정신없이 도망치는 마족들을 쫓아 칼빵을 놔주고 있는 부하들 대부분 그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겠지.

그래도, 그들 덕분에 방어선의 부담이 한결 덜해진 것이 눈에 보인다.

방어선을 거의 돌파해가던 드론들의 공세가 그들을 쫓아 쏠리면서 끊기자, 무너져가고 있던 방어선이 빠르게 수습되고 있다.

제롬 모렐은 경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샤쇠르, 자식들아!”

저 멀리에서 기관총을 끌고 오는 마족들도 보인다.

“옛, 장군-!”

그래도 샤쇠르들 모두가 기병도를 들어 올리며 째지는 목소리로 답했고, 제롬 모렐은 자랑스러움을 담아 소리쳤다.

“너흰 존나 폼 나는 놈들이다! 존나 남자라고, 시발!”

“장군도 존나 남잡니다! 으하하하하!”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제롬 모렐과 경기병대는 사방에서 밀려오는 드론들 사이에서 미친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단 하나의 마족이라도 더 쳐 죽이기 위해 질주했다.

* * *

“저런, 멍청한…….”

바엘은 이를 갈았다.

이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붕괴될 상황인데, 한낱 미끼 기병대 따위에게 이끌려 다니는 꼬락서니라니.

와중에 양익에서 교전 중이던 기병대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광경마저 바엘의 눈에 들어왔다.

마족은 존엄하다.

그중에서도 바엘의 뜻을 따르는 충실하고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이들은 더욱.

그런데 그들이 이 한낱 열등 종족들 따위에게 휘둘리고, 무너지고 있다.

마땅히 긍지와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할 저들마저 ‘프라이드’의 이름을 실추시키고 있다.

그 모든 것이 바엘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바엘은 양손의 검을 고쳐 쥐며 전진했다.

“크으윽!”

그가 전진하는 한 걸음마다 근육질의 오크가 두 걸음 물러나고, 그만큼의 상처가 새겨진다.

상관없다.

저들의 구차한 시간벌기로도, 하찮은 승리로도 달라지는 것 따위는 없다.

제아무리 많은 마족들이 자격에 걸맞지 않은 어리석고 무능한 자들이라 해도, 그들이 그를 실망시킨다고 해도.

‘프라이드’ 마족의 자긍심 그 자체인 그가 있다.

비록 숫자는 적으나, 지금 그의 곁에서 저 열등 종족들을 쳐부수고 있는 친위대가 있다.

가장 긍지 있고, 가장 힘 있으며, 가장 우월한 존재들.

바엘은 눈앞의 오크를 유린하면서도 저들이 펼친 대마법의 축, 마법진과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어차피 드론들은 곧 돌아오고, 이미 한 번 흔들린 방어선을 급하게 수습해 봐야 그와 친위대가 건재한 이상 한계가 있다.

“우오오오오오!”

바엘은 그에게 달려드는 오크의 도끼를 어렵지 않게 쳐내고, 동시에 다른 검을 휘둘러 저 멀리에서 포격을 준비하던 대포를 그대로 파괴해버렸다.

적들의 하찮은 총 따위는 그와 그의 친위대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

저 하등 종족들이 나름 가장 강한 자랍시고 준비했을 오크조차 무력할 뿐.

지금 같은 추세라면 길어야 2시간이면 도달하겠지.

성녀왕과 마탑주의 목을 치고 나면 저들에게 승산 따위는 없다.

판단을 마친 바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결국 조금 더 빠르냐, 조금 더 늦느냐의 차이일 뿐.

그들이 있는 한 저 열등 종족들에게 허락되는 것은 오직 절망과 파멸의 운명이다.

“사격 준비!”

그래서, 바엘은 새롭게 등장한 적 보병대를 흘긋 보고도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저 깃발은 보고를 받아서 기억하고 있다.

프랑지아군의 최정예 부대인 혁명 수호대.

그래봐야 인간 기준에서고, 그와 친위대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

바엘이 저들의 정보를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중요해서라기보다, 보고만 받아도 자동적으로 외워서에 가깝다.

“조준!”

