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혁명에 단두대는 필요없다-247화 (247/258)

247화. 심연의 성전 – 최후의 저항 (6)

불길한 검은 기운이 가득한 창날의 벽이 빠르게 가까워져 온다.

마족 기병대의 위용은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굉장하다.

우리 쪽 흉갑기병들도 검을 뽑아들고 마주 돌진하기 시작했다.

창과 검의 맞돌격은 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는 것이 인간끼리 대결의 이야기고.

저들이 들고 있는 건 척 봐도 평범한 창이 아니다. 반면 우리가 쓰는 창은 격돌용으로만 쓰고 부러지라고 만든 거니, 맞돌격으로는 대등한 대결이 될 리가 없다.

그래서 차라리 마력을 실은 검으로 쳐내는 것이 나을 거라 판단하고, 나름대로 마력에 우수한 자들을 선두에 배치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저놈들 우리가 궁여지책이라는 걸 눈치 챘군.

빠르게 돌진해오는 적 중기병들이 아주 기세등등해선 창을 앞세운 것이 빤하게 보인다.

하지만, 나라고 궁여지책만 믿고 정면 격돌을 하겠나?

“모렐!”

“옙! 이랴! 달려, 달려!”

제롬 모렐과 샤쇠르들이 빠르게 치고 나가서, 바로 우익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돌진해오던 마족들이 움찔하며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여과 없이 들려온다.

“대장님!”

“어찌합니까?”

“무시해!”

“하지만 저러면 측면이…….”

돌발 사태에 당황하게 되는 건 인간이고 악마고 별다를 거 없군.

보자마자 알겠다. 적어도 여기에 바엘은 없다.

여기가 아니라면 가스통 쪽인가?

만약 바엘이 있어서 역부족일 경우의 계획은 따로 있긴 했지만, 잘 해줘야 할 텐데.

어쨌든 저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샤쇠르들은 사선으로 내달리며 자연스럽게 드러난 측면으로 카빈총을 들어올렸다.

“조준- 발사!”

샤쇠르들의 카빈총이 일제히 격발하고, 총탄이 빗발친다.

상당수는 마족들의 마력 방벽에 가로막혔다.

그러나 모두가 그럴 순 없다.

“크아악!”

“아악!”

일단 무시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통에 이미 측면을 드러내고 있어, 마력 방벽의 보호도 받지 못한 자들은 총탄에 맞아 비명을 내질렀다.

썩어도 마족인 데다 중무장해서인지, 빤히 총탄에 맞고도 낙마하는 자는 생각보다는 적다.

그래도 그걸로 충분했다.

“제기랄, 저놈들부터 죽여!”

“무슨 소리야, 명령을!”

“이대로 측면을 공격당하면 어차피 다 죽습니다!”

샤쇠르들의 전투력이나 카빈총의 사격 자체는 별로 대단한 위협이 아니다.

정면에서라면 마족들의 마력 방벽을 깰 엄두도 못 내고, 붙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도륙당하겠지.

그러나 그래서 오히려 더, 마족들의 심기를 제대로 긁어놓았다.

저들은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실전 경험은 대체 언제가 마지막이지? 400년 전?

마족의 수명이 길다고 해봐야 이런 대규모 전쟁을 치른 놈들은 얼마 안 되겠지.

그런 놈들의 조직력이 뛰어나면 뭐 얼마나 뛰어나겠어.

하물며 저 정도로 오만한 놈들이 과연, 인간들의 전쟁을 보며 전훈을 받아들였을까?

“저 버러지들을 친다! 나를 따르라!”

“하등한 것들이 감히 열등한 무기로!”

예상대로, 상당수의 마족들이 제멋대로 제롬 모렐의 샤쇠르들을 따라 기수를 돌렸다.

하지만 저놈들은 중무장한 중기병이면서 심지어 긴 창으로 무장하고 있다.

미리 준비했어도 방향전환이 쉽지 않은 병종인데 저렇게 즉흥적으로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중간에 명령대로 전방 돌격을 고수하려는 놈, 일단 꺾어서 샤쇠르들을 따라가려는 놈, 모두가 뒤섞이며 난장판이 벌어지고, 자연히 진영 전체의 돌격 속도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해.

“제국군!”

“자, 가자! 가!”

질 폰 레온하르트의 명령을 받은 제국군 기병대까지 좌익으로 틀었고, 마족 진영은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이, 이젠 어떻게!”

“정면으로 가! 일단 돌격해!”

“무슨 소리야! 이대로 가다간 삼면에서 협공당한다!”

“교만 맙소사! 이 머저리들이 지금 뭐라는 거야!”

아주 개판이구만.

얼핏 보면 우리도 돌격하다 말고 군세를 이리저리 나누는 것 같아도, 이쪽은 미리 사전 합의를 한 데다 나름 위계도 확실하고 전 대륙에서 긁어모은 숙련병 중의 숙련병들이다.

반면 저놈들, 종족의 힘과 장비의 우위만 믿느라 규율은 오합지졸 잡병들과 다를 게 없군.

