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심연의 성전 – 최후의 저항 (5)
100만과 100만의 격돌이 불러일으킨 소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뒤흔든다.
전장 전역을 뒤덮은 포성과 총성, 고함 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할 지경인 상황.
나는 언덕 위의 고지대에서 전장을 살피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길게 횡대를 세우는 전열보병 특유의 진영 대신 드론들의 난입에 대비하여 종대를 길게 늘리고, 언덕까지 동원해 2중, 3중으로 사격선을 구축해 최대한 전장을 좁히기는 했다.
그래야만 가능한 넓은 범위를 에리스가 커버해 주고, 마찬가지로 수가 제한된 전력인 마도사단을 배치하기가 용이하니까.
마탑주의 대마법을 보좌하기 위해 마법사들이 반수 가까이 빠진 상황에 마족들의 마법 폭격을 막으려면 이 조치는 절실했다.
그럼에도 양측 병력 도합 200만이 씨우는 전장은 넓어도 지나치게 넓다.
중앙에서만 해서는 도저히 다 커버할 수가 없어서 혁명군 진영에서 지젤 다비가 척후병들과 함께 마법사들을 보조하지만, 그 역할을 크라프테에선 슛첸들로, 제국군에서는 척후병들로 제각각 진행하고 있다.
내가 전장을 살피고 있자, 등 뒤에서 루이 드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묵시록의 전쟁 같군요.”
마족들의 진영에서 로켓이나 대포가 날아들고, 우리 포병대가 그들을 향해 포탄을 쏘아댄다.
간간이 마족들이 기관총 포좌를 가져와서 쏘려고 들면, 이내 우리 측 마법사들의 불덩이가 날아들어 파괴해버리거나 번개가 내리쳐 그대로 구워버린다.
그런가하면 마족 측에서도 수시로 불덩이를 날리고, 보랏빛의 번개가 하늘에서 내리치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우리 측 마법사들의 마력 장벽에 가로막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나는 막 날아든 불덩이가 작렬하며 너댓명의 군사들이 불이 붙은 채 발버둥 치다 쓰러지는 광경을 보았다.
“확실히, 그렇네.”
그나마 마족들은 개인의 힘에 집중하는 문화가 있어서 개개인의 마력 방벽에 집중하면 했지 우리처럼 마력 장벽으로 다른 이들을 보호한다는 발상은 없는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마력에서 우위인 마족들이 우리와 똑같은 식으로 대응했다면 솔직히 우리가 불리했을 텐데, 우리 입장에선 다행이지.
……저들 식으로 발상하자면, 인간의 마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열등한 마족들은 보호할 가치도 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괴기스러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 하늘에서!”
아, 제길.
안 좋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네.
여러 마리의 시커먼 새들이 하늘을 날아 우리 진영으로 접근한다.
군사들이 나름대로 하늘에 대고 쏴 대기는 하지만 전방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가 다급하게 쏜 통에 화망 형성이 늦었다.
“이런, 제기랄! 이젠 하늘까지!”
알렉상드르 베르테르가 탄식하는 가운데, 새떼는 빠르게 날아들어 군사들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으아앗, 저리 가!”
“아악! 내 눈, 내 눈!”
군사들이 총검으로 찌르며 저항해 보지만 그래봐야 검은 마력으로 흩어질 뿐, 새떼의 습격은 멈추지 않는다.
그사이 나는 전장을 훑었고-
여러 개의 눈이 달린 거대한 새들을 찾아냈다.
할파스, 그자의 종족이군.
나는 바로 등 뒤에 메고 있던 활을 꺼내 시위를 걸고, 화살을 걸었다.
개체 수가 적은 걸 보면 확실히 고위 마족인 것 같고, 실제로도 위협적이지만…….
화살에 마력과, 내 심장에서 요동치는 신성력을 불어넣는다.
생각하는 이미지는 청기사 최후의 전장에서, 다르타냥을 저격한 화살.
에리스가 축성해 주었던 그것처럼, 화살이 하얀색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내 화살을 날려보냈고, 날아간 화살은 수십의 새를 그대로 가루로 흩어버리며 날아들어-
거대한 새의 마력 방벽을 깨버리고 그대로 가슴팍에 명중했다.
“끼에에에엑-!”
상당히 거리가 먼데도 여기까지 들리는 단말마와 함께 새가 쓰러지고, 동시에 군사들을 괴롭히던 새떼 중 상당수가 검은 마력으로 흩어져 내렸다.
바로 다음 화살을 뽑아 똑같이 날리자, 다음 악마는 내 화살을 팔로 쳐내려다가 그 팔 채로 터져버리자 바닥에서 나뒹굴며 비명을 내질렀다.
바로 한발 다시 뽑아 날리자, 그 끔찍한 새는 결국 침묵했고, 이내 아래쪽에서 환성이 들려왔다.
“새들이 사라집니다!”
“라, 라파예트 후작 각하 만세!”
좋아, 고위 마족에게도 충분히 통한다.
내가 주먹을 쥐었다 펴며 마력의 소모를 가늠해보고 있자, 드제가 조금 얼떨떨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굉장하시군요, 후작 각하.”