그 하등한 인간들이 일제히 머스켓을 들어 올렸지만, 바엘과 친위대도 자연스럽게 마력방벽을 두르고 눈앞의 적들을 참살하는 데 집중했다.

“발사!”

총탄이 일제히 빗발치고-

빠지직.

결코 들릴 리 없을 소리가 들렸다.

“뭣?”

총탄에 맞은 마력 방벽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바엘은 총탄이 하얀 빛을 내며 방벽을 깨는 그 찰나 사이에 검을 들어 올려 그것들을 쳐냈다.

그러나 다른 적에 집중하고 있던 그의 친위대들은 그러지 못했다.

“크헉……!”

“카학!”

“이, 인간 따위가, 이 무슨……!”

신성 교국의 축성탄.

본래라면 일반 병사들 따위가 쓸 수 있을 리 없을, 말도 안 되게 값비싼 탄환을 써서 기습적으로 일제 사격한다는 변칙이 악마들의 교만을 꿰뚫었다.

“머, 먹혔다!”

“해, 해냈다, 해냈어! 이 방어의 명장이 또 한 건 해냈어!”

모두가 흥분에 가득 차 있는 순간, 오크가 외쳤다.

“전부 쓸어버려!”

마력 방벽이 무너지고,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채 불타는 총탄의 고통에 신음하던 친위대에게 하찮은 열등 종족들이 달려들었다.

“끄아아악!”

“바엘, 님……!”

인간들이, 오크들이, 수인들이, 고블린들이 달려들어 하나하나 숨통을 끊어놓는다.

바엘의 자부심.

‘프라이드’의 상징.

가장 긍지 있고, 가장 힘 있으며, 가장 우월해야 했을 존재들이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며 최후를 맞이한다.

바엘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감히!”

“이, 이런!”

크록스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두 자루의 검에 소용돌이치며 모여든 마력이 대기를 갈랐다.

* * *

축성탄으로 의표를 찔렀다는 뿌듯함에 취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대기를 가르며 보랏빛의 거대한 검기가 날아든다.

“우와아악!”

있는 대로 마력을 끌어모아 날아드는 검기 앞에선 초라하기 그지없는 마력 방벽을 친 혁명 수호대의 대원들도.

“으, 으아아아악! 나 죽어!”

머리를 감싸 쥐며 몸을 웅크린 데미앙 드 미르보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한 순간.

“제발……!”

나는 에리스의 간절한 목소리와 함께 몸에 스며든 신성력의 기운을 느끼며 미칠 듯이 질주해, 그대로 그들의 앞에 뛰어들었다.

쾅!

겨우 부딪힌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미친 압력이 몸을 덮친다.

“으으, 아아……!”

마력의 폭풍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그대로 몸을 으스러트릴 것만 같은 감각에 저항하는 사이 몸에 있던 모든 마력도, 신성력도 모조리 빨려나가 버릴 것만 같다.

그래도, 물러날 수 없다.

크리스틴의 믿음이.

에리스의 희망이.

지금 이 순간까지 버티기 위해 쓰러진 그 많은 사람들의 무게가.

이것보다도.

이것 따위보다도 훨씬 무겁기에.

“아아아아아!”

나의 온 힘, 모든 걸 쥐어짜내서-

약간.

아주 약간 들어 올려냈다.

“크학!”

“후작 각하!”

완전히 뒤로 나가떨어진 내 몸을 다급하게 달려온 가스통이 받쳐준 순간.

검기는 우리 머리보다 조금 위의 막사들을 모조리 반으로 가르며 날아가-

굉음을 내며 언덕에 자상을 남겼다.

“고, 고맙네, 가스통.”

나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지만, 팔은 덜덜 떨리고 있다.

제길, 진짜 바닥까지 다 긁어 쓰고도 궤도를 조금 틀은 게 고작인가?

“감히, 하찮은 버러지들 따위가……!”

그러나 바엘은 그런 미친 검기를 날려대고도 힘이 남은 듯, 눈에서 마력을 뿜어내며 광란에 빠져 있다.

“하하, 시발.”

그 무수한 마족 기병대를 어떻게든 패주시키고 다급하게 중군을 구하러 달려온 건데...

아주 산 넘어 산이네.

뭐 저딴 괴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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