일단 혼란은 일으켰으니, 여기서 기세를 확실히 잡아야만 희생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겠지!

나는 마력을 끌어 모으고, 몸에 감도는 신성력과 함께 검에 불어넣었다.

바엘 그 미친 악마 놈은 아예 대기를 가르는 미친 짓을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라도-

“하아앗!”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두르자, 그대로 검에 넘실대던 마력과 신성력이 폭발을 일으키며 전방을 덮쳤다.

“크아악!”

“이, 인간이 어떻게-”

썰린 건 가장 앞에 있던 다섯뿐. 들인 마력에 비해선 영 아니다만...

우리를 깔보던 악마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우리 기세를 살리기엔 부족함이 없다.

“흉갑기병대, 돌격하라!”

“와아아아아아!”

혁명군 기병대가 기세를 드높이며 돌진하기 시작하자, 악마들은 더더욱 당황하며 제각각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익, 일단 돌격해!”

“바엘을 위하여!”

그러나 진영이 혼란으로 엉킨 상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관성으로 하는 돌격이다.

돌격의 충격력이 줄어든 건 둘째치고…….

“죽어라, 열등한 종족들아!”

불길한 검은 기운이 넘실대는 창은 위협적이지만, 진영이고 호흡이고 엉망진창으로 엉켜버린 기병대는 저들을 으깨기 위한 돌격대형에 축차 투입되는 꼴이 되어 있었다.

“이, 이놈들이……. 크학!”

흉갑기병대 중에서도 정예로 선별한 기병들은 마족 하나당 둘, 셋씩 맡아서 하나가 창을 쳐내고 하나가 검을 내지르는 식으로 마족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악마의 마력 방벽에 공격이 가로막히고 이쪽 마력 방벽은 창에 뚫리면서 쓰러지는 이들도 속출했지만, 어쨌건 최초의 돌격은 우리가 거의 일방적으로 들어갔다.

“열등한 놈들에게 압도적인 힘을 보여줘라!”

“아군을 보조하며 몰아쳐라!”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원래부터 숫자에서 우위던 우리의 힘을 살릴 수 있다.

문제는-

“돌격하라! 저 버러지들의 옆구리를 친다!”

제롬 모렐의 샤쇠르들을 따라갔던 마족 기병대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것.

제아무리 마족들이라고 경기병대인 샤쇠르를 따라잡을 수 있을 리도 없고, 모렐의 부대는 적 중군을 치러 갔으니 저렇게 되겠지.

그러나 우리의 측면을 노리고 달려들던 마족들은 도리어 그들의 측면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경악해야 했다.

“찬미하나이다-”

“칭송하나이다-”

넘실대는 신성력의 가호로 번쩍번쩍 빛나는 랜스.

성기사단이 기관총에 쓸려나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멸한 건 아니거든.

오히려 내 명령에 고분고분하게 따를 정도의 인원만 살아남은 게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아껴둔 패로 쓰기는 어려웠을 거다.

“어억?”

“성기사단?”

악마들은 그 번쩍번쩍 빛나는 랜스를 보자마자 경악했다.

열등한 종족이랍시고 개무시하던 놈들도 신성력은 좀 무섭나 보지?

“바, 방향을-!”

뒤늦게 방향을 틀려고 해도 우리 측면을 노리겠다고 가속하고 있던, 중장갑에 랜스로 무장한 중기병이 그게 될 리가 있나.

“아버지의 거룩함이 우리에게 임하옵시며-”

“그 은총이 우리의 창날을 높이 세우사-”

돌진하면서 부르는 찬송가에 깃든 신앙.

“우리로 하여금 형제들의 복수를 이루시니!”

그 안에서 번들거리던 분노가 선명하게 뿜어져 나왔다.

“모조리 죽여라! 신의 품에 안긴 형제들이 심판할 것이다!”

“A-men! A-men!”

가르돌포 에라모를 필두로 한 성기사단에게 측면을 찔린 악마들은 끔찍한 비명과 함께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 * *

양익의 기병 교전이 한창인 순간.

연합군의 중앙, 혁명군 선봉대.

하나의 검격.

그 하나만으로 수십이 피를 흩뿌리며 인간이었던 고기조각으로 변한다.

옆에 서있던 군사들이 그 참상에 겁을 먹기도 전에 또 다른 검격이 날아들고, 같은 참상이 다시 벌어진다.

악마의 쌍검이 춤을 출 때마다 방어선을 이루던 군사들이 무더기로 참살당하고 있다.

“저건, 무슨.”

용맹하기로는 둘째라면 서러운 장군, 니콜라 네조차 눈을 크게 뜬 채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통상적으로 충격부대는 양익에 배치하여 적의 측면을 노린다.

그걸로 정면에서 전열을 치는 건 하책이며, 그중에서도 최대의 저지력을 보유했을 중군의 본대를 친다는 것은 최악의 수다.

……라는 것이 군사적 상식이다.