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솔직히 나도 좀 놀랍다.
처음 할파스와 대면할 때만 해도 화살이 아니라 검격조차 닿지 않았는데.
할파스가 저 종족 중에서도 유별나게 강한 녀석이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그만큼 강해진 거겠지.
“여왕 폐하 덕분이지.”
“예?”
“그냥 그런 게 있어.”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적진을 살폈다.
아까 전의 그 새, 더는 보이지 않는다.
있더라도 본체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나?
어느 쪽이든, 저들의 고위 마족들에게 나름의 경고가 된 셈이다.
그러고 보니 할파스가 자신이 프라이드 사 소속이라고 했던가.
어째 그렇게 강력한 전력이 왜 이제야 미적미적 기어 나왔는지 알 것 같네.
소위 고위 마족이라는 작자들은 파이몬 정도론 동원할 수 없고, 바엘의 명령만 받는다 이거지…….
어쨌거나, 이걸로 확실해졌다.
“지휘는 맡기지, 드제 사령관.”
“으음, 또 기병대로 나가십니까?”
“그래. 저들이 주력을 직접 전열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늘에서 하강 중인 푸른 구체를 흘긋 보았다가, 다시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리스는 병사에게 수건을 받아 땀을 닦아내더니 물을 받아서 마시고 있다.
아직까지는 잘 버텨주고 있지만, 가벼운 부담은 아니겠지.
그 정신 나간 검격을 방어해낸다는 건 수정을 쓰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다.
신성력 증폭 수정의 개수에도 한도가 있다.
바엘이 날려대던 검격이 얼마나 자주 쓸 수 있는 건지는 모른다.
어쨌든 수정에 한도가 있고 에리스도 체력의 문제가 있는 이상 계속 날려댔다면 결국 무너졌겠지.
그러나 바엘은 신성력 증폭 수정이 몇 개나 있는지 모른다.
단순히 검격을 날려대는 것만으로는 무너트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저 교만한 악마가 분노했다면.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저들의 파멸이 내려오고 있다면, 저자는 반드시 직접 공격해올 거다.
“바엘의 검격이 멈췄고, 전선에도 고위 마족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바엘도 주공과 함께 공격해오겠지. 그리고 그건 양익부터 칠 공산이 크다.”
당장 중군을 맡은 건 혁명군과 노던 연합 왕국의 군사들이다.
예비대도 당연히 중군 쪽을 위주로 배치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 지휘부와 마탑주, 에리스가 함께 있으니까.
중군의 전열은 가장 두텁고 또 정예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저길 뚫느니, 양익을 돌파해서 후방의 마탑주를 타격하려고 드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지.
“어차피 적은 전 방어선에 쏟아붓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병력을 보유했으니, 적의 가장 예리한 칼날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운신도 편한 쪽으로 온다고 봐야 합리적이지.”
그리고 그 가장 예리한 칼날은 분명히 바엘이 중심일 거다.
“알겠습니다, 라파예트 후작 각하. 그러면…….”
드제는 저 아래에서 악을 쓰며 군사들을 독려 중인 데미앙 드 미르보를 흘긋 보고는 픽 웃으며 말했다.
“다녀오십시오. 이번에도, 기다리며 잘 지휘하고 있으면 공적은 떠먹여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이를 말인가. 제일 티 안 나는 역할에도 언제나 제일 충실한 전문 총사령관 대행.”
“하하하! 후작님과 프랑지아에 신의 가호를.”
“사령관과 프랑지아에 승리를.”
나는 바로 말에 올라, 미리 이동시켜둔 기병대를 향해 질주했다.
* * *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흉갑기병대를 인솔하여 게르마니아 제국군의 좌익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우리 쪽으로 막 달려가려고 나온 전령과 마주쳤으니까.
“어, 어? 라파예트 후작? 아, 아니, 후작님?”
“적 병력은?”
“마족 중기병대입니다! 50,000 가량으로 추정됩니다!”
“화끈하군.”
중기병이 5만.
“하핫, 이거 우리 도착이 조금만 늦었으면 제국군이 단번에 분쇄되는 꼴을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렐.”
“어이쿠, 실례.”
전령의 표정이 안 좋아져서, 나는 빠르게 말했다.
“제국군 흉갑기병대는 어디있지? 안내하도록.”
“옛!”
전령을 따라 말을 달리고 있자, 모렐이 입을 열었다.
“후작님. 저와 샤쇠르들은 아예 마족들의 뒤를 칠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기병대 상대가 아니라?”
“옙. 솔직히, 마력 다룰 게 뻔한 마족 최정예 중기병대 상대로 우리 경기병대가 뭐 얼마나 많은 걸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마족들의 뒤를 친다고 해도 드론들은 사기가 꺾이지는 않아.”
거기다 100만의 군대다. 뒤를 친다고 그걸로 끝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되려 드론들의 특성상 경기병대는 극심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역으로 지능이 없는 드론들이니 우리에게 확실히 시선이 쏠리겠죠. 겸사겸사 뒤에서 포격이나 해대던 마족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 테고. 어떻게 되든, 방어선에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경기병대의 손실이 심각할 텐데? 당장 그대도 앞장서 돌격하는 취향이잖나. 지나치게 위험해.”