그러나 애초에 군사적 상식조차 통용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본대에 제아무리 많은 군사가 있어도 압도적인 힘으로 정면에서부터 쳐부술 수 있다면.

애초부터 전술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으, 으아아! 오지 마!”

군사들이 쉴 새 없이 머스켓을 쏘지만, 그들의 총이 아무리 불을 뿜어도 압도적인 마력 방벽은 모든 총탄을 튕겨낸다.

“산탄 포격이다! 저 괴물을-”

산탄포격으로 저지해보려던 포병대장은 바엘이 대기를 가르며 날린 검격에 대포 채로 두 동강 나버렸다.

악마는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저 어느 순간, 드론들 사이로 나타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모두가 보자마자 알았다.

머리에 쓴 마왕의 관과 압도적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한 무위.

저자가 바로 마족의 용사, 프라이드. ‘교만’의 바엘이라고.

후장식 소총도, 드론도, 기관총도 넘어서지 못한 혁명군의 전열이 단 하나의 악마로 인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바엘로 인해 난자당한 방어선으로 그를 따르는 친위대가 뒤따르며 길을 넓힌다.

그들 하나하나가 머스켓 총탄 따위는 의미가 없어 보이는 압도적인 마력 방벽을 두른 채 군사들을 학살하고 있다.

그렇게 무너진 길을 따라 드론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기 시작하자 그 드높던 혁명군의 사기조차 꺾이기 시작했다.

“히, 히이, 히이익…….”

“동요하지 마라!”

군사들이 공포에 찬 나머지 붕괴되려는 조짐을 보이기가 무섭게, 니콜라 네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언제나 용맹무쌍하게 선봉을 원하던 그조차 머릿속에는 의문만이 가득 찼다.

어떤 병력도, 어떤 전술도 의미가 없어 보이는 저런 괴물을 상대로, 대체 뭘 할 수 있지?

니콜라 네는 망연자실하게 서서 군사들을 무차별로 도륙 내며 자신에게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는 바엘과 친위대를 바라보았다.

죽음 그 자체를 구현해낸 듯한 압도적인 힘과 공포를.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무력감 속에, 니콜라 네는 마른침을 삼켰다.

후퇴해야 하나?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한 네는 이를 갈았다.

그는 혁명의 대의 같은 것은 모른다.

자유도, 평등도, 박애도 관심 없었다.

그는 자신의 충성을 바칠 이를 위해 싸웠다.

부패한 구체제와 혁명의 혼란 속에서 엉망진창으로 전락했던 프랑지아군을 이끌 희대의 천재를 위하여.

그러나.

-저는 발리앙 사령관께 충성을 바쳤습니다. 이제 와서 후작 각하께 충성을 맹세할 수는…….

-내가 언제 나한테 충성하라고 했나. 원래부터 내 부하였던 자들도 나한테 충성하지 않을 텐데?

니콜라 네는 이런 순간에 떠오르는 기억에 헛웃음을 흘렸다.

-나한테 충성할 필요는 없다. 혁명군 총사령관으로서 내가 그대들에게 요구하는 건 오직 하나다. 혁명군으로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

-군인은 마땅히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겠지요…….

이 전장에서의 후퇴는 단순한 후퇴가 아니다.

그로 인해 맞이할 패배는 단순한 전투의 패배가 아니라, 최악의 종말이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 니콜라 네는 앞으로 우렁차게 소리쳤다.

“혁명군, 자리를 지켜!”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걸 확신한 순간, 그는 앞으로 한 발 더 내디디며 부르짖었다.

“지금 그대들이 버티는 단 일분, 단 일초가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니콜라 네가 여기에 있다! 그대들의 장군이 여기에 함께 하고 있다! 절대 물러서지 마라!”

마치 벌레들을 밟아 죽이기라도 하는 양 무심한 얼굴로 검을 휘두르던 바엘의 시선이, 그 순간 처음으로 그를 직시했다.

눈동자가 없는 그 섬뜩한 눈.

니콜라 네는 그 눈을 마주하고 주춤하는 대신, 그의 검을 뽑아 들었다.

후-

악마는 비웃었다.

그자가 검을 뒤로 당기고, 팔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그게 몇 번이고 본, 그 끔찍한 검격을 날리기 위한 준비 자세라는 걸 네도 알아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한 걸음 더 전진했다.

그리고, 그 순간.

“Al-ardho-”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와, 벼락같은 외침이 지나가고-

“Akbar!”

뒤이어 진영 전체를 뒤흔드는 합창이 울려 퍼지자마자.

콰앙!

마치 대포라도 쏜 듯한 충격음과 함께, 거구가 내리꽂히며 지면을 강타했다.

“흠. 하등 생물 중에서는 조금 쓸만한가. 과연, 허를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대비가 되어 있었군.”

쌍검으로 내리 찍힌 도끼를 막아낸 바엘이 읊조리고-

크록스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흉포하게 답했다.

“드디어, 형제들의 원한을 풀어줄 때가 왔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