모렐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압니다. 부하들도 알고요, 부대원들과의 합의는 이미 끝났습니다.”
“……모렐.”
“하하, 뭘 그런 얼굴을 다 하십니까. 어차피 다 같이 목숨 걸고 싸우는 전장인데. ...어차피 저 빌어먹을 드론들 상대론 추격해서 전과확대 할 일도 없고, 그럼 정찰전이 끝난 지금 우리에게 다른 역할도 없습니다.”
늘 경박한 태도를 하고 있던 모렐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샤쇠르들 사이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30살까지 살아남는 샤쇠르는 겁쟁이라고. 근데 제가 진작에 30이 넘었걸랑요. 물론 아직 살아있는 건 잘 싸우고 잘 지휘 받은 덕분이지만...”
한때 라파엘 발리앙의 오른팔이었던 남자는, 진하게 웃으며 청했다.
“이 빌어먹을 섬에선 정찰전이니 추격전이니 하는 상식 따위가 없어서 다들 좀이 쑤시던 참입니다. 경기병대가 용기가 없어서 패잔병 섬멸이나 하는 게 아니라는걸, 우리가 누구보다 사나이라는 걸 보여줄 기회를 주십쇼.”
“하…….”
자진해서 죽을 자리를 찾아들어가겠다니.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결국 모두가 죽을 자리에서 싸우고 있다.
이런 걸 자처하는 건 솔직히, 고맙기까지 하다.
“……허가하지. 하지만 둘러 싸여서 죽을 생각은 하지 마. 경기병이잖나. 벌처럼 쏘고 나비처럼 날아서 튀도록. 그러지 않으면 내가 여왕 폐하께 맞아 죽어.”
“휘유, 여부가 있겠습니까! 으하핫, 역시 이 정도 모험담은 있어야 돌아가서 풀 썰이 되어주죠!”
“그래. 그대의 그 지긋지긋한 수다도 못 듣게 되면 서운할 것 같으니, 살아서 돌아와.”
“으하하, 제 수다보다 여왕 폐하의 잔소리가 더 지긋지긋하신 건 아니고요?”
“들켰군.”
나와 모렐이 서로를 마주 보며 낄낄대며 웃고 있을 때쯤, 제국군 흉갑기병대와 합류했다.
“오, 직접 와주실 줄이야. 이거 영광입니다?”
“레온하르트 사령관?”
우리를 맞이해준 건 질 폰 레온하르트였다.
“왜 사령관이 여기에 있나?”
질은 씩 웃으며 답했다.
“당신과 같은 이유죠, 라파예트 후작.”
나는 픽 웃었다.
이것 참.
하여간 명색이 사령관씩이나 되어서, 다들 목숨을 내놓고 다닌다니까.
“적 기병대, 접근합니다!”
나는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5만의 중기병대.
온통 칠흑의 마갑을 입히고 중갑까지 입은 마족들이 불길한 보랏빛 기운을 흩뿌리는 창날을 위로 세운 채 접근해오고 있다.
바엘은 저들 사이에 있나?
이렇게만 봐선 알 수가 없다.
크라프테군 쪽에는 가스통이 나가있으니, 만에 하나라도 그를 믿는 수밖에.
“이야, 보기만 해도 흉흉하군요. 저것들 상당수가 기사급이라고 봐도 되려나?”
“아마도.”
우리 병력은 혁명군 흉갑기병대가 3만, 제국군 흉갑기병대가 5만.
숫자로는 우리가 더 많지만, 저들의 행색을 보니 우리가 유리하다고 생각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나는 흘긋 뒤를 돌아보았지만, 군사들의 눈은 투지로 불타오르고 있다.
하긴, 그렇군.
명색이 기사 왕국의 후예를 자처하는 최정예들이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섬 특유의 전장에서는 지금껏 활약할 기회조차 없었고, 지금 저들의 눈앞에는 나름대로 존경받는 사령관들이 직접 서 있다.
명색이 새 시대의 기사들인데, 여기서 쫄면 그게 더 이상하지.
나는 느릿느릿하게 접근해오다가, 조금씩 속도를 올리는 적 기병대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레온하르트 사령관. 물러날 생각은?”
“뭐, 솔직히 이런 식으로 정말 어깨를 맞대고 싸우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질은 픽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꼬리말고 도망치기엔 저도 나름 기사라서.”
나도 그의 답에 절로 미소가 지어져, 검을 뽑아 그의 검에 부딪혔다.
“제국에 영광을. 레온하르트에 승리를.”
질이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그의 검을 내 검과 함께 높이 들어올리며 답했다.
“프랑지아에 영광을, 라파예트에 승리를.”
그래, 이거면 된다.
머나먼 길을 서로 돌아왔어도, 한때 서로 적이었어도.
이 전장에서, 같은 뜻을 품고 함께 싸운다면 그걸로 족하다.
“기사 왕국 최후의 후예들이여!”
“제국 최후의 기사들이여!”
시작은 각각.
그러나 끝은 하나.
““돌격하라